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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이 누린 그리스도 (창 26:12-25)

첨부 1


창세기 성경은 네 사건과 네 인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입니다. 이 네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야곱은 147세를, 요셉은 110세를 산 반면에 이삭은 180세나 살았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경에서 이삭에 관한 내용이 언제나 제일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삭의 생애를 가장 짧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1장부터 28장까지 겨우 8장에 걸쳐 나오고, 35장에서 그의 임종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장 긴 인생을 살았는데 가장 짧게 그의 생애가 기록되었다면 그를 네 인물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생애를 살아간 사람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빠져 나와 구원을 설명하고, 믿음의 조상과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말년에 애굽에 내려 바로 앞에 섰을 때 내 나그네 길의 연수가 130년이지만 험난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고백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셉도 열 일곱 나이에 종으로 팔려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삭의 생애는 평범해 보이고 무난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생애는 무리 없어 보이고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가 단지 짧게 기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은 300년이나 되는 장구한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일곱 절로 그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의 기록이 짧다는 것은 그의 생애가 보잘 것 없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삶을 살았기에 달리 기록할 말이 없었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불순종하고 실족하고 넘어졌던 과정이 없이 일관된 삶을 살았기에 에녹의 생애는 오히려 짧게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삭의 짧은 기록의 생애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삭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누릴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고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1. 이삭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가장 사실적으로 체험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① 아브라함은 단 한 번도 자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주셔 놓고 바치라는 명령은 완전히 병 주고 약주는 격입니다. 바치라 할 바에는 처음부터 아예 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②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1-3)
이삭은 하나님이 언약을 이어갈 씨로 주신 자식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죽으면 언약도 무산되고 맘니다.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라도 이삭은 죽으면 안됩니다.
③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자식입니다.
비록 첩의 자식이지만 사랑했던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쫓아낸지 이미 오래입니다. 이제 이삭마저 죽으면 아브라함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삭은 죽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삭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위하여 누군가를 준비시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가 죽는다 해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환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 이삭에게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평소에 이 신앙을 이삭에게 가르쳤고, 이삭도 아브라함만큼이나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늙은 힘없는 노인이요, 이삭은 한창 젊은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묶을 때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가 깨닫고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고 언약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라비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물으셨습니다.
남이 그렇게 될 것을 믿느냐 물으실 때 “믿습니다” 말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너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이다. 그러니 지금 죽어라” 하면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가 죽어도 살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 자신은 언약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이삭의 순종은 아브라함의 순종보다 더 큰 의미의 순종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확인해 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이 무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사람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이삭 사이에서 이삭편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 이삭에게는 죽으라는 말이 지나친 듯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지나친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연한 요구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지어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죄의 값인 사망을 인류를 대표해서 이삭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모든 사람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습니까 마귀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하나님을 떠난 위치이고, 죄 지은 자며, 사단에게 소속된 신분입니다. 이 사람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숭배 하면 어떤 결과가 찾아옵니까 정신적인 고통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육신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게 됩니다.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됩니까 심판 받고 지옥 가게 됩니다. 그리고 후손에게 자신과 똑같은 불행한 삶을 남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요구하셨습니다. 이삭에게 “너는 죽어야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이삭이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지나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과 죄의 결과는 그렇게 처리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들 모두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요구 앞에 욥이 드렸던 고백을 그대로 해야 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1:20-22)
내 자신이 죽어도, 내 자식이 그렇게 죽어도 하나님의 요구는 정당합니다. 우리가 억울하다고 토를 달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으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그렇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그렇게 제물로 서야 하고 그렇게 죽는 것이 억울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하나님의 요구가 부당하다 말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할 때에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수양을 예비하셨습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대신 수양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를 하나님은 하나님 만나는 선지자를 삼으셨고,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장을 삼으셨고, 사단을 꺾고 승리하는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실제적으로 자기가 죽어야 할 입장에서 하나님이 수양을 준비 하사 대신 죽게 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은 이삭을 하나님을 축복하셨습니다.

2. 이삭은 갈라디아서 2:20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상에서 한 번 죽었던 목숨입니다. 그후 이삭의 삶은 어떤 삶이었습니까 갈라디아서 2:20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① 이삭은 나이 40이 되도록 장가들지 못해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습니다.
이미 그는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장가를 가고 안 가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② 이삭은 아내가 결혼한지 20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해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이미 모리아 산에서 죽은 목숨으로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듯 못 낳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묵묵히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③ 이삭은 우물을 빼앗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랄로 이사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창26:12-15)
이삭이 농사하여 100배를 얻고 큰 부자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고 흙으로 메워 버렸습니다. 그랄 땅은 물이 귀한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우물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것을 빼앗기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자신은 모리아 산에서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랄 골짜기로 이주하여 새롭게 우물을 팠습니다. 다시 물이 풍성한 우물을 얻었습니다.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도 다툼이 일어나자 포기하고 브엘세바로 옮겨 새로운 우물을 팠습니다.
모리아 사건 이후의 이삭의 삶은 전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갈라디아서 2:20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은 죽은 목숨으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자신을 위한 모든 욕망을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은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이삭에게는 최고로 축복된 삶의 과정이요 방법이었습니다.

3. 하나님은 이삭을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오늘날 세상에서 이삭 같은 사람은 인기가 없습니다. 못나 보이고 무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이삭을 믿음의 사람으로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삭에게는 이런 삶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수양을 준비하셨던 하나님이 모든 삶의 필요를 여호와 이레로 준비하시고 대적의 문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숙맥 같고 멋대가리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죽고 주님이 내 안에서 나 대신 사는 삶은 얼마나 축복된 생애입니까 이삭이 받은 축복, 그가 누린 그리스도의 축복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① 자손 대대로 믿음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6:4)
② 리브가라는 언약의 여인을 아내로 얻었습니다.
사라는 그 이름이 열국의 어미입니다. 리브가 역시 어떤 여인입니까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창24:60)
이삭은 나이 40이 될 때까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못난이였지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내를 얻었습니다.
③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습니다.
이삭은 양치는 자지 농사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삭은 원수의 땅에서 100배나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원수들의 시기, 질투 속에 더 잘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④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한 번도 다투지 않고 계속 양보했습니다. 그 결과 물이 나지 않는 곳에서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삭은 땅을 파기만 하면 물이 나왔습니다. 결국 그는 어디까지 이르게 됩니까 브엘세바까지 가게 됩니다. 브엘세바는 무슨 뜻입니까 “일곱 우물”,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수를 말씀합니다. 상황으로 보면 쫓겨간 것 같습니다. 밀려서 간 것 같은데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 완전한 축복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로 맹세하신 자리까지 옮겨간 것입니다.
⑤ 대적을 꺾었습니다.
이삭이 브엘세바에 머물고 있을 때 어느 날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이 찾아와 말합니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26:28-29)
그들이 뭐라 말했습니까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삭이 칼과 창에 능한 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토록 무력해 보이는 이삭을 보고 떨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할 때에 하나님이 모든 원수 대적을 다 꺾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주신 왕적 권세인 줄로 믿습니다.

이삭은 무력해 보이지만 블레셋의 아비멜렉도 두려워했던 강한 사람입니다. 늘 실패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언제나 성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패배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누구도 두렵지 않고, 어떤 일을 만나도 꺾이지 않는 힘과 용기가 있습니까 늘 성공합니까 늘 승리하고 있습니까 언제나 기쁨이 넘치며 감사하며 감격하고 살아가십니까 행복을 위해 온갖 노력 다하는데 왜 늘 무력하고 실패하고 넘어집니까 오늘 우리는 이삭을 통해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①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붙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리아 산상에서 죽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 하사 살려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엄청난 신분과 엄청난 권세가 우리에게 있는데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②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상에서의 사건을 체험한 후 자신은 죽은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도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자기 대신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십자가는 절대 죽기 전에는 내려올 수 없는 형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죽은 시신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과연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앞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될 자들입니다.
우리의 고집과 자아가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의 역사는 나에게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삭은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살아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③ 하나님을 보증으로 삼고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군부대에 민간인이 들어가려면 정문에서 여러 가지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조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사 통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조건 free pass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은 바로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긴 생애를 살았으면서도 가장 짧은 기록을 남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아닌 저와 여러분을 대상으로 해서 창세기 성경을 하나님이 기록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이삭에게처럼 두말없이 OK하고 넘어갈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삭 같은 사람이 되고, 이삭 같은 축복을 받으라고 기록된 책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도 그와 같은 결단이 우리에게 서지 않고, 오늘 이후로 그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예배가 헛된 것이며, 제가 드린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의 축복은 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 삶이 가능하겠습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찾고 순종하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먼저 하나님의 뜻에 전폭적으로 순종할 수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자신을 한 번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우리 안에 수용되고 있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너무나 많이 하나님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고 불순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을 좇지 않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지 않으면 결국은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할 수 있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뜻에 OK할 수 있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모든 기도와 소원에 OK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OK,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에 대하여 OK. 얼마나 신나는 삶이 되겠습니까 이 상태가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상태요. 임마누엘의 축복 속에 우리가 머물게 되는 상태입니다.
이삭이 만난 그리스도를 우리도 만나야 하겠습니다. 이삭이 일평생 누린 생명과 능력의 그리스도를 우리도 누려야 하겠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지만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이 엄청난 신분과 권세를 깨달으시고 날마다 기도응답의 축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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