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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눅 02: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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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나라에서는 남아가 열두살이되면 성인이 되고 율법의 아들이라 호칭 하며 또한 율법에 대하여 의무를 지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열두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부모와 함께 유월절 절기에 참석하려고 예루살렘 을 방문 하였다.
7일동안 계속된 행사를 마치고 요셉과 마리아는 고향 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이 동행중에 있는 줄 알고, 하룻길을 간 후에야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사실은 날마다 예수님을 잃고 사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경종이기도 하다.
본문 말씀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살펴 보기로 한 다.
첫째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룻길 가면서도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
는줄로 생각하였다.
사실을 훨씬 전에 예수님을 잃었음에도 그들은 자기들 곁에 있겠거니 하면서 가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내집 대문에 교패가 붙여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응당 내집에 있겠거니,내가 교회의 직분을 맡고 있으니 틀림없이 내 곁에 계시겠거니 하고 타성적 방심에 젖는 일이 있다.
이러한 안이한 생활은 믿음에 올무가 될 수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은 것은, 예수님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지금의 그리스도인 중에도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잃는 경우가 많다.
행사중심의 분위기에 휩싸여 예수님을 찾아보지도 않고귀로에 오른 그 부모와 같이. 오늘의 신앙인은 사업중심 명예나 물질중심의 자기욕구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바쁘고 번거로운 세상을 달리다가도 우리는 자주 자문하여 봐야 한다.
나는 지금 예수님과 동행하고있는가
자신이 예수님을 잃어 버린줄도 깨닫지 못한체 교회출석 기도 봉사하는 것만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착각하는 헛된 생활은 표류하는 배와 같다
자기의 믿음을 자주 자주 점검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그분과의 동행으로부터 이탈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온전케하는 적절한 방법이다.
가정에 있어서 불화가 잦을 때 또는 자녀들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대인 관계 등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 더욱 자기의 신앙을 스스로 점검 해봐야 한다.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 (벨전 4:7) 하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시험을 물리치며 (마4:4) 죽도록 충성 (계2:10) 하는 생활은 예수님을 잃지 않는 삶이 될 것이다.
둘째 예수님을 찾아 헤매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먼저 동행중에 '친족'에게서 찾아 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예루살렘의 성전에 남으셔서 선생들과 성경문답으로, 듣는 이들을 경탄케 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이들에게서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재의 많은 사람들은 성현이나 영웅에게서 진리를 묻고 길을 찾으려 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 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벨전 1:2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 (요3:6) 이다.
예수님의 신비는 이 세상적인 혈과 육으로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채널에 맞춰야 예수님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다음으로 찾아 본 것은 ' 아는자 중에'에서 이다.
이 세상의 아는자인 철학 문학 과학속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는 없다.
성경의 관점에서 철학이란 세상의 한낱 초등학문 (골2:8)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을 어디에서 언제 잃어버렸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명예나 부에서 구원을 찾을 수는 더더구나 없다. 막스주의를 백년동안이나 성경처럼 신봉해온 자들의 허망한 결말을 오늘의 소련이나 동구권의 국가들에게서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인간의 지혜로부터 얻어진 가치는 그것이 최선의 것이라 해도 결국은 비극적 귀결을 가져온다.
시편 49:20 은'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한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요셉과 마리아와도 같이 친족과 아는자에게서 예수님을 찾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깨닫는 일, 그것은예수님과 동행하는 바른 믿음을 되찾는 일이다.
셋째 예수님을 다시 만났다.
본문 46:47은 이리 저리 헤매던 그들이 결국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을수 있었던 사실을 말하고 있다.
49절에서 예수 님은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
성전 곧 교회는 어떠한 곳인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요 예배드리는 곳이요 말씀이 있는 곳, 주의 영이 역사하는 곳, 성도가 교제하는 곳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가
바로 이곳 예배드리는 교회에서 만나야 한다.
설교를 듣는 가운데,찬송하는 중에 기도하다가 또는 내 허물을 깨닫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목마르게 기다리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눅2:25-28)
84세의 안나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밤낮 기도하고 봉사하던 중에 예수님을 만났다 (눅 2:36-38)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톤은 격무 속에서도 주일을 성수하기에 빠짐이 없었고, 영국의 윌리암경은 그를 찾는 손님이 그의 집에서 만날 수 없을 때 겨회로 가보면 어김없이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헛수고를 지적하는 말씀이다.
있어야 할 곳은 있는분을 찾지 않아야 할 곳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명료한 가르침이 그 안에 있다.
왜 그리스도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가
그 분과 동행하기 위해서이다.
흠과 티가 없는 그 분의 피로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이다.
길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말미암지 않고서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결단코 예수님을 찾아야 하고 함께 있어야 한다.
내가 찾는 예수님을 이웃에게도 전하여야 한다.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일은, 성도로서의 값진 충성이다.
예수님은 나의 피곤한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힘을 내게 하실 것이다.
날로 새로와지는 생활안에 우리 주 예수님과 실재로 동행하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하면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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