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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약 0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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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흔히들 우리가 사는 세대를 일컬어 인내가 없는 세대 혹은 기다림이 없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 1990년 8월에 한 신문에 기재된 “ 한국병 ” 이라는 글의 내용을 참고해 보면 “ 한국인에게 있어서 은근과 끈기는 옛말이 도었고, 이제는 참을성이 없다 ” 고 지적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하며 또한 그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구한말에 한국인은 전반적으로 자제력이 높았습니다. 한국인은 외국인에 비해 끈기가 있고 고통과 억압을 잘 견디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물질문명이 안겨다준 편리함 때문이라고 할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오늘의 우리들이 살기가 얼마나 편리해 졌습니까
예를들면 가정의 주부들이즐겨쓰는 전자렌지라든지 , 압력밥솥 이라든지 , 청소기 라든지 ,세탁기 라든지, 기름보이라 라든지 , 텔레비죤 , 등등의 것들은 사람의 하는일들을 대신해서 빨리 알아서 척척 해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음식을 순식간에 먹겠다는 것때문에 이제는 정성도 없어지고 기다림도 점점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급합니다. 그리고 인내가 없습니다.
성경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말세의 시대상을 두가지로 밝히고 있는데 그 하나는 사납고 포악해 지겠다는것이요 , 또 하나는 조급하며 급한 마음이 되겠다고 예언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의 동생은 야고보사도를 당시 그리스도인을 흩어진 자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 인내 ” 입니다.
그리고 인내라는 단어와 연결하여 그리스도의 강림하시기 까지 참으라고 밝혔습니다. 인내라는 단어와 그리스도의 재림이 함께 강조된 것을 보면 인내의 한게가 어디까지냐 하면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임니다. 주께서 재림하시기 까지 참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기다림에는 끝까지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의 강림 하시기 까지 무었을 참아야 합니까

1 말 ( 언어 ) 에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 라고 했습니다.전도서 5장 2절말씀에 “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 고 했습니다.
말에 있어서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멸망받은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조급함과 원망하는 말입니다. 또한 민수기 12장 3절 말씀에 보면 “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 라고 했는데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결정적인 죄가 무었입니까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때에 참으려면 끝까지 참앗어야 할텐데 그가 견디지 못하여 “ 패역한 너희여 ” 라고 저주 합니다.
이를 지적하는 시편기자는 “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시편 106편 33절 ” 라고 밝혔습니다. 급하게 내 뱃는말 , 그것이 올무가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에 있어서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참아야 할것입니다.

2 생각에 있어서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나 빠른 결론을 내립니다. 자재력 상실입니다.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생각에 있어서 인내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요셉이라는 청년이 마리아라는 처녀와 정혼을 합니다.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약혼한 사이인데 얼마후 들려오기를 임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당장에 야단납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합니까
마태복음 1장 19절 20절에 “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려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끝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때에 ”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만히 생각했다고 말씀 합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 의인입니다.
생각에 있어서 인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얼마나 쉽게 그리고 빠르게 결정적인 말을 합니까 우리는 인간 관계속에서 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인내의 모습이 있어야 겠습니다. 생각에 있어서 인내하는사람은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3 행동에 있어서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알아볼수 있는길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칭찬을 하든지 아니면 핀찬을 줘보면 압니다 . 사람이 영광을 누릴때 실수를 하기쉽고 굴욕이나 억압을 당할때에 실수를 하기가 쉽습니다. 특별히 경황중에 얼마나 침착할수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압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욥을 들어 인내의 본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욥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욥기를 보면 그는 의인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인데 사탄의 참소로 인하여 고난을 당합니다 . 재산을 빼앗기는 고난 , 열 아들이 하루 아침에 죽음을 당하는 고난 , 사랑하는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한마디 말을 남겨 버리고 떠나는 이별의 고난 , 머니 머니해도 건강이 중요한데 온 몸에 악창이 생기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황 속에서도 욥은 “ 그가 나를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를 의지 합니다 욥 13장 15절 말씀 ” 라고 말합니다,
모든 고통속에서도 자기의 행동에 인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것이 바로 본이되는 것입니다. 주의 강림을 믿고 행동에 있어서 인내하는자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결론 ;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를 삽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조급하고 자제력을 읽고 살지만 우리는 매사에 인내를 해야 합니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는것 처럼 무던히 기다려야 합니다. 급하게 말하지도 말고, 급하게 생각하지도 말고, 급하게 행동하지도 말고 주의 강림 하시기 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확실한 소망을 두지 안고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주의 강립 하시기 까지 길이 참아 하나님꼐는 영광이요 여러분들에게는 삶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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