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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머리를 들라 (눅 2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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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들어 갑절로 성장하는 한해가 되기위해 지난 3주 동안 갑절로 성장하는 교회,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으르 가지고 복있는 사람이 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이런 축복된 삶을 위하여 우리 온 성도들이 가져야할 자세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문에 있는 말씀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또 어떤 각오와 결심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주님께서는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고 하신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일어나 있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던지 어찌했던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 그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누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먼저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 누워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누워 있습니다.
그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부르시듯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경은 죽은 것에 대한 표현을 3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나사로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야이로의 딸이 그랬듯이 숨이 끊어지고 심장의 고동과 맥박이 정지한 상태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사도 바울의 말씀 속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 속에서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self control의 죽음이 있습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마지막 죽음은 영혼의 죽음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모든 사람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되시고,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고, 하나님께 반항하며, 거역하는 모든 사람들이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런 영혼의 죽음에서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예) 최봉석 목사님.
이 목사님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모든 사람이 죽은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여러분, 죽은자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생명이 죽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거역하는 자리에서 일러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찾아야 합니다.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자리에서, 누워 있는 자리에서 주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이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참 생명을 얻는 여러분이 되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 나사로
언제까지 구경꾼만 하실 것입니까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신앙 생활만 보고 계실 것입니까
일어나야 합니다.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이 시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셔들이고 새해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누운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살아 있기는 살아 있지만 병이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병이 가벼운 사람은 어렵지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병이 든 사람은 모든 움직임에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하다 못해 대소변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경이 예민해지고 자주 화를 냅니다.
관대하지 못합니다.
만사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불평 불만만 하게 됩니다.
신앙에 병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 병이 들면 사랑보다는 미움이 앞서게 됩니다.
신앙에 병이 들면 관대하기보다는 짜증이 앞서게 됩니다.
신앙에 병이 들면 참기보다는 화를 자주 내게 됩니다.
신앙에 병이 들면 잘해 보자는 것보다는 불평 불만이 앞서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에 병든 사람은 없습니까
사랑보다는 미움이 앞서지 않았습니까
관대하기보다는 짜증이 앞서지 않았습니까
참기보다는 화가 앞서지 않았습니까
잘 하기보다는 불평 불만이 앞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병든 자리, 그 죄악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병이 들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신앙의 병은 죄가 쌓일 때 생기게 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지 않을 때 병이 들게 됩니다.
회개하고 돌이킬 때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 속에 살아갈 때 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리하여 신앙의 건강 속에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일어나서는 두 번째로 “머리를 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라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머리를 들라는 말씀은 멍청하게 머리를 흔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 먼 산을 바라보라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분명한 것, 우리 신앙에 있어야 할 것, 우리가 참 가치를 추구할 것을 바라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최대의 목적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다른 것, 세상 것에 목적을 두거나 허황된 것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1년을 바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식들이 어버이를 바라고 그 뜻울 따를 때 부모님은 기뻐하며 그들에게 좋은 것으로 허락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뜻을 따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축복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 40:3에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또한 우리가 죄와 허물에서 허덕일 때, 사망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시험과 환란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꿈(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각 개인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꿈이, 가정에서는 그 가정에서 원하는 소망이, 교회는 교회대로의 꿈이, 국가와 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일어나 머리를 들고, 여러분들의 꿈을 바라보십시오.
소망에 찬 내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내일이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지나간 것, 잘못된 것, 과거의 허물은 모두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꿈을 가지고 새롭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일어나 머리를 들라.”
일어납시다.
죽은 사람은 죽은 자리에서, 병든 사람은 병든 자리에서, 게으른 사람은 게으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봅시다.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내가 가진 내일의 꿈을.
그리하여 내가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이 민족과 세계를 살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갑절로 축복받는 한해를이루어 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나는 어떤 자리에 있었는가
죽은 자는 아니었는가, 병든 자는 아니었는가, 게으른 자는 아니었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았는가
허황된 것, 거짓된 것, 잘못된 것을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일어나 머리를 들라.”
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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