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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마 21:18-22)

첨부 1


I. 시장하신 그리스도
(마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 지라
A. 그리스도의 인성
이 사건을 마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것은 월요일로, 무화과 나무가 말랐음을 본 것은 화요일 아침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두 부분을 하나로 단축시켜 시간의 차이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례를 쫓아 간략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이 때 주님은 시장하셨습니다. 시장하신 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표시한 것입니다. 인성을 지니신 예수님은 우리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이 목마르시고 주리시고 피곤함을 느끼셨습니다.
주림은 인생이 체험하는 가장 비참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이 되시고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습니다.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인간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참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은 이처럼 우리의 나약한 부분까지 경험하신 지극히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B. 그리스도의 양식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은 비난을 받는 면도 있습니다. 주님이 시장하던 차에 드실 만한 열매가 없는 고로 저주하신 것이어서 더욱 의구심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된 양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의문이 풀립니다. 그리스도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도 분명히 인성을 가지신 참사람으로서 시장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육의 양식보다는 영의 양식을 더 중요시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나무 자체가 아니라 나무가 비유하고 있는 유대교인 것을 알게 됩니다.
C. 그리스도의 양식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이루는 것이 주님의 양식이었듯이 그리스인 또한 그리합니다. 육의 양식에 얽매이지 않으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성도들 또한 육적인 양식보다는 영의 양식을 채우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생활이 성도들에게는 필요합니다.

II. 이제부터 네가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마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 지라
A. 길가의 무화과 나무
나무를 죽이신데 대해 예수님을 비난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특정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었고 길가에 있는 공유물이었으며 열매는 나그네들이 따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23:24)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또한 모든 자연계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봉사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가 그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곧 그 존재 의미를 잃은 것을 의미합니다.
B. 잎사귀밖에 없는 무화과 나무
무화과는 보통 잎사귀아래 감취어져 있는데 이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유월절이 무화과 나무가 열매가 맺을 때가 아니었다고 해도 무화과는 가을에 열매가 결실하여 그 열매가 약 10개월간이나 달려 있습니다. 또 무화과는 잎이 무성하기 전에 열매를 맺으므로 이 나무는 열매맺을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잎사귀는 무성했으나 정작 열매는 소유하지 못했던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의 의식과 외양은 번창했으나 참신앙의 열매는 구비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C. 예수님의 저주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할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정화에서 타락한 종교를 경고하신 후에 이스라엘의 패망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결국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가 저주를 받아 말라 버린 것처럼 이스라엘도 로마 제국에 의해 망국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형식과 의식에만 치우치고 실제적으로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심판의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열매맺는 신앙생활에 힘서야 합니다. 잎이 아무리 무성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잎이 아니라 열매임을 성도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III. 믿음으로 하는 기도의 능력
(마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A. 위선에 대한 강력한 경고
무화과 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짓 신앙고백인 잎사귀만 있을 뿐 은혜의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의 위선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임을 표명하면서 경건치 못한 행위를 하고서도 이를 부인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주님은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참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의 발로였습니다. 주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참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B. 믿음의 교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없었던 믿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확고한 믿음으로 하면 무엇이든 능치 못할 것이 없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무화과 나무의 표적과 같은 능력을 발휘할 뿐만이 아니라 산을 바다로 옮기우는 능력도 발휘할 수가 잇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믿음이 있는 자가 되기를 바라셨듯이 오늘날의 성도들도 참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C. 믿음으로 하는 기도의 능력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하는 기도에 대해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표적을 통하여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교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은 믿고 구하는 기도는 다 응답을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물론 여기서는 불의한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까지 포함된 것은 아닙니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그러나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들을 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믿음과, 그 믿음에서 출발한 기도생활을 통해서만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외형과 내면의 극한 싸움에 직면해서 살고 있습니다.
믿는 우리가 외식적인 신앙을 탈피하고 참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믿음의 주이시며 성도를 온전케하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나아가는 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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