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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찬양하여라 (느 12: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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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이교도 였으며 방탕한 삶을 살던 탕자 였으며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팔고 사던 노예 상이었으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변화되었다.그 후 그가 그토록 없애려고 하던 그 복음을 위하여 버킹검에서 16년을 올니교회에서 27년간을 사역했다”.이것은 존 뉴톤이라는 사람의 묘비에 쓰여진 묘비명입니다.그는 과거에 그곳에 쓰여진 그대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면 타락한 생활을 하며 살던 탕아였습니다.그러나 새 사람이 되어 이제는 그 은혜를 생각하며 사는 감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그가 작사한 찬송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405장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입니다.
그는 이 찬송의 4절에 이런 가사로 결론을 맺습니다.“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모든 물건을 만들 때에는 사용 목적이 있게 마련입니다.어떤 것이든 아무 이유 없이
만들지는 않습니다.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도 목적이 있었습니다.여러분은 그 목적이 뭐라고 생각되십니까.시43: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찬송을 하게 하려고 지으셨다는 것입니다.만약 T.V가 그 만든 목적대로 방송을 하지 못한다면 고물상에 가게 될 것입니다.냉장고가 그 목적대로 음식을 차게 하지 못한다면 아무쓸모없어 결국은 버리게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대로 찬양하는 입술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여러분은 어떻습니까.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고 있습니까.감사의 노래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난주까지 무너졌던 예루살렘성벽이 드디어 완성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원수들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52일만에 완성된 것입니다.

이 낙성식은 찬양의 대 축제였습니다.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축제의 광장인 것입니다.오늘은 이러한 찬양의 낙성식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27-29을 보십시다.
느혜미야는 성벽 중건의 낙성식을 찬양의 축제로 준비했습니다.방금 읽은 말씀대로 노래하는 자들과 악기를 다루는 자들을 예루살렘 사방 흩어진 동네에서 불러 모았습니다.느혜미야가 이렇게 찬양을 중심으로 낙성식을 거행하려는 데는 두 가지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첫째 ,느혜미야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22:3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님께서 마음에 합했다고 말씀하신 지도자는 다윗왕 한 사람뿐이었습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찬송의 사람이었습니다.하나님은 찬양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느혜미야는 이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이런 느혜미야의 모습을 에스라서에 있는 성전 봉헌식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에스라6:16-18에는 60여년간 파괴되었던 성전이 완성되어 봉헌하는 봉헌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성전은 20여년의 공사 끝에 완성된 성전입니다.그 중요성과 가치를 볼 때 52일 만에 완성된 성벽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입니다.성전이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와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믿고 있던 장소입니다.물론 찬양도 봉헌식에 있었겠지만 본문에는 느헤미야가 주축이 된 낙성식과 비교하여 볼 때 찬양에 대한 말씀이 한 군데도 있지 않습니다.찬양보다 희생의 제사를 중심으로 거행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 생활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데 있습니다.효자 효녀라는 것이 결국은 부모의 마음을 알아 그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입니다.부모는 자식과 함께 있고 싶은데 양로원에 보내 놓고 어쪄다 한번씩 찾아간다면 효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서로 서로 싸운다면 역시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부모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합니다.여러분은 어떤 면에 관심이 있습니까.과연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기뻐하실까 내가 어떻게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전에 한번은 은혜 받고 믿음 생활한지 얼마안되는 분이 찾아 온 적이 있습니다.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저는 시장에서 조그만 신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들겠습니까.헌금을 한다면 얼마 정도를 해야 됩니까”.저는 그 분에게 우선 신발을 사러 온 사람에게 신발과 함께 전도지를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그는 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택하려 했던 사람입니다.그래서 어디로 이사를 가든지 제일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장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반면에 이스라엘의 많은 왕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율법을 팽개치고 원치 않는 우상 숭배를 함으로 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각자가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어떤 사람에게는 예배 참석하는 것일 수도 있고,인격의 변화 일수도 있고,형제를 사랑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은 내것이니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내 욕심이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느혜미야 같이 내가 어떻게 해야,어떤 것을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라는 관심과 생각을 갖고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축복의 길인 것입니다.
둘째,찬양의 회복이 진정한 영성의 회복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레위인들의 임무를 아실 것입니다.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찬양으로 봉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데 그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이 마을 저 마을 흩어져서 생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성전에서 찬양의 소리가 멈추었습니다.더 이상 시편의 아름다운 찬양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아주 형식적인 찬양만 겨우 있을 뿐입니다.
열 왕기서의 역사를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가장 아름다웠을 때는 다윗의 시대입니다.그 때는 날마다 성전에서 성가대의 우렁찬 연습 소리가 예루살렘을 메웠었습니다.백성들은 저마다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이러한 찬양의 역사가 점점 사라진지가 500년이 넘었던 것입니다.다윗을 중심으로 한 찬양의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금방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먼저 삼하6:5에서 벱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다윗이 행했던 찬양의 모습을 보십시다.다음으로 대상23:5 이하를 보십시다.찬양하는 레위인들이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4,000입니다.25:1이하에 보면 그 중에서 악기를 다루는 자와 노래에 아주 익숙한 자의 수가 288인 이라고 했습니다.어마어마한 찬양대의 규모입니다.이들은 백성들이 내는 헌물로 생활하였으며 온 종일 성전에서 찬양을 준비하며 봉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의 물결이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 시대로 들어가면서 점점 약해지기 시작합니다.왕상 8:3-5절에 보면 다윗과 똑같이 법궤를 옮기는 장면이 있습니다.그러나 어디에도 찬양의 흔적은 없습니다.62-64절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광경이 있습니다.솔로몬이 성전울 완성하고 낙성식을 하는 거대한 장면입니다.그러나 이 곳에도 찬양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왕하23에는 이스라엘에서 다윗왕 다음으로 성군이라고 부르는 요시야 왕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의 내용이 있습니다.모든 우상을 멸하고 율법을 부활시켰던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찬양의 회복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너무 타락해 있었기에 찬양의 회복에 손댈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의 신앙은 점점 쇠하여져 갔고 레위인들은 점점 성전을 떠나 농사를 짓거나 일을 했던 것입니다.급기야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 생활의 비극에 이르렀던 것입니다.영적인 타락과 함께 찬양이 사라졌던 것입니다.그러나 세월이 이제 오늘 비로소 500년전에 흐르기 시작했던 찬양의 역사가 회복의 때를 만난 것입니다.각처에서 레위 자손들이 악기를 들고 성전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참으로 감격스런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찬양과 영성의 비례합니다.여러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은 찬양의 고백입니다.기쁨이 없이는 ,감사함이 없이는 찬양할 수 없습니다.찬양하는 순간은 우리의 영혼이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입니다.여러분은 자신의 신앙 상태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습니까.아주 간단히 측정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찬양입니다.즉 내가 얼마나 찬양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은혜 받았을 때는 흥얼흥얼 찬양이 입에서 절로 나지 않았습니까.그러나 믿음이 식었을 때는 찬양 대신 불평과 불만이 쌓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아니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만났는데 어떻게 찬양이 나온단 말입니까”.“목사님도 저와 같은 상황을 당한다면 그런 말씀을 못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그래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어떤 찬송을 해야 합니까.434을 불러 보십시요.“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결국은 형통케 하심을 믿습니다.이것이 외양간에 창고에 곡식이 없어도 하나님을 노래하는 하박국선지자의 믿음이었습니다.죽도록 매를 맞고도 감옥에 갇혀 찬송했던 바울과 실라의 믿음이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한 시인의 시인 71:6-8에서 이렇게 찬양의 이유를 말합니다.“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그는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까.13,20,24절을 보면 그의 현실이 결코 순탄치가 않습니다.그럼에도 그는 8과23-24절의 고백대로 기쁨으로 종일토록 주를 찬송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 땅에 나게 하신 그 은혜 하나만을 가지고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만날 때는 누구나 찬양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보다 더 성숙한 신앙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찬송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까.도저히 찬송하기 힘든 상황입니까.찬송의 이유를 혜아리지 마십시요.먼저 찬송을 불러 보십시요 그러면 찬양의 이유가 생길 것입니다. 주님께서 찬송의 이유를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저도 답답할 때는 피아노 앞에서 찬송을 하고 나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옵니다.우리는 집에서 얼마든지 부를 수 있습니다.음정 박자 틀리면 어떻습니까.정 모르면 그냔 아무 곡조나 대충 만들어서 부르십시요.

찬양은 음악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고백입니다.직장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찬송을 부르십시요.기쁨이 밀물처럼 밀려 올 것입니다.
평안이 찾아 올것입니다.여러분을 보는 사람마다 찬양의 입술에서 피어나는 향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것입니다. 얼마전 대만에서 우리 나라 찬양과 경배 팀이 주최한 찬양 집회의 실황을 녹화한 비디오 테입을 본 일이 있습니다.비가 억수같이 쏟아 졌습니다.그래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찬양을 불렀습니다.빗소리가 악기가 되었습니다.그들의 찬양 소리가 잠자는 대만의 영성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찬송의 입술을 더욱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0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백성들이 정결케 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출19:10에 있는 의식으로 옷을 빨고 몸을 깨끗이하는 의식입니다.느혜미야가 이 의식을 행하게 한 것은 사방에서 일을 하다 온 레위인들에게 외적인 형식보다는 내적인 거룩성을 깨닫게 하며 낙성식에서 찬양하는 레위인과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자세를 갖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릴 때에도 역시 몇 가지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먼저는 거룩성을 가져야 합니다.세상 음악과 찬송이 다른 차이가 어디 있습니까.세상의 유행가나 가요는 모두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그 가사가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작곡성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그러나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내가 좋아서 즐기려고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우리가 찬송할 때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은 입술로만 찬송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여러분 찬송을 부르면서 가사를 잘 눈여겨 보면서 그 뜻을 혜아려 보십시요.얼마나 깊은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아무 뜻도 없이 부르는 대로 그냥 따라만 부른다면 결국 입술에만 그치는 진실성이 없는 찬송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찬양을 하되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금번 추석에 집에 가서 저희 집 아이들과 조카들을 모아 놓고 노래자랑을 시켰습니다.어떤 녀석은 쑥스러운데 자꾸 시키니까 마지못해 얼떨떨한 인상으로 서 있기만 했습니다.그래서 너는 그냥 그만두고 다음 가수 나오라고 했습니다.여러분 누가 만약 여러분 앞에서 인상를 찡그리고 마지못해 노래한다면 얼마나 부담스럽습니까.그것은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비록 내 마음이 무거울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기쁨으로 노래해야 합니다.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한 찬양의 이유인 것입니다.시100:2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결론적으로 이제 이 찬양의 낙성식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43에 보니 하나님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이 즐거워했고 그 소리가 멀리 성밖에까지 들렸다고 했습니다.여러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찬양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산에 사는 한 크리스챤 실업인의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자신이 과거에 사업이 부도난 적이 있었답니다.집도 자가용도 다 빼앗기고 가전제품에까지 딱지가 붙어서 빈 털털이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답니다.단칸방 월세로 아이들과 함께 이사를 하고보니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한 동안을 방황하다가 빌딩을 짓는 막 노동판에 일을 시작했습니다.하루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오는데 찬송소리가 나서 판자집 창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어머니는 병들어 누워있고 중학생 쯤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되시니”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되시니” 그는 그 찬송에 은혜를 받았습니다.“나는 비록 재산은 없어도 건강이 있잖은가 저들은 저런 환경에서도 찬송한는데 그동안 나는 주님 앞에서 불평만하고 너무 부끄러웠구나”.그 후로 그분은 다시 힘을 얻어 재기했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에게만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우리가 찬양할 때 다윗이 찬양할 때 사울에게 붙었던 악신이 떠나가는 것 같이 악한 사탄의 권세가 물러가는 것입니다.이사야 61:3에는 찬송의 옷을 입음으로 근심이 물러간다고 했습니다.시105:2-3에는 찬양할 때 우리에게도 기쁨과 힘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저는 시편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런 아름다운 고백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66:4에는 “온 땅이여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라”.68:32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103:1“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148:3-4에는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지어다”.시인은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었든지 땅과 온 모든 열방들,해 달 별과 우주, 심지어 내속에 있는 몸의 장기들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찬양의 이유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그 증거로 독생자이신 에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죄인을 삼아 죽게 하셨습니다.주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원한 멸망 가운데 있어아 합니다.하나님은 지금도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대로 찬양하는 입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었던 느혜미야의 마음이 여러분과 저의 마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어떤 찬송이든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불러보십시요.갈피를 잡기 힘들고 고통스런 상황을 만나십니까.이제 내 방법들을 잠시 미루고 조용히 찬송을 펴십시요.하나님께서 그 작은 소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성령께서 새 능력과 믿음으로 채우실 것입니다.내가 알지못하던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이제 끝으로 시104:33의 시인의 고백을 소개합니다.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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