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위기 앞에 선 신앙인 (막 14:32-42)

첨부 1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우화에 대해서는 아마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우화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들에 나갔다가 사자에게 쫓겨서 도망치게 됩니다. 도망치다가 실족해서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순간,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절벽에 널려 있는 덩굴을 붙잡게 됩니다.
이래서 구사일생으로 추락사는 면했습니다. 그러나 쳐다보니 사자는 지금도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내려다보니 밑에는 무서운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덩굴을 잡은 손에서는 자꾸만 힘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달콤한 냄새가 나기에 쳐다보았더니 마침 절벽에 꿀벌이 집을 지어놓고 있어서 꿀이 졸졸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꿀을 한손으로 찍어서 입에다 대보니 꿀맛이 괜찮았습니다. 또 이상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았더니 덩굴 위에서 검은 쥐와 흰 쥐가 돌아가며 덩굴을 갉아먹고 있습니다.--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해놓고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새는 위기라는 말을 많이들 씁니다. 위험한 기회(crisis)라는 말입니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crucial time--위험한 고비라고 설명했고 또 터닝 포인트(전환점)라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crucial time, turning point--이것이 바로 위기입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절망으로 떨어지는 시간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가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새 기회로의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 위기라고들 할 때, 이에 대하여 엄격히 생각해보면 정치적 위기란 정치가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지금의 정치가가 물러나고 딴 사람이 서는 것이지 국민에게는 그것이 얼마든지 좋은 기회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위기란 주로 정치가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경제적 위기라고들 말하지만 이것도 기업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경제인들의 문제이지 꼭 국민에게까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위기라는 말도 합니다. 이 또한 새로운 발전을 위한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도덕적 위기입니다. 도덕성이 파괴될 때에는 구제불능입니다. 더 어려운 것은 그 결과로 인한 인간성 파괴입니다. 이것이 총체적 위기입니다. 그리고 인간성 파괴가 문화화해버릴 때에는 그것이 잘못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때로 우리는 이런 현상을 봅니다. 거짓과 불성실이 문화화해버렸어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조차 생각지 않아요. 큰 사건이나 나야 한번쯤 생각해볼 정도입니다. 그리고도 여전히 말합니다. "재수 없었다"-이게 바로 총체적 위기입니다. 래리 엘 맥스웨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conflict ministry in the church」에는 위기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첫째는 신체적 위기입니다. 내가 병에 걸린다던가 혹은 죽음에 직면했다든가 하는 육체적인 위기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자아의 위기라는 것이 있는데 존재 의식의 상실입니다. 정신적으로 허탈해지면서 자꾸만 절망으로 치닫습니다. 또 인간 관계의 위기가 있습니다. 대인 관계가 단절되면서 오는 고독입니다. 그리고 환경적 위기--요새 우리가 아는 대로 공해라든가 자연 파괴라든가 하는 것으로 오는 환경적 위기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가장 무서운 위기는 영적 위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지러질 때, 이것은 마지막입니다. 바로 총체적 위기입니다.
얼마 전에도 제가 가보고 들은 얘기입니다 마는 동독을 방문해보면 같은 독일사람들인데도 공산주의 사십 년에 동독사람들도 변했어요.
공산주의 하에서는 집을 많이 지은 것도 없습니다마는 얼마 지어 놓은게 있는데 사십 년 동안에 지은 집들이 한 집도 그냥 둘 수가 없답니다. 서독사람들이 가서 보니까 다 헐어야 돼요. 얼마나 한심한지 서독의 은행원들이 은행 업무는 봐야겠는데 집 무너질까봐 들어가지 못하여 임시로 일을 보는 형편이랍니다. 공산주의 하에서 지은 집은 하나도 쓸 것이 없어요. 구체적인 얘기입니다 마는 우리가 가끔 보면 평양이 근사한 것 같지요 그러나 그 집들이 하나도 쓸 것 없어요. 다 헐고 다시 지어야 됩니다. 왜 이렇게 지었느냐 말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망하는 연유입니다. 인간성이 파괴됐어요.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신론자가 되더니 인간성이 완전히 비뚤어져서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고, 게으릅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거짓말은 절대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나가다보니 남는 게 뭐겠어요 인간성이 파괴되고 마니까 경제, 정치, 문화 할 것 없이 다 파괴되고 말아요. 그냥 내려앉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것저것 건설을 한다는 우리에게는 큰 병이 있어요. '공기단축'이란 있을 수 없어요. 단축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망국적인 병이 '빨리빨리'입니다. '빨리빨리'의 뒤에 숨은 말이 있어요. 바로 불성실입니다. 성실과 진실이 없는 건설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 속도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속도 찾다가 불성실로 치닫는다 생각하면 끔찍스러워요. 우리가 물질적으로 좀 산다고 해서 착각하지 마세요. 중국에 가보면 우리 한국에서 수천 명이 와서 선교하겠다고 합니다마는 거기에 사는 분 가운데 의식이 바로된 분은 이런 얘기까지 합니다. "돈푼이나 있다고 이 사람들 웃기는구만.
당신들이 신앙이 있는 줄 아느냐"고 해요. 핍박 속에서 사십 년 동안 견디면서 믿음을 지킨 그 사람들이 볼 때에 이 사람들 웃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믿는 예수가 예수냐, 자본주의 예수지--이러고 대듭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좀 산다고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먹을 것 있다고 내게 성실도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세요.
신앙도 함께 가졌다고 어리석은 생각하지 마세요. 동독 서독을 딱 열고 보니까 동독 교회는 얼마나 부흥이 되고 있는지 몰라요. 서독은 그 자유로움 가운데서 교회들이 다 무너졌어요. 지금도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어느 쪽이 복되고 어느 쪽이 더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프랑스 학자의 말을 들어봅시다. "선진국은 경제 지표로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이 한국인들에게 교훈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말이 경제 지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돈 몇푼 가졌다고 되는 게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개인적으로 봐도 내 가난할 때와 지금 살만큼 되었을 때-어느 쪽이 더 행복합니까 고깃덩이는 지금이 행복할지 몰라도 영적으로 볼 때에는 고민이 더 많아요. 문제가 더 많고요. 신앙으로 볼 때에는 또 다르게 판단할 수 있어요. 어느 쪽이 진실했습니까 어느 쪽이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건강했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될 문제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햄릿」제 3막에 보면 햄릿이 독백을 합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그렇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망하느냐 서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잘살고 못살고는 별것 아닙니다, 부하고 가난하고가 별것 아닙니다. 그거 하나 무너지는 것 간단합니다. 나라 하나 망하는 것도 간단합니다. 이래서 위기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이제 성경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큰 위기를 맞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이보다 더 큰 위기가 어디 있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말할 것 없습니다. 다 망했어요. 한가닥 기대했던 그들의 종교마저도 그렇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빌라도의 힘을 빌어서. 이같은 총체적 위기가 어디 있습니까 가장 역사적이고, 가장 우주적인 위기입니다. 이렇듯 엄청난 일을 당하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또 제자들에게 어떻게 명령하셨습니까 생각해봅시다. 세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깨어라" "기도하라" "함께 가자"--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의식을 분명히 하라, 정신차리라는 말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현재에 대해서, 너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이제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합니다. 세상은 흔들립니다. 그러나 정신은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대 강국입니다마는 도덕적으로, 문화적으로는 아주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래 미국에서 나오는 잡지를 보니 갖가지 고민 중 제일 큰 고민이 마약입니다. 모든 범죄가 마약과 관련 있거든요. 정치가들까지도 깊숙이 관련되어서 심지어는 잘못 건드리다가는 암살 당합니다. 그만큼 무서워요. 그래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입니다. 미국의 젊은이는 마약으로 인해 망한다, 미국의 장래는 마약으로 무너진다고 외칩니다. 마약이 폭력의 원천이지요. 죄악의 원천이지요. 불륜의, 부도덕의, 모든 악의 원천입니다. 그래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도대체 뿌리가 무엇인지 연구해본즉 제일 큰 것이 월남전이었습니다. 월남전에 젊은 미국 군인들이 참여했는데 아시는 대로 월남전이라는 것은 전후방이 없어요. 도대체 여기까지가 적이고 저기까지가 아군이고--그게 없습니다. 아군, 적군이 없어요. 낮에는 아군이고, 돌변해서 밤에는 적군입니다. 이렇게 뒤집히는 판국이니 젊은 사람들이 견딜 수가 없어요. 공포에 떨어요. 언제 어디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총을 겨눌지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해서 저들이 고민하고 고민하고 하다가 이 두려움을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차라리 몽롱한 가운데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하면서 아편을 시작하는 거예요.
이것이 습관이 되고, 이것이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면서 마약의 나라가 되었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런고로 이제 말씀하십니다. 어려움이 있느냐, 위기를 느끼느냐, 정신을 차리라--여러분, 이래서 이 강남의 술집이 잘되는 거예요. 두렵고, 답답하고, 괴롭고…… 총체적 위기 앞에 "에라, 모르겠다, 마셔라"--이렇게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무슨 중요한 일을 하려면 시간외에 돈만 더 주면 했어요. 지금은 돈 더 준다고 해도 싫어해요. 그거 더 벌어 뭐하려고 한 끼 먹었으면 되지, 나 오늘 놀겠소--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시간외에는 일을 시킬 수가 없어요. 결국은 위기를 느끼면서 생각하는 것이 몽롱함입니다. 도피하려고 해요. 기피적인 생각이 들어요. 이래서 술취하고, 방탕하게 됩니다. 몸부림을 치고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위기를 느끼느냐, 정신을 차리라--예수님, 십자가를 지십니다. 십자가를 질 때에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베푸는 자비가 뭐냐 하면 독주를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주 독한 술을 마셔서 잠시라도 아픔을 잊어버리게 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거절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맑은 정신으로 끝까지 대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상에서도 똑바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우니 마약이라도 해서 좀 잊어버리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위기에 대처하신 주님의 자세입니다. 모르고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당하고, 저 앞에 있는 고통과 어려움과 사건의 의미를 다 알고 정면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깨어라" "정신을 차리라" 그리고 "기도하라"--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위기가, 끝에 가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영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다가서서 기도하는 일이 최우선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루이스 헤이라고 하는 학자가 쓰고, 2년 동안이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던 책이 하나 있습니다. 「You Can Heal Your Life」--당신은 당신의 생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제목입니다. 이 책의 주제가 이렇습니다. 악성 종양에 걸리는 이유는 영적 실패에 있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흑인들에게 있는 특별한 병이 있는데, 적혈구 빈혈증입니다. 흑인이라고 하는 열등의식이 적혈구 빈혈증을 만든다고 합니다. 또 동성연애자나 마약자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자신은 선하지 못하다고 하는 자멸감을 먼저 가졌어요. 이 자멸감 때문에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급변하는 변화에 정상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간장병에 걸린다고 역설합니다.
여러분, 위기는 우리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있습니다.
그런고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로 되어야 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내버려두세요. 중요한 것은 위기를 느낄수록 기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새 당하는 많은 일을 보면서 교인들 앞에서 "그런고로 여러분, 새벽기도 많이 나오십시오"라고 하는 말을 일부러 광고 안 했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보니 정말 많은 교인들이, 전보다 더 많은 교인들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것을 보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위기를 느끼면서도 기도 안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 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라고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John Knox)는 말했습니다. 기도해서, 기도를 통해서 먼저 영적 위기를 극복하고야 그 다음 문제를 극복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가자"--정면대결 하자는 것입니다.
우회하는 것도 아니고, 피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좌절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와 함께 가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면서 위기를 극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임박한 고난, 당하는 현실, 다 충분히 미리 아셨습니다. 또 사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아시게 됩니다. 악의 승리요, 세상이 온통 악으로 화하는 십자가 사건이지마는, 아닙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아시고 계십니다. 기도를 통해서요.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8장에 있습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내려 오실 때에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빌라도가 있고, 로마 군인이 있고, 가야바가 있습니다마는 그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보신 세계, 기도를 통해서 깨달은 세계는 그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시는 십자가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수용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십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말씀합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8절)"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위탁하면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엄청난 고난,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그 다음의 일을 관조하십니다. 환히 내다보시고 계십니다. 십자가 다음에 부활이 있고, 이 엄청난 사건으로 인하여 만백성을 구원하고, 거룩한 교회가 세워지고--환히 내다보십니다. 그런고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는 캄캄한 방에서 기도를 통해서 저 아침을 보았습니다. 그 위기를 새 역사 창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총체적 위기를 느낍니까 이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됩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고, 누구를 탓하고 절망하는 어리석은 시험에 빠지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이제 생명적인 역사를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더 아름다운 세계로 인도하시며, 실종된 진실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는 그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믿고, 새 용기를 가지고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