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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단의 전략 Ⅱ (창 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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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창조된 피조물이지만 교만함으로 타락한 천사입니다. 타락한 천사는 공중으로 내어 쫓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출현하여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했고, 죄 가운데 빠지게 했고, 완전히 장악하여 자신의 다스림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이 세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의 신분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심지어 사단도 취소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가 언제나 명심하고 살아야 할 것은 사단은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공격목표로 삼고 역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사단의 공격은 지속됩니다. 사단은 약한 때는 우는 사자같이 역사합니다. 강할 때는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지옥의 불못에 가두기까지 사단은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영적 사실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사단은 하나님을 만난 신자들에게도 역사하여 하나님을 누리지 못하도록 역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죄를 이기는 능력과 사죄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다. 시단은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사단에게 매여 살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나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전형적인 모델이 바로 롯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고, 누리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사단에게 매여 세상적으로 살았습니다.
오늘은 구원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은 하나님 만나는 선지자적인 축복을 사단이 얼마나 철저하게 가로막는가와 그 삶의 결과를 롯의 생애를 통해 살펴보면서 신앙의 중요한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1. 롯이 구원받았다는 증거
① 롯은 갈대아 우르를 빠져 나왔습니다.
갈대아는 귀신이라는 뜻입니다. 롯은 귀신, 즉 사단에게서 빠져 나왔습니다. 사단에게서 빠져 나온 자는 그의 삶의 내용이 어떻든지 관계없이 이미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신자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지 말씀을 지켜서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애굽을 빠져 나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한 일은 불평과 원망뿐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지만 그들은 분명하게 다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사단을 상징하는 바로에게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자식을 잃어가며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국고성을 쌓는 저주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롯은 분명하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② 롯은 구원받았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2:6-8)
7절에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가 의로운 사람입니까 그가 행한 일 가운데 의로운 일이 한 가지나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볼 때도 그는 분명히 의인이 아닙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이 보실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만 의로 여기시며 믿음을 떠나 행한 모든 일들은 다 죄로 간주하십니다.
“........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
하나님은 어떤 죄인도 믿을 때 죄를 용서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을 때 인정해 주시는 그 의로 말미암아 천국에 가게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롯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겨우 영혼만 불가운데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2. 롯의 삶
① 그는 육신적인 것을 선택했습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거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가축의 떼는 많은데 풀과 물이 모자라 종들 간에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합의하여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롯은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창13:10).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제사하기에 좋은 곳을 찾아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곳에 장사되었습니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보고 행동하지 행동하고 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여러분이 보는 눈에 따라 여러분 인생의 열매는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② 롯은 한 번도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관계로 말하면 삼촌과 조카 사이입니다. 같은 날 함께 갈대아 우르를 빠져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일평생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을 누린 사람이라면 롯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롯은 한 번도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난 적이 없습니다.
롯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지혜롭게 살았습니다. 삼촌에서 미안한 것은 순간일 수 있지만 소돔과 고모라 땅에 가서 얻게 되는 부요는 평생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이것 때문에 철저하게 망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두 종류의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53:1)
둘째는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상업 도시로 직조업과 의약업이 발달한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
그들은 경제적인 부요 때문에 영적 실상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할 절대성을 가지고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 생명을 소유할 수 있고, 그 생명 안에서만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되신 예수 안에서만 생명과 능력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연후에도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누림의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몰라서 그렇다지만 구원받은 신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거절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자들 가운데 그런 모습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사단은 그걸 깨닫지 못하도록 역사합니다. 그걸 놓치도록 역사합니다.

3. 롯의 결과
① 가나안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14:12)
잘 나가던 롯에게 어느 날 문제가 터졌습니다. 연합군이 쳐들어와 모든 소유를 다 빼앗아갔습니다. 자신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시킨 가병 318명을 끌고 나가 롯을 구출했습니다. 그런데도 롯은 다시 소돔과 고모라 땅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그 땅 사람들이 악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은 있었으나 돈 버는 재미가 롯으로 하여금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가 살도록 했습니다.
② 롯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받은 것은 그 성에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롯의 가정만 네 식구였습니다. 롯의 나이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그가 그 성에 들어가 몇 년을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온 것이 75세입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다가 봉변을 되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 애굽의 바로가 많은 육축과 재산을 주어 거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후 물과 풀 때문에 종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두 사람이 헤어질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역시 75세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나이 75세부터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17장부터 20장까지는 아브라함 나이 99세 때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1장에 가서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창세기 19장 사건입니다. 그러면 롯은 심판 때까지 24년을 그 땅에서 산 것입니다. 결혼은 그 땅에 들어가서 했는지 그 이전에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딸들을 낳은 것도 언제 나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24년을 그 땅에서 살았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4년 동안 롯의 가정은 여섯 명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식구 네 명 외에 여섯 명이 더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못했다는 말보다는 구원할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왜지요 영혼에 대하여는 내 영혼이나 남의 영혼에 아예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딴데 가 있는데 시간이 많다고 되겠습니까 돈이 많다고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혹시 신앙생활 한지 24년이 걸려도 여섯 명도 구원하지 못할 그런 분은 없습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런 사람되지 않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 사위들이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신앙을 팽개치고 세상에 속하여 살았습니다. 말과 행동에 진실성이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영향력을 입히지 못했습니다. 가족 전도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잘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깝게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가장 큰 영향력을 확실하게 입힐 수 있습니다.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안 된다고 확실히 믿는데 되겠습니까
④ 전재산은 불과 유황 속에 불타 버렸습니다.
⑤ 천사가 내 몰아서 겨우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창19:16)
지금 사느냐 죽느냐 사활이 달린 판에 롯은 물질 때문에 지체했습니다. 천사가 안되겠다 싶어 네 식구의 손을 잡아 강제로 성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아브라함의 간구를 인하여 겨우겨우 구원을 받았습니다.
⑥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19:26)
⑦ 딸들은 패륜의 자식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자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창19:32-33)
⑧ 롯은 불신앙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창19:36-38)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뿐입니다. 롯은 구원받았다고 성경에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만 그는 전혀 구원받은 자답지 못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롯을 비유로 해서 말할 때 긍정적인 경우가 하나도 없습니다.
① 말세 때를 롯의 때와 비교했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눅17:28)
② 가장 어리석은 사람의 모형으로 롯의 처를 들었습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눅17:32)
죄의 내용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단에게 소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믿음을 떠나 산지 24년만에 돌아온 결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지역은 지금의 사해 지역입니다. 소금기가 하도 많아 염해라고도 부르는 곳입니다(창14:3). 사해 바다는 지표면보다 400M나 얕은 내륙 바다입니다. 사해 바다 속에는 아무런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처음부터 바닷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이 땅이 어떤 땅입니까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물이 풍부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땅을 하나님은 어떻게 멸망시키셨습니까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19:24-25)
하나님은 에덴 동산과 같던 땅을 불과 유황으로 멸망시키되 땅을 후벼파서 뿌리까지 멸망시키셨습니다. 엎어 멸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사해바다를 국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 보통 이스라엘 쪽에서 사해바다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요르단 쪽에서 사해바다를 보면 바위들이 모두 검게 그을러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하늘에서는 불과 유황을 비같이 쏟으시고 땅은 뒤엎어서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뿌리까지 뽑아 버리셨습니다.
그 당시에 상품으로 제일 값이 나가는 것이 소금이었습니다. 돈에 노예가 되어 살던 롯의 아내를 하나님은 소금기둥을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은 소금바다, 염해, 죽음의 바다를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키기를 장장 24년이나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돌이키지 않을 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산 사람들과 하나님을 떠나 산 지역의 마지막 결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능력을 통해서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만 살 수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것은 철저하게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역사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불신자나 구원받은 자에게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우리는 사단의 계략을 깨닫고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생명과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만난 인간은 그에게 붙어 있어 신분과 권세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사단의 계략을 깨닫고 더욱 힘써 주께 붙어 있어 날마다 주님 만나는 감격과 축복 속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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