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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손안에 있음 (요 1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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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동양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인간이 갖추어야될 세가지 덕목 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인,용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하고,인자가 있어야 하며,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에게 높아진 지식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전체로 보고 깊이 있게 보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이 지혜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습니다.

말씀이야말로 구원의 지혜가 되고,성공적인 삶의 지혜가 됩니다.

 또한 현대인들이 능력은 있는데 정말 인자가 없습니다.

판단력과 비판력과 여러가지 재능도 많은데 사랑의 덕이 없습니다.

 요즈음 왕건이라고 하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이후에 신흥고구려를 왕건이 세웠고,백제는 견훤이라는 아주 용맹스러운 장수가 일으켰습니다. 능력과 전쟁으로 말하면 견훤이 탁월합니다.

그러나 왕건은 인자의 덕으로 사람들을 다스리며 주변 여러 성들 과 장수들과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에 이미 사람들은 왕건이 천하 를 통일할 것으로 믿고 있었고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인자함과 사랑이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하고 사람과 평안을 얻게하 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용서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죄와 타협하거나 죄를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 은 늘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것은 용기입니다.

너무나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서 그런 것인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용기가 부족한 것같습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합니다.

진리를 행하고자 하는 용기도 부족합니다.

 참된 용기보다는 어렵고,잘못되며,밑에 있을 때는 비굴해지고 조금 잘되고, 형통할 때는 교만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이목이나 환경에 초연해서 내적 양심의 지원 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꿋꿋히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16: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 노라!" 담대하라는 것은 이세상을 살면서 큰 용기를 가지고 살라는 것입 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1:20절에서,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랬습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즉 생사를 초월하여 온전한 담대함,즉 용기 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Full Courage" 대단히 충만한 용기,아주 꽉찬 용기를 말하는 것입 니다.

 중요한 것은, 이 꽉찬 용기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전기를 쓰는 모든 것들이 전기의 전원에 코드를 꽂고 스위치를 켜 는데서 부터 힘있게 작동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설정되면,생사초월의 담대함이 나오면서 삶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28절에,"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 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절에,"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잡고 있기에!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사랑의 예수님손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에! 우리는 정말 담대함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칼빈을 해석하기를 구원의 안전성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자신의 자녀로 삼은 자는 결코 빼앗기 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그 구원은 영원히 취소되지 않고 안전하다 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 신자들이 구원받은 그 날부터 무덤까지! 결코 잊어서는 않되고, 오히려 늘 확신하면서 용기와 담대함의 중 요한 근거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반드시 이것만은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넘어져도 하나님 손바닥안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때로 넘어지고, 때로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하나님을 벗어나는 것같다고 할지라도 한 번 붙잡힌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손은 만유보다도 크신데, 정말로 떠날려고 하면 지구를 떠나거라! 해도 않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어느 구석에 숨어도 거기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는 것이고, 이 세상 어느 구석에 홀로 쓸쓸하게 쓰러지고,실패해도 거기가 하 나님의 손바닥 안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로 성도에게는 궁극적인 실패나,궁극적인 좌절이나,궁극적인 절 망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28,29절의 말씀은 가장 우리에게 소망이 되 고 능력이 되며, 용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근거가 되 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또 한가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자꾸 빼앗을 자가 없다고 두 번씩이나 말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빼앗을려고 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빼앗을려고 하는 자가 있기에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빼앗을려고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10장 전체에서 목자와 양의 비유로 계속되는 말씀가운데서 1절에 강도, 8절 절도, 10절에 도둑, 12절에는 이리라고 표현한 것들입니다.

이것은 아무래도 이용되는 것들은 다 다르지만 그것들을 이용하여 무언가 뺏으려고 하는 궁극적인 실체인 사탄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빼앗으려고 하겠습니까 28절에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뺏으려고 하겠죠! 영생을 뺏기 위해서는 영생을 얻게 하는 믿음을 뺏으려고 하겠습니 다.

 예,사탄은 여러가지 방법들은 동원해서 못 믿게 하고, 믿음도 희미 해 지게 하며 결국에는 그 믿음을 뺏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 번 그 손에 잡으면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씀 하신 그 말씀마저 믿지 못하게 그 믿음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 다.

 (예) 과거의 동양역사를 보면,우리나라를 비롯하여서 한 세대가 왕 을 중심으로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반드시 간신이 일어납니다.

간신들이 제일 먼저하는 것이 충신들에 대하여 왕이 의심하도록 만들고,그것을 통하여 제거시키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들의 믿음을 뺏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다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물리적인 고난과 핍박을 주었습니다. 원형경기장의 사자들 에게 내 던졌고, 타는 불가운데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실패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이성을 자극하여 철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신을 섬기는 것이 아주 우매 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과학을 동원합니다. 과학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 님이 질서의 하나님이요,만물을 질서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과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과학을 이용하여 증명도 되지 않는 진화론 같은 허 구적 사실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였 습니다.

한 때는 공산주의라는 이즘을 통해서 믿음 방해하였습니다.

사탄은 계속하여 정치의 힘, 경제의 힘,혹은 대중문화의 힘들을 빌려서 우리의 믿음을 빼앗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뉴에이지 운동/국민일보의 신앙란에 계속해서 이 정체에 대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기독교와 대적하기 위하여 만든 운동으로서 동양 의 신비종교와 서양의 과학주의를 합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없이 될 수 있으며,모든 것이 인간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 국은 철저하게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많은 음악들,드리고 영화들과 서적들이 이 뉴에이지 운동과 관련이 있어서 아예 이런 것들에게 우리가 포위되어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 도 입니다.

영화:백투더 퓨쳐-사랑과 영혼,홍콩느와르,테미네이트2,

또한 종교 다원주의,보편주의라는 것들입니다.

다른 종교도 옳고 기독교도 옳은데,기독교만 통해서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오직 멸망치 않을 영생을 어떻게 주셨는가에 관련이 있습 니다.

그 영생은 너무나 많은 희생과 사랑의 댓가를 치르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생명을 다 주고 얻은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다 주고 얻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17절에 보면,그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은 누가 생명을 빼앗아서 가 아니고,스스로 버렸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사랑때문에 목숨이라도 내놓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그렇게해서 우리를 지키셨다고 하면, 목숨이라 도 내놓고 사랑때문에 우리를 지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끊을 수 없는 사랑이 빼앗을 자 없는 손으로 붙들고 있다는 사 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노벨상을 받은 바있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 이! 성공과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자였습니다.

어느날 한 방의 총성과 함께 자살하고 말았는데,그의 써 놓은 유서 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

만약 인생이 하나님없이 무언가 성공을 추구해서 얻을 수 있었던 최대의 행복이 있다면 톨스토이의 말년처럼 행복하기가 어려울 것 입니다.

이렇게 행복할 수 밖에 없어야 할 조건을 다 가진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없는 인생의 절망을 용기있게 표현 해 준 것뿐입니다.

 빼앗을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에 들어 있음을 감사하십시다.

세상사람들처럼 그저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기억하십시다.

 <기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나님 우리가 험난하고 외로운 이 세상을 홀로 있지 아니하고 주님의 만유보다 크신 손안에서 있음을 감사하나이다.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해도 주님 손안에 있음을 믿고 다시 일어 서게 하시오며, 우리가 높아져도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고 늘 겸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는 이 구원의 확실성을 믿고 사나 죽으나 생사를 초월하는 담대함 을 가지고 우리 몸과 삶에서 오직 주님만을 존귀하게 여기며 영 광돌리며 살아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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