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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 (단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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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다니엘서의 결론인 동시에 세상역사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역사는 속고 속이며 먹고 먹히는 역사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용돌이 가운데서 신자들이 가져야 할 내적 확신이 무엇이며 희망이 무엇이며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니엘과 같이 빛나고 의미있는 삶을 끝까지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세상왕들의 권력싸움 (11:1-27)

11:1절은 10:21절에서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을 멸망시킨 장본인은 다리오가 아니라 주님 자신이심을 말해줍니다. 주님께서 천사 미가엘을 도와 바벨론 군대를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세상역사는 강한 군사력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절대주권과 권능으로 주관해 나가심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참된 것(the truth)”을 보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참된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로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반드시 일어날 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다니엘에게 계시하시는 일들은 300년 뒤에 일어날 사건들이지만 역사적으로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성과 신실성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말씀입니다. 21-2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장차 일어날 세상왕들의 권력싸움에 대한 계시의 내용입니다.

첫째, 바사왕들로부터 알렉산더 대왕까지(2b-4):2b를 보면 바사에서 고레스왕 이후 세 왕들이 더 일어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캄비세스(B.C.529-522), 스메르디스(B.C.522-521), 다리오 히스타스피스(B.C.521-486)들입니다. 그런데 그후의 네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한 왕이라 하십니다. 그는 크세르크세스(Xerxes)인데,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왕을 가리킵니다(B.C.486-465). 그는 바사제국의 전성기의 왕으로서 부와 권세가 대단하였습니다. 그가 잔치를 한번 벌이면 일백팔십일을 계속하였으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금과 은으로 만든 의자에 앉게 했으며 금으로 만든 잔으로 술을 마시게 하였습니다(에스더1:4,6,7). 그는 이 부와 권세로 무력을 대규모로 증강시켰습니다. 그리고 100만대군을 이끌고 헬라를 침공하여 살라미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이때 국력의 손실이 너무 커 패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2). 그후 헬라에서 한 능력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3). 이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킵니다. 그는 역대왕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에 가장 빠른 속도로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정복한 세계를 임의로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시고 큰 권세를 맡기시는 것은 백성들을 사랑과 공의로 잘 다스리도록 함입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의 좋은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권세로 함부로 다스렸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뉘어 질 것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은 가장 강성한 나이인 33세에 술과 방탕으로 요절하고 맙니다.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육신의 소욕과 감정대로 행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폐하시자 그의 목숨은 물론이요, 그의 나라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나라는 뽑혀 네 장군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왕은 세계를 정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남방왕들에게 권세를 넘겨주고 역사의 무대에서 허무하게 사라졌습니다.

둘째, 남방왕들과 북방왕들과의 싸움(5-27):5절을 보십시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여기서 남방나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후 그의 군장들에 의해 분할된 네 나라중 애굽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남방왕은 프톨레미Ⅰ세(소터)를 가리킵니다. 그는 알렉산더 군장들중 가장 유능한 장군으로서 알렉산더 사후에 남방으로 내려가 애굽을 중심으로 대국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군들중의 하나’는 셀류커스 니카토르(Ⅰ세)를 가리키는데 그는 프톨레미Ⅰ세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그는 알렉산더 통치때 바벨론의 총독으로 일했지만 안티고누스에게 쫓겨 애굽의 프톨레미Ⅰ세에게로 피신하였습니다. 프톨레미Ⅰ세는 그를 환영하여 그에게 애굽군대 지휘권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빼앗긴 바벨론 땅을 회복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셀류커스는 북방 시리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셀류커스는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남방 애굽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5). 그러나 프톨레미Ⅰ세와 셀류커스 Ⅰ세때는 두 나라간에 서로 연합하여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 두 왕은 얼마 못가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들을 이어 남쪽에서는 프톨레미 Ⅱ세가, 북쪽에서는 안티오커스Ⅰ세에 이어 안티오커스 Ⅱ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남쪽 프톨레미 Ⅱ세는 북쪽이 훨씬 세력이 강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불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어떻게 했습니까 6a를 보십시오. “몇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왕의 딸이 북방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는 그의 딸을 안티오커스 Ⅱ세의 아내로 앉히므로 화친을 맺고자 하였고 더 나아가 북쪽을 원격조정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 북족 안티오커스 Ⅱ세는 이미 라오디스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남쪽의 압력에 못이겨 그는 그의 로맨틱한 감정을 누르고 라오디스와는 이혼을 하고 베레니스를 법적인 왕후로 앉혔습니다. 베레니스 공주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에 대해서, 그리고 악인들의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부친의 의도대로 양국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때 프톨레미 Ⅱ세가 죽게 됩니다. 그러자 안티오커스 Ⅱ세는 베레니스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그동안 너무 사랑하여서 밤낮으로 보고 싶어하던 라오디스를 다시 법적인 왕후로 복귀시켰습니다. 그런데 라오디스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이 한번 상처를 받고 마음에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라오디스는 전에 받은 상처때문에 한을 품고 있다가 왕후가 되면서 먼저 베레니스를 죽이고 얼마뒤에는 그녀의 남편인 안티오커스 Ⅱ세도 독살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베레니스에서 난 아들들과 그녀를 도와 주던 자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대신에 그의 아들을 왕위에 앉혔습니다. 그가 셀류커스 칼리니쿠스(Ⅱ)입니다.

다시 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자 중에 하나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왕의 군대를 치러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이 말씀은 베레니스 공주의 친정인 남쪽에서 프톨레미 Ⅱ세를 이어 그의 아들이자 베레니스의 오빠인 프톨레미 Ⅲ세가 왕이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가 권세를 잡자 누이의 죽음을 보복하기 위해 군대를 모아 북방왕의 군대를 쳤습니다. 그는 크게 이겨 북방의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갔습니다(8). 이 전쟁의 원인은 복수심이었습니다. 복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아 이 후에는 양국간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계속됩니다. 복수심은 복수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는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눅 23:34). 9절을 보십시오. 남방왕에게 일격을 당한 북방왕 셀류커스 Ⅱ세는 몇년뒤 다시 군대를 모아 남쪽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전쟁에서 참패하고 본국으로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화병으로 죽고 맙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셀류커스 Ⅲ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아시아 전쟁에서 살해 당하고 그의 동생인 안티오커스 Ⅲ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대왕’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전쟁을 위해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지배아래있던 팔레스틴을 공격하여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남방왕인 프톨레미 Ⅳ세도 크게 노하여 라피아에서 일전을 벌였는데 이 전쟁에서 북쪽 안티오커스 Ⅲ세는 남쪽 프톨레미 Ⅳ세에게 크게 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남쪽이 강하게 되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전쟁에서 이긴 프톨레미 Ⅳ세는 그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혔던 북쪽 군대 수만명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이 대학살의 동기는 교만이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 지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교만으로 인해 그 세력을 더 하지 못하였습니다(12).

13절을 보십시오. 안티오커스 Ⅲ세는 라피아 전투 13년후 바사와 아시아 지역에 원정하여 성공함으로써 전력을 회복하여 전보다 더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다시 프톨레미 Ⅳ세를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마침 프톨레미 Ⅳ세는 죽고 그의 아들 프톨레미 Ⅴ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애굽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안티오커스 Ⅲ세는 이 틈을 이용하여 마게도냐와 동맹을 맺고 애굽의 반란 세력과 힘을 합쳐 프톨레미 Ⅴ세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강포한 자들이 이 전쟁에 가담하여 북쪽 안티오커스 Ⅲ세를 도왔습니다. 이들은 안티오커스 Ⅲ세와 연합하여 애굽과 싸우므로 애굽의 다스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상이 있었습니다 (14). 그러나 안티오커스 Ⅲ세가 프톨레미 Ⅴ세를 이겻지만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팔레스틴 지역을 북쪽 시리아에 합병시켜 버렸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애굽의 지배 아래있다가 이제는 시리아의 지배 아래 들어가 그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안티오커스 Ⅲ세는 이스라엘 땅을 점령한후 성지의 모든 것들을 임의로 다스렸습니다(14-16). 이스라엘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하여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환난과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안티오커스 Ⅲ세는 팔레스틴을 합병한 후 전 군대를 동원하여 애굽을 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쪽 프톨레미 Ⅴ세는 신흥제국 로마와 손을 잡고 상호수호조약을 맺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안티오커스 Ⅲ세는 무력으로 애굽을 정복하고자 하는 계획을 바꾸어 그와 화친을 맺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그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평화사절단의 일원으로 보내어 프톨레미 Ⅴ세와 정략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데는 그의 딸을 통해 애굽을 패망시키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결혼하자 자기 아버지편에 서지 않고 남편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자기 남편을 부추켜서 로마와 동맹을 맺고 로마로 하여금 시리아를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아버지 안티오커스의 계획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자매님은 결혼하면 남편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티오커스 Ⅲ세는 이 평범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딸의 도움을 받고자 하다가 오히려 큰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 보다도 딸을 이용하여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딸을 이용의 대상으로 키우면 딸때문에 큰 화를 당할 것이요 진리에 기초하여 키우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안티오커스Ⅲ세는 더 이상 애굽을 공략할 수 없음을 알고는 얼굴을 돌려 지중해 연안의 땅과 섬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지중해 연안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로마와의 일전이 불가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B.C190년 마그네시아 근처에서 로마 장군 루시우스스키피오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굴욕적인 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스키피오는 안티오커스 Ⅲ세에게 전쟁 배상금으로 매년 2330달란트씩 12년 동안을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안티오커스Ⅲ세는 이 배당금 마련을 위해 자기 땅 산성들을 약탈하다가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19).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 야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의 최후는 이 처럼 비참합니다.

20절은 안티오커스 Ⅲ세의 후계자인 셀류커스 Ⅳ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는 부친의 전쟁 배상금을 떠맡아 이를 갚기 위해 그의 재무상인 헬리오 도루스를 전국에 보내 신전에 쌓인 보물들을 강제로 거두어 들이도록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토색하는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그는 결국 헬리오 도루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21절에서 45절 까지 긴 부분을 걸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Ⅳ)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를 이렇게 길게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힐 장본인이요, 적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21절은 그가 어떻게 왕위를 얻게 되었는 가를 말해줍니다. 그는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비천하다는 말은 야비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왕이 될만한 내면성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권모술수와 궤휼에 능하여 평안할 때를 타서 궤휼로 그 나라를 얻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인질에서 도망하여 나오다가 형 세류커스 Ⅳ세의 암살 소식을 듣고는 급히 달려와 헬리오 도루스와 그의 동맹군을 물리치고 궤휼로 조카 대신에 왕이 되었습니다. 22절은 정적들을 어떻게 물리치는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23절은 그의 이중성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화친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조약을 파기하고 겁탈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애굽의 심장부까지 진격하여 많은 전리품을 노략하였으며 탈취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세력을 견고히 하고자 탈취한 물건들을 자기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23,24).

25,26절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어떻게 모략을 베풀어 애굽왕 프톨레미 Ⅳ세를 사로잡았는가를 보여줍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군대와 프톨레미 Ⅳ세 군대가 일전을 하게 되었지만 프톨레미 Ⅳ세의 신하들이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사주를 받아 자기들의 왕을 배반하므로 결국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무력 충돌없이 모략으로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왕이 한 밥상에 앉아 평화조약을 맺지만 서로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이 형통하지 못하게 됩니다. 27b에서 “이는 작정된 기한에 미쳐서 그 일이 끝날 것임이니라.” 는 말씀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아무리 큰 야심을 가지고 궤휼로 성취시키고자 하더라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그일이 끝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남방왕과 북방왕사이에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복수심과 왕들의 권력욕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왕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돌보도록 위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의 욕심과 개인 복수심때문에 싸우는 잔인한 전쟁 기계에 불과하였습니다. 또 그들은 음란하고 부패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로인해 내면에 생기는 두려움을 해결하고자 마술사들이 전문적인 거짓말쟁인줄 알지만 그들을 의지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왕들은 국민을 위하고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명분하에 똑같은 속성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고 절대 주권과 섭리가운데 세상 역사를 주관해 나가십니다.

Ⅱ. 적 그리스도의 모형 (28-45)

28절에서 45절까지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과 관련해서 행한 모든 악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가 행한 역사적인 사실도 있지만 상징적인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부분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통해 장차 온 세상을 괴롭힐 적그리스도의 역사가 어떠할 것인가를 계시한 것입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애굽을 정복하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마음으로부터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며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였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그는 다시 애굽을 치기위해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애굽이 로마와 맺은 상호수호조약때문에 로마의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30a절에서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는 말씀은 로마의 배들이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군대를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군대는 애굽의 요청으로 라이나스 장군 인솔하에 배들을 파견하였습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라이나스의 위협으로 어쩔수 없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는 낙심하며 돌아가는 길에 그 분풀이를 만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유대교의 배교자들을 주목하고 이들을 통하여 핍박하였습니다(30). 31절을 보십시오. 그는 또한 군대를 동원하여 성소를 더럽혔으며 할례받는 어린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잡아 양 대신에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돼지 머리를 먹지 않으면 죽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므로 유대교를 말살하고 헬라주의를 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때 배교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32b를 보십시오.“....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 이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들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을 때 결코 참지 못하고 대항하여 싸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핍박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고자 하는 참으로 용기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배교자들과 달리 하나님을 배반하며 이 땅에서 구차이 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싸우다 순교하는 길을 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뿐아니라 또 다른 믿음의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지혜로운 자들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시대가 어려울수록 더욱 말씀 전파에 힘쓰는 자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어렵고 핍박이 있으면 자기 중심적이 되고 이기적이 되어 배교하거나 두더지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때 일수록 더욱 말씀전파에 힘쓰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가르치다가 칼에 죽기도 하고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기도 하였지만(33) 조금도 타협지 않고 말씀전파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들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1:1용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 같지만 성경은 이들이 지혜로운자라고 선언합니다(33).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의 지조를 지킨자들이 핍박받고 순교당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것입니까 35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을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쇠퇴하여 무리로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되어 마지막 날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이들은 고난을 통해 연단받게 되며 모든 세상적인 욕심과 또한 연약하게 만드는 약점과 허물이 다 사라지고 정결케 되며 희게 되고 마지막까지 견딜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잠시요 하나님의 작정된 기한이 되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주안에서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됩니다.

36-45절까지는 적그리스도의 특징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적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적그리스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합니다. 그가 때로는 진리의 말씀을 앞세우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이 아니요 그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뜻을 이루는 데 있었습니다. 둘째로,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 열조의 신들과 여인들이 사모하는 것, 곧 메시야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통일교는 문선명을 참 아버지라 부릅니다. 셋째는, 세력의 신을 공경합니다(38). 적 그리스도들은 모든 신들을 부인하지만 한가지 공경하는 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력의 신입니다. 이들은 힘이 있으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규합하기 위해 자기에게 나오는 자들은 모두 환영하지만 기독교 공동체는 할 수 있는데로 깨고자 합니다. 38절에서 “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신”은 사단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사단의 똘만이들로서 사단을 섬깁니다. 적그리스도는 온갖 보물을 드려 사단을 공경합니다. 적그시스도는 자기에게 아부하는자에게 권세를 주고 뇌물을 받고 땅을 분배하기도 합니다(39).

40-45절까지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로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적그리스도들이 더욱 기승을 부려서 영화로운 성, 곧 예루살렘에 본부를 두고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입니다(40,41). 그들은 단일 세계정부, 단일 세계종교를 베푸는 그리스도로 위장하여 세계를 다스리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그의 끝이 이르게 됩니다. 진리에 기초하지 않고 거짓과 위협으로 세력을 확장한 이들은 도와줄자가 없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45). 이는 하나님께서 그 주권대로 작정하신 것입니다(35b,36b).

Ⅲ. 마지막때에 일어날 일들 (12장)

이 마지막장은 11장의 결론이요, 세계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계종말의 징조는 도덕적 타락과 폭력, 탈도덕, 진리에 기초한 가치관 붕괴와 재난의 연속입니다. 세계 종말이 가까와 질수록 사람들은 노아시대와 소돔고모라시대와 같이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하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이 되어 쾌락에 탐닉합니다. 사람들은 과학문명의 이기를 즐기면서 할 수 있는데로 편리한 생활을 하며 쾌락을 즐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종말의 징조는 재난과 전쟁과 끔찍한 사건들이 연속되는 대 환난이기 때문입니다. 12:1절을 보십시오. 이런 환난의 때에도 하나님은 천사 미가엘을 통하여 택하신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자들을 기억하시고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마지막때에 잠자는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 나팔 소리와 함께 모든 잠자는 자들이 부활하게 될 사건을 가리킵니다(고전 15:52). 그러나 이때 두종류의 사람들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영생을 얻는자요 다른 하나는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들입니다. 세상유혹과 적그리스도의 핍박이 많은 세상에서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진리의 길을 간 성도들은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요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지 못하고 배교하는 자들은 영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성도들은 비현실적인 사람들, 고리타분한 사람들, 분위기 깨는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로 취급받아 소외당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은 이기적으로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 희생적인 삶을 산다는 이유때문에 어리석은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지혜로운 자로 보십니다. 그들은 어떤 환난가운데서도 타협치 않고 복음신앙을 지킨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사느라 고난과 멸시와 수치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빛나는 영광의 옷을 입을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빛나는 인생은 어떤 삶을 산자들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인생의 과정에서 아픔이 있고 손해가 있고 실패가 있을지라도 최후에 승리한 자가 진정으로 승리한 자입니다. 지혜있는 자, 곧 영생을 위해서 작은 손해를 기꺼이 본 자들은 지혜롭습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은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납니다. 그들은 영원히 스타가 되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이는 영화의 스타나 금뱃지를 단 그런 스타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스타들이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스타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 주님의 일을 하느라 피곤하고 얼굴에 주름살이 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황태자요 황공주가 될 것입니다. 고난은 잠시이지만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때에 이 땅에서 힘써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에 절대 진리가 없기 때문에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릅니다. 막연하게 그때 그때 유익을 좇아 살다가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을 옳은 길 생명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세상에 그 어떤 일보다 귀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열심히 심방을 해야하고 또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캠퍼스에는 각종 선전 플랜 카드는 많이 붙어 있지만 막상 그릇된 길로 가고있는 자들에게 심방가지는 않습니다. 또 철학적인 말, 인생사는 비결은 말하지만 진리의 말씀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방하여 진리의 말씀을 가르칠 때만이 옳은 데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제자 양성을 해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9절 까지는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십니다. 옛날에는 성경책이 양피지에 쓴 두루마리 책이기 때문에 둘둘 말아서 성경이 상하지 않도록 통에 넣어서 소중히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참 뜻은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숨기라는 뜻이 아닙니다.두더지 같은 신앙생활을 하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이는 진리의 글을 알고자 하는 자들,즉 영적 소원이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이 올바로 전달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들 위해서는 소원있는 자들을 중심으로 제자 양성을 열심히 해야합니다.

셋째로,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가야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마지막 때의 특징은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스피드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모르게 바쁩니다. 또 교통수단도 엄청나게 빨라져 음속시대에서 마하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또한 지식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최근 30 년간 쌓은 지식은 그 이전에 인류가 쌓은 지식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컴퓨터의 발달로 지식은 눈덩이와 같이 불어갑니다. 확실히 말세가 가까이 왔습니다. 5절에서 12절까지는 말세에 사는 신자들이 인내로써 구원을 기다리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다니엘 너 만큼은 끝까지 너의 길을 가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바다의 파도와 같이 요동하고, 환난과 핍박이 심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화려하고 살기가 좋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런 세상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한 길 믿음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처럼 앞으로도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다해도 이 길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길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앞서간 길이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한 길입니다. 이 길은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어떤 유혹과 핍박이 있더라도 주님오시는 날까지, 우리가 주님앞에 서는 날까지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끝까지 복음 신앙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평안한 쉼을 얻고 끝날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세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마지막 때에 사는 우리들이 세상사람들과 같이 살것이 아니라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힘써 말씀을 전파하며,제자를 양성하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자들은 궁창의 빛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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