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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신앙여정 (창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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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은 성경에 말씀하신 약속을 근거한 믿음으로 바라는 소망이 성취되고, 실패의 길과 성공의 길을 알아 현실에서 믿음으로 살므로 실패의 길을 걷지 않고, 성공의 길을 걷게 됩니다. 믿음의 선진중 믿음의 조상 아브람을 통하여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를 깨달아 우리의 믿음이 자라가고 성장해 가는 구원 도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계약을 선포하시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호입니다. 하나님은 신구약 성경에 선포하신 계약은 호리도 가감이 없이 계약하신 대로 성실하게 이행하시는 분입니다. 이대로 믿고 바라고 의지하여 사는 사람에겐 상급을 계약을 믿지 않고 어겨 사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보응이 반드시 있습니다.
믿음은 귀로 듣는 것으로 믿고 머리로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믿고 입으로 말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요구와 지시대로 하나님 명령에 마음의 인정하고 확신하여 소망하므로 몸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통해 현실에서 어떻게 순종해서 행해야 하는 도리를 깨닫는 데에 중점을 두어 증거코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계약의 상대자로 아브람을 상대하셔서 말씀하시기를,『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떠나라’는 요구와 ‘가라’는 지시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만 한다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상대하여 계약하시기를 명령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믿음으로 살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 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신상

창 11:26-25:1에는 아브라함의 출생으로부터 죽어 장사되기까지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의 믿기 전의 이름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계통에서 태어났습니다. 창세기 5장에 가인의 계통이 아니고, 아벨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셋의 5대손 에녹의 후손이요, 창11:10 에녹의 3대손 노아의 후손이요, 창11:27 노아의 아들인 셈의 9대손 데라의 장남입니다.
믿음의 계통에 태어난 아브람은 동생 나홀과 하란 3형제였고, 동생 하란은 조카 롯을 낳고 아버지 데라 보다 먼저 갈데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람은 부모 없는 조카 롯을 데려다 길러 한 집에서 아버지 데라, 아내 사라, 동생 나홀의 부부와 함께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아브람의 가정의 종교는 여호수아 24:2에 의하면 “아버지 데라는 다른 신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파는 특별히 미신을 섬기는 불신의 가정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창17:4)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기를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다는 약속으로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지어 주셔서 부르게 하셨고, (롬4:16) 창세 이후, 이 땅에 와서 살다간 사람들 중 신앙적으로 존경하고 자랑하고 흠모할 선진들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심은 아브라함을 특별하게 별난 부류의 믿음의 본보기로 보통 사람들이 다다를 수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알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 성도들이 믿음 생활하는 데에 있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을 시범적으로 보여주는 데 쓰신 선별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의 전모를 계시해 주신 아브라함의 전 생애의 시범을 통해 보게 됩니다. 믿음의 후손된 우리들은 아브라함이 그의 생활 환경에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통해 산 삶의 시범을 보면서 관계하신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종자와 질과 요소를 표준 삼아 살면 우리의 신앙 걸음이 편벽 되거나 치우치거나 모순됨이 없이 전체 면으로 가장 원만하고 성숙하게 신앙이 구비되게 성장해 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전 생애를 통한 교훈을 통해 신앙 인격이 아브라함의 신앙 인격을 닮고, 신앙 걸음이 치우침이 없이 원만하고 성숙해지도록 자라 가야 하겠습니다.

 순종의 단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갈3:29에 아브라함이 걸어간 신앙 걸음중 축복 받는 성공의 길과 화를 당한 실패의 길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셔서 실패를 방지하고, 화를 피해 성공의 길을 걸어 축복을 받아 약속하신 대로 유업을 이을 자를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생들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단계 단계를 통하여 그 지식이 점점 자라가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신앙도 하급 신앙에서 중급 신앙으로 중급 신앙에서 고급 신앙으로 믿음이 성장함에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가 달랐고, 1차 음성과 명문된 성경 말씀 순종에서 2차 양심 주관 순종으로, 2차 순종에서 3차 주객 일치 순종으로, 3차 순종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하는 4차 순종으로 단계적으로 순종 생활이 성장하여 자라 갔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복음을 전도 받아 교회 출석으로 시작하여 말씀 듣고 은혜를 받아 물질 바치는 헌물의 신앙 몸 바치는 헌신의 신앙 생애를 바치는 순생의 신앙 생명을 바치는 순교의 신앙으로 성장하고 자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아브라함의 믿음 생활은 전진과 후퇴, 향상과 퇴보에서 형식 순종에서 인격 순종으로, 주관 순종에서 주객일치의 순종으로, 주객일치의 순종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하는 순종으로 자라게 하여 모든 관계면, 활동면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하고 구비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자체와 행위의 사람으로 길러 가시기 위함 입니다.
우리는 어느 것 하나라도 무시하거나 빼 버리거나 초절적으로는 올바른 신앙 걸음을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해서나 윤리와 도덕적인 인간관계 면에서나 국가의 의무와 책임 면에서나 어디를 보아도 모든 관계 면이나 활동 면에서 신앙생활이 바로 되고 구비되어 자라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람에게 시기적으로 사건적으로 장소적으로 닥쳐왔던 그 현실이 오늘날 꼭 그와 같은 순서적으로는 닥쳐오지는 아니하나, 그러한 종별적 사건과 순종 생활이 닥쳐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대상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고 말씀대로 살므로 믿음이 자랍니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이라”로 했고, 롬10:14하반절에서는 “들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사도 바울은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음에서 믿음이 나고,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가 전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로 시작됩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친히 말씀하신 계약의 말씀을 믿고 자기의 전부를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지시하시는 명령에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요구와 지시를 명령할 때 “나와 너”라는 대명사를 썼습니다. “나와 너”라는 관계는 일반적이고 보통 관계가 아닌 긴밀한 관계요, 순간적인 관계가 아닌 지속적으로 점점 심화되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신의 가정에서 아브람을 불러 하나님을 믿게 하신 후의 관계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요, 한 번 맺어 한 번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점점 새로워지고, 심화되는 관계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결혼때 혼인 서약은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통해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갈고 닦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23편 1절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란 천인 만인이 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떠나도, 나 혼자만 순종하면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시는 관계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명령은 ‘떠나라’는 요구와 ‘가라’는 지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것이요’, 지시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요구는 불신 가정에서 부름 받아 처음 믿는 아브람의 입장, 형편, 처지, 사정은 하나도 하나님이 생각해 주시지 않는 것 같은 순종하기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믿음 생활은 순종하기가 쉽고 어려운 것과 상관없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요구와 지시에 따라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본토’란 태어나서 자라고 배우고 선조 대대로 살아온 활동의 근거지인 고향입니다. 여기 본토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활동의 근거지인 지역인 세상 소망, 위주,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친척’이란 어려울 때 도와주고, 의논하고, 충고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협력하는 동류적, 혈연적 집단인 소속을 말합니다.
‘아비의 집’이란 비바람을 막아주고 더위와 추위를 가려주고 편히 쉬도록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집으로 물질적 정신적 의지하고 의탁하던 보호를 말합니다.

‘떠나라’는 요구는 ‘완전 분리’, ‘옮기는 것’, ‘나눠지는 것’,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심은 지금까지 안 믿을 때 안 믿는 방법으로 관계 맺어 왔던 유대 관계는 완전히 끊고 옮기고 나눠져서 달라지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은 이후부터는 안 믿을 때와는 생활 방식,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안 믿을 때 것은 완전히 끊고 옮겨서 나눠져야 합니다. 아브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것처럼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적 의탁하고 소망하면서,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만 하루하루의 삶을 살고, 떠남은 완전 분리를 의미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 위주 중심에서 하늘나라 위주 중심으로 옮기는 것이 본토 떠나는 일이요, 악령에게 소속된 데서 성령으로 소속을 옮기는 것이 친척을 떠나는 일이요, 물질의 도움과 보호 없으면 안된다는 데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옮기는 것이 아비의 집을 떠나는 일입니다.
 지시할 땅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땅의 위치도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고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시하실 때 ‘지시할 땅’이라고 위치를 표시하심은 매일 매일 한 걸음씩 친히 인도해 주신다는 것과 인도하실 때 지시할 것을 기도로 찾고, 찾은 하나님의 인도에 기뻐하고 만족하면서 감사하므로 인도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가야 될 길 목적지를 향해 그때 그때 필요하신 대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그때 그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오늘날 내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생사화복, 흥망성쇠, 존비귀천, 행복과 불행이 달린 줄 알고 삼가 들어야 합니다.(신 28:1)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4) 말씀하셨습니다.

 명령을 듣는 태도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친히 하시는 말씀임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면하듯이 요구하시고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듣고 느끼고 깨달아 순종했습니다. 히11:8에서는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이 여러 모양 여러 형태로 친히 찾아오셔서 음성으로 말씀하셨지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오늘도 특별 섭리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아주 드뭅니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신구약 성경과 성령의 감화 감동을 통하여 하나님 음성을 들려주시고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직접 듣는 사람만 하나님이 더 사랑하고 더 귀하게 중하게 여기시느냐 아닙니다. 마10:22에는 선지자 노릇 주의 이름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활의 대속의 피 공로로 구원 얻은 것은 믿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고 이 사랑보다 하나님께 더 귀하고 중한 사랑이 없습니다.
마13:3의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복음이요, 뿌리는 사람은 주님이십니다.
계3:3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지키어 회개하라” 성경을 읽든지 설교를 들을 때 그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증거 하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들어야 하고 그때 알아지고 깨달아짐은 하나님이 직접 알려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각오와 결심케 하신 것을 하나님께 직접 받았다는 것을 알고 지켜 행하고 지켜 행치 못한 것은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명령 순종의 자세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실 때, 아브람은 하나님 명령을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고 하셨습니다.(히11:8)
‘갈 바’란 갈 곳, 갈 방향을 몰랐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시할 땅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되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간 도적이 발각되어 생각할 틈도 없이 도망가듯이 이해, 득실, 좋고 나쁜 것 따져 보지 않고 거절, 반항, 원망, 불평할 겨를도 없이 기쁜 맘, 원하는 맘으로 명령에 순종하여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입장이나 여건이나 환경이나 조건 등을 내세우지 말고 자기 생각, 계획, 뜻, 욕심, 소망, 주관 등을 주장하지 말고, 자기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겨 의탁하고, 시작부터 도착까지 하나님이 늘 인도해 주심을 믿고, 자기의 삶을 통해 하나님 지시하는 인도하는 그대로 따라서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람이 떠날 때 두고 간 것,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은 주님 명령 순종에 대립되는 것으로 구원이 안되기 때문에 두고 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천금 만금이 생겨도, 아무리 좋은 자리가 생겨도, 하나님 명령 어겨 가면서 가서는 안되고, 두고 가야 합니다. 데리고 간 것은 하나님 명령 순종에 거리낌이 없으면 귀한 선물로 알고 귀중히 여기고 이용하고 데려가야 합니다.

 1단계 순종

창11:31 아브람 일행이 본토 갈대아 우르 지방을 70세에 떠나 가나안 땅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일단 하란까지 와서는 5년 동안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다가 아브람 75세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옮겼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고 지시하시는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 생활은 세상 이런 저런 것에게 붙들리거나 얽매이는 데가 없어야 합니다. 한계를 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눅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눅18:25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니라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만 할 수 있느니라”
눅9:57-62 먼저 가서 부친 장사, 가족 작별을 허락지 않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먼저 앞세워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 따라 가는 일이나 말씀 순종하는 데에 거리끼거나 방해되거나 누가 되면 두고 떠나면(포기) 안될 것 없습니다. 믿음은 못할 것 없고 못 갈 데 없는 것입니다. 얽매이는 데가 있으면 안됩니다.

 순종의 방법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으로 요구하시고 지시하여 명령하실 때 몸으로 행동으로 형식적으로 순종을 할 때 형식 순종을 통하여 인격 순종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믿음이 성장하여 자라 갔습니다.

믿음의 후손된 우리 성도들은 먼저 영이 중생 되었기 때문에 아브람과는 달리 성령의 인도에 중생된 영이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중생된 영이 양심을 지배를 하고, 양심은 중생된 영에게 다스림을 받고, 중생된 영에게 다스림 받는 양심은 마음을 지배하고, 양심에게 다스림을 받는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마음의 다스림을 받는 몸은 사물을 지배하므로, 인격 순종이 몸의 순종 형식 순종으로 성장하여 자라게 됩니다.

 명령 순종에 대한 약속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하시고 명령대로 순종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창12:2상반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심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창1:27-28)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은 혈육적 신앙적 자손을 많게 크게 해 주시고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잘 감당하게 해주시는 복입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창12:2중반절)
아브라함의 하는 일이 만사 형통해서 번창하고 크게 되게 해주시겠다는 복입니다.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2하반절)
샘의 근원에서 나오는 물은 근원만 막지 아니하면 물이 솟아나서 우물을 채우고 흘러 넘쳐 만물을 새롭게 시원케 힘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개인 개인에게 베푸십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언제든지 복을 끼치고 복을 나누어주어 복되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12:3상반절)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겠다는 복입니다.
너를 위하고 염려하는 자는 복을 주어 잘 되게 해 주시고, 너를 저주하여 해치는 자는 저주를 당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축복’은 남에게 복을 빌므로 나도 복 받고, 해당이 안되면 빈 복이 돌아와서 배로 복 받고, ‘저주’는 남에게 저주 빌므로 나도 저주받고, 해당이 안되면 빈 저주가 돌아와서 배로 저주를 받고 당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하반절)
아브람 때문에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복입니다. 이 말씀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아브람의 생애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 구원 도리를 깨달아, 영육간에 복을 받게 된 사실을 볼 때에 시대를 초월하고,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절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명령은 축복을 싼 보자기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한 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복 주실 때 복 덩어리를 직접 주시지 아니하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계약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해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어서 득이 되는 복을 주시기 위하여 싼 보자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 당시나 오늘이나 똑 같은 방편으로 복을 베푸십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신구약 성경의 보자기 속에 해되는 저주를 방지하고, 하나님의 축복 알맹이를 싸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만이 받도록 하십니다. 막10:30에서는 “금생에 100배로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신28:1-14 오늘날 내게 대한 명령의 보자기 속에는 모든 복이 들어 있고 해치는 대적을 방비함이 들어 있고, 때를 따라 비 주시듯 손으로 하는 일에 복 주심이 들어 있고, 창고가 넘치는 복, 꾸어 주고 꾸지 아니하는 복, 머리되고 꼬리 되지 아니하는 복,위에 있고 아래에 있지 아니하는 복이 알맹이로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명령이라는 보자기 속에 싸서 주심은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명철하고 예민하고 수단 방법이 능하고 능력 있는 외식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약하고 무능하고 무지한 진실된 성도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노아 시대도 네피림, 용사, 고대의 유명한 사람들은 방주 예비하라는 껍데기만 보고 하나님 명령을 무시하여 홍수 직전까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나님 명령 순종치를 않기를 홍수 멸망 직전까지 하다가 멸망을 당한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계약의 말씀을 통해 주심은 알고 깨달아 지식과 실력을 갖추게 하시고, 실력이 갖추어지면 발휘할 수 있는 입장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입장 환경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복을 베푸신 사람된 것만큼 감당할 수 있는 모든 복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로 ‘떠나라’는 요구와 ‘가라’는 지시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보이는 세상 축복과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 축복을 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신앙단계 중, 순종하는 첫 단계의 걸음은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말씀에 순종한 것처럼, 오늘날 명문된 성경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아브람의 첫단계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베푸신 복은 어떤 것입니까
은금과 육축이 풍부한, 보이는 세상 복과(창1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말씀대로 아브람은 불신 신앙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범죄 직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출하여 성결 생활을 하도록 하시는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 복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영적 축복은 시험이 없으나, 보이는 축복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중하게 여기고 애착하느냐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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