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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작은 성 소알 (창 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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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의 주인공은 롯이며 그무대는 소돔 땅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생애와 별로 상관이 없는 사건으로 보고 넘어 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 기록된 사건들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와 직결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가정교육에 대한 지시와도 연결되는 깊은 교훈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1절>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장막문에 앉았다가 나그네들을 맞게 된 것과 대조적입니다. 아브라함은 고작 자기 장막 문 앞에 나와 있었지만 롯은 성문에 좌정해 있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애굽에서 나온 후부터 소돔 땅이 있는 요단의푸른 들에 마음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는 족장인 아브라함 밑에 예속되어 있는 한 자신의 명예나 경제적 이득에 별 도움이 못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기회가 오자 즉시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 요단 평지로 갔었고 그 다음 평지의 성읍들을 옮겨 다녔습니다. 도시 맛을 보기 시작한 롯은 급기야는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소돔성의 극심한 죄악들을 알면서도 소돔 땅이 제공하는 출세와 영달의 기회를 잡기 위해 소돔성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였습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약삭빠른 계획이 적중했다고 믿고 사악한 도시에서 효과적인 주의 증인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가 천사들을 대접하고 보호하려고 한 적극적인 호의에서 우리는 그가 의로운 자로서 의 체면유지를 위해 노력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롯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첫째,롯은 타협적인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소돔 사람들에게 자기의 처녀 딸들을 대신 욕보이도록 내어주겠다고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는 한 가지 악을 막기 위해 또 하나의 다른 악을 서슴치 않고 행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롯은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인으로서의 신분을 지니고서 속인의 생활 자세를 따른 자였습니다. 그러나 롯의 타협주의는 욕정에 사로잡힌 소돔의 남색가 들에게는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소돔인들은 롯을 보고 이 놈이 들어 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9절>라고 멸시하였습니다. 롯은 비록 성문에 앉아 있는 지도급의 인물이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진리를 굽히고 타협하는 인물은 상대방의 호감을 살지는 몰라도 결코 존경을 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롯은 타협으로 소돔땅의 죄악들을 적당히 무마시키고는 넘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식의 양보는 바라지 않습니다.

 둘째,롯은 자기 잇속에는 빠르고 하나님의 명령에는 더딘 자였습니다.

롯이 소돔 땅으로 옮기게 된 주된 동기는 재물을 늘릴 수 있는 호조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건한 생활로 소돔의 악한 시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 된다는 자기 합리화를 내세웠을 것입니다. 그는 일석이조 를 노린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과연 롯은 부자도 되고 신분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소돔인들의 다음과 같은 행위들에 비추어 볼때 전혀 없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선 소돔의 밤거리는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무법지대였습니다. 그래서 두 천사들이 거리에서 경야 한다고 하자 롯은 간청하여 집안으로 모셨습니다. 소돔인들은 아이고 어른이고 악행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론노소 하고 롯의 집을 에워쌓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돔인들은 또성도덕이 극도로 문란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는 말은 성관계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입니다 천사들은 소돔인들의 눈을 어둡게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육욕의 충족을 위해 보이지 않는 대문을 미친듯이 서로 다투어 찾아 헤메었습니다. 이는 그칠줄 모르는 소돔인들의 정욕과 타락된 성도덕을 적시해 줍니다. 남색가 즉 동성연애자들을 영어로 Sodomite 라고 부르는 것도 이같은 소돔인들의 부패한 성행위에서 연유된 말입니다.

소돔인들은 또 법보다는 주먹을 앞세우는 폭력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소돔인들에게 롯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에스겔선지자는 소돔의진상을 이렇게 폭로하였습니다.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하였느니라<갤16:49-50절>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13절> 롯은 소돔 성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멸망 의도와 피신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꾸물거리며 지체하였습니다. 롯은 전에도 적군에게 사로잡혀 목숨과 재산을 잃을 뻔했지만 소돔 땅을 떠나지 않고 그냥 눌러앉아 살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한 자였으므로 그들을 방치하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의인의 심령에서 우러난 악인에 대한 연민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보다 우선시킬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후일 자기 제자들에게 복음을 끝내 듣지 않는 자들로터는 떠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마10:14>

세째,롯은 마지막 한 가지를 포기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롯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돔과 그 속에있는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내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고 반대하였습니다. 이처럼 화급한 때에 하나님께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롯이 평소에 얼마나 불신적이고 이기적인 생활을 해왔는지를 노출시켜 줍니다.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소돔성을 안 따나려고 머뭇거리는 롯을 억지로 잡아 끌다시피 하여 구해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소돔 땅의 초장을 선택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옛 그 버릇대로 자기 판단에 따라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라고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입으로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문제는 구원하시오나 에 들어있는 그러나 라는 단서입니다.

하나님이 그처럼 큰 은혜로 그를 멸망의 소돔 땅에서 이끌어 내어주셨다면 그 다음에 가라는 곳은 어디에고 갔어야 마땅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롯은 하나님의 은혜 뒤에 그러나 라는 자기 이견의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은혜 뒤에 순종이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롯은 하나님께 소돔처럼 평야에 있는 소알로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을 위해서 소돔의 구원을 기도했지만 롯은 자신을 위해서 소돔이 아닌 소알성을 안전케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소알은 작다는 뜻입니다.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20절> 롯은 이 나의 작은성을 포기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롯이 처음에 산마루에서 요단 들을 바라보았을 때 제일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곳이 소알이었읍니다.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소알은 그의 안목의 정욕이 바라본 마지막 초장이었습니다. 롯은 소돔을 떠났을 때 자신의 꿈과 지금까지의 노고가 일시에 붕괴되는 듯한 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직도 소알이 남아 있었습니다. 소돔이 없으면 소알이라도 차지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소알은 롯의 야심과 이욕의 보루였습니다. 소알은 빼앗길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소돔은 무너지더라도 소알이 남아 있는 한 소돔 땅의 실망과 손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소알은 롯의 안위자며 최후의 희망이었습니다.

롯은 이 나의 작은 성 을 놓고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20절> 라고 하나님께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소알은 소돔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롯이 매일 보고 만지던 소돔의 애완품들이 떠오르는 그의 작은 성이었습니다. 인간은 익숙하던 일을 못하고 못보면 아쉬워하기 마련입니다. 롯은 소돔의 모습이 비취지 않는 곳에서는 살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가 소알을 원한 것은 결국 소돔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이나 진배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롯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스속에는 노 가 감추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속의 왕을 원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 자신의 왕권에 대한 부정인데도 백성들의 고집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부패한 왕정시대의 암흑기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지체하는 롯을 소돔땅에서 끌어내다시피 하셨지만 롯이 지시한 산으로 가지 않고 소알을 원했을 때 구태여 막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뜻을 강제로 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 한 가운데에 머물러 있기를 배워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아무리 대의명분이 서고 자기 합리화가 되며 설사 하나님이 허락하셨을지라도 궁극적인 만족이 없습니다. 롯은 결국 소알도 두려워서 있지 못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하게 일러주는 명령은 구실을 붙이지 말고 처음부터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우리들도 롯처럼 소돔 땅을 나와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우리는 대개 소돔을 나와서 가라고 지시한 산을 향해 곧장 나아가지 않습니다. 조금 가다가 자꾸만 소돔 땅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돔은 불타버렸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소돔의 변방인 소알에서나마 살고 싶어합니다. 소돔이 있던 곳과 멀리 떨어져서는 못살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분상으로 보면 세속 땅을 등진 거듭난 성도 들입니다. 그러나 행위로 보면 아직도 소돔의 축소판 무대에서 남몰래 소돔놀이 연극을 공연하면서 삽니다. 소알은 소돔의 연장이며 대리점입니다. 이 나의 작은 성 안에는 나의 큰 성 소돔의 물품들이 고스란히 다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알에서 살면 소돔 맛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작은 성이니까 큰 성에 비하면 금욕생활을 하는 편이라고 자부하며 또 남들을 그런 것처럼 속일 수 있습니다. 소알은 편리한 곳입니다. 소알만 있으면 소돔의 손실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알은 소돔이라는 옛 사람의 자식입니다.

소알은 점점 자라 그 아비 의 모습으로 완연히 정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나의 작은 성 은 내가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옛 사람의 행실들입니다. 내가 소알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이 나의 작은 성은 불원간 소돔의 원형으로 확대되고 환원될 것 입니다.

소알은 내가 그 것 만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고 그 것 한 가지 만은 결코 버릴 수 없다는 옛사람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 것은 예수를 믿고 살되 내가 꼭 한 가지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감추어진 육욕의 옛 연인입니다. 롯은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풀이하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소돔을 나온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소돔을 아예 잊고는 못살겠습니다. 저에게는 지금의 이 한 가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 것 하나만은 포기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잘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감아 주십시오 그리 큰부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의 소알은 작은 성에 불과합니다. 저는 소돔의 귀한 자식들을 다 잃어버리고 이제 이 작은 내 육욕의 마지막 자식 하나가 남았습니다. 제발 소알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나머지 신앙생활에 지장이 없겠습니다.

당신의 소알은 어떤 것들입니까 지금 남몰래 맺고 있는 떳떳지 못한 이성관계입니까 지금 부정한 방법으로 벌고 있는 수입입니까 혹은 기를 쓰고 편법을 써서라도 얻어내려는 학위나 지위에 대한 야심입니까 또는 소돔에서 익혔던 나쁜 성격이나 악습입니까 당신도 롯처럼 당신의 소알을 위해 하나님께 나의 작은 성 이오니 그것만은 주셔야 한다고 매달리고 있습니까 그 것이 없으면 도무지 교인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투정중입니까 하나님은 아마 당신의 소알을 허락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료한 명령을 불복하고 억지로 받아내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최선의 뜻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내가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댓가가 들어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들은 롯처럼 소알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롯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을 듣고 가기 싫어하였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이 소알이었습니다. 소알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을 외면하려는 자에게 언제나 가까이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언약의 자식을 기다리지 않기로 작정했을 때에도 편리한 하갈이 바로 자기 몸 옆에서 대기중이었습니다.

소알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에게 언제나 오라고 가까이서 손짓하고 있습니다. 소알은 가깝고 편리한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20절> 그러나 소알 길은 둘러가는 길이며 넓은 길입니다. 그곳은 결코 미미한 작은 성이 아닙니다. 내게 무한히 큰 고통의 댓가를 청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이 가라고 지시하신 땅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지시하신 땅이 약속의 자식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에게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부자 청년에게는 자기 재산을 다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롯에게는 소돔을 벗어나 소알과 같은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지정된 땅을 향해 곧은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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