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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친 들(아골골짜기) (호 02: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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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는 돌이키지 아니하는 음녀인 자기 아내 고멜에게 개유하여 ‘개유하여’란 ‘부드러운 말로 타일러서 설득을 시켜서 마음을 열게하여’ 란 뜻입니다.
방탕하고 타락하여 깨닫지도 회개치도 아니하는 희망 없는 죄인을 억압이나 공포나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사랑으로 설득하시는 파격적인 사랑의 하나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아내를 개유하여 말로 위로하기 위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갑니다.
왜 하필이면 거친 들로 데려가서 위로하려고 할까요 ‘거친 들’은 ‘아골골짜기’로 바꾸어 말했는데, 연단과 시련의 광야 범죄의 골짜기, 환란의 골짜기입니다.

사람은 거친 들로 나가서 홀로 서 봐야 진지해지고, 사람다워집니다. 고생 없이 뜻대로 생각대로 소원대로 하고 싶은대로 다 해본 사람과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속도 썩고, 배도 고파보고, 욕도 얻어 먹어보고, 누명도 쓰고, 모함도 받고, 실패해보기도 하고, 망해도 보기도 한 사람과 누가 사람다울까요 ‘눈물의 쓴잔을 마셔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야곱은 부모의 사랑속에서 다복한 가운데 보다는 벧엘에서 돌 베개 베고 홀로 밤을 지낼 때 하나님 함께 하심을 발견했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거친 들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훈련 도장입니다.
거친 들에는 물도 포도도 석류도 무화과도 씨 뿌릴 곳도 없습니다. 거친 들에 나가 봐야 사람이 진지해지고 사람다워지게 됩니다.

때로는 거친 들이 고독일 수도 있고, 오해받는 것일 수도 있고, 누명 쓰는 곳일 수도 있고, 명예 훼손을 당하는 것일 수도 있고, 모욕을 당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업이 실패하고 망하는 것일 수도 있고, 배신을 당하는 것, 고독을 당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이 말을 쉽게 말하면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나님 잊고 하나님 생각도 안하더라’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인기가 올라가고 누릴 때나 지위가 올라갈 때, 사업이나 일이 잘될 때, 원하는 현실 좋은 현실이 닥칠 때는 하나님 찾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 은혜라 생각하지 않고, 감사도 없으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에게 기도도 잘 안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쾌락과 즐거움 사치와 허영으로 말미암아 여인은 남편을 잊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심판하시겠다고 하지도 않고 추방 하겠다고도 않고 아내된 신분을 거두지 않고 이러한 아내를 거친 들로 어느 날 데리고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하나님 없이 방황하는 우리에게 삶의 교훈을 베푸시기 위해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이 광야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교훈 하셔서 우리와 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호세아는 거친 들 광야로 아내 고멜을 데려가 조용히 단둘이 속에 있는 말, 서로의 심정을 삶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서로 오해한 것, 잘못한 것, 미운 것, 싫은 것, 안된 것, 안한 것, 한 것, 좋았던 것, 괜찮은 것, 기뻣던 것, 허물없이 맘에 있는 것, 서로가 다 털어놓고 보니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한 번만 용서해 주고 한 번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니, 이해도 되고, 용서도 되고, 용납도 되어서 이제까지의 모든 것은 다 털어 버리고 제로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새 출발을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누가 호세아처럼 배신의 쓰라림과 억울함을 당하고서도 한 사람 아내 고멜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사랑과 사람의 사랑,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이 얼마나 현저하게 다른가를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배신의 골짜기 거친 들판에서 감정적으로가 아니고 부드럽고 설득력있게 사랑으로 타일러서 우리와 흉금을 털어놓고 다 털어 버리고, 우리를 교훈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시는 파격적인 하나님의 위로가 있음을 명심합시다.

 위로와 약속

(2:15)『거기서 저에게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거기서는 거친 들판입니다. 거친 들에서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출발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자는 다짐한 후, 주시는 위로와 약속의 말씀입니다.

① 포도원을 주리라
호2:13을 보면 이미 하나님께서 그 여인에게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었다고 생각지 않고 바알(우상)이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칠게 수풀이 되게하여 들짐승들로 먹게하여 황폐케하여 뒷날엔 앗수르 군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앗수르 군이 다 차지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잘 감당하지 못하면 계산해서 다시 빼앗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물질, 건강, 소유, 힘, 총명, 기술 등 관리나 보관이나 사용을 잘못하면 도로 빼앗기는 것이 청지기 비유요, 하나님 주신 것을 우상이 주었다고 생각하면 도로 빼앗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실 수도 있고, 다시 빼앗아 가실 수도 있고, 거칠게 수풀이 되어 황폐케 하실 수도 있고, 다시 옥토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다시 한 번 새롭게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관계로 새출발을 시작하자고 하신 후, 다시 포도원을 저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②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십니다.
아골 골짜기는 요단강 건너면 곧 나타나는 가나안 땅의 열쇠가 되는 장소입니다. 아골 골짜기만 지나면 소망의 가나안땅 축복의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개인, 가정, 나라, 한국 교회의 현재의 불안, 혼란, 어려움, 문제점을 소망으로 은혜로 축복으로 하나님 능력으로 삼게 해 주십니다.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여리고 성을 믿음으로 무너뜨리고 크게 승리를 이스라엘이 거둔 후 사기가 충천하고, 자신감이 넘쳐 행군하다가 작은 아이 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력을 평가해 보니 여리고 성에 비교도 안된다고 평가가 되었고, 군사 3,000명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무참하게 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여리고 성에서 어떤 전리품도 가지고 나오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한 아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너희 중에서 죄악을 제하여 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범죄자 아간이 색출되었고, 사람들은 돌로 아간을 쳐 죽이고 범죄한 물건을 불살랐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돌로 아간을 쳐 죽이고, 범죄한 물건이 불타는 골짜기를 성경은 ‘아골 골짜기’라 합니다. 아골 골짜기는 범죄의 골짜기로 환란의 골짜기입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란 여인이 처하여 있던 삶의 자리는 바로 하나님 없이 범죄한 자리에서 방황하는 인생의 골짜기입니다. 우리 중에 이 환란의 골짜기 범죄의 골짜기인 아골 골짜기에 빠져서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음란한 아내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처하여 있던 삶의 자리를 가리켜 ‘아골 골짜기’라 했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하나님 없이 범죄한 자리로 방황하는 인생의 골짜기요, 범죄의 골짜기요, 환란의 골짜기입니다.
아골 골짜기는 요단강을 건너면 곧 나타나는 가나안 땅의 열쇠가 되는 장소입니다. 여리고 북편에 있는 가나안 땅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골짜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 은혜의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아골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을 바로 앞에 둔 아이성의 전투에서 패하였으므로 아골 골짜기에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였습니다. 성공의 목전에서, 흥함의 목전에서, 부흥의 목전에서, 영광의 목전에서 쓰디 쓴 실패와 아픔을 경험한 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골 골짜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 가운데 오늘도 재현되는 슬픔과 범죄와 방황의 골짜기입니다.

호세아가 아내 고멜을 버리지 않음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결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선택하셨고 손바닥에 새겨서 기억하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관찰하시며 어디나 어느 때나 늘 함께 하시며 떠나시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고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절망 속에서 소망의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2:8을 보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므로 은과 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은과 금을 가지고 다른 남자들을 쫓아다니면서 부정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고멜 만의 범죄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복음운동을 위하여 보관 관리 사용하라고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세상과 자신을 위하여 허비하며, 시간과 정력과 지식과 건강을 인생을 낭비하던 고멜의 범죄는 바로 나 자신의 범죄인 것을 거울을 보면 자기 모습이 보이듯이 이 말씀을 통하여 보여주셔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개유를 따라갈 때, 아골 골짜기라도 소망의 문이 환하게 열리게 됩니다.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이 아이 전투에서 실패하여 낙망과 좌절을 당한 후, 범죄한 아간과 숨긴 물건을 함께 돌로 쳐 죽이고 불태운 골짜기입니다. 그와 같이 크게 실패한 골짜기라도 하나님의 개유를 따라가면 소망의 장소가 되며 실패와 낙망과 절망을 당했던 곳이 오히려 소망의 문으로 삼게 해 주십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살이하던 것 누명을 쓰고 감옥가는 것이 아골 골짜기 같으나 그곳이 오히려 소망의 문으로 삼은 것입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이 죄가 되어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이 소망의 문이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계명 지키려고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는 죄로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것이 소망의 문입니다.
아골 골짜기에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죄인 아간을 찾아내서 돌로 쳐서 죽이고 장사하고 범죄한 물건을 불태우는 일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를 찾아내서 아골 골짜기에 가서 옛 사람을 죽이고 장사하고 죄를 찾아 회개해야겠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죄를 자백하고 죄를 버리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소망을 주시고, 능력과 축복과 성공과 부흥을 주신다는 사실을 교훈 하십니다.

하나님의 개유를 거역하고 아골 골짜기를 가지 아니하면 소망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힘을 써 소망의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습니다. 자기의 지혜나 기술이나 수단으로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믿음을 지킴으로 해야 합니다.

결국 호1:4-9의 심판의 선언과 2:3-7의 징벌과 2:8-13의 하나님의 심판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초공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선언과 징벌과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 다 털어 버리고 제로 상황이라는 출발선에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새로운 관계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사랑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아무런 희망도 없고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회복의 역사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2:15하반절)
2:12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네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이 먹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모든 축복을 빼앗아 가 버리셨고, 포도원을 거칠게 하여 들짐승들로 먹게 하여 황폐한 수풀로 버림을 받은 바 되었습니다.

비참한 멸망 가운데 빠졌던 본질상 진노의 자식을 한없는 희생과 사랑으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뜨거운 감사하는 맘이 사라지고, 기도할 때마다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도 사라지고, 하나님께 뜨거운 찬양으로 기쁨으로 넘친 감격도 없어지고, 하나님 향한 열렬한 열성 간절한 소망 하나님 일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지고, 고독과 하나님 떠난 공허가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찾아오셨습니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때와 같이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응대한다’는 것은 ‘대답한다’는 ‘아멘’ 이라는 뜻도 있고, ‘노래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고멜은 남편이 자신을 의심하고 경계할 때 얼마나 괴로웠고 긴장이 되었으며 탄로가 날까 맘을 조렸으며 얼마나 맘 아파했겠습니까
자기의 부정이 탄로가 났을 때,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고통스러워했으며, 얼마나 많은 밤을 통곡으로 낙망으로 불안으로 지새웠을까요 그래서 노래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사랑의 새롭게 회복됨으로 고멜은 노래를 다시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렸을 때와 처음 사랑은 시작할 그때처럼 다시 사랑하는 역사를 회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해방되던 날, 홍해를 건너고, 애굽병정을 수장시켰던 그날, 그들은 뜨거운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했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은 노래를 잃고, 원망, 불평, 우상숭배,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길보아에 도착 후, 열 두 정탐꾼의 불신의 보고를 듣고, 원망 불평하므로 긴 방황의 38년간의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은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사랑과 열정과 순종과 찬양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응대하기를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뜨거운 감격과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삶을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하나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무엇이든지 복종해야 합니다.
어떻게 응대해야 할까요 응대의 내용은 ‘어렸을 때와 애굽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란 선택받았을 때,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 그 감격, 그 감사, 그 열심, 그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계2:4에서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 하셨습니다. 계2:5에서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권면 하셨습니다.
(렘2:2)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뿌리지 못한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쫓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고 했습니다.

비참한 멸망 가운데 빠진 본질상 진노의 자식을 한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깨닫고 그 사랑 그 은혜에 감격하여 뜨겁게 감사하고 뜨겁게 찬양하고 밤 깊은 줄 모르고 뜨겁게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물불 안가리고 순종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열렬히 주님을 사랑하던 그 믿음 그 열심 그 충성 그 찬양 그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때처럼 하겠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출15장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후,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등등. 노래를 지어 뜨겁게 찬양하며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고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나의 전부’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광야 생활을 하다 보니, 변질이 되고 속화가 되어 ‘하나님은 나의 전부’가 아닌 ‘나의 부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을 가졌을 때는 하나님은 나의 전부였고, 하나님의 은혜에 뜨거운 감사, 뜨거운 찬양, 뜨거운 기도, 열심 있는 봉사, 열렬한 사랑, 물불 가리지 않는 순종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믿음 생활 하다 보니 나이를 먹고 하다 보니, 하나님은 나의 전부가 아니고 부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을 때,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었을 때가 그때가 얼마나 좋았습니까 우리도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믿을 때,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으로 살 때가 좋았고, 좋습니다. 출애굽의 감격과 광야 40년간의 연단, 여리고성 함락, 가나안 정착, 신정 국가 설립, 왕정 국가로 살아오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전부’라는 그때의 그 감격 그 찬양 그 사랑이 다 식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불행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 징벌, 심판, 받아 빼앗기고, 황폐화되고 버림당하고, 벌 받은 후, 개유로 거친 광야로 이끌려서 탁 터놓고 이야기 하다가 보니, 하나님만이 전부였던 그때의 그 뜨거운 찬양, 감사, 열정, 사랑, 그 순수한 믿음을 버렸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고, 잘못된 지나온 과정을 후회하고, 회개한 후 제로의 상황에서 새로이 하나님 관계를 바로 갖고, 그 뜨거움을 되 찾게 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로 삼는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뜨거운 감격과 감사 찬양과 기도와 열정과 열성의 봉사와 물불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 열정을 그 뜨거움을 되찾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응대하여 입을 열어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전부요 뜨거운 감격과 찬양과 기도, 열성적인 봉사, 물불 가리지 않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응대합시다.

2:16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고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고멜은 남편 호세아를 “여보!” 라고 부르기에 너무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감히 남편을 대하고 바라볼 수 없는 고멜은 갈등을 겪습니다. 마치 눅15장의 돌아온 탕자의 입장과 같았습니다.

돌아온 탕자는 차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종의 하나로 불러 주고 대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니다. 너는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내 아들이요 죽었다가 다시 산 내 아들이다”하시고, 채색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주시고, 가슴으로 뜨겁게 품어 주시는 아버지의 파격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과거에 대해 이해, 용서하시고, 미래에 복된 소망을 주십니다. 남편 호세아의 음란한 아내 고멜에 대한 사랑은 모든 지난 날의 부정된 것을 잊고 어두운 시절이 없었던 아내처럼 여자의 권한을 회복시켜 신혼의 감격 속에 아내를 맞이하는 이런 남편의 사랑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일순간의 관계가 아니요 한 번보고 대하고 끝나는 관계가 아닙니다. 성경은 “내가 저에게 영생을 주나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 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의로우신 남편 되신 하나님은 부정하고 타락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법 문제로는 내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다 책임을 지셔서 내가 받은 벌을 내 대신 벌받아 희생을 당하시고, 감정 문제로는 용서하시고, 우리를 품어 주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사랑하시고, 대우로는 은총의 남편, 긍휼의 남편이 되십니다.
우리는 변하나 하나님은 변치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 떠나 방황하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생각과 삶이 어두워도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지극한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이 사랑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돌아갑시다.

“그 날에”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는 날을 말씀합니다. 음란한 여인 고멜이 본 남편 호세아 선지의 개유를 받아 거친들 아골 골짜기로 나가서 많은 환란 중 연단 받아 소망의 문이 열리는 날에 남편 되신 하나님께서 아내된 이스라엘에게 3단계로 은혜 역사를 베푸십니다.

1단계:호2:16-17
“바알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바알들의 이름을 저희 입에서 없애 바알신을 인정치 않고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철저한 우상 숭배 제거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남편으로 영접하여 진정 사랑하게 됩니다.

2단계:호2:18-20
① 화평의 언약을 체결 땅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들짐승 새 곤충등 살아 있는 야생 동물을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야생 동물의 살상의 해를 당치 않게 땅에서의 평화와 안전을 외부 환경의 토대를 마련해 주시고,
② 행음했던 불결한 여자로 생각지 않고 순수한 처녀로 죄의 용서와 신분을 회복시켜 재 결혼의 결혼을 하여 재 결합의 결혼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원하십니다. 고대 근동의 관례로 신랑이 결혼하여 신부를 데려올 때, 신랑이 장인에게 지참금을 지불하고 데려오는데 신랑 되신 하나님은 의, 공변(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 행위에서 나타나는 객관적이고 정의로운 판단) 은총, 긍휼, 네 가지를 새 계약의 결혼 생활에 방해하는 모든 더러운 죄악으로부터 그 순순함을 지켜 내기 위한 약점을 보완해 주는 지참금으로 신부에게 주어 결혼 생활이 영원히 계속되게 하십니다.

3단계:호2:21-23
하나님께서 심판 선언으로 이스르엘인 저주받은 곳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베푸시게 임하게 하십니다.

“응하고”란 대화 관계에서 사용되는 관계 용어로 5번이나 사용된 것은 하나님은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시고, 그 비는 땅에 응해서 마른땅을 흡족하게 적시고, 땅은 소산에게 응해서 소산을 잘 나게 하고, 소산은 이스르엘에 응해서 풍성하게 넉넉하게 해 주십니다. 바알이 개입할 여백이 없도록 곧은 연결 고리로 ‘응하고’를 5번이나 사용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자’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던 ‘이스르엘’의 이름으로 심판 선언된 저주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극복이 됩니다.

음행의 죄로 계약이 파괴된 부부 관계가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로 인하여 재 결혼으로 죄의 용서와 신분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불결한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처녀로 여겨 부부가 되어 결혼 생활에 방해하는 모든 더러운 죄악으로부터 그 순수함을 지킬 수 있게 약점을 보완시켜 영원한 결혼 생활이 계속되게 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하게 넉넉하게 복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부부로 바꾸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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