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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젼 (엡 0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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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으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것을 위해 간절하게 간구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모습, 그 정말 이러한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했고, 또 이러한 하나님의 비젼을 같이 공유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향한 그 하나님의 열정이 우리에게도 부어지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비젼을 향하여 같이 기도할 때, 지금 천국에서도 예수님이 그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계시고, 이 땅에 계실 때, 그것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또 성령님이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고, 온 세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것을 기도하고 계시고, 이러한 하나님과 성도들, 온 천사들이 기도하는 그 기도가 합해져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지는 그러한 일을 위해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교회 적으로나, 훈련원, 선교회 적의로 하나님께서 중보기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이시기 위해서 인도하고 계신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이 부분을 다시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오늘 이 말씀을 다시 상고해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이 시간 하나님의 비젼을 같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부터 16절까지 읽겠습니다.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 구절은 우리가 잘 아는 구절입니다. 소위 말하는 오중사역에 관한 그 구절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중사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젼이 거기에 나와있는 것 같습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젼이 거기 들어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뚜렷하게 들어있습니다.

‘ 네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일꾼들을 세우시는 겁니다.

11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하나님이 이들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사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위하여 사람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은사 중에서 직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오중사역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네 가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혹은’ 이란 이 말은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그 다음에 혹은 목사와 교사” 이렇게 말해서 목사와 교사는 한 직분이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사와 교사일 경우에는 목사는 목사로서의 사역도 감당하고 교사로서의 사역도 감당하기 때문에 한 직분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섯 직분이건, 네 직분이건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군들을 교회를 위해서 세우신다는 겁니다. 우선 여기에 나오는 이 직분들은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에베소서 4장 전체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 위에 보시면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말하는 그 부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령의 은사로서의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들을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 세 단계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성령의 은사는 크게 세 단계가 있습니다. 그 세 단계는 첫째가 성령의 나타나심, 둘째는 사역, 셋째는 직분 이렇게 세 단계가 있습니다. "은사 지체만은" 무슨 말이냐 면 성령의 나타나심은 성령께서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1]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은사들은 다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예를 들면 치유기도를 하는데 다른 때는 안 그랬는데 그 날은 기도했더니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게 아픕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기도 받는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아프다고 그럽니다. 실재로 그분이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픈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그 기도 받는 분을 하나님께서 만지시기 위해 여러분에게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데 갑자기 그림이 보일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른 경우에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성경구절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성경구절을 펴 보니까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태,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해결책, 그것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주어진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했더니, 어떤 때는 그 사람이 나았다고 그럽니다. 다른 때는 그런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 경우는 그 기도 받는 사람을 위해서 치유의 은사가 여러분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일학교 교사로 가르칩니다. 그런데 가르치다보면 어떤 때는 예화나 전에 한 경험이 그 가르침이 딱 떠올라요 그래서 그대로 가르쳤더니 그 듣는 학생들이 선명하게 그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가르침의 은사가 그 사람에게 지금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사 중에 첫 번째 단계는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이 나타나심은 성령께서 그때그때 택하시는 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다가 아무 때나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은사는 소유가 아니라 나타나심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의 나라 일을 위해서 힘써 나갈 때 주님의 명령을 따라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돕기 위해 성령께서 그때그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나타나심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종류의 은사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에게 지식의 말씀의 은사도 나타날 수 있고 지혜의 말씀의 은사도 나타날 수 있고 예언의 은사도 나타날 수 있고 다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항상 다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택하시는 때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때그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다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2] 단계는 사역입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에는 모든 종류의 은사들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택하신 때에 나타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역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은사가 어떤 사람에게 더 강하고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가르칠 때에도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교사로서 교회에서 가르치는데 학생들에게 가끔 ‘번쩍’하고 하나님의 지혜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말했더니 하나님이 원하시고자 하는 것을 딱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의도하고자 하는 것이 선명하고 뚜렷하게 눈에 보입니다. 그것은 가르침의 은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것이 자주 나타납니다. 제가 얘기해도 저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것이 왜 자주 나타나야 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침의 사역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자주 비유를 듭니다 만은 저도 어떤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예언을 주시기도 합니다.(감동)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사역할 때는 주실 수 있지만 그렇게 많이 안 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못 주시는 것이 아니고 안 주십니다. 어떤 분은 제가 집회가면 저한테만 와서 기도 받아야 될 줄로 생각합니다. 얘기해도 그래도 강사니까 와서 기도 받는다고 그럽니다. 여기 오는 분들도 다른 분한테 기도 받고 꼭 나한테 기도 받아야 되겠다고 하는 그런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기도 받아야 별 감동 안 주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안 주십니다. 왜냐하면 사역이 다르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런데 종종 주실 때가 있는데, 그것은 기도 받는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필요하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옆에서 보고 있다가 자기도 기도해 달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 뒤로 아무런 감동을 안 주십니다. 그러면 아무 감동이 없으니까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차별 대우 한다고 그러는데 차별 대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 같은 경우에는 기도만 하면 그냥 하나님 말씀을 쫙 주십니다. 아주 깊은 부분까지 터치(touch)하십니다. 예를 들면 햇빛교회 양순자 사모님이 그러합니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하면 그분에게는 예언 사역이 맡겨진 것입니다. 그분이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은사는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분이 저보다 기도 많이 하고, 그분이 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이 저보다 더 영적으로 성숙하고, 반대로 제가 그렇고 하는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하십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은사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역에 접어들면 어떤 은사가 더욱 강하게 빈번하게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분에게 그 사역을 맡긴 것입니다. 이 때는 한 사람에게 모든 사역이 다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때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은사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은사들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사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3] 단계는 직분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이렇게 성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사역들을 보고 성령님이 하신 것을 분별하여 보고 그를 그 사역의 자리로 임명할 때 직분이 되어집니다. 자!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소위 오중사역이라는 직분은 그렇게 성령의 은사로 주어진 직분들을 말합니다. 성령의 은사로서 사도도 직분을 말하고, 선지자도 그 직분을 말하고, 복음전하는 자도 그 직분을 말하고, 목사와 교사도 그 직분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하시는 것을 보고 임명되어진 직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교회에 주어진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직분들을 세우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도와 선지자는 초대교회로 끝났고, 오늘날은 더 이상 사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럽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이렇게도 원하고 저렇게도 원하는 그러한 것이 없이 정직하게 제가 중립에 서서 볼 때, 사도가 초대교회로 끝났다는 성경적인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사도는 초대교회로 끝났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뭐와 똑 같은가 하면 일부 세대주의 신학을 믿는 사람들이 치유, 예언, 방언, 방언통역과 같은 은사들과 표적과 기사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들은 초대교회로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도 또한 전혀 성경적인 근가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방언과 예언이 끝났다고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고린도전서 13장 8절-10절에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페하리라 그래서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폐하리라고, 그러면서 그 온전한 것이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이 있으니까 부분적인 것은 폐한다고 그랬는데 거기에 그 내용을 자세히 보시면 그 온전한 것이 전혀 성경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 지식도 폐해야 합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 대로 거기 온전한 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를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더라도 표적과 기사가 초대교회로 끝났다 치유가 끝났다 라고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성경구절도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신학적인 견해를 가지고 말할지 몰라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도와 선지자가 초대교회로 끝났다는 것도 자기들의 신학적인 견해를 가지고는 말할 수 있어도 성경 어디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초대교회로 끝났다는 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구절이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한번 찾아보십시오. 없습니다. 그 끝났다고 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사도행전 1장에 가룟유다 대신에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맛디아를 사도로 세우는데 그 사도의 조건이 뭐냐하면 예수님의 공생에 시작부터 부활까지를 같이 다니면서 목격한 사람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끝났다고 말하는데 성경에 보면 그 열 두 사도만이 사도가 아니고 그 외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성경은 사도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바울도 그렇고 바나바도 그렇고 아볼로도 그렇고, 마가, 누가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생전에 보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을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성경의 은사로서의 사도를 말합니다. 직분을 말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성경 어디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초대교회로 끝났다는 게 없습니다.

반대로 특별히 두 가지를 보면 이 모든 직분들이 오늘날에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고린도전서 12장을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2장 역시 은사에 대하여 말하는 구절입니다. 28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 행하는 자요…. 29절 다 사도겠느냐” 답변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 직분 중에 처음 세 부분(사도, 선지자, 교사)은 여기에 다 있지요. 나머지는 없고, 자! 그러면서 “다 사도겠느냐”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자로서의 그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안 나타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오늘날에도 가르치는 은사가 있고, 능력의 은사가 있고 병 고치는 은사가 있고, 이런 다양한 은사들이 있는데, 지금 성령의 은사 중에서 이러한 직분들을 쭉 말했는데 그 중에도 유독 사도와 선지자만 초대교회로 끝났다 그것은 전혀 말이 안 됩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은사들을 교회에 주셨다고 말하는데 유독 하필이면 중요한 두 개가 초대교회로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이렇게 세우셨는데 언제까지 그 일이 진행 될 것을 말하고 있는가 하면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러니까 영어 성경에 보면 제일 첫 번째가 until(....까지)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와 같이 교회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를 때까지 이 일이 계속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여기서 나오는 직분들은 하나님께서 은사로써 교회들에 세우신 직분들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 직분들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세우신 목적은 성도를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에베소서 본문을 보시지요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것은 원래 원어를 잘못 번역하고 있습니다. 문맥상 원래 원어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N.I.V성경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to prepare for God's the works"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섬김의 일을 위하여 준비시키기 위함이라” 여기에 제가 읽은 N.I.V 'prepare' ‘준비시키다’ 혹은 킹 제임스에는 'perfecting' ‘온전케 하여’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성도를 양육시키다' '성도를 무장시키다' 하는 두 가지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직분들을 세우셨는데, 하나님이 이 직분을 세우신 이유(목적)가 뭐냐하면 성도들을 무장시키기 위함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위해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섬기는 일이라고 하니까 교회에서 청소하고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포함되겠지만 여기에 섬김의 일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합니다. 여기 잘 보세요. 하나님이 직분들을 세우셨는데, 이 직분들을 세우심은 성도들을 양육시키고 무장시켜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직분을 세우셨다고 그랬습니다.

여기에 보면 아주 중요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이 뭐냐 면 전 성도 사역자화가 신앙적이고 하나님의 비젼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일은 교회에서 월급을 받는 소수의 목회자들이 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다른 성도들은 와서 그저 목회자가 주는 것 받아먹고 위로 받고 목회자의 위로의 대상이 되어지고 헌금해서 목회자 월급 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실 때, 그러한 목회자로 세우지 않습니다. 당연히 목회자로 하여금 여기나오는 이 사도와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하여금 그들이 주의 일을 감당하도록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 맞는 얘기 되 그들만 주의 일을 하고 성도들은 그저 와서 듣고 월급 받도록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분자들을 세우신 이유가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 세우신 목적은 뭐냐 면 이 직분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무장시키고 양육시켜서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보이십니까 그러니까 전 교인 사역자화가 하나님의 비젼입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무엇을 보게 되었냐 면 이것이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마태복음 28장을 보세요. 우리가 여러 번 살펴보았지만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말한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가 너무나 똑같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은 대 위임령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으로 말하면 유언과도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곧 바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오셨기 때문에 인간의 유언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제자들을 볼 때는 이제 마지막으로 저들을 보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대 위임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지금 여기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500명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 누가 있어요 12제자가 있고, 70명의 제자가 있고, 사실 그들이 주축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이제 그 500명중에서 다 돌아가고 120명이 남았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예수님은 오늘날 목회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역을 실패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왜곡시켜 가지고 여주봉 목사가 그러는데 예수님이 실패했다고 그러더라, 그것이 맞느냐 그러니까 그것을 듣는 목사님이 그것은 십 중 팔 구는 이단이다. 빨리 나와라 그랬답니다. 하여간에 왜곡시키는 것도 대단히 머리가 뛰어납니다. 내가 예수님의 사역이 실패했다고 얘기 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목회자적인 관점, 특별히 교회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제 말은 당연히 예수님이 옳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 성장의 관점이 틀리다는 얘기입니다. 그 말을 그렇게 얘기 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면 오늘날의 교회 성장의 관점으로 보면 그 엄청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능력)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왔고, 그렇게 예수님을 줄기차게 따랐고, 그야말로 좀 쉬기 위해서 산 속으로 도망갔는데 거기까지 미리 알고 와 가지고 식사할 틈도 없이 그냥 수 천, 수 만 명이 몰려다닐 정도였는데, 오늘날 목회자들 같으면 최소한 오십만, 육십만이 넘는 교회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 가버나움 성전, 갈리리 성전, 가나 성전,... 지 교회 만들어 놓고 제자들 파송하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 가르치시고 승천하신 뒤 남은 사람들이 겨우 120명 남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냐 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는 그저 사람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람 끌어 모으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만, 예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 얘기하시니까 사람들은 그것이 부담에 되어서 다 떠났습니다. 제가 이것을 두고 말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여기 500명이 남아 있을지라도 그 중에서 380명은 떠나갔고, 겨우 120명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수님의 동생들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을 보면 맛디아를 채워서 12명이 있었고, 70명의 제자들 중 대부분이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계산해 본다면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 70명의 제자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그리고 주님과 같이 다니던 몇 사람 빼놓고는 사실 거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120명을 가지고 세계를 바꾸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바로 그 12명과 70명의 제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제자들이 주축이 된 그 무리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대상이 누구인지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그 명령을 받고 온 세계로 나가서 제자를 삶는 그들이니까 바로 여기에 그 명령을 받는 대상은 12제자와 70명의 제자와 같은 120명의 남은 그 무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억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지요 자! 그러면서 그들에게 명령하기를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에 명령문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원어에는 이것이 명령문입니다. 자! 그러면 한번 물어봅시다. 여기에 제자를 삼으라고 그럴 때, 이 제자는 모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까 아니면 목회자나 선교사처럼 풀타임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만 말합니까

예수께서 지금 그들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들을 삼으라고 그랬는데 그 제자들은 첫째 모든 성도들을 가르친다. 둘째 성도들 중에서 특별히 헌신되어 주의 일을 전적으로 하는 그러한 여기 나온 제자들처럼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풀타임의 사역자를 말한다. 자! 첫 번째가 맞다 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두 번째가 맞다 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지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은 당연히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 보아도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소위 말하면 사람들을 교회에 붙잡아놓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뭐냐 면, 여기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은 두 번째와 같은 특별한 풀 타임(full time) 사역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여러분은 일반 성도들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안 지켜도 된다고,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일반 성도들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되며 네가 범사에 자되며 강건하기를 원한다. 복, 복, 복만 받으면 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할 것이니라. 너희가 나보다 너희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을 더 사랑하면 나에게 합당치 않다.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희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한 내용은 일반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이 말씀은 특별히 목회자가 되는 사람에게나 해당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맞나요 틀립니다. 왜 그런 것이 나왔냐면 사람 비유 맞추려고 나온 말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제자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더 말할 것 없이 뚜렷합니다.

복음서도 이 구절을 보면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보세요. 여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지금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그런데 제자를 삼음에 있어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주라. 왜 이 침례(세례)를 주란 말은 그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게 하라 그 말입니다. 성경에 침례나 세례는 예수 믿고 그 징표로 의식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 삼아라" 이렇게 말하면서 또 하나 내가 너희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너희가 가서 저들에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저들로 지키게 하라. 이것은 대단한 말씀입니다.

하나씩 살펴봅니다. 이 말을 우리 입장에서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이 저기 계셔서 그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어요. 그럼 그 명령을 받고 이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제자 삼으려고, 그럼 우리에게 와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예수 믿게 해야합니다. 그 다음에 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가르침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럼 이 말이 무슨 말인 줄 아세요 이 말은 모든 성도는 다 열 두 제자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full time 사역자가 되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주님을 따르는 자세, 주와 동행하는 삶, 가치관, 이 모든 것은 당연히 우리는 열 두 제자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가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오늘날 사람 위주로 사람 붙잡아 놓기 위해서 인본주의 신앙이 가득하니까 이러한 것은 껄끄러우니까 적당히 넘어가는 방법이 뭐냐 면, 그것은 목회자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이렇게 나갑니다. 전혀 비성경적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예수님의 사역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의 사역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정확하게 같은 것을 가르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보았습니다. 제자들도 정확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럼 보십시오, 저들에게 가르쳐 분부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행하게 한다면 우리는 뭡니까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그 말씀, 그 토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그 말씀의 토대 위에서 우리가 행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해야 됩니다. 오늘 에베소서에 나오는 본문 구절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역자들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무장시켜서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령하신 것처럼 그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무장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살았던 것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렇게 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던 그렇게 주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너무나 똑같습니다.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 가치관 속에는 뭐가 들어있냐 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바고, 그것이 에베소서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가지고 계신 비젼입니다. ‘그것이 vision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역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릇된 이해들이 하나님의 일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도들이 사역을 하잖아요.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같이 사역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아니 목사가 안수권이 있고, 축복권이 있지 어떻게 감히 평신도들이 안수하느냐고 그럽니다.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제가 여기서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가치를 달리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이기 때문에 제가 강하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만은,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린 대로 제자 정직하게 성경을 볼 때, 여러분 다르게 보면은 자한테 그 구절을 가져와 보세요.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신학의 틀 가지고는 증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경 어디에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볼 때, 안수 받은 목회자만 축복권이 있다는 얘기는 그것은 전혀 비성경적입니다. 어디든지 찾아보십시오. 아무데도 없습니다. 축복권이란 그 자체가 비성경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고 베드로(제자들)에게 말씀 하셨는데, 그것이 목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까 그 구절을 볼 때, 모든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대단한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만 축복권이 있다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어떤 분들이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에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쓰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데, 그러면서 소위 축도의 내용들이 나오는데, 이것을 축복권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인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복을 빌 수 있습니다. 제자 침례교 출신이라 몰라도요. 미국에서는 제일 큰 교단이 미 남침레교단입니다. 복음적인 교단으로 거기서는 성도들도 축도합니다. 축도하는 개념이 우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목사만 축도권이 있다. 그분들에게 얘기하면 웃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제사장을 오늘날의 목회자에게 비교해서 그들에게 축복권처럼, 축복권을 말하면 그것은 전혀 성경을 갖다 맞추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목회자가 제사장적인 임무도 감당하지만 구약의 제사장은 오실 메시야 예수님에 대한 상징이지, 목회자의 상징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성경이 말하는 장로, 감독이 다 목회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장로는 목회자하고 똑같은 직분입니다. 장로교에서도 다 인정하는 바입니다. 성도를 돌보는,...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그릇된 이해들이 하나님의 일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성도가 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실 안수하는 개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안수를 무슨 희안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안수는 다른 것이 아니고 안수란 말은 손을 얹는다 그 말입니다. 여러 가지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우성 하나는 직분을 임명할 때 쓰였습니다. 좋은 예로 여러분 김장환 목사님 아시지요. 그 목사님은 이미 안수 받았어요. 그리고 세계 침례교 연맹에서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안수를 받았습니다. 무슨 안수를 또 받느냐 고요. 그것은 세계 침례교 연맹의 회장으로써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안수해 준 것입니다. 어떤 신분을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그 직무를 감당하는데 그에 필요한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도록 교회가 축복하는 겁니다. 이러한 안수는 우리가 물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나 성도인데 안수할거야 하지 마세요. 당연히 그것은 말이 안되지요.

성경에 보면 안수란 손을 얹는 다는 말인데 또 언제 얹습니까 예수님께서 많은 경우에 손을 얹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도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겁니다. 안 얹을 때도 있지만, 우리의 모델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목사들만 손을 얹어라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전혀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데,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고 또 한 가지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 속에는 삶의 가치관, 삶의 자세, 삶의 태도뿐만 아니라 사역에 관한 부분이 분명히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그러므로 전교인 사역자화가 성경적입니다. 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비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이 직분들을 세우셨는데 이들만 주의 일하라고 세운 것이 아니라니까요. 이들을 세우신 목적이 있다니까요. 이들은 세우신 목적은 성도를 양육하고, 무장시키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태까지 치유사역만 하더라도 그래요. 예를 들면 치유능력이 강한 한 사람이 앞에 서면 모든 사람이 와서 기도 받고, 한 사람은 사역하면 다른 사람은 다 받는 입장이고, 한 사람은 그저 영웅처럼 그야말로 믿음의 대가처럼 앞에서 그냥 이렇게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사역을 안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안 하는 이유가 있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강하게 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분대로 지체로 섬기는 것이고, 모든 성도들은 다 양육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그것이 여기 나오는 대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비젼입니다. 아멘 여러분 모두 다가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다가 열 두 제자처럼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모두 다가 살아가는 목적, 살아가는 자세,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 사역을 감당하는 것, 열 두 제자처럼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서 아이구, 목사님이야 그렇게 살 수 있지요. 목사님은 교회서 월급 받는 분이고 직업이니까 그렇고, 나는 세상 살아갈 때,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나요. 우리가 그렇게 살면 성자이게요. 여러분 그것은 전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과 직업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쓰시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살아가는 자세, 삶의 태도, 예수님 사역을 감당하는 것, 감당하는 방법 그 모든 것이 같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이고, 그것이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비젼입니다.-믿으세요-

여러분의 생각에 와 닿는다. 안 닿는다.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그러한가 안 그러한가를 보십시오. 성경이 그러하면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왜 많은 분들이 주님 못 좆아가는 줄 아십니까 설교를 다 듣고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맞으면 할렐루야! 아멘 인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인 맞으면 안 받아드립니다. 그럼 평생 가더라도 고 부분 이상은 안 바뀝니다. 그것은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면 바꾸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교인 사역자화가 성경적이라고 사실 우리가 만민제사장 설을 믿지 않습니까 자 그러면 우리가 그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은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왜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러분 이 에베소서 4장이 지금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구절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양육 받아서 이제 주의 사역을 감당해야 되는데, 그 감당하는 방법이 여기 16절에 아주 잘나와 있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아멘, 자 여기 보시면 크게 세가지 아주 중요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주의 사역자로 섬기며 감당함에 있어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직분을 세우신 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을 양육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주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러면 각 성도들이 주님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point가 여기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각자가 주님의 주권아래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는 주님을 전존재로 사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여기 보시면 “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는다 ” 우리가 다시 말하면 주님 안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 ” 여기 보십시오. 여기 구절을 보시면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양육되어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가장 먼저 해야될 것이 우리 각자가 머리에 붙어 있듯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삶이 되어지지 않으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사역 이전에 그 삶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여기에 중요한 것은 성령의 나타남과 사역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뜻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 이겁니다. 우리를 지체로 비유하고 있어요.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령의 은사와 너무나 똑같은 얘기입니다. 우리를 지체로 비유하고 있는데, 우리 각 지체가 그렇듯이 보세요. 손가락이 손가락대로 움직이고, 바라가락이 바라가락대로 움직여야 우리가 전체를 움직이듯이 우리 각자가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대로, 이것이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는 대로 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나타나시는 대로 섬겨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보여 주냐 하면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고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나타나심이든지, 그것이 사역이든지, 그것이 직분이든지 우리가 다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있어야 그것을 통해서 우리 각자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느냐 면은 대리만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박찬호 선수 돈 엄청나게 받습니다. 왜 그렇게 많이 받는 줄 아세요. 오늘날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이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자기가 직접 운동장에 나가서 뛰는 것은 별로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안 뛰는 대신 잘 뛰는 몇 사람들이 뛰는 것을 구경함으로써 우리가 뛰는 것을 대리 만족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좋아하니까. 구단들과 광고업자들이 많은 돈을 받고 그것을 파는 것이고 그것으로 많은 수입을 벌어드리니까 대리만족을 위해 나가서 뛰는 선수들은 그들로 인해서 얻어지는 수입 중에 상당부분이 자기 몫으로 받으니까 엄청난 돈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각하게도 교회 안에서 그렇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장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는 가만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소수의 소위 말하면 영적인 거인(giant)들이 잘하는 것을 보고 그냥 좋아하면 됩니다. 그리고 헌금 조금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교회를 만드실 때, 그러한 교회가 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그랬는데, 몸 중에서 대부분은 굳어있고 입하고 눈만 살아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반신 불수만 해도 그것이 심각한데,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대리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주권아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냐 면 우리 모두가 성령의 기름부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성령의 나타나심, 사역, 직분이 다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가 섬겨야 합니다. 아멘, 아무도 방관자가 없게 되글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여기 보시면 ‘서로 연락하고 상합’해야 합니다. 조화 가운데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아까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냐 면 축복권이란 것이 어디 있느냐 근본적으로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말입니다. 있다면 모든 성도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권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목사 필요 없네. 아닙니다. 그것도 전혀 아닙니다. 여기 보면, 이와 같이 모두가 주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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