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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모여, 오직 네 자녀를 위하여! (애 0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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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최초로 이 땅에 세운 기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가정을 잘 돌보고 가꾸는 일은 성도의 마땅히 행할 본분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윤리, 도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5월 5일은 어린이 날이며 교회적으로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말씀을 통해 어린이 신앙교육의 절대성을 깨닫고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을 다하는 부모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는 가정의 소망이며 장래의 꿈입니다. 그 자녀에 대하여 부모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여러 가지 바램이 있습니다.
① 건강하기를 소망합니다.
병약하고 아픈 자식을 보면 부모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하는 광고가 그렇게 공감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몸에 좋다는 약을 다 먹이고, 몸이 좀 약하다 싶으면 싫다는 애를 억지로 체육관에 보내어 운동을 시킵니다.
② 지식을 많이 쌓아 똑똑한 사람이 되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자식은 공부를 잘 하는데 내 자식만 못하면 속상합니다. 그래서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는 것입니다.
③ 사회에 나가 출세해서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못나고 못 배웠지만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자식만큼은 많이 배우고 행복한 삶을 살아 주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저는 건강하지도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하고, 유명한 사람도 되지 못했지만 설사 그런 사람이 되었어도 결코 행복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그런 것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건들을 다 가지고도 불행한 사람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조건을 하나도 같지 못했으나 본인은 넘치는 기쁨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 갔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같은 영화를 누린 사람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아버지 다윗이 왕입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아들 르호보암이 왕입니다. 왕은 세상에서는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14)
솔로몬은 세상 만물의 이치를 다 깨달을 만큼 지혜에도 밝았으나 그 지혜는 번뇌만 더할 뿐이었습니다.(전1:18) 인간이 행복하다 하여 웃는 웃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미친 것이라 했습니다.(전2:2)
솔로몬은 전도서 2:25에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했습니다. 그는 칠백 인의 아내와 삼백 인의 첩을 두고 살았으나 만족이 없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넘치는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해도 그것으로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가 평생을 살고 유언처럼 교훈으로 남긴 글이 전도서입니다. 그가 전도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 때만 행복합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다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처럼 다 살아보고 결론을 내리겠다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솔로몬과 같은 지혜와 부귀영화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영화를 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렸다 해도 그도 역시 솔로몬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결코 그것을 통해서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본분이라 했습니다. 그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가 보지는 않았지만 가 본 사람의 결론을 통해 지금 그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참 행복과 승리의 길로 우리 인생의 괘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창세기 1:27에 보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삶이 인간 행복의 최대 비결이요, 유일한 길입니다. 진정 내 자녀의 행복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키워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17:14)
아이의 이름을 짓기도 전에, 엄마 아빠를 알고 말하기 전에, 세상 물정 알기 전에 가장 먼저 할 일이 하나님은 할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할례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①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과의 구별된 표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를 자기 몸에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명령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남자는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리스도를 깨닫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난지 팔 일만에 이 예식을 행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의 의미는 먼저 아이의 신분부터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 자입니다. 그러면 누구 자녀입니까 마귀의 자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뀔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됩니다.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② 하나님 백성이라는 신분에 대한 자기 확인입니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몸 안에 노폐물을 배설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생리적인 배설을 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과 그 신분을 날마다 확인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자녀라면 그 자녀가 신분과 권세를 깨닫고 생명과 능력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조기교육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어려서 배운 교육과 다져진 심성이 평생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원리와 비밀을 안다면 우리는 조기교육 이전에 태교부터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25:23)
태중에서부터 에서와 야곱은 서로 다른 두 민족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1:15)
세례 요한은 태중에서부터 성령충만했습니다. 어려서부터의 신앙교육은 그의 모든 인생과 영원한 내세의 삶까지도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모세, 사무엘, 세례 요한, 디모데 모두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그리스도로 자라간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픈 아이에게 보약 먹이는 일보다, 머리 나쁜 아이 학원 보내는 일보다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하게 하신 일이 할례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시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고 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남자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수5:9)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이 할례를 행하고 여리고를 향하여 나아갈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아와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모든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굳게 붙잡기만 한다면 그는 모든 인생의 대적을 다 싸워 승리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받았다면 정말 그들이 구원받은 신분과 권세로 살아갑니까 하나님 제일주의로 언제나 살아갑니까 태어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③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자녀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면 하나님도 자녀를 주목하시고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내 노력과 수고로 내 자녀의 노력과 수고로 그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하나님이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채워 주시고,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자녀를 기르고 계십니까 자녀의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시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구원의 감격과 확신 속에 살아가도록 언약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2.자녀들에게 그리스도를 누리며 살게 해야 합니다.
미국의 무디 목사님은 100만 명의 영혼을 구원한 세기적인 전도자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큽니다.
무디의 어머니는 베시 여사입니다. 남편은 일곱 자녀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임신 중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쌍둥이 사내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아홉으로 늘었습니다. 부유한 가정이라도 아홉 자녀를 기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무디의 가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베시 여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이 아이들과 고생하는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 아홉이나 되는 아이들을 내가 끌어안고 기르는 것이 이 아이들을 위해서 과연 잘하는 일이냐 여러 날을 고민한 어머니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이들 중 몇 명을 고아원과 친척집에 나누어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와 친척들이 말하는 것을 아이들이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끼리 똘똘 뭉쳐 결의를 했습니다. 죽어도 우리는 헤어지지 말자.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가 밥을 굶어도 좋고, 옷을 못 입어도 좋으니까 절대 우리를 다른 곳에 보내지 말아 주세요.”
아이들의 태도가 너무나 완강해서 어머니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시 여사는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의사가 그렇다면 좋다. 그럼 두 가지를 약속해라. 첫째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도둑질을 하지 마라. 도둑질을 하면 그날로 내어쫓길 줄 알아라. 둘째는 어떤 어려움이 와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승리하겠다고 약속해라.”
아홉 명의 아이들이 고사리 손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베시 여사는 아이들을 잘 먹이고 가르치고 입히지는 못했습니다. 무디도 국민학교 2학년을 겨우 나왔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길렀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하고 약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잘나고 못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에게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그리스도만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도 삽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세상 것을 다 가지고도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망합니다. 그리스도 무시하고 살면 결국은 망합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요, 약속입니다. 인생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싸워 이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깁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있으면 모든 대적을 싸워 이깁니다. 모든 고난을 싸워 이깁니다.
하나님을 떠난 개인이 다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히틀러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신을 죽었다고 외쳤던 니이체는 정신병원에서 미치광이로 죽었습니다. 여자의 일생을 썼던 모파상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늘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작가 헤밍웨이도 엽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전쟁 영웅 징기스칸은 열세 군데 창에 찔려 비참하게 죽었고, 나폴레옹은 고도의 섬에서 피부암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강물 위에 수상국가를 건설했던 바벨론은 느보신상을 전세계에 퍼뜨리다 망했습니다. 로마는 전세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다가 망했습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켜 자신들이 정복한 나라에 신사를 세우다가 잿더미로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모든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예수 생명, 예수 능력, 언약의 자녀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3. 사명 감당하는 생애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 날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없습니다.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습니다. 흔들 수 있는 깃발이 없습니다. 밤늦게까지 헤매이고, 오토바이로 어둠을 질주하는 아이들이 다른 집 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장래의 내 자식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한 번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자녀에게 한 번 물어 보십시오. 장래의 너의 소망이 무엇이니 지금 너의 가장 간절한 바램이 뭐니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우리 아이들에게 물으면 목사님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장 가지고 싶으니 물으면 언제나 로봇 장난감입니다. 그래서 제가 속상합니다.
그러나 끝내 그 아이들 입에서 예수 그리스도,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라는 말이 터져 나오리라 저는 믿습니다. 내 자식의 장래가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Ⅹ세대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사명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목표가 흔들리면 일생이 흔들립니다. 일평생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명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① 노아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일평생 소원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누가 심었습니까 무두셀라가 심었습니다.
② 요셉은 창세기 37:1-11의 꿈을 일평생 간직했습니다.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기도하는 아버지 야곱에게 그 신앙을 배웠습니다.
③ 모세의 일평생 소원은 출애굽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누가 심었습니까 어머니 요게벳이 심었습니다.
④ 다윗은 눈뜨면 찬송했고, 눈감으면 기도했습니다.
어릴 때 양우리에 있을 때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들의 자녀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자라가야 하겠습니까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자라 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상의 하나님의 소원이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축복이 없습니다. 어려서 그 언약으로 사명으로 자라간 아이들만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까 내가 삼성, 금성, 대우를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그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게 해줄 수 있습니까 내 아이들이 그런 것에 생명 걸고 살아가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시시한 것에 인생을 걸면 시시한 인생으로 끝나 버립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민족과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간절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애2:18-19)
①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자녀를 위하여 지금 우시기 바랍니다. 지금 울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우는 날이 올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때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안 때리는 나중에 내가 그에게 맞는 날이 옵니다.
②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자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늘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③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내 자녀의 육신적인 일에만 관심 갖지 말고 영적으로 주리고 혼미한가를 살펴야 합니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자가 내 어린 자녀의 실상일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위하여 손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낳는 것은 순간이지만 자식에 대한 관심과 기도는 평생을 해야 합니다. 다락방의 가장 기초적인 현장은 우리의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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