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엘리야의 사명 (왕상 18:30-40)

첨부 1


성경에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우리가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는 인물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사람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를 베푸셨고, 어떤 사역들을 하셨습니까
① 하나님은 가뭄 때에 까마귀를 통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왕상17:1-8).
② 사르밧 과부를 통하여 그를 공궤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를 공궤 했던 사르밧 과부는 기근이 끝나기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왕상17:8-16).
③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었습니다(왕상17:17-24).
④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습니다(왕하2:12-14)
⑤ 하나님은 예수님 이전에 엘리야 선지를 다시 보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성경의 가장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장식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그 엘리야 선지는 다름 아닌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⑥ 엘리야는 변화산에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마17:3)
하나님이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엘리야는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마17:10-13)
⑦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모본을 엘리야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7-18)
이처럼 엘리야는 크고 놀라운 인물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가 큰일을 했다는 단순한 의미보다는 그가 어떤 일을 했기에 하나님 앞에 그토록 놀라운 은혜를 받았는지를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엘리야는 우상 숭배자들을 물리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며 우상숭배를 일삼았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왕상16:31-33)
그 결과 이스라엘 땅에는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영적으로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소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적극적으로는 아합처럼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며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상숭배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육신적으로 온갖 문제가 다 닥쳐오게 됩니다. 아합은 일국의 왕입니다.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니 사람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형편이 이 지경이고 보니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합의 마음은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아합은 어떻게 됩니까 나봇이 피 흘리며 죽었던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나봇의 피를 개들이 와서 핥았던 것처럼 아합의 피도 핥았습니다. 일평생 살아서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일만 골라 했던 그는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아합이 죽고 난 뒤에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불신자는 죽어서 우상숭배라는 영적인 유산을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버지와 아합과 똑같은 우상 숭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 제 십칠 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아비의 길과 그 어미의 길과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바알을 섬겨 숭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기를 그 아비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왕상22:51-53)
엘리야는 모두가 우상 숭배하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믿는 신앙을 간직하기 어려운 때에 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 아합에게 가서 우상숭배가 죄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신이 이세벨에게 빠져 우상숭배 하므로 삼 년 반 동안 이 땅에 우로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우상숭배는 사단이 역사 하는 직접적인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사단과 교제하는 것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을 허물어뜨리는 일을 또한 가장 기뻐하십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 당신이 믿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우상 숭배자들과 내가 갈멜산에서 대결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이고 우상 숭배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제단을 쌓고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제물에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다 했습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하다 기도했습니다. 하루 종일 부르짖었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의 몸을 자해하며 부르짖었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나섰습니다. 엘리야는 제단 주위에 도랑을 파고 네 통씩 세 번 열두 통을 제단에 부었습니다. 물과 불은 상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18:36-38)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에 제단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할 때에 비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여호와가 참신이요, 사신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우상 숭배자 850명을 모두 잡아 기손 시내로 끌고가서 모두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우상 숭배자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기뻐하셨습니다. 850:1은 감히 인간적으로는 상상이 안되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을 처단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왕으로서 마귀를 깨뜨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2.엘리야는 하나님의 무너진 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남들이 우상에 빠져 있는 모습이나 우상 숭배하는 일을 보면 불끈 울화가 치밀어 올라옵니다.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요, 예수님만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임을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 얻는 유일한 이름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3년 반이나 되는 이 엄청난 기근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이 우상숭배에 빠지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갈 때 엘리야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외쳤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왕상18:21-22)
백성은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엘리야는 여호와를 선택했습니다. 바알 선지자는 450명, 아세라 선지자는 400인이나 되었으나 여호와의 선지자는 엘리야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를 믿는 신앙과 제단이 훼파되는 것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는 혼자서라도 하나님 믿는 신앙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오늘 이 신앙은 바로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수아도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오늘날 하나님의 제단이 훼파되고 있습니다. 새벽제단이 훼파되고 있습니다. 저녁예배에 삼일예배의 제단이 지켜지지 못하고 무너지는 있습니다. 더러는 주일예배의 제단마저 무너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엘서 1:9에 보면 말세에는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전에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했습니다. 소제는 아침에 드리는 제사요, 전제는 저녁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새벽예배와 저녁예배가 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보다 앞서서 신앙생활을 했던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새벽예배와 저녁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분명히 아는 사람,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면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이런 모습을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제가 전도훈련에 참가하는 관계로 우리는 저녁 시간에는 기도회로 모이고 예배는 오후 2시로 옮겨서 드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회복하는 때가 있으리라 봅니다. 지난 주간에 개척교회 목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몇 사람되지도 않는데 그나마 저녁 시간에는 성도들이 아예 참석하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후 시간으로 저녁예배를 앞당겨 드려야 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지만 저는 저녁예배를 오후예배로 대신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목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주일성수는 온전히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후예배로 드리면 자신도 모르게 내 할 본분을 다했다는 생각이 찾아오게 됩니다. 잘못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봐 치우는 형태가 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후예배를 드리고도 저녁에 기도회로 다시 모이는 것입니다. 성도의 예배가 끊어지고 신앙이 식어지는 일보다 목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보면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으면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왕상 18:30-31)
엘리야는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따라 12개의 돌을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에게 주셨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예배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모든 우상의 제단이 무너지고 그곳에 하나님의 제단이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크게 쓰셨던 이유는 그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삶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엘리야의 모습은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엘리야는 왕과 선지자를 찾아 세웠습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5-18)
① 엘리야는 왕을 세웠습니다.
엘리야는 다메섹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하사엘로 하여금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하게 하십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한 자를 북이스라엘의 예후가 죽였습니다. 그 때도 살아 남은 자는 엘리사가 처단했습니다. 끝까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② 엘리야는 선지자를 세우고 하나님이 숨겨 놓은 7000인의 사명자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특별히 제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제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계신다면 우리도 역시 제자가 되는 일에 제자를 삼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의 뒤를 이어 신앙을 계승하고 주의 일을 감당할 일꾼들을 세워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남겼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라는 제자를 남겼습니다. 오늘 본문 속의 엘리야는 엘리사라는 제자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은 우리 당대로 끝나서는 안될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자녀들에게 반드시 상속시켜 주어야 하겠습니다. 내 신앙 이상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가르침을 받는 어린이들이 나 이상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도록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시작과 끝을 제자로 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5:1)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마28:16-17)
당신은 제자입니까 당신에게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훈련되어지고 길리워지는 제자가 있습니까 엘리야는 선지자입니다. 그는 선지자의 직무를 자기만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엘리사를 찾아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 계속하게 했습니다. 자기의 영감을 갑절이나 엘리사에게 있게 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 이상의 능력을 행하며 선지자의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영감과 영력이 특별했던지 이스라엘의 왕이 엘리사를 가리켜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엘리야는 본인이 하나님 말씀을 왕과 백성에게 전하는 선지자였지만 자신의 뒤를 이어 시대를 이끌어 갈 일꾼을 세워 놓고 떠나갔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는 날에 이 땅에 제자들이 남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선지자로 또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인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를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아합 왕이 다스리고 있던 시대와 방불합니다. 대학, 공단, 직장, 가정에 우상숭배가 난무합니다. 이 땅에 무당, 역술인이 100만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사명은 곧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깨뜨리고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잠24:11)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날마다 무당, 역술인들이 회개하고 주 앞에 돌아오는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단의 모든 권세가 깨어지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나라와 민족이 되도록 여호수아처럼, 엘리야처럼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높아지도록 제단 쌓는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이 땅에서 제자로 살고 제자를 남기는 삶을 위해 우리의 전생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의 축복과 승리가 여러분에게도 늘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