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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것을 가진 자 (고후 0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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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먹기 위해서만 고민하는 그 정도의 수준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우리 인간성을 고발하는 정확한 진단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가난하고 어려운 때에 밥 한끼 제대로 잘 먹었으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고 할 때에 잘 차린 밥상을 마주하고 앉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유명한 재벌가인 워케벨라에게 "사람이 얼마나 돈을 가지면 행복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 가진 것보다 조금만 더 가지면 행복합니다"하고 대답했다 합니다. 사실입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조금 더 할 때가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란 지극히 상대적입니다. 저는 주일 아침이면 언제나 아침 6시 20분에 교회로 나옵니다. 그런데 항상 그 시간이면 제가 지나가는 골목에서 저를 기다리며 도움을 구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저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있는 분으로 정신박약 증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도움을 청할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더 여유있게 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그는 "목사님, 이거 과용하시는 것 아닙니까"하면서 대단히 좋아합니다. 마치 천하를 얻은 것처럼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은 식사 한끼 잘 먹을 수 있으리라는 그런 행복일 것입니다. 그분이 느끼는 이 행복을 어느 누구와 비교하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현대인의 고민이란 무엇입니까 먹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부터 오는 고민입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된 후부터 오는 고민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실망이라는 것입니다. 실망이란 허위와 거짓 때문에 오는 것이고, 허위와 거짓은 교만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진실할 수 있습니다. 교만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거짓될 수밖에 없도록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 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보이려고 하며,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부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것 때문에 고민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위장 문화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가고 있습니까 남을 속이다가 스스로 속게 되어 착각 속에 빠지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모르고도 아는 것처럼, 무능하면서 유능한 것처럼, 거짓되면서 진실한 것처럼 하려니 얼마나 힘들고 답답합니까 이렇게 살자니 얼마나 괴롭습니까 요즘 사업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거창하고 대단한 것 같아도, 사실 평가하고 보면 은행에 다 들어가고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집도 자기 집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남의 돈 가지고 적자로 살아온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잃어버린 진실을 되찾아야 함은 시급한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3:15-17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이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주님께서 실상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오늘 우리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병들었고 죽어 가는데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허영은 꽃은 피워도 열매는 맺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남에게 잠깐은 아름답게 보여 줄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자신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통찰력입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질 기준으로 물질에 도취된 눈으로 보면 엄청난 실수가 오는 것이요, 또한 사회적 정치적 본능에 의해서 이것만 생각하고 보는 눈은 비참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보여 주는 눈으로, 마태복음 4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마귀가 예수님에게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화려하고 굉장한 것이 보입니까 그것은 허깨비요, 마귀가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끼워 준 안경으로 정신없이 보다가 나중에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고민입니다.
허실을 따라갔고 거짓을 따라갔으며, 천하 만국 그 화려한 영광만 보고 따라갔기에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절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10절 말씀뿐 아니라 본문 전체에서 '-같으나-이다'라는 말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 무엇 같아 보이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까지 왔는데 이제 알고 보니 실상은 달랐습니다. 현상과 실상, 즉 보이는 것과 사실은 별개의 것이더란 말입니다.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해에서 출애굽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실상과 진실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진실에 얼마만큼 충실했느냐 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질적인 부요, 또 하나는 윤리적인 부입니다. 서로 비교해 보면, 돈으로 부자인데 무식하면 지식에 가난한 사람입니다. 물질적으로 풍부한데 만족감이 없으면 윤리적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또한 소유한 것은 많은데 성취감이 없으면 가치관이 빈곤한 사람입니다. 만족감에 취해서 즐거워는 하지만 지혜가 없으면 그는 곧 망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풍부함으로 현재는 부귀를 누리고 있으나 소망이 없습니다. 축적된 부는 있는데 베푸는 부가 없습니다. 얼마나 가련하고 답답한 사람입니까. 베푸는 것은 내 것입니다. 베풀었다 함은 남에게 틀림없이 준 것이지만 사실은 내 것입니다. 만일 그냥 쥐고 있다가 오늘밤에 죽으면 내 것이 여전히 내 것입니까 내가 가졌다고 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이름으로 등기하고 문패를 붙였다고 내 집이 아니란 말입니다. 성경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했습니다. 그 곳만이 동록이 슬지 않고 도둑이 없기 때문입니다. 베푼다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에게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주었습니까 기쁘게 준 것은 다 내 것입니다. 그러나 쓰지 못하고 베풀지 못하고 그대로 움켜쥐고 있으면 엄격한 의미에서 내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많이 가졌다고 부한 사람은 아닙니다. 물질에 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에 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풍부한 자라야 정말로 부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본문은 어떤 사람이 가장 부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 가장 귀한 것을 얻었기에 다른 모든 것은 심상히 여기는 자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제일 좋은 것만 소유할 수 있다면, 나머지 것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큰 것을 가진 그 사람은 행복한 자요 부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뭐니뭐니 해도 우선은 죄의 문제이고, 둘째 관심은 죽음이며, 셋째는 하나님에 대한 의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 가장 큰 것입니다. 이 큰 것을 알고 소유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것을 일단 소유하고 나면 다시 생각이 바뀝니다. 이것만 이루어지고 나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고는, 간사하게도 딴소리를 한단 말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튼 "나는 지금 가장 큰 것을 가졌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
둘째, 영원한 것을 얻었기에 시간적인 것에 대하여 초연한 사람은 행복한 자입니다. 내일이 없는 오늘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현재만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근본은 소망입니다. 순교자들의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영원한 것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주님을 위해서일지라도 울면서 죽거나 이를 갈면서 죽는 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순교란 기쁨으로 감사하고 찬양하며 죽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바로 눈앞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번 솔직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그 영광과 약속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좀 고생하고 어려운 것이 무엇이 그리 문제입니까 다소 잘못되더라도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유학생 남편을 둔 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미국에서 6년간이나 의사 공부를 하는 동안 부인은 아이를 데리고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한번 심방을 가 보았더니 유리창은 깨어지고 방바닥은 꺼져서 흙이 나오는 조그만 셋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딱하게 생각되어 유리창도 좀 갈아 끼우고 방도 수리하여 사시는 게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그 부인은 "목사님, 괜찮아요. 남편이 이제 곧 나온답니다. 그가 와서 그 동안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를 좀 보여 주고 싶어서입니다"라고 희망에 차서 명랑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외국에 간 남편을 기다리는 사람도 이럴진대, 하물며 하늘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우리가 세상일에 대해 그렇게 대단하게 여길 것 있습니까 이런 집이면 어떠하고 저런 집이면 어떠합니까 어차피 곧 떠날 것인데 너무 야단스럽게 치장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한 것을 소유했다는 그 자체를 극대화하십시다. 그 사실에 감격하자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세상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가난한 자 같으나 부하고 없는 자 같으나 가졌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신령한 것을 얻었기에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초연한 사람이 행복한 자입니다. 마태복음 6:33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관심을 가진 자는 물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 때문에 초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도 다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 그리스도를 얻었기에 더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행복한 자입니다. 빌립보서 3:8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를 얻었다. 그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다. 그러기에 예전에 좋아하던 모든 것들을 분토와 같이 여겼다" 또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을 때에 부러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기에 천하가 부럽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이 보여 주는 초연한 모습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이 생명을 즐기며 살아가는 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고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더 부러울 것이 없고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목사님 댁에 세무서에서 세금을 정하기 위해 나왔다고 합니다. "재산이 얼마나 있습니까 "저는 부자입니다."
"그래요 어떤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선 천당 가는 티켓을 가졌고, 건강한 아들딸이 있으며, 지혜로운 아 내가 있고, 그리고 오늘밤에 누워 잘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부자입니다."
"예, 부자임에는 틀림없는데 세금매길 것이 없군요." 여러분, 참된 소유는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시험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입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데서 마귀가 활동하며 시험에 빠집니다. "나는 행복하다"라고 늘 감사하며 기쁨에 사는 자에게 무슨 시험이 오겠습니까 당장 오늘부터라도 실천해 보십시다. 아내는 남편을 향해, 남편은 아내를 향해 "나는 당신으로 인하여 행복합니다"라고 말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찌 시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당신 때문에 불행하다고 불평하며 팔자 타령이나 늘어놓기에 싸움과 분쟁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멋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가졌습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니 더 원할 것이 없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와야 하겠습니다. 이 비밀한 행복을 즐기고 살아갈 때에 능력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부유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여기에 승리의 생활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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