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온유한 자의 복 (마 05:5)

첨부 1


언어적 의미 해석

1. 중용(中庸) 현대 영어의 온유(meek)는 우유부단, 아첨, 비열, 무력하고 굴종적인 모습을 말한다.

하지만 헬라어 프라우스(praus)의 의미는 희랍 윤리사상을 나타내는 중요한 말이다.

아리스토 텔레스-모든 미덕은 양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인데 이 온유가 바로 이런 중용의 태도인 것이다. 즉 지나친 낭비자와 지나친 인색그 사이에 관대한 사람이 있고, 지나친 노여움(오르길로테스;orgilotes)과 지나친 태평무사(아오르게시아:aorgesia) 사이에 온유(프라오테스:praotes)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말씀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분노할 때에 분노하고 해서는 안될 때 분노치 않는 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요....

그러면 여기에서는 어떤 때가 분노할 때고 어떤 때가 분노하지 않을 때인가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는 데 그것은 나지신에게 욕된 것이나 피해가 온다면 그것은 화를 내어서는 안될 때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어떤 피해가 미칠 때에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즉 이기적인 분노는 언제나 죄이고 비 이기적인 분노는 도덕적 힘이다.

 2. 자제(自制) 이 헬라어 프라우스(praus)는 또다른 의미가 하나있는데 그것은 바로 길들 여진 동물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즉 잘 통제될 수 있는 동물을 말하는 단어인 것이다.

따라서 이 귀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자기 본능과 충동과 격정을 억제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완전히 자제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겸손 또 헬라어 프라우스(praus)는 홉셀로카르디아((hupselokardia) 즉 교만이라는 말과 대비하여 사용된다.

즉 헬라어 프라우스(praus)는 모든 교만이 사라진 참된 겸허를 말하는 것이다.

겸손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르 칠 수 없다.

겸손이 없이는 사랑도 없다.

자기의 무능력과 궁핍을 아는 자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헬라어 프라우스(praus)는 배움의 필요성과 용서받아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자각하는 겸손이다.

여기에서 본문을 이렇게 써볼 수 있다.

자신의 무지와 연약함을 아는 겸손을 가진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께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자는 바로 이 온유한 자라고 하셨다.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자제력을 가진 사람들이요 어떤 원칙아래서 자기의 격정과 본능, 충동들을 잘 저절하는 사람들 이었다.

모세:이사람 모세는 온뉴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그러나 그는 결코 우유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알렉산더:술에 만취되어 사랑한던 친구에게 창을 던져 즉게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