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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믿음의 3단계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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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수님은 사역중에 치유하는 능력을 많이 베푸심으로 각색 병든자를 치료 하셨다.그 가운데 본문의 기사는 고침 받은 열명의 문둥병자에 대한 기사이다.

2.이 이야기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경계지역에서 일어난 이야기 이다.예수님은"거리 한 복판에서"열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셨다.그때 예수님은 요단 동쪽을 향해서 가시는 길이었다.그리고 이 문둥병자들은 그들의 질병때문에 자연히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모두에게 적대시 되어 쫓겨난 상태였었다.

3.따라서 그 경계지역은 민족적 편견이 없는 곳이었다.그러므로 그 지역은 이 들 문둥병자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서 살기에 적당한 곳이었고 경계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개방적으로 상호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4.예수님을 만난 이 열명의 문둥병자는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하며 큰 소리로 그들의 필요를 예수님께 간절히 호소했다.

5.이렇게 간절히 호소하는 것은 참된 기도의 요건들 중의 하나이다.그리고 이 문둥병자들은 자신들의 허물많은 모습을 자각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서 예수님을 불렀다.이렇듯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은 참된 기도의 또다른 요건에 속하는 것이다.6.이에 예수님은 이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셨다. 이것은 그 당시에 제사장들이 병든자들에게 깨긋히 치료됐음을 판정했기 때문이다.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고침을 받을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믿음의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첫 발을 내딛는 순간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채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던 것이다.이러한 행동은 주어진 명령에 순종할 때만이 가능한것이다.

7.이들 모두가 이에 순종하여 가다가 깨긋함을 받았다고 본문은 말씀하고있다. 이후에 그들중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사례했다고 하였다.그사람이 바로 사마리아인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예수님은 이에 말씀하셨다."열사람이 다 깨긋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이 이방인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자가 없느냐 하시고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다.

8.만약 열명 모두가 주님께 감사 했더라면 모두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그런데 그 아홉은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이 아홉의 사람은 육신의 질병은 고침받았지만 영혼은 구원을 받지 못한것이다. 칼빈은 이 경우를 설명하면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문둥병자들과 같다고말하였다. 이 이야기는 은헤를 모른채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으며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유일하게 예수께 감사하러 돌아왔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구원을 받았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한번 생각해 볼것이 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인보다 비기독교인이 더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살펴보면서 믿는 우리들이 더 더욱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들을 만들어 가야겠음을 명심하면서 몇가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

I.간구와 기대의 단계이다(11-13).

문둥병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알고 긍휼히 여겨달라고 호소한 것처럼 우리의 부족을 알고 간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약5:13).본문에 언급된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처음에는 같은 질병으로 고통받았다는 점에서 모두 같았다.그들은 성격이 서로 달랐고 인종도 달랐고 교육정도나 문화도 서로 달랐을 것이다.그러나 이들은 이 모든 차이점과 자연적인 반감을 모두 배제해 버리고 문둥병과 같은 무서운 질병의 피해자라는 동질의식으로 하나가 될수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큰 소리로 "예수 선생님이시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렇다.우리에게도 지위가 높고 낮음,선한사람 악한 사람,있는사람 없는사람 건강한자 약한자 가릴 것 없이 하나님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으며 즉 윤리적인 인격까지 포함한 모든 차이를 없애고 하나님앞에서 모두 죄인이라는 점에서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죄악의 정도를 달아보고 그 수를 헤아려 보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이며 불가능한 것이다.우리 인간들은 모두 죄인이며 그 어느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훌룡한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부족한 삶을 사는 것이고 이 부족함을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II.말씀에 순종하는 단계이다(14-15).
두번째로 14절을 통해서 믿음과 순종 이라는 교훈을 얻을수 있다.
(눅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한다(고후5:7).본문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마치 이미 자신들의 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것을 확신한 사람들처럼 제사장이 있는곳을 향해 출발했다.열 명의 문둥병자가 그들의 병을 안은채 제사장에게 출발했듯이 우리들도 무거운 죄짐을 지고 죄책감을 안고 있을찌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문둥병자들이고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가진 문제가 치료될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비록 우리들의 실생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실적이고구체적인 어떤 좋은 일을 해주셨다는 뚜렷한 증거나 표시가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죄악이라는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손을 얹으신 것도 아니었고 어떤 특별한 이적을 보여주신것도 아니었다.주님께서는 단지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에 쓰여진대로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이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그처럼 갈망하던 고침을 받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곧 제사장에게로 달려갔던 그들의 믿음과 간절한 마음보다 더 훌룡한 믿음을 보여 준 사람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이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완고한 죄인과 어떻게 해서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지를 알게 된다.우리 주님께서는 늘 그렇듯이 주님께서 치료해주신 사람들에게 어떤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즉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만한 어떤 극적인 광경도 없었던 것이다.단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치료의 역사가 있었던 것을 알수있다.오늘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도 바로 믿음과 순종임을 분명히 깨닫고 기적을 일으킬만한 믿음을 가지는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고후 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III.감사를 표현하는 단계이다(16-19).
세번째로 감사하였다는 교훈을 얻을수 있다.
(눅17: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바로 사마리아인 처럼 감사할줄 아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골1:12).
모두가 깨긋함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사례하며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이와 같이 우리 모두도 믿음으로 온전해 졌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그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감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오히려 가로막을수 있다.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 자체를 없애 버릴수는 없다.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감사의 신앙을 다 소유하시기를 바란다.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이유에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첫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과소 평가하거나 혹은 그 은혜를 잘 모르기 때문 이다.둘째로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우리가 은혜로 인해 누리는 유익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세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무익한지를 문제삼는 공리적인 태도를 가지기 때문이다.

본문에 나오는 아홉명의 문둥병자들은 그들이 치료된 순간에 감사하지 않는 죄를범했다.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와같은 문둥병이나 문둥병 환자들의 무리는 단지 살아있는 송장으로 취급되었다.그러므로이 무서운 병이 다 낫게 된 아홉명의 사람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게된 어린아이보다도 더 기뻤을 것이다.그런데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들을 치료해준 고마운 사람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에서도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축복을 받았을 경우에도 우리들은 이 아홉명의 사람처럼 감사를 못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또한 그 신앙에서는 근본적인 구원의 은혜에 대한 불완전한 평가가 깔려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감사는 축복을 만들어 낸다.그래서 감사했던 사마리아인은 감사하지 않았던 아홉사람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다.그러기에 더 큰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더 많은 감사를 해야 한다.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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