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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눈물(2) (눅 19: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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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울기도 합니다.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 졌을 때.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던 일이나,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
부모된 입장에서 사랑하던 자녀가 얼마 후에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 자녀를 보거나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흐리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우신 것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으로 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옷을 벗어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갈고 종려 가지를 꺾어 흔들며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따라왔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심을 찬양하고, 만왕의 왕이 되심을 찬양하고, 이제는 잃어버린 평화를 찾게 되어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얼마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입니까 기쁨이 충만한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눅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운다”라는 말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실 때 사용된 말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여기에서 쓰여진 단어는 소리내어 울 때 쓰여지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찬양하고 즐거워할 때 예수님은 성을 보시고 소리내어 우셨습니다 .
예수님이 왜 소리내어 우셨을 것 같습니까
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고 우셨습니까

1. 평화가 없기 때문에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 평화의 성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는 전쟁을 많이 해서
피를 많이 흘려기에 안된다 너를 이어 왕이될 네 아들이 지을 것이다라고 하실많큼 예루살렘이 지
니고 있는 상징성은 굉장히 큽니다.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을 맡첬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예루살렘은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바벨론, 앗수르, 애굽,..등 수많은 침략을 받아 함락되었고 부서지고,재건되고 다시 함락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을 보시고 우시던 당시는 로마의 지배하에 평화를 잃어버린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영히 있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눈이 있는 평화의 성에서 살면서 왜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평화를 원했지만 평화를 알지 못했고 평화를 얻는 길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눅19: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평화(ερνη)-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보증된 영혼의 평안한 상태,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평화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 성을 헐어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짖겠다. 자신의 몸을 예루살렘성에 비유를 하셨습니다.
택한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러나 대 다수 유대인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숨기어진 비밀이 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는 것을 보고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고 찬송을 부르고 소리를 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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