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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을 이기는 길 (엡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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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을 했습니다. 영생은 모든 사람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는 성취가 불가능합니다.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전 인류의 운명입니다.

영생, 그것은 죽음과 관계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죽음이 없는 존재로부터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서 영생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만이 영생의 길입니다. 이 시간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공포를 떠나서 영원히 사는 길이 없을까 모든 사람의 고민입니다. 영원히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음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폭정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불안을 갖는 이유는 마음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명적인 병으로 생명이 떠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 죽음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죽음의 두려움을 떠나 그와는 관계없는 새로운 삶이 없을까’ 다 한번씩은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못한다면 그 사람은 너무 무딘 사람입니다.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덧없는 인생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아기가 되어 웃고 울고 떠들 때는 시간이 기어갔다.

내가 소년이 되어 꿈속에서 좋아할 때는 시간이 걸어갔다.

내가 성인이 되자 시간은 달음박질했다.

내가 이제 반백이 되자 시간은 날아가기 시작했다.」

살아갈수록 시간은 더욱 바르고 인생의 허무는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은 노년이 될수록 아쉬움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인생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생각 해보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원해서 했던 결혼도 어느 때는 후회하게 됩니다. 남모르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을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은 영원히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부잣집 개나 고양이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없이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개나 고양이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인생은 그만큼 비참하고 우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영생의 선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도록 하셨습니다. 영생은 노력해서,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주셔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주셔야만 내가 얻는 것입니다. 내가 달란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철학이나 자선사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선행을 하면 영생이 자동적으로 굴러들어 오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1.우리는 먼저 영생이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영생은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입니다.

모태에서 태어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원수 관계입니다. 대화가 안되고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죄 때문에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조건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해결되었다면 내가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셨고, 무덤에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의 담을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화목입니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화목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개선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창조자이십니다. 영원히 사는 분입니다. 그에게 연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나의 존재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한 영원히 사는 영생이란 불가능합니다.

2)영생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은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마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잠을 자도 동서남북을 가려서 자야 합니다. 팥죽을 쑤어 사방으로 집어 던져야 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 모두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든지 마귀의 지배를 받든지 해야 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마귀에게 완전히 지배받는 자의 고통을 아십니까 못도 마음대로 못박습니다. 이사도 아무 날에나 할 수 없습니다. 날짜, 궁합, 사주, 팔자 등에 얽매여 마귀의 지배 아래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마귀의 굴레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 이것이 영생이며 구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묶여 있는 모든 구속의 굴레를 초월합니다.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은 일부러 나쁘다는 날 이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죽음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불신자는 시커멓게 이를 갑니다. 마귀가 데려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의 노예입니다. 마귀의 노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믿으면 이 모든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해방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불교의 지배를 벗어나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것은 기독교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동남아 여러 나라를 보십시오. 왜 그렇게 가난과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요 잘못된 종교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구석구석에 절간일 것입니다. 새끼줄에, 돌멩이에 절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귀의 지배를 벗어나고 싶습니까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죽음의 지배를 벗어나고 싶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3)영생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정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운명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 그날 사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먼저 가든 나중에 가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가는 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상에 우리가 사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의 책임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죽음 이후에는 너무 좋은 곳이 있습니다. 그 나라에는 아픈 것도, 곡하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사와 같습니다. 이 땅에서는 남녀가 성의 차별 때문에 고통합니다만 그 곳에서는 전혀 그런 것이 없습니다. 2,000년 역사 가운데 여성의 인권을 이만큼 신장시킨 것은 기독교의 공로입니다. 그래도 이 땅에는 불평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남녀의 차별이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천사와 같습니다.

미국에 이민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면 4개월 전에 나옵니다. 비자를 받으면 이미 그 나라에 들어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의 비자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당신 영생 얻었소” 물으면 “예” 대답합니다. “당신 영생 얻을 것이오” 물으면 또 “예” 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비자 얻었습니다. 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뜻입니다. 이런 준비를 해 놓고 살아야 합니다.

 2.하나님이 영생을 주시기 위해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행 16:31)”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어떻게 시작됩니까1)믿음은 들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2)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 마음을 열어 주셔서 믿도록 하시는 분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을 때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다니 이상해요.” 말씀하시는 분을 본 일이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니라 날 믿도록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데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웃이 예수 믿으라고 강요합니다.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이웃을 통해서 노크하는 것입니다. 밤에 잠이 안 와서 뒤척일 때 낮에 그들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성령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아내는 약대를 졸업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자의 아버지는 대법원 판사였습니다. 주변에서 그를 많이 전도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이민가서 생활하는데 남편이 신장이 다 못쓰게 되는 병에 걸렸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신장이 못쓰게 되었을 때 투석을 하지 않으면 독이 빠지지 않아 얼굴이 검게 되고 붓게 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2-3회 인공신장기를 통해서 투약을 합니다. 피 전체가 인공신장기를 통하여 걸려져야 하는데 한 번 하는데 4시간이나 걸립니다. 비참합니다. 목사님이 매주 가셔서 성경공부를 시켰습니다. 이들 부부는 공부하라면 하고, 따라서 하라면 하고 시키는 대로는 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나를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원망만 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없이 살아온 삶을 반성하지는 않고 하나님에 대한 반항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부인의 신앙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결국 남편은 남동생이 신장을 기증해 주어 살기는 살았습니다. 부인은 외출했다가 피살당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구원하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경기 고등학교 나온 것이 하나님 나라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의사가 되어 돈 많이 번다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머리가 좋다는 것으로 예수님을 안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시려고 하는데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믿음은 머리로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3)믿음은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흔히 믿음을 사랑과 비교합니다.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려면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마음은 자신의 인격 전부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전부 그 분에게 드린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성경적인 지식을 이해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자기를 온통 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운전 면허증을 땄습니다.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 하는 운전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잘 하십니까”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했습니다. 주일이 되어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갈 때에 “차 없는 분들 제 차에 타십시오.” 했더니 아무도 타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칭찬했지만 불안해서 아무도 타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길이라면 가시밭길, 골고다 어디든 가겠습니다.” 말하며 내 마음 전부를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십 년을 다녀도 인격이 바뀌지 않습니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한다 말하며 돈 계산하고 앉았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도사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면 밤 12시에 나오라고 해도 나갑니다. 문을 잠그고 빗장을 질러 놓으면 담이라도 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내 마음을 바칠 분이 없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4)믿음은 고백에서부터 증거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롬 10:10)” 5)믿음은 돌아서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술집 주인이 빌리 그래함 목사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술집 간판에 써붙였습니다. “나는 어제 저녁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술집은 문을 닫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없으면 엉터리로 믿었든지, 믿음이 어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신앙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6)믿음은 순종함으로 성장합니다.

성도는 순종을 기뻐해야 합니다.

 3.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하나님 앞에 죄가 없다는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공을 세워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조건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조건은 단 한 가지입니다. 믿음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돈 없는 자도, 못 배운 자도, 병든 자도 믿음 하나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4.영생과 함께 주시기로 한 축복1)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하나님은 믿음만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조건으로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죄도 용서하십니다. 현재의 죄도 용서받습니다. 미래의 죄도 회개하여 용서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는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죄는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범죄해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것은 끝까지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끝까지 용서받을 수 있는 신분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때릴 수는 있지만 버림받지는 않습니다.

2)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3)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지키시므로 마귀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를 지키시지 않겠습니까 그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보모님의 사랑도 때로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한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만큼 겁이 없습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당황하지도 않습니다.

4)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믿음이 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게 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실을 고백하게 합니다. 성경이 사실임을 깨닫게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거절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예비하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오늘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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