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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던지라! 도로 찾으리라 (전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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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는 이스라엘의 3대왕인 솔로몬의 인생과 신앙 고백론입니다. 그는 전도서를 통하여 인생이 무엇이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11:1, 2절에 보면,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했고,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일반적인 세상 상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적이고 통속적인 가치관은, “수단과 방법이 무슨 상관있느냐 무조건 긁어 모아라! 단 한푼도 내보내지 말아야 네 재산이 불어나고 주머니가 가득차게 될 것이다.”라는 식의 가치관이가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던지라! 나눠주라! 그리하면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절과 2절 말씀을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네 종자를 물기 있는 낮은 밭에다 뿌려라! 추수 때가 되면 도로 거두게 될 것이다. 가급적 많이 뿌려라! 그래야 많이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라고 말입니다.
아뭏튼 이 말씀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세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않은 말씀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그리스도인과 경제생활, 물질관과 재물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는 3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말씀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몇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식물은 곡식, 종자 혹은 물질을 의미합니다.
농사하는 사람들에게 종자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종자는 다음 해에 씨를 뿌릴 때까지 잘 보관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활이 어렵다 하더라도 종자로 밥을 해 먹어 버리면 안됩니다.
나아가서, 더 중요한 것은 종자를 아무데나 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종자는 꼭 필요한 때와 장소에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식물, 또는 종자 이야기는 먹는 것이나 농사짓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유와 인생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인 것입니다. 돈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축적과정이 불의하다든지 사용방법이 잘못된다면 그 돈은 화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 위에 던지라!”는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 낮은 곳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릴 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하여 던지는 법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씨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집니다. <낮은 곳이란> 나보다 지위나 지식이나 생활이 낮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나보다 높은 곳을 향해 돈을 뿌리고 관심을 뿌리는 것은 아첨이며 뇌물이 됩니다. 나와 비슷한 이웃들에게 베푸는 정성은 사랑이며 미덕입니다. 그러나 나만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행위는 사랑이며 동정이며 연민이며 구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높은 곳에 던졌다가 낭패를 본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어떤 당의 지역구 국회의원 공천을 따내기 위해서, 4년 동안이나 당대표를 위해 온갖 수발을 다 들어 주었다가 낙천된 모 인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돈과 정성으로 장사를 했더라면 한 몫 잡았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낮은 곳에 던져야 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낮은 곳에 식물을 던질 때에 한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얕잡아 보거나 깔본다든지, 생색내는 자세를 결코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위에도 얼마든지 나를 내려다 보면서 깔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적절한 곳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종자는 아무데나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물질이나 생명도 아무렇게나 뿌리고 관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화; 미국만큼 팁(Tip)이 생활화 된 곳은 없을 것입니다. 팁이란 봉사에 대한 작은 보상인 것입니다. 미국과 같은 경우에는 10% 내지 15%를 팁으로 별도 지불을 해야 합니다. 그 이상은 줄 필요도 없고, 더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팁 제도는 유별납니다. 얼마전 신문에 났던 기사를 보니, 강남에 있는 어떤 주점에서는 술 시중을 드는 여종업원에게 최하 100만원을 팁으로 지불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렇게 뿌리는 돈은 분명히 잘못 뿌리는 돈인 것입니다.

자! 그것은 주점가의 이야기라고 치고 우리네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나를 위해 뿌리고 다니는 돈을 비교해 본 일이 있습니까 흐지부지 낭비하며 먹고 마시는데 뿌린 액수와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사용한 돈을 비교해 본 일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캐나다와 미국이 가축과 애완 동물들에게 먹이는 먹이 값을 합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애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화생활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지나친 낭비와 사치, 허영과 과소비에 빠져 있습니다.
안됩니다! 결코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흐지부지 낭비하며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일에 뿌리는 돈과, 낮은데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미는 그 손을 겸손하게 비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 손과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값, 내 몸에 걸치기 위해 지불하는 의상비, 우리 몸속에 있는 위의 7부만 채워도 된다는 그 음식 값, 건강을 위해 지불하는 보약 값, 영양제 값, 운동비, 그리고 미용을 위해 지불하는 미용 관리비등, 우리들은 그런곳에 뿌리고 있는 돈과, 주님과 이웃을 위해 뿌리고 있는 돈을 비교해 보면서 생활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시아 소비시대가 온다!>라는 큰 제목을 단 어느 일간신문의 기사에 의하면, 앞으로의 세계 경제는 <아시아의 소비 붐 시대>가 리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기 2천년대가 되면 세계 인구가 62억이 될 것이고, 그 절반이 훨씬 넘는 35억의 아시아가 거대한 소비시장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0억 이상이 텔레비젼과 냉장고를 소유하게 될 것이며,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35억의 아시아인이 전 세계의 생산제품을 빨아 들이게 될 기세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 예측이 사실화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거센 소비문화의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새 상품을 사들이고 신제품으로 갈아 치우는데 정신이 팔려서, 뜻있고 좋은 일엔 눈돌릴 겨를이 전혀 없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삭막하고 무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 예상됩니다.

요즈음 들어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는 발길이 점차 뜸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경기침체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사실은 가치관과 사회 분위기가 전혀 엉뚱한 데로 쏠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는 말은 <적절한 곳에 던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을 값있게 써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모쪼록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은 내 것이라고 내 멋대로 뿌리거나 낭비하면, 마지막날 반드시 하나님께 문책을 당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1) <폭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하나나 둘만을 보지 말고 일곱이나 여덟을 보라는 것입니다. 나만 보지 말고 이웃을 보라는 것이며, 서울만 생각하지 말고, 한국을 생각하라는 것이며, 한국만 생각하지 말고 북한 동포를 생각하라는 것이며, 나아가서 세계를 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2) <골고루 나누라!>는 것입니다.
사랑도, 물질도, 정성도 골고루 넓게 나누어야 합니다. 일곱에게나 어덟에게 나눠주라는 구절을 주복해야 합니다. 일곱으로 국한하지 말고 일곱이라는 제한수를 넘어 여덟에게도 나누어 주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떤 주경학자는,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주라!>는 이 말씀을 곱셈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7 x 8 = 56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흔히 사랑은 국경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전세계 어느 곳이나 들어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 높이와 깊이, 그리고 그 넓이와 길이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3. <도로 찾게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찾게 될 날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남을 돕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까1)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사랑과 봉사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삶으로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는 것은 거짓말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친히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까지 자기를 희생하셨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 22:44절을 보면,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나는 물질을 버렸는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친히 메꿔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제아무리 귀한 보배나 값진 보석이라도 뜻있고 값지게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빈자리를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언제 주님이 옥에 갇히셨으며, 주리셨으며, 헐벗었으며, 목마르셨나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말입니다.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것은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반드시 도로 찾는다는 것이고, 오래 걸리지 않아 도로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면서 사는 생활이 복이 있음을 기억하고 힘 닫는대로 많이 던지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쓸데없이 던지거나, 쓸데없는 곳에 던지지는 맙시다! 바로 던져야 도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주경학자 베이커는, “삶의 수익과 보답은 하나님에 의해서 계산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우리의 행위를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상하신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은 만큼 거두게 되는 것이 농사의 기본 원리입니다. 정을 주면 정을 받게 되고, 덕을 베풀면 덕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 고통 당하며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사랑과 온정은 점점 식어가고 있으니 정말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기가 나쁜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여러분! 백화점에 가 보셨지요 그곳은 항상 초만원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은 종말현상인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사랑이 식어간다고 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뜨겁게 사랑합시다! 오그라질대로 오그라진 손을 <쫘악!>펴서 어려운 이웃들을 힘 닫는대로 힘껏 도우면서 살아 가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갈 때에, 신실하고 확실한 약속과 보장 가운데서, “던지라!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그 약속과 보장이 성취되는 놀랍고 풍성한 영육간의 축복을 넘치도록 허락하여 주실줄 확실히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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