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생명의 떡 (요 06:30-35)

첨부 1


영국의 컬글튼 경이라는 유명한 그리스도인 부호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컨글튼 경이 자기 집 하녀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다 말고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게 만약 5파운드만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이 말을 들은 컨글튼 경은 하녀에게 다가가 "정말 그런가"하고 물 었습니다.

"주인님, 정말 그렇고 말고요" 그래서 컨글튼 경은 하녀의 등을 다독거려 주면서"내가 5파운드를 줄테니 이제부터는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렴." 하고 말했습니다. 이게 웬 횡재입니까 그런데 컨글튼 경이 정원으로 나가 는데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참, 이럴 줄 알았으면 10파운드라고 말하는데 아유 아까워.>또 다시 불평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일화는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는 불평을 하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항상 만족하며 감사하는 생활 을 하고 있습니까 본문은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필요와 그 필요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살아가는 데는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당신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는 무엇입니까

1.가장 根本的인 必要

 현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심리학자인 Abraham Maslow는 "인간의 기 본적이고 근본적인 필요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먹고 사는것, 즉 생존을 위한 필요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최고의 필요는 자아 실현 이다"라고 했습니다. 一理있는 지적입니다. 예수께서도 인간의 육체적 필 요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도 생존을 위한 필요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아셨습니다.

<요 6:> 벳세다의 들판에 모인 배고픈 군중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그 자체가 예수께서 배고픔의 문 제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지구촌의 빈곤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 까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먹 고 사는 문제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나라의 요즘 세대에게는 이 '절대 빈곤'이라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날 이 지구촌에는 10억에 해당하는 인류가 아직도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즉,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무엇을 먹고 라아야 할지"고민하고 있 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10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웃의 빈곤 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문제를 책임져야 할 윤리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빵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빵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본문은 그것이 근본적인 해답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음을 관심해야 합니다.

그날 그 벳세다의 들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 셨습니다.그러나 주님의 기적을 통해서 배고픔을 면했던 군중들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까 좀 심한 말인지 모르지만 하 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불안해 하며, 불만 스러워하며, 방황하며, 슬퍼하며, 배고파하는 군중들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도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필요가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 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이야기는 "근본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인간은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은 기적을 체험한 후의 이들의 반응입니 다.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 기적 때문에 감격한 흔적은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 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30절) 그들은 이미 표적을 보았는데도 더 큰 표적이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 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너희에게 주시나니"(31,32절)예수께서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그 정도의 기적 가지고는 안됩니다. 아직 당신은 모세보다 못합니 다. 모세는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내리게 하여 그들의 필요를 만족시 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분의 양식을 채워 주는 이 정도의 기적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적어도 40년간은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셔 야 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이 엄청난 기적을 맛보고도 주님 앞에 더 커다란 기적을 요구하며 끝없 이 불평하는 그 당시 사람들은 만나를 내리시는 그 기적으로 만족한 흔적 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왜 항상 만나만 주십니까"라고 투정하던 구 약 백성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백성들은 아직도 그들에게 정 말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진정한 필요, 근 원적인 필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원적인 필요 두 가지를 지적해 주고 계십니다.

 2.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직면하는 근원적인 필요 두 가지

1)첫번째 필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쫑지 아니하리라"(37 절)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 앞에 오는 것, 그것이 근본적인 필요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너희들의 근본적인 필요는 하나님이 다."시편 기자는 이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시42:1)"하나님이 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 다."인생의 근원적인 필요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없이는 제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시편 기자는 알았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오래 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내 영혼이 당신의 품에 돌아가 쉬기까지는 결코 평안함이 없었 나이다."당신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당신 인생의 근본적인 필 요가 해결되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아 직도 굶주린 사람입니다.

 2)두번째 필요/영생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 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가 하시니라"(40절)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힙니다. 내가 무언가 성취 했다고 해도 그 기쁨은 순간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인생의 또 다른 불안과 두려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문이 있습 니다.

"그 다음에 무엇일까" 결국 사람이 마지막에 직면해야 할 것은 차디찬 무덤입니다.

"나도 죽어야 한다. 그리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이 사실 앞에 서 당신의 성공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인생을 향락한다고 하지만 그 쾌락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자유. 삶의 보람, 그것이 차디찬 한 줌의 흙 앞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야기)중세 로마의 어떤 대학 정문 앞에 이런 큰 간판이 붙어 있었습 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로마에 살고 있는 한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품고서 공부를 하고자 했으나 가난해서 뜻을 이루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래서 자선사업을 하는 유명한 할머니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 저는 꿈이 있는 젊은이입니다. 학창 시절에만 저를 도와 주시면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 청년의 고백을 들으면서 할머니가 물었 습니다.

<청년이 하려는 계획이 무엇이요> "예, 우선 법과대학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변호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 정의 구현에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변호사 사업을 좀더 확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공익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할머니가 또 묻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는> "늙겠죠. 늙으면 제자들을 육성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과 편리 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머리를 긁적이던 청년이 대답합니다.

"죽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청년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때 할머니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는 한푼도 투자할 수 없소>그 할 머니와의 만남이 청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사건 이 후에 자기인생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훗날 자기가 세운 대학 정문에 이 간판을 붙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삶의 이 궁극적 문제, 영생의 문제,인생의 마지막이라나는 문제 앞에 할 말이 없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오늘의 성취도, 성공도 의미가 없다는 사 실을 아십니까 영생의 문제, 이것이 당신의 근원적인 필요하는 사실을 아 십니까

3.가장 근본적인 필요에 대한 대답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십니 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 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맏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유명한 선언입니다. 요한복음 전체에 [나는 무엇이다]라는 예수님의 선

언이 일곱가지가 나오는데, 그 중의 하나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는 선 언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선언 속에 담겨진 의미를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신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담 겨져 있습니다. '내가'라는 말은 흔히 우리가 친구와 대화하면서 "내가 말 이야, 내가 있잖아"하는 식으로 말하는 '내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 에서 말하는 '내가'는 하나님에 대해서만 사용되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물음에 하나님은 " 나는 스스로 있어서 있는 자다"(I AM THAT I AM)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출3:14) 이 'I AM이라 는 말은 紳的인 名稱입니다.

예수님은 동일한 의미를 여기에서 사용했습니다. 구약에서 사용되었던 그 의미외 전적으로 동일한 선언! 여기에서 '내가'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선 언입니다.

그리스도가 인생의 문제에 대한 대답인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그분은 나를 창조 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를 지으신 분이십니 다. 나의 섭리자요, 나의 구속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그래서 그분이 내 문제의 해답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만나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하신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 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32절) 하늘에서 내린 떡, 사실 그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이 말씀은 "내가 하나님이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영 접했다"라고 말할때 그것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요 그 말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내 안에 있다는 뜻 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 라면 무슨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분이 해답이십니다.

 2)예수님 자신이 解答이십니다.

--

우리의 진정한 필요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날때 그의 필요는 무엇이었습니 까 그의 필요가 많았습니다. 우선 그에게는 독립이 필요했습니다. 마음대 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탕자가 먼 나라에서 모든 것을 탕진하고 거 지가 되어서 돌아오던 그날, 그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 습니다. 그 필요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영접해 주신다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만 있다면.."그럴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돌 아오는 탕자 그리고 그 아들을 끌어안은 그 아버지의 음성을 기억하십니 까"얘들아, 살진 송아지를 잡자. 잔치를 벌이자. 이는 죽었다가 다시 살 아난 내 아들이다.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라. 발에는 신을 신겨라. 그리고 새 옷을 입혀라."이제 이 아들의 모든 외적인 필요가 채워졌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아버지를 만남으로써 자연히 따라오게 된 것들입니다. 문제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실 수 있는 분 정도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궁극적 필요 자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실제로 깨닫는 데에 우리는 왜 이렇게도 더딘지요

3.예수님 안에 참된 영원한 만족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차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인류 역사상 누가 이런 엄청난 약속을 한 적이 있습니까"내게 오는 자, 나를 믿는 자, 나를 소유한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를 믿으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긴 믿지만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 다면 이 말씀의 약속들을 어디까지가 진실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항상 이 말씀을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아지고 크고 작은 수많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직장, 사업, 결혼, 재물, 성공, 성취,등 수많은 문제들과 싸우고 있음습니다. 그러나 그 리스도를 신뢰했을 때 적어도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소한 필요 때문에 바 람직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감히"나는 결코 목마르지 않습니다.

배고프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필요한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아 버지꼐서는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 신다면 주실 줄 믿습니다. 또 내 필요가 바꾸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면 주께 서 내 視線을 조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백은 내 것입니다. 주 께서 나에게 생명의 떡으로 오셨기에 나도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처럼 고 백합니다.

"내게는 배고픔이 없습니다. 내게는 목마름이 없습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가 나의 생명의 떡으로 찾아오셨기 때 문입니다." 시편기자처럼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얼마나 복되고 감격스러 운 일입니까 이제 이 약속을 더욱 확신있게 주장하십시요. 하늘과 땅을 주장하시는 아버지, 나의 아버지시라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불안에 싸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짐이 무거워질 때, 더욱 은혜 내리시며, 우리가 힘겨워질 때더욱 힘을 주시도다. 고통이 더해질 때 긍휼을 입히시고시험이 더해질 때 평강을 부으시도다.

더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앉을 즈음 우리가 쌓아 둔 그 모든 것이 고갈될 즈음 아버지의 풍요와 공급은 이제 막 시작되었도다.

아! 그의 사랑 끝없어라. 그의 은혜 측량할 길 없어라. 헤아릴 바 없어라.

이 작은 머리로는 , 무한하신 그 풍요와 그 능하심을 !오, 주 예수여.

당신은 내게 주시네, 주시네, 또 다시 주시네.

 애니 플랜트

주님이 함께하시는 한 우리는 고통과 갈등을 안겨주는 많은 필요에도 불 구하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이 행복한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배고픔이 없습니다. 목마름이 없습니다. 주님 때문입니다. 주께서 주님 자신을 저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생애의 모든 갈들과 고통을 넘어서서 이 참된 기쁨과 만족을 되찾는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영원한 만족은 예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