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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러한 일을 알지... (요 0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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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전문성에 몰두하다보면 다른 분야에 무지한 면을 보이게 됩니다.

전공분야만 연구하느라 다른 것은 들은 일도 없고 본일도 없어서 전문적 일수록 협소해지고 나아가 대화를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장사하시는 분들 은 마주 앉기만하면 그저 수지가 맞느니 안맞느니 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관심있는 것만 말하므로 대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분야 의 권위자라 하여 다른 분야에도 권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오늘 날로 말하면 대학 교수이자 대법원 판사와 교회의 감독을 겸했던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정신적 재능과 학식을 겸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러나 그는 인생이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 습니다. 그는 거듭남에 대해서는 無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에 게 대단히 부드러우면서도 한편 놀라운 빛을 감추지 못하면서 "너는 이스 라엘의 선생으로써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1.니고데모의 사람됨

 니고데모는 당시의 가장 뛰어난 인물을 대변합니다. 니고데모는 높은 지 위와 신분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가말리엘이나 바울과 같은 대학자 를 배출하였던 문화 계급에 속하였습니다. 그 자신이 학자이면서 산혜드린 법정의 한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그는 존경받는 종교적 지도자로서 아주 관심을 갖게하는 인물이었습니다.

1)開放的인 정신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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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사회적 위치에 관한한 안정된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배우고 개닭고저 하는 마음은 여전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알고저하 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예수님을 찾아 뵙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초인적인 능력을 지녀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자를 고쳤 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오래 기다려 온 약속된 메시야일 것이라는 암시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주위의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던 때였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을 내어 쫑은 일로, 수모를 당한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성전 이 도둑의 소굴로 되는 현상을 속상해 하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예루살렘거리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이런 별별 소문들이 니고데모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습니다. 호기심에 찬 니고데모는 예수님과의 면담을 열렬히 바랐습니다. 호기심이 有罪라는 말 이 있습니다. 물론 좋지 않은 호기심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 기심 때문에 <술>을 배우게 되었다든가 타락한 생활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의 호기심이란 좋은 것입니다. 우주 의 신비에 호기심을 품고 별을 기이히 여겼기에 망원경을 만들어 별을 관 찰하고 천체의 지도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망원경의 이름이 <호기심>이 었습니다. 호기심이라는 현미경을 통하여 과학자는 실험을 합니다. 호기심 이란 배를 타고 콜롬버스와 그 일행이 낯선 세계를 항해하였습니다. 예수 를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가진 자는 복이 있습니다.

 2)知的인 正直性도 작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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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나사렛 목수 출신인 예언자가 어머어마한 이상한 주장, 즉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런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유대인 관원이요, 종교적 지도자의 한 사람인 자신이 그 진상을 알고 그에 따라 조처를 취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 런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면, 남의 이목을 집주시키기 위해 浪說을 퍼트리 는 이 사기꾼에 고발해야할 것입니다. 호기심 많고 정직한 니고데모는 예 수게서 머물고 계시다는 그 집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입니다.

 3)겸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가르침을 베풀 만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라도 배우고자 하 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성격입니다. 사회적 위치로 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는 天壤之差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는 귀족이었 지만 예수님은 서민에 속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지도층 인사로 나이가 들 었지만 예수님은 이름 없는 목수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저명한 인사는 겸손한 자세로 젊은 랍비인 예수님을 찾아와 그와 자리 를 함께 하는 것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로 말하면 서울대학교 교수가 두메산골에 와서 이름 없는 촌부에게 무엇인가를 배우려 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4)진지한 종교적인 인물이었지만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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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니고데모는 그가 믿는 종교가 그의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가 진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모든 율법적 성취와 종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은 여전히 불안하고 굶주렸습니다. 니고데모로 하여금 나사렛 출신의 랍 비에게 발길을 돌려 만나게 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만족하지 못하 는 굶주림, 타는 듯한 목마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5)아름다운 용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니고데모에 대한 주석가들의 평가는 지극히 다양합니다.

니고데모는 두려움을 모르는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 주석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니고데모의 <용기는 완벽했다>고 칭찬합니다. 그런가 하면 니고데 모는 <전혀 용기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들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는 것이 틀림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점은 요한 복음서 기자가 이 유대인 관원의 이 름을 언급하고 있는 때마다 언제나 밤에 그가 왔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 다는 사실에 의해 확인됩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왔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어떤 주석가들은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온 이유는 열성적이어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서 생각나자 바로 달려온 것이라고 주장 합니다.

(2)어떤 주석가들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밤이 제일 좋기 때문에 니고 데모가 밤에 찾아왔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밤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 고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데 안성맞춤이라는 것입니다.

(3)그러나 그가 밤에 찾아온 데에는 그의 소심함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조심성 있고 소심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던 경찰들이 빈손으로 그냥 돌아오자 즉시 열렸던 대책회의에서 잘 설명됩니다. 바리 새인들은 예수님께 철저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 은 예수님을 제거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을 체 포하려고 경찰관까지 파견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찌하여 잡아 오지 않았느냐"(요7:45)고 따졌습니다.

 상당히 난처한 표정으로 이들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습니다."(요7:46)고 대답하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대답에 바리새인들은 몹시 분개하였습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고 물으면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런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요 7:48-49) 바로 이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변호하고 나섰습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도 전에 판결하느 냐"(요 7:51) 이것은 바울이 법정에서 대담하게 말한 것과는 대조가 됩니 다.

니고데모는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 가운데 모든 사람이 다 그를 배척한 것은 아니요. 나는 개 인적으로 그를 만나 보았소 나는 그를 主요, 스승이라 부르고 싶은 심정이 요."그러나 이런 대담한 선언을 하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異議만을 제기했 을 따름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소심함을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 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변호하여 말했다는 것은 높은 용기를 말해 줍니다. 가장 훌륭한 용기란 두려움으 로부터 벗어나는 용기가 아닙니다. 가장 훌륭한 용기는 두려움을 내어 쫑 는 용기입니다. 니고데모는 이런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는 소심한 마음으 로 예수님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소심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변호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놓치지 말고 꼭 보아야할 점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 그가 예수님을 위해 변호했다는 사 실입니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비록 그의 무릎은 두려움으로 떨린 다 하더라도 의무의 길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2. 조심스러운 학자와 예수님과의 면담 분석

A.사람은 거듭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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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로 압니다.... 어데게 하여 야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가"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이런 칭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대답만 하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입에 서 떨어지는 말보다는, 그의 마음이 바라고 있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 고 계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거듭나지 아 니하면 " 重生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원문대로 보면 '게네세나이 아노 센'-'위로부터 다시 나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가 다시 묻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 가 날 수 있삽나이까"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가 지금 어리석 게도 '나는 늙었는데, 그래도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겠는가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리면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고 날 수 있답디까 니고데모가 예수님 앞에서 떨었나, 왜 '늙으면'이라는 말이 여기 서 튀어나옵니까 어린아이는 모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 말은 자기 경험에 집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것 입니다. 니고데모 자신이 늙어서 어찌하다보니 '늙으면' 하고 튀어나왔지만 모태에는 늙으나 젊으나 다시 못들어 갑니다. 한번 나왔으면 그만인 것입 니다. 지금 니고데모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님께서 '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대화가 제데로 되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예수 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8절)" 이 말씀 역시 니고데모가 알아들을리 없지요.

"어찌 일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9절)" 거듭난다는 일이나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 는 신비로운 생활과 신비로운 체험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 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주님 께서 망신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10절)"이스라엘의 랍 비가 되어서 이 정도도 모르느냐, 그동안 무엇을 가르쳤느냐, 하고 묻고 계심입니다. 그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니고데모가 30세 밖에 안되신 예수님께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무엇을 배웠느냐고 무 안을 당한 것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온 세상의 이치를 다 안다 고 해도 '중생'을 모른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중생의 문 제를 모르고 생명의 문제를 모르고야 어떻게 무엇을 안다고 하겠습니까 니고데모는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했습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이 가능성과 절대적 필요성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진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거듭 날 수 있다>는 사실은 성서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서도 확인됩니다. 심리학자도 이제 는 복음서 기자못지않게 새로 남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심리학자는 이 경험을 보다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쨌든 종교와 과학은 사람이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 합니다. 성서의 증 언과 심리학자의 증언 외에도 인간의 경험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예전 과는 전혀 다름 삶을 사는 분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는 일들입니다.

 B. 인간은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1)어떤 이에게는 이 경험이 즉각적이고 절정적입니다.

 이 점이 많은 기독교인들을 당황시키고 이단을 발생시키기도 하였습 니다. 흔히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을 합니다만 이 말을 바르게 해석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할대 우리는 집에 찾아온 손님을 응접실에 모시는 것을 연상합니다. 그래서 와 계신다는 어떤 확실히 눈에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 님의 뜻대로 시중들고 그분의 평안을 위하여 봉사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관과하는 실수를 범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게 된 분들 중에는 구름에 가리웠던 태양의 모습이 드러남으로써 경관이 밝아 지듯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번개불이 번쩍이듯 돌연히 이런 경험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의 다 메섹 경험이 대표적입니다.

 2)점진적인 경험도 있습니다.

 이런 절정적 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직도 마음이 바뀌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돌연히 이런 경험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서서히 이런 경험 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예화) "나는 자신이 회개한 날짜와 시간을 일러 줄 수 없는 사람의 종교는 절대로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어리석은 말 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언제 새로 났는가가 아니라 새로 났다는 사실 입니다.

(1)자신의 몸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2)봄이 몇일날 온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봄입니까날짜가 가던 어느 날, 봄이 온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회심한 날짜와 시간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 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삶을 보다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부터인지를 정확하게 날짜를 못박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명심하여야 합니다.

 3.예수님과의 면담이 니고데모에게 끼친 영향

 그는 이 젊은 목수를 만나고 난 뒤에, 마음에 사도 바울과 같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만물이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흥겨운 노래 를 부르면서 떠나 갑니까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밖에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런 큰 내면적 변화가 일어난 것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이 밤이 그에게 영광스러운 밤이 된 것입니까 그의 겨울 언덕 같은 마음 에 생명의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 봄바람이 분것입니까 이런 물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근본적인 변화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깊은 감동을 받 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은 그에게 감동을 주었고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소문처럼 예수님이 잘못된 사 람이 아니라는 것과 그의 말씀이 지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이 속해 있는 산혜드린 법정이 예수님의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단죄하는 것 을 보고 예수님을 변호하는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물론 훨씬 용기있게 대담한 발언으로 변호하면서, 희생을 두려워 하지 않았으 면 합니다만 그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 후, 니고데모는 두려움 대문에 담대하게 말하지 못했던 일을 반성합 니다. 예수님은 가장 무자비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너무 나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한 뒤, 니고데모는 자신이 몇 달 사이 에 마음 속으로 느끼고 있던 충성심과 우정을 예수님께 말씀드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무엇인가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그는 충성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냅니다. 장례를 돕는 일을 그가 하고 있습니다. 그는 100 파운드나 되는 몰약과 침향을 가져옵니다. 이것 은 고백하지 못했던 그의 사랑을 표현하고 그리하여 지난 날의 잘못을 속죄 받으려는 니고데모의 애틋한 노력의 하나였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슬픔을 당한 사람들을 심방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생전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이제는 고인이 된 사람의 사진을 앞 에 두고 잘못했던 일을 넉두리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보다 일찍 찾아오지 못함으로 인하여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운 사실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찾아온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적막이 가득찬 밤중에 예수님이 그 밤에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늘의 것은 하늘로 부터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하셨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지난 날 물으셨던 그 물음을 지금도 묻고 계십니 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8절)" 예수를 믿 는다는 우리가 이점을 모르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정확히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이단에 빠지고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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