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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라 (미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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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요란함도 많았던 휴거사건이 지난 주간에 지나갔습니다. 상처 는 그들이 냈지만 그 상처를 끌어안고 아파해야할 사람들은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이 남겨놓은 상처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남 았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이성이 마비되도록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교회도 , 가정도, 직장도, 소망도 포기하게 만들었 을까요 모든 기독교 이단의 공통적인 특색이라 한다면 성경해석의 오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성경에서 온갖 사이비와 이단들의 종파가 생겨나는 것 입니다.

성경해석을 어떤 시각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성경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고, 능력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약간만 삐 딱한 다른 시각으로 보면 성경은 온통 거짓 투성이요,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할 때는 반드시 성경으로 성경해석을 하는 것이 좋습 니다. 그릇된 종말론을 외치던 그들의 가장 중요한 실수는 성서를 성서로 해 석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자기의 기분대로 해석해 대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성 구만을 뽑아서 이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은 서로가 서로를 해석해 주고 있습 니다. 이해가 안되는 성구는 다른 성구를 찾아 비교해 보아서 이해를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성경책 중에서 관주 성경책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괄되는 구절을 일일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의 종파가 있지만 성경해석의 잘못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린 형제, 자매들이 많습니다. 통일교가 그러했고, 구원파 가 그러했고, 휴거론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비춰 보면서 마지막이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들이 가져야 할 성서를 보는 올바른 눈과,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생각을 나 누고자 합니다.

 1. 미가가 보는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보다 높아진다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뵙고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장소는 바로 산이었습니다. 낮고 작은 산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로는 산당을 짓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노아는 홍수 이후에 처음으로 도착한 산 아라랏 산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했던 모리아 산, 모세 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호렙산, 바알의 선지자와 싸워 이긴 역사의 현장 인 갈멜산, 십계명의 율법이 내려진 시내산, 가나안을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 들이 사마리아인을 포함해 예배드린 처소 그리심산, ....

성서의 모든 산의 역사는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 다. 바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인 이 산이 마지막 날에는 다른 모든 산 들보다 높여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산들위에 뛰어나게 됩니다. 민족들 이 그리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이 산은 곧 교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높이셔서 바로 주님 의 뜻을 이땅에 펼치실 것을 확신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계속해 서 해나갈 전진기지로서 교회를 이 땅에 당신의 피로 값주시고 사셨습니다.

주의 전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비록 오늘날 교회가 이단 들의 사조와 물질만능의 풍조, 강퍅한 심성으로 인해서 고전을 겪는다 할지 라도,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 오더라도, 잘 되든지 못 되든지 문제는 바로 그 높여진 전에서 울려 나오는 말씀이 문제가 됩니다.

 2. 지금은 하나님의 전을 찾을만한 때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점점 더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세상입니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어린 시절 유월절을 보내실 때에 그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 버립니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성 전에서 꼬마 예수님을 찾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 아버지 집에 내가 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도 성전에서 밤낮으로 지내면서 성전일을 돕다가 하나님의 부르심 을 받고 가장 훌륭한 예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고 미가는 외칩니다.

왜입니까 여호와의 전을 찾을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호와의 전을 찾을 때입 니다. 자꾸만 세상은 성전을 등지고 있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이 성전을 등 지는 때가 바로 하나님을 찾을 만한 때입니다. 성서의 모든 역사는 그러한 것을 증명해 줍니다. 노아의 시대가 그러했고,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의 때 가 그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을 등지는 때가 바로 하나님의 전을 더욱 열심히 찾아야 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보다는 이상한 이 름의 선교단체에 가 예배를 드립니다. 체육관, 운동장에서 드리는 집회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전을 찾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전에서 나옵니다.

 주의 전을 찾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시온에서,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전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은 교회의 역사속에서, 교회안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치하고 물질과 명예욕에 절어 있다면 그 전에서 나오는 말씀은 그런 말씀이 나올 것입니다. 교회에서 파벌과 미움과 다툼만이 일어난다면 거기에서 나오는 말씀은 뻔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를 통해서 증 거됩니다. 교회가 올바로 서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도 굽어질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면 하나님의 말씀도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전에서부터 나오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에서 나온다면 이 성경은 온갖 사이비 신앙인을 만드는 제조기로 전락되고 말 것 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옵니다. 성전에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했습니다.

 누가복음:19: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 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누가복음:20:0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누가복음:21:37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 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요한복음:08:0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오는 지 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사도행전:05: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 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사도행전:05: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 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사도행전:0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 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기를 즐겨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바로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왜 우리들이 이렇 게 예배 중 가장 긴 시간동안 설교말씀을 듣습니까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항상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말씀을 나누기를 했다 했습니다. 성전에서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배우고 생각하는 그 시간이 얼마 나 소중한 시간입니까 오늘날에는 라디오에서도 말씀이 나옵니다. 곧 기독 교 T.V 방송국이 생겨날겁니다. 그렇게 되면 텔리비젼에서도 설교를 듣고 예 배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에서 말씀을 듣는 것은 변함이 없어 야 할 줄로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바로 이 전을 통해서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와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전을 찾아 그 말씀을 듣는 자마다 그 길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찾아 말씀을 듣는 자는 반드시 그가 가르치신 길로 행하여 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고난의 길이어도 좋고, 즐거운 길이어도 좋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고자 하시는 그 길을 우 리가 먼저 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용히 주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 시기 바랍니다.

그 길이 보인다면 그 길에 발을 들여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그 길을 단적인 몇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도를 듣고 행하는 자마다 변해야 할 것은 바로 [평화]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우리 기독인들이 감당해야할 가장 큰 숙제를 저는 [평 화]의 성취라고 봅니다. 세계교회는 '정의 ,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을 위해 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칼은 밭을 가는 보습이 되고, 사람의 가슴을 꿰뚫는 창은 풀을 베는 낫으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도 없어서 자 기가 재배한 포도열매는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평화를 통해서 자신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창조하 십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의 이유를 가지고 삽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이유가 바로 신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만민들은 각자의 빽, 신을 가지고 삽니다.

없는 신을 섬기는 무신론자부터 시작해서 온갖 세상의 신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는 돈이라는 신에게 복종하며 그 신을 위해서 사력을 다해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쾌락이라는 신에게 사로 잡혀서 순간순간을 참지 못하여 육신을 정욕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자들도 있습니다. 명예라는 거짓 신에게 붙잡혀서 남들을 해치고, 질투하며 헐뜯는 것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도 있습 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삽니까 우리는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다니요 라고 물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활동하고, 사고하는 모든 이유는 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6. 하나님께서는 이 전에 있는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존재의 근거로 삼고 살아가는 모든 자, 즉 가난한 자, 저는 자, 쫓겨난 자, 저는 자로 하여금 당신의 나라의 주인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생활이 저는 것 같고, 가난한 것 같고, 쫓겨난 것 같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놔두진 않습니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산에서 영원히 이 땅을 다스릴 그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 나라는 순간적으로 반짝하는 나라가 아니라 영원까지 다스려 질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에는 거꾸로 되는 나라입니다. 앞뒤가 바뀌고, 위 아래가 뒤집히는 기적이 일어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자 , 가난한 자, 쫓겨난 자가 그 나라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자들이 천국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감리교인은 신앙고백으로, '의의 최후승리와 영생을 믿노라'란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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