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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이 누린 그리스도 (창 22:1-19)

첨부 1


아브라함은 욥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아브라함은 우상의 땅에 태어나고 우상 장사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라고 부릅니다. 왜 하나님은 욥과 같은 훌륭한 사람을 버려두고 아브라함과 같이 흠이 많은 사람을 들어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을 삼으신 것일까요 구원은 어떤 조건과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와 방불한 사람, 때로는 우리보다 훨씬 못한 수준의 사람들을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하나님은 여러 가지 안 좋은 환경에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구원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 땅에 살았습니다. 갈대아는 ‘귀신’이라는 뜻입니다. 우르는 ‘달의 신’을 말합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사단에게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그 땅에서 우상숭배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까 그 땅이 우상의 땅이요, 아브라함 자신이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마귀의 자녀가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의 자녀는 어쩔 수없이 우상숭배를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 숭배하는 아버지 밑에 살면서 우상숭배를 안했을 리 만무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정신과 육신이 고통받다가 죽어서 지옥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에게 만일 자식이 있었다면 그도 똑같은 운명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일평생 하나님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계시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언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그리스도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요한복음 8:56에 분명히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미리 보고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며,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누렸다면 우리도 만나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의 특권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의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풍성한 지식을 얻으시고 만남과 누림의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아브라함이 누린 선지자적인 축복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그는 구원받았지만 일평생 구원받은 자답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2:7-8)
그는 그의 평생에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똑같은 날 함께 갈대아 우르를 빠져 나왔습니다. 똑같은 날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똑같은 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빼앗길 뻔한 위기의 밤을 넘기고 그들은 가나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나뉘어 전혀 상반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늘 하나님을 만나는 삶을 살았지만 롯은 한 번도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것이라는 경고도 아브라함 때문에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19:29)
구원도 아브라함 때문에 받았으며, 그것도 불 가운데서 겨우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의 인생은 바로 우리들 각자의 상반된 삶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긴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들의 서로 다른 장래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차별 없이 부르십니다. “아무나 오라. 누구든지 오라”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 구원은 예수 믿으면 아무나 받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아무렇게나 하면 안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이 무엇인지, 축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만나 하나님을 누리는 축복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만나지 못한 인생은 방황하게 되며, 저주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선지자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하나님을 만났는가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①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구원하셨습니다.
② 가나안까지 가지 못하고 하란에 머물 때에 찾아오셔서 언약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1-3)
③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에 하나님이 또 찾아오셔서 그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 다.(창12:7)
④ 기근을 피하여 내려왔던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창12:10-20)
⑤ 혈육끼리 이방인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싸우는 일이 옳지 못했습니다. 조카 롯을 떠나 보낸 뒤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축복하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
⑥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했을 때 그리스도를 상징한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⑦ 소망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이요 방패라 말씀해 주셨습니다.(창15:1)
⑧ 99세에 찾아오셔서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시고 내년에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창17:1-14)
⑨ 장막에 거할 때에 찾아오셔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경고하셨습니다.(창18:1-16-21)
⑩ 그랄로 이사했을 때 나타나사 아비멜렉으로부터 사라를 지켜 주셨습니다.(창20:1-18)
⑪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을 복 주시려고 시험하셨습니다.(창22:1-19)
⑫ 막벨라 굴에 사라와 함께 매장됨으로 영원히 하나님을 만나는 안식에 들어갔습니다.(창 25:1-18)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두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본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일생 동안 그를 축복하시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셨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을 만나고자 늘 제단 쌓고, 제단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2.아브라함이 누린 제사장적인 축복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지낼 때에 우상숭배 하는 아버지 밑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허다한 죄가 그에게 있었지만 그 모든 죄가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앞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살인죄도 용서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죄도 용서받았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중죄인입니다.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의 죄도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깨끗하게 용서받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은 어떤 죄를 용서받았습니까
① 원죄를 용서받았습니다.
② 조상의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③ 자범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애굽에 내려가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후에는 그랄로 내려가 또 역시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두 번에 걸친 거짓말로 인하여 아내를 빼앗길 뻔한 위기를 당했습니다. 분명하게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습니다. 사실대로 모든 걸 말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바로와 아비멜렉이 혼쭐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이 언약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부르실 때부터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1-2)
아브라함은 이 언약을 붙잡았기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왔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수 차례에 걸쳐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급기야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는 불신앙입니다. 이 불신앙을 인하여 하나님은 13년간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십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99세에 다시 나타나사 할례를 명하시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명령하십니다. 잘못하고 범죄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은 수십 년 신앙의 여정에서 수많은 인본주의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그 때마다 그 일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가 모든 인본주의를 포기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끝없이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3.아브라함이 누린 왕적인 축복
① 애굽에서 바로를 꺾었습니다.
② 318명의 가병으로 연합군을 꺾었습니다.
롯은 물과 풀이 풍성한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내려갈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 헤브론 산지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롯의 결과는 재산과 가정도 다 잃고 완전히 망했지만 아브라함은 가병만 318명이나 될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 가병을 이끌고 나아가 구출했습니다. 언약 붙잡은 자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③ 그랄 땅에서 아비멜렉을 꺾었습니다.
그랄로 이사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두려움을 느끼고 또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였는데 하나님이 그 밤에 꿈에 나타나사 네가 사라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를 다 죽여 버리겠다 경고하셨습니다. 나아가 아브라함이 너를 위해 기도해야 네가 살리라 으름장을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한없이 약했지만 그와 함께 하사 모든 대적을 꺾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비록 그랄이라는 이방 땅에 와서 살았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화친을 청합니다. 화친은 언제나 약한 쪽에서 청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무슨 뜻이 됩니까 아브라함이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삶은 언제나 승리의 삶입니다.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21:22)
④ 큰 시험을 통해 모든 대적을 꺾게 하겠다는 보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은 넘어뜨려 실패케 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모든 시험은 신자를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엄청난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 일평생 동행하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둘째는 자손이 번성하고 대대로 원수 대적을 꺾어 승리할 수 있는 보증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22:14)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22:17)
구원받은 신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아브라함을 통한 증거의 삶
아브라함은 그의 일생에 선지자, 제사장,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붙잡았기에 늘 승리했습니다. 이와 같이 언약 붙잡은 아브라함의 모든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14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드린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①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여섯 번에 걸친 중보기도가 모두 응답 받았습니다.
②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자식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창20:17-18)
③ 죽기 직전에는 이삭의 결혼에 대하여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잡은 자, 그리스도를 붙잡은 자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 맞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분명하게 여러분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 안해서 응답이 없지 기도하면 모든 기도에 하나님은 다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구원은 지옥갈 영혼이 천국으로 옮겨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 천국이 지금 내 삶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를 누리다가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 집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불신자의 최대 과제요, 하나님을 누리는 길은 신자의 최고 과제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의 문제는 더 더욱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신자는 결코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해답으로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되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기도에 승리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완전하신 그리스도에게 나의 삶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수십 년에 걸친 신앙생활을 통하여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은 그리스도의 언약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언뜻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자식을 바치는 시험도 믿음 안에서 불가능한 시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사환에게 분명히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했습니다. 이 말은 속이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자기가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씨, 곧 이삭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지 않으실 것을 확실히 믿었기에 드릴 수 있었고, 또 설사 죽었다 할지라도 다시 살릴 능력이 그에게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이미 이삭을 통한 시험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미하는 시험인 것을 알았고, 그의 부활까지 내다보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만큼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또 얼마만큼이나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연륜을 더해 갈수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지혜가 날마다 더해 가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 그리스도를 날마다 만나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를 더 깊게, 더 확실하게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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