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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해 새로운 각오와 출발 (롬 12:1-2)

첨부 1


새로운 각오와 출발을 위한 시를 소개 합니다.
 <또 다른 해가 밝아오니>
-프랜시스 해버갈-
또 다른 해가 밝아오니 사랑하는 아버지,
일할 때에나 기다릴 때에나 이 해는 당신께서 함께
하시는 해가 되게 하소서.
진보하는 새해 찬양하는 새해 증거하는 새해
당신의 임재가 늘 함께하는 날들이 되게 하소서.
긍휼의 한 해. 신실함의 한 해. 은혜의 한 해
기쁨의 한 해 당신의 얼굴에 영광이 드리우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자애로운 가슴에 기대는 한 해
신뢰의 한해 평온의 한 해 행복한 안식의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섬기는 한 해 당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한 해
위에 있는 더 거룩한 일을 위해 훈련받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또 다른 해가 밝아오니 사랑하는 아버지,
이 땅에서나 또는 하늘에서도
이 해는 당신을 위한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시간을 주장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계21:5-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시105:3-5,8-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하라.
신11:12하-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다.
겔18:31-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
시90:12-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1.새롭게 되어지는 원천1)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고백 을 보면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103: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계21: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2) 성령 이심을 알 수 있다 바울의 고백을 보면
(시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딛3: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3)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2.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 자체가 죄성을 벗어버리고 의롭고, 거룩한 모습을 입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참된 성품입니다.
싫든 좋든 지나가는 한해를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입니다. 이 한해 동안 매년 그랬던 것처럼 좀더 보람된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연초에 무던히 작심과 각오도 하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오랜 세월의 습관과 버릇을 통한 우리의 삶 때문에 새로운 각오와 용기가 무너져버린 적이 어디 한 두번이 겠습니까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서는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첫째,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이외의 우상을 섬기던 못된 버릇과 하나님이 없어도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적 이기심 그리고 무신론적인 생각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옛 모습 중에 우리는 육혹의 욕심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욕심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결국은 사망까지 이르게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거짓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케 할지 모르지만, 결국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이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때로는 본의아니게 다툼과 오해의 요소가 될 때가 있으며,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기에 될수만 있스만 양보를 하면서 사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욕심을 비울 때는 무엇인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인격관리에 풍성한 요소가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썩어져가는 구습을 버려야 합니다.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전통 때문에 기독교인이든 아니든간에 죄의식없이 행하는 잘못된 버릇중에 대표적인 예는 토정비결 또는 관상, 사주팔자 등의 점쾌를 들 수 있습니다.
심심풀이라는 명목으로 해본것이 좋은 쾌가 나오면 은근히 좋아하지만 쾌가 잘못나오면 시무룩해지는 모양이 불신자들은 그러려니 하거니와 신자가 그렇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성도가 이러한 일에 뛰어든다면 이를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실된 성도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믿음이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일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이 자신에게 인간들의 미래에 대하여 풀어오고 가르쳐달라고 하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원칙을 벗어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시지 못할 것입니다.
구습과 악습을 벗어버리고 그 세속적이고 악마적인 것들의 자리하였던 빈자리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과 충성을 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금년 한 해에도 새로운 각오와 마음으로 모든 것이 그리스도안에서새롭게 변화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 게 하소서

성도는 전투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와 관계된 영적인 성격의 싸움입니다. 이런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도의 전술이나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성결입니다. 세계의 강국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힘과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라도 도덕적으로 오해를 받으면 그것으로 정치생명은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성결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 말씀은 영적으로 깨어있던 사람 다윗이, 오늘 이런 지경에 이른 것보면 그 중요성 만큼이나 성결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위해서는 성결성을 지키고 유지 발전을 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귀가 항상 열려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목욕하는 여인을 봄으로서 이 일은시작됩니다.(삼하11:2-4) 그리고 범죄하여 잉태하자 전선에 있던 남편 우리야를 불러서 그녀와 동침케 함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왕의 명을 받고 달려온 우리야는 모든 군사들이 전투하고 있는 때에, 자신만이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부당하다며 거절하자(삼하11:9-11) 요압을 시켜 그를 전선에서 죽게 합니다.(삼하11:14-17) 다윗은 이 사건을 어쩌면 완전범죄라고 확신했을지 모르나, 인생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17:3). 그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 다윗으로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에 다윗의 강점이 나타나는데, 그는 왕의 자리에서도 가난한 마음 가지고 일개 선지자의 지적을 들을 수 있는 복된 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죄를 두려워해야합니다.
사실 성결한 삶이 이런 각성에서 부터 시작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다윗은 책망을 듣자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1),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소서"(2),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2) 라고 고백하며, 죄에 대해 큰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혹자는 다윗이 '왕권을 잃고 징계와 형벌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그렇다'라고 하나, 그것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는데 그는 본 시편 어디에서도 자신의 죄로인한 형벌이나 처벌을 감하거나 없애 달라는 요구를 한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정말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죄악으로인해 하나님과의 거룩하고 신령한 교재가 단절될까 두려워 한 것입니다.
온갖 복되고 신령한 것들이 다 여기로부터 비롯됨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가있으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가 어려워집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죄를 무서워하고 멀리 할 때 성결이 용이합니다.

셋째로, '나'라는 인간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5절에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바세바를 범한 자신의 추악한 죄악을 제거해 달라 간구할 뿐 아니라, 자기속에 잠재되어있는 죄의 악한 성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아담 이후 온 인류가, 그 누구도 예외없이 항상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뷴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일지라도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라고 한 것입니다. 그의 이런 고백은 우리의 일상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겸손한 고백은 죄를 알고, 자신을 알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영적거장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13:22)라는 평가를 받았던 다윗이 이러했다면 하물며 우리 삶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과 깊은 교제가 가능하며, 영적인 전투에서 싸워 승리하게 되며, 그의 신실한 도구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죄의 무서움 알고,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을 직시하며 혹시 범죄하였을지라도 자포자기하거나 비관할 것이 아니라, 그의 긍휼하심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로 달려나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지은 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희생제사나 재물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16)입니다.
즉, 자신이 스스로는 이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전적무능의 상태에 있음과, 죄에 이른 것을 무척 가슴 아파하며, 또한 범죄하여 하나님을 근신되게 한 것을 뼈저리게 뉘위치는 마음인 것입니다.
탄식하던 세리의 기도는 응답되었으나, 바리새인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이유(눅18:9-14)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시며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결론
이러한 각오를 갖고 살아 갈 때에 주님의 은총은 항상 우리위에 멈치게 임하실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로운 각오와 결심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함이 있어야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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