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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직분자들 (고전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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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적게 말하고 많이 일하는 일꾼이다' 집시 스미스(Gypsy Smith)의 말입니다.
누군가 초대 교회의 모범에 대해서 말하기를 '처음 교회는 행복하였다. 그 행복은 저들이 안식일을 가짐에 있었다. 그리고 건전하였다. 그것은 덕을 세우고, 걸어다님(움직임)에 있었다. 또한 겸손했다. 그것은 주를 경외함에서였다. 뿐아니라 거룩하였다. 그것은 성령의 위로를 받음에서 그러했다. 그리고 또 뜨거웠다. 그것은 신자들의 수가 많아짐에서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행9:31).
성경은 주님께서 세운 지상의 교회를 하나님의 집(딤전3:15), 신령한 집(벧전2:5), 그리고 큰 집(딤후2:20)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큰집이라고 한 것은 이 집이 주인이 크신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집은 가족이 많은 큰 가족(大家族)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집에서 하는 일이 큰 일 곧 신령한 일, 구령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큰집인 하나님의 교회에 여러 가지 그릇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금과 은의 그릇도 있고, 나무와 질그릇도 있고, 귀히 쓰이는 것도 있고 천히 쓰이는 것도 있다고 하였습니다(딤후2:20). 이 말은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를 받은 여러 직분자들을 비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영감의 사람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교회의 직분자들을 말하는 중에 교회 직분자의 신분과 사역의 내용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Ⅰ. 교회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다]고 하였습니다.

1.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일꾼'( )은 '아래'( )와 '노젓다'( )의 합성어로서 배 밑층에서 노를 젓는 노예들을 의미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하급노잡이'를 뜻했습니다. 그는 선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여 바다의 물결을 갈라내는 노잡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무조건적 순종만 있을 따름이고, 고된 노역만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교회라고 하는 예수의 큰 방주(배) 아래서 예수의 명령에(말씀) 따라 노를 젓는 노잡이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단어가 산헤드린 공회의 제사장들을 시중드는 하속(마26:58), 회당장을 섬기는 종(눅4:20)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하므로 교회의 직분이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목사직이나, 장로직이나, 권사직이나, 집사직이나, 교사직이나, 구역장직이나, 기타 여러 교회의 직분들은 그 직분의 이름이나, 내용이나, 성격이나, 목적이 전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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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만을 위한 것이어야 됩니다. 다른데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고, 사용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영의 직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이란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인가 전에 감추어 있다가 이제 나타내어진 것(계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신앙의 복음, 사죄의 복음, 부활의 복음, 영생의 복음 곧 하나님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실상 비밀의 복음입니다. 그 이유는 주신 자와 받은 자만이 아는 생명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맡은 자]란( ) '집'( )과 '경영하다' '관리하다'는 뜻( )의 파생어 노모스( )의 합성어로서 '집안의 관리자' 곧 집사, 청지기를 뜻합니다.
청지기(맡은 자)는 주인의 집과, 재산을 전부 관리하며 일꾼들을 감독하며, 물자를 분배하고, 집 전체를 보살피는 자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인의 집에 또 다른 노예들까지도 감독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볼 때는 일꾼이나, 청지기를 막론하고 꼭 같은 노예 곧 종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바울을 통하여 교회 직분의 두 면을 알려 주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때로는 배 밑층에서 노를 젓는 고된 일도 마다 아니하고, 싫다 아니하고 기꺼이 순종하는 하급 노예의 면이 있는가 하면, 그 동시에 귀중하고 요긴한 하나님의 비밀의 복음을 맡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하나님의 집에 청지기(맡은 자)의 면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Ⅱ. 직분에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4장 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충성( )은 '신실'로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엡1:1). 신앙을 나타내는 신실( )이나, 충성을 나타내는 피스토스( )는 모두 한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충성'이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따르고, 바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의 시간, 그리고 모든 재능, 모든 소유물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용하는 목적적 삶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직분을 맡은 자가 [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구하다'( )는 '찾는다' '찾아 헤맨다'란 뜻으로 '추구'를 가리킵니다. 가능하면 찾는 다는 말이 아니고, 꼭 찾아야만 한다는 필연적 욕구를 가지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그리스도의 청지기들이 혼신을 다하여 찾아야 될 것이 무엇인가 바로 그것이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충성, 그리스도의 청지기로서의 충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충성은,

1. 감격적인 보은의 충성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에게 베푸신 말로 다할 수 없는 구원의 은사에 감격하여, 터져 나오는 충성입니다. 바로 고린도후서 9장 15절에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원적이요, 자발적이요, 능동적이요, 창조적이요, 생산적이요, 진화적이요, 불가항력적인 충성이 일어나게 됩니다. 충성의 동력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입니다.

2. 작은 일에 충성입니다.
주인의 달란트를 맡은 자는 작은 일에 충성하였습니다(마25:21, 23). 그것이 큰 일, 큰 축복을 체험하게 되는 첩경이 됩니다. 곧 지극히 적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에게 한 것이 되고 맙니다(마25:40).

3. 변함없는 충성입니다.
시종이 여일한 충성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히13:8). 그가 베푼 구원의 효력이 불변하고, 그의 약속과 축복이 불변하고, 우리를 향한 그의 역사가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꾸준한 충성입니다.
저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Andrew Cannegie, 1835-1919)가 늙어서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였습니다. 그의 후계자 문제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카네기에게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마침내 뉴스감이 되어 계속해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그의 후계자를 지목했을 때는 전 미국과 세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쉬브'라고 하는 무명의 사람을 후계자로 지목하였기 때문입니다. '쉬브'는 초등학교 학력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처음 카네기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그 회사의 청소부였습니다. 그가 청소부로서 맡은 일은 큰 공장의 한 부분 정원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부분의 정원 관리 뿐아니라, 공장의 여러 구석진 곳까지 청소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평범한 진실이 나중에 그 회사의 정식 사원으로 채용되는 요건이 되었습니다. 남달리 열심히 일했던 그는 이것이 알려져 그 회사 간부들에 의해 나중에 사무직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가 사무직을 맡은 후 빈틈없는 그의 충성이 또 인정을 받아, 마침내 카네기의 비서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카네기의 비서가 된 후, 바로 그의 눈과 손과 발이 되고 입이 되었습니다. 카네기가 움직이는 곳에는 쉬브가 있고, 쉬브가 있는 곳에는 카네기가 있었습니다. 카네가가 움직이는 곳에는 언제나 펜과 메모지를 들고 서 있는 쉬브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자기 혼자서 밤이 늦도록 사무실에서 생산 과정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나왔습니다. 그 때 그 사무실 문밖에 쉬브가 서 있음을 보았습니다. 카네기는 놀랐습니다. "오! 쉬브군! 자네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는가 너무 밤이 깊지 않았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쉬브는 조용히 웃으면서 "사장님! 사장님께서 저를 언제 부르실른지 알 수 없는데 제가 어찌 자리를 비울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청소부로 그 회사에 들어와서 마침내 저 유명한 카네기 회사를 이어받는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 비결은 사심 없는 충성이었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충성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는 그 회사 청소부로부터 회사의 구석구석 공간을 다 알고, 사원이 되어 그 회사의 일들을 피부로 맛보고, 사무직 사원으로 회사의 내용을 기록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카네기의 비서로, 사장의 눈과 귀와 손과 발과 입이 되는 동안에 벌써 그는 카네기강철회사를 자기 삶에 새기고 말았습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간단한 삶의 무기로 그 회사와 운명을 함께 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저 유명한 카네기의 후계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저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턴은 참으로 큰 구령의 역사를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외딴곳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선교할 때 그에게서 예수 복음의 은혜를 받고, 열심히 그의 선교 사역을 도왔던 한 흑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모아서 리빙스턴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가는 배가 있는 항구까지 수천리를 걸어서 그 시체를 운반하고 나중에 영국에서 그 유해를 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예배당에 장례를 지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예배 시간에 리빙스턴이 남긴 업적을 기리고 감사하는 시간에, 리빙스턴과 꼭 같이 칭찬을 받은 자가 바로 한 흑인 '웨인우라잇'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리빙스턴과 일생을 함께 충성하고, 그가 죽었을 때도 그 주인 리빙스턴의 시체를 찾아 영국까지 옮겨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리빙스턴은 그가 받은 선교사의 재능을 따라 충성하고 흑인 웨인 우라잇은 또 그가 받은 재능을 따라 함께 충성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곧 복음의 청지기들입니다. 일꾼이요, 청지기인 자들이가 추구해야 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직분자들로서 충성을 해야 합니다.
먼저 사람의 사람된 본분인 예배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주일 성수로 나타나야 합니다.
각자가 받은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달란트를 부여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모든 종류의 은사에 대해서 감사함에 충성해야 합니다. 온갖 종류의 교회 봉사에 충성해야 합니다.
경향교회가 받은 이 시대적인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어느 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출석하는 워싱턴교회 목사 사무실에 전화가 울려왔습니다. "대통령께서 오늘 교회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는 대답하기를 "나는 그것을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가 교회에 나오기를 기대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에 나오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자극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직분자들에게 충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기뻐하시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축복의 자극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교회 직분자들에게 달아 주신 영예로운 면류관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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