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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구원 (행 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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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든지 관계없이 인생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푸른 잎이 낙엽이 되어 땅바닥에 뒹구는 것을 봅니다. 모든 인생에게는 만추의 낙엽처럼 죽는 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가을날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오늘도 삶을 마감하고 떠나는 이웃을 보며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마다 행복하게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데 왜 사람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게 되는 걸까요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①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인간은 그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아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기에 그들이 죽었고, 그들에게 속한 모든 후손들도 죽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물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과 흙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떠나면 모두가 죽는 것입니다.
② 죄 가운데 빠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죄값이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모두가 죽고 만물이 죽는 것은 모두가 죄인이요, 만물이 죄 아래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③ 사단에게 소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마귀 둘 중에 어느 쪽으로든 예속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 속했던 인간이 범죄 하는 순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그 때부터는 자동적으로 마귀에게 소속되어 버렸습니다. 마귀는 범죄한 천사로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영영한 불이 예비되어 있는 지옥에 가두기로 작정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인간은 그 즉시로 마귀에게 소속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사람의 문제이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만 해결하실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하나님 떠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하나님 떠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죄값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을 대신해 죽으심으로 속죄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문제, 곧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인간의 도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모든 인간의 근본 문제를 다 해결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의 조건
①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원은 아브라함 자손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삭개오의 변화된 모습을 보시며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혈통적인 자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혈통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구원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받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은 혈통적 자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4:13)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하나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고 구원받았습니다.(요8:56) 우리는 오신 메시아와 다시 오실 메시아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야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9)
② 할례를 행해야
구약에서 할례는 구원받은 백성의 표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애굽으로 가려 할 때에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십니다. 그 때 재빨리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아주십니다. 그만큼 구약에서의 할례는 중요했습니다. 할례는 구원받은 백성의 표입니다. 그러나 이제 육신의 할례는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통해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8-2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6)
③ 율법을 지켜야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로운 행실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복음서에서 보면 가장 많이 예수님과 충돌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자리까지 끌고 갑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증거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가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을 주께 돌아오게 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그곳 소식을 들으니 유대인들이 들어와 말하기를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가 감사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율법을 지키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구원의 조건에서 보면 우리는 전혀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았는지, 모든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 이것은 늘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2.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의 구원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학정을 하겠다고 하자 성전과 왕궁을 짓는 일에 지쳐 버린 백성들은 북이스라엘을 세우고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19대에 걸친 왕조가 흘러가면서 단 한 명도 선한 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멸망 받았습니다.
사마리아가 완전히 함락된 후 앗수르는 많은 포로들을 잡아갔고, 그 대신 그곳에 많은 이방 사람들을 이민시켰습니다. 그것은 모든 잡족들이 동거함으로 앗수르를 반역하는 혁명이 다시없게 하려는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잡족의 동거는 드디어 종교의 혼란을 가져왔고(왕하17:29-31), 또 이방의 신과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같이 섬기는 혼합종교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현상의 하나는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민 온 이방인들의 혼혈로 인하여 하나의 잡족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들을 가리켜 사마리아인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사람들도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유대 사람과 갈릴리 사람들은 서로의 지역에 갈 때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멀리 돌아서 다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요4:3-4)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들어가셨습니다. 지나가신 것이 아니라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함께 있기를 청하자 그곳에서 이틀을 머무십니다. 사마리아를 사랑하사 구원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승천하시기 전에 분명히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으면 사마리아로 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사마리아 지역이 복음화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 가운데 살아가던 죄인들이었습니다. 세상에 뒤섞여 온갖 죄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사마리아보다 더 악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에게 너희는 누구에게로 가라, 어느 지역으로 가라 명령하셔서 그들이 복음 전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고넬료의 구원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자신들을 구속하고 있는 로마 사람들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모릅니다. 고넬료는 그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하나님은 세 번에 걸쳐 환상을 보여 주시고 어떻게 보면 강제적으로 고넬료에게 보내셨습니다. 베드로는 안 가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끝내 가게 하십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기 싫어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그를 던지게 하시고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요나를 통하여 니느웨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해서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고넬료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고넬료를 구원하는 장면은 단순히 그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사마리아가 복음화 되는 장면과 고넬료 가정이 구원받는 사건 속에 다같이 나타나는 인물이 베드로입니다. 하나님은 빌립이 가서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자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보내십니다. 그 이전까지는 아무에게도 성령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설교할 때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빌립과 베드로를 차별대우하시는 것입니까
왜 다른 사람이 갔을 때는 성령이 임하지 않다가 베드로가 갔을 때만 임하는 것일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입니다. 그가 가서 말씀을 전할 때만 성령이 임해야 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8:14-17)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10:44-46)
할례 받은 유대인들은 구원이 유대인만의 전유물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죄인들로서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와 고넬료의 가정에 다음에는 누가 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가 가서 말씀 전하면 성령이 역사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베드로부터 출발되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빌립 집사가 가서 사마리아에 가서 말씀 전할 때 성령이 임하면 사마리아가 구원받은 사실을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해야 사마리아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원을 예수님이 인정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합니다. 사람끼리 구원을 말하는 것은 종교입니다. 성도의 구원을 하나님 자신이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하여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친히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요, 수제자로서 공신력 있는 사도 베드로를 보내어 사마리아와 이방인의 구원을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인정 속에 저와 여러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율법대로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계 만방의 사람들에게 내가 인정했으니 너희도 인정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이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마9:22)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29-39)

3. 우리의 구원
나의 구원은 누가 이뤄 주십니까 사마리아, 고넬료가 구원을 못 받았다고 한다면 나도 구원받지 못 합니다. 하나님은 두 지역에 베드로를 보내 구원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마리아에도 거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으로 말하면 고넬료보다 훨씬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하셨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마리아와 땅 끝의 사람들이 구원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면 우리는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꼭 구원받았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것입니다. 둘째는 저런 사람이 어떻게 여길 왔을까 놀랄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방법도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잘 나서 구원받을 사람 없고, 못 나서 구원받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① 수가성 여인이 구원받았습니다.
②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이 구원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8:10-11)
③ 예수님 우편에 달린 강도가 구원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3)
④ 세리 마태와 삭개오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이 믿음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눅8:48)
나도 그들처럼 구원받았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나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흔들리지 말기 바랍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확신 속에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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