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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4-21)

첨부 1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한 구석을 보면 분쟁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하나의 기형적 사회의 한 단면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곳 저곳 구석 구석에 거짓과 폭력 그리고 분쟁이 그칠줄 모르고 있습니다.
근래의 우리나라나 아니면 세계도처의 여러 현상만을 보더라도 계층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종족간의 분쟁, 정치 사상과 이념간의 갈등이 때로는 난폭한 행동이나 끔찍한 폭력으로 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합법적인 법 집행을 가장한 공권력의 폭력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이에 대항하는 세력이 불법적으로 투쟁 하면서 폭력을 일으키므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자아내게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벌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 1996.
8.15광복절을 기점으로 통일운동을 빙자한 소위 최고의 학문을 지향하는 대학가의 지성인들이 자기들이 주장하는 의견들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불법적인 폭력의 방법으로 시위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일어난 청주대학교를 다니다가 전투경찰로 입대한 한 대원의 죽음과 아울러 많은 젊은 이들이 피차간에 부상을 당하게 됐고, 또, 4일간의 대모로 인하여 연세대학교에 입힌 재산상의 피해가 자그마치 1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이래야만 했을까요 왜 그토록 많은 학생들이 그러한 과격한 행동을 했어야만 했을까요 물론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요
최근의 언론매채를 통한 사설이나 칼럼들은 하나같이 학생들의 과격한 행동을 서슴없이 나무라고 있습디다.
그들이 당연히 야단을 맞아야 할 행동을 했기에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냉철히 생각해 봅시다.
왜 모두가 다 너희들의 탓이요 너희들의 책임이라고 만 합니까
그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야할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성 세대의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은 없는 것 입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느냐에 대한 근원적인 요인 분석과 그 요인을 제공한 기성 사회에 대하서도 반성을 촉구하는 질타를 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지성인의 양심입니다.
그런대 글들을 제공한 대학교수도 평론가도 목사님들도 누구도 규명하려 들거나 파 해쳐서 솔직한 지적과 균형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무래는 표현만을 제시한 아쉬운 점도 있는 것이 사실 입니다.

말을 바꾸어서 말하자면 상호간에 왜 폭력적 방법만을 이용합니까
한마디로 말씀 드리자면 평화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추구 해야할 과제는 무엇보다도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건만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주의적 독선과 아집 그리고 교만과 거짓의 쓰디쓴 뿌리가 이곳저곳에서 분출하여 그야말로 혼돈과 무질서가 판을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평화를 추구하라고 분부 합니다.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약3: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예수님 께서는 화평을 만드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녀라고 말씀했습니다 (마 5:9).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정의와 화평과 일치라고 말씀했습니다 (롬14:17).
베드로 사도는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벧전 3:11).

우리그리스도인들은 무엇 보다도 이웃과 더불어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1.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왜 평화가 없습니까 그것은 정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1)정의가 없다는 것은 불의와 죄악이 넘치고 있다는 말 입니다.
어떤 분들은 왜 교회의 문을 잠그느냐 이교회는 만민의 기도 하는 집이기에 항상 문을 열어 놔야 하는데 왜 교회를 잠그느냐는 것입니다. 왜 교회문을 잠급니까 도둑이 와서 교회의 물건을 집어가니까 사람들을 믿지 못하기에 그렇습니다. 이것도 불신풍조의 그 희생의 여파가 교회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불의와 죄악이 판을 치면 사회가 불신사회로 치닫고 있습니다.
불신 사회속에서는 오늘날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치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계신 분들부터 자기들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어느날 공자에게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공자 왈 "먹을 것이 풍부하고, 병력이 족하고, 백성들이 서로 믿게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자공이 그 중에서 부득이 하나를 제한다고 하면 어떤 것을 제거해야 합니까 병력을 제거 하라는 것입니다. 자공이 또 다시 묻기를 남은 것 중에서부득이 또 하나를 제한다면 무엇을 제거 해야 합니까 먹을 것을 제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이 위정자를 믿게 해야지 그렇지 못하면 나라 자체가 설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서로 신뢰 즉 믿는 다고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가정에서 부터 우리의 이웃과 사회 교회, 국가도 그렇습니다.
불의와 죄악을 숨기고 있는 위장된 억지의 평화와 안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사람은 딴 여자를 얻어서 딴 곳에서 딴 살림을 차리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은 양쪽을 왔다갔다 하면서 잘 지냅니다. 자기의 아내와 가족을 속이니까 약간은 불안했지만 그 다음에는 태연하고 평안하게 잘 지냅니다. 그런데 아기를 낳아서 국민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 호적등본을 떼어야 했습니다. 그래 할 수 없이 자기 호적이 입적을 하게 되니까 그만 그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이 깨지고 불화가 들어오게 됩니다.
이처럼 죄악을 숨기고 불의를 묻어 두고 그 위에 쌓은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이 사회에 평화가 없는 것은 정의와 진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불의가 있고 죄악이 있으니까 평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2)다툼이 없어야 정의와 평화가 새워 집니다.
야고보서 1:20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빌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딤전6: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약3: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약4: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내가 옳다고 주장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싸웁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이 땅위에 정의와 평화를 세우지 못합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까지 모든 전쟁이 정의의 이름으로 시작이 되고 종전이 되었지마는 이 땅위에 정의는 수립된 예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정의는 싸움으로, 폭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정의는 화평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18에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은 싸움의 원천이 사람의 마음과 악마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계 6:4) "땅에서 평화를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칼을 받았더라"
2차대전 막바지에 최초로 만든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하여 미국 국회에서 비밀 증언이 있었습니다. 한 의원이 오펜하이머 박사에게 "그 무서운 무기를 방지할 무기는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답변은 이렇습니다.“그것은 평화라는 무기” 밖에 없습니다.
평화라는 무기가 어디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평화의 주체자 이십니다.

2.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으로 일체감을 이루어야한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 놓은 담을 헐어서 둘이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참 평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적 사랑으로 성취되는 진리의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화해의 재물로 죽으시고 평화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화해 사역과 평화사역은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평화를 주시는 그리스도가 곧 화해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인 원수의 담을 허셨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초대교회는 화해의 능력이 나타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혼자 살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나 평화가 나 혼자 누리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되지 못하면 분쟁뿐이요 분쟁 속에서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고 화평도 실현될 수가 없습니다.
일치가 없는 곳에 화평도 없습니다.
하나되지 못하고는 정의도 화평도 이루어질 수가 업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될 수 있습니까
오늘날 갈라지고 원수되어져 가는 이 사회에 하나될 수 있는 기초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일치의 기초를 "사람들이 만든 사회의 법률이다.
정치체계다, 이념이다. 어떤 지도자다. 혹은 대중의 여론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성경이 주장하는 세계 인류가 하나될 수 있는 일치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라면 하나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원수되었던 것을 하나로 화해시키고 일치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정의와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인간을 서로 갈라놓고 있는 편견 때문입니다.
이 편견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적대감을 낳고, 적대감은 독선을 낳고 독선은 급기야 폭력을 낳게 되는 것 입니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교재안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두뇌를 갈고 닦고 기술을 연마하는 훈련을 잘하면 사회에서 성공할수 있는 확률이 10%정도인데, 뛰어난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가고 일을 성공할수 있도록 준비한 사람이 성공할수 있는 확률은 85%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머리좋고,학위를 가지고 똑똑하고 남보다 먼저 뛴다고 성공하는 사람보다도 대인관계를 잘 하고, 덕스럽게 함으로서 성공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7배로 많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조사에 의하면 회사의 중견간부 중에서 인간관계를 잘못해서 해고 당하는 사람이 일을 잘못해서 해고 당하는 사람보다도 배나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가 다 편견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편견은 편견을 낳아서 나와 너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불신과 적대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선 속에서 인간관계가 갈라지고 조직 사회가 분열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마다 정의와 평화를 외쳐 대지만 아전 인수적 자기의 정의요 평화이지 이지 이타적인 것이 아닙니다.
각자 자기의 시각에서,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가정과 자기사업과 자기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좀더 나아가서 자기민족과 자기교단 과 자기교회, 자기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편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것 만을 고집한다면 서로간에 분쟁을 해결할 수가 없고, 평화는 이룩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자기의 것만을 고집하는 사람치고 자기 스스로도 마음의 평화와 심리적 안정을 도모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당신 자신이 평화로운 마음을 갖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선한 일도 악으로 만들며 쉽사리 악한 일에 귀를 기울입니 다. 그러나 선하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모든 일을 선하게 합니다.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운 자는 어떤 사람이라도 나쁘게 생각하거나 의심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불만이 많고 걱정을 가진 사람은 많은 의혹과 고통 으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도 안정 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정을 주지못 합니다. 그런 사람은 종종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지나쳐 버립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나,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웃에 대해서 참견하기 전에 당신 스스로 열심을 내어 노력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이웃에 대해서도 적합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또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속에 평화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인내 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크나큰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긴 사람이고, 세계를 정복한 주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친구요, 하늘 나라의 상속자 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 고린도전서 12장에 있는 말씀, 우리에게 하나되는 비결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2:26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안에 들어가야 그리스도적 정신이 깃들게 되고 또 그래야 자기도 평화스럽고 편협한 지엽주의의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도 평화를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버하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평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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