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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간증 (딤전 01:12-17)

첨부 1


1. 배경 바울은 AD 57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2년 동안 가이사랴의 감옥에 수 감되었다(행 21:9-26:32). 그리고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떠 난 것은 59년 9월이었다. 그런데 배가 파손되어 3개월간 멜리데에서 머물렀 고 60년 2월에 로마에 도착했다(행 27-28장). 거기서 그는 자신이 빌린 집에 서 기거하면서 사역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후에 바울은 고소가 취하되어 무죄로 풀려나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 후 2년 동안 여러 지역에서 사역을 했고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다. 약 65년경 에 그는 다시 체포되었고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때 그의 마지막 편지 인 디모데후서를 썼다.

 2. 중심사상 바울은 자신에게 주의 은혜가 임하였음을 감사, 찬양하고 있다.

 3. 중심요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 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15절).

 4. 바울의 프로필 1)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강요 한 훼방자였다. 그는 교회를 멸하고자 물리적인 힘을 사용한 핍박자였다. "살기 등등한 위협"은 그에게 있어서 불가결한 것이었다(행 9:1). 그는 그리스도의 교 회를 핍박했는데(고전 15:9), 그후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이 붙잡고 자 했던 것임을 깨달았다(행 9:4). 바울이 랍비 사울이었을 때 그는 스데반을 돌 로 치는 것에 동의했고 교회를 크게 파괴시켰다(행 7:58, 8:1-4).

바울은 포행자였다. "포행"이란 말의 원래 뜻은 "거만한, 고집불통의"이 다. 현대어로 "윽박지르는 자"라 할 수 있다. 그 말에는 폭력으로 "권력을 행하 는" 거만한 자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그가 불경한 행위를 했던 근본적 이유 는 "무지"와 "불신"이었다. 비록 사울이 영민하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할

서론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2) 바울은 지금 현재 매우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주님처럼 집 한채, 방 한칸조차 마련되지 못한 최악의 환경에서 악전고 투하고 있었다.

3)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는, 매 우 감격스러운 신앙을 간증하고 있다. 무엇이 바울을 이렇게 만들었 는가

I.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다(12-14).

A. 직분 맡겨주심을 감사드렸다(12절).

1) 직분은 아무나, 모든 사람이 다 받는 것은 아니다. 오직 능력이 있어 야 직책이 주어진다.

2)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능한 자로 만들어 주셔서 직분에 합당한 자 로 만들어 주셨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직분은 성도의 직분(이는 제자의 직분, 전도 자의 직분을 전제)이다.

4)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직분은 무엇인가 B.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드렸다(13절).

1) 긍휼이란 값없이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2)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조롱하던 훼방자였다(행 26:11).

3) 그는 핍박자였다(행 9:1-5, 22:4-5).

4)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바울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 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사랑하신다.

C. 풍성하신 주의 은혜를 감사드렸다(14절).

1) 바울이 받은 은혜는 물질이 아니었다.

2) 그것은 명예도 아니었다.

3) 바울이 받은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령한 것이었다. 그에 게는 오히려 육신의 가시가 있었다(고후 12:7).

4) 나의 감사는 무엇에 대함인가

II.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15-17).

A.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죄인 구원을 위해서였다(15절).

"구원하기 위하여"라는 말은 두 가지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죄책감으로부터의 구출이다. 죄의 노예로부터의 구출을 의미 하며,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출을 의미한다.

둘째로, 죄로부터의 구원은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 인도하였고, 자유 를 주었고, 축복을 주었다.

B.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를 깨달았다(16절).

1)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은 입으로만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삶이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긍휼 입은 자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았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나의 죄가, 나의 죄책감이 어떻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나를 들어 전도자로 쓰고자 원하신다.

C. 인생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다(17절).

1) 바울은 자신의 과거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미래를 허락하신 하나님

께 영광을 돌렸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를 주셨다. 그 하나님께 영광돌리

는 삶은 무엇인가

::::::::::::::::::::::::::::::::::::::::::::::::::::::::::::::::::::::::::::::::::본문분석 (각자가) 딤전 1:12-17::::::::::::::::::::::::::::::::::::::::::::::::::::::::::::::::::::::::::::::::::::::::::::::::::::::::::::::::::::::::::::::::::::::::::::::::::::::::::::::::::::1

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내가 감사함은:::나를 충성되이 여겨:::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1

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핍박자요:::포행자이었으나:::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니라::::::1

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믿음과 사랑과 함께:::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1

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그리스도 예수께서:::죄인을 구원하시려고:::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죄인 중에:::내가 괴수니라::::::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보이사 후에:::주를 믿어:::영생 얻은 자들에게:::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1

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홀로 하나이신:::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세세토록 있어지이다:::아멘:::::::::::::::::::::::::::::::::::::::::::::::::::::::::::::::::::::::::::::::::::

DP-2851 TIM12-17-N

::::::::::::::::::::::::성공적인 사역자::딤전 1:12-17::::::::::::::::::::::::

사도 바울은 종교가로서, 사상가로서, 복음증거자로서 세 계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주의 일군이었습니다. 영 국의 저명한 역사가였던 토인비 박사가 그의 역사 연구서에 서 "사도 바울이 타고 구라파로 떠난 그 배에는 오늘날 구라파 의 문명도 다 실려 있었다"라고 말한 것 같이 사도 바울은 오늘 날의 구라파 문명이 있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같이 초인적으로 주님의 사역을 성공적 으로 감당할 수 있게 한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겸손한 생활태도를 가졌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이라도 자신이 성취 한 일이 있으면 그만 "자기도취"에 사로잡힌 채 자기 자랑을 합 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은 이미 마음 의 그릇이 자만으로 꽉 들어차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 중 가장 아름다운 루시퍼가 하늘 에서 쫓겨나게 된 이유도 하나님께 지음받은 목적을 달성하 기 위해 애쓰지 않고, 그만 자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하나님 과 동등하게 되겠다는 교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교만 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이나 가정, 한 사회나 국가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 해지면 패망을 자초하는 것이 됩니다. 인생의 가장 큰 올무 는 사람이 크든 작든 성공했을 때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자만하지 않고 "이미 얻었다 함도 아 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 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는 겸비 한 삶의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기를 가리 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고 하였으며, "모 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라고 하 였고, 종국에는 "죄인 중의 괴수"(딤전 1:15)라고 할 정도로 겸 손한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한다면 무 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를 좇아가야 할 것입니 다.

 둘째로,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잊어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 되었을 때에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딤전1:13)로 믿는 사람들을 수없이 핍박했었습니다. 그런 데 과거의 이러한 잘못했던 경험들이 시시때때로 사도 바울 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과거의 쓰라렸던 죄책감을 잊어버리 고 주님께 충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살면서도 과 거의 부정적이고도 파괴적인 일들을 마음에 잔뜩 안고 살아감으 로 어둡고 삭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미 움에 사로잡힘으로 분노의 회오리 바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 다. 과거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 대해 무서운 울분과 분노 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삶 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 수님의 보혈로 과거의 미움을 청산해야 합니다.

또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도 과거 의 실패를 들추어내어 생각함으로 불안과 공포의 포로가 되 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과거의 실패를 생각하면 할수 록 불안과 공포가 뒤따르므로 현재의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서는 과거의 부정적인 것과 실패했던 경험을 다 잊어버리고, 예 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세째로, 맡겨진 일에 대한 열정을 가졌습니다.

목표로 하는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고자 하는데에 는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자기 가 하는 일에 하루 30분씩만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 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증거에 미칠 정도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 니다. 그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것도 하나님께 충성되이 여 겨졌기 때문입니다(딤전 1:12). 그는 인생을 내던져 전심전력하 면서 주의 복음 사업을 위해 뛰었습니다. 그가 열정을 가지 고 하나님의 일을 하였기 때문에 복음사업을 끝내는 말년에 "이 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 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6)라는 고백을 당당하게 할 수 있 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 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 5:13).

미쳐버릴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전력투구하는 사람은 어떠 한 일을 하든지간에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만일 위대한 학자 가 되고자 하는 학생이 있다면, 먼저 학자가 되겠다는 뚜렷 한 푯대를 세우고, 남이 놀 때 놀지 않고, 남이 잘 때 잠자 지 않는 열정을 쏟아야만 위대한 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정해놓은 목표를 이루겠다는 열정을 가져야 하겠습 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네째로, 성공의식을 가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 속에 하나님께 칭찬받고 축복받고 인정 받는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공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축복으로 오늘보다 내일 이, 이달보다는 다음달이, 금년보다는 내년이 더 잘 될 것이라 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 들 개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시대적, 사회 적,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언제나 최종적인 책임 은 개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개인이 어떠한 삶 의 자세와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와 죄와 고통, 가난과 저주를 다 청산 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 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 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 적 용 > 똑같은 시대에서 똑같은 환경 가운데 살고 있지만 마음 자 세에 따라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도 있 고, 불행한 삶을 살면서 환경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 로 우리도 바울처럼 성공의식을 가지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 습니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과거 의 부정적인 경험을 잊고 마음 속에 불타는 열정을 갖고 전력투 구하면서 성공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해 주시며 성공적인 삶을 살도 록 하여 주실 것입니다.



DP-2851 TIM13-17-L

:::::::::::::::::::::::::긍휼을 입었으니::딤전 1:13, 16-17:::::::::::::::::::::::::

긍휼히 여기는 것은 불쌍히 여겨 동정하는 것이며 힘써 이 해하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 회가 유지되는 것도 사람들이 피차 긍휼히 여기기 때문입니 다. 그런데 사회가 산업화 되고 경제적 이해관계가 심화되어감 에 따라 인간관계에서 점차 긍휼이 사라지고 타산적으로 되어가 고 있습니다.

더우기 병들고 옥에 갇히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돕 고 긍휼히 여기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바울이 살 고 있던 시대에도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은 적었 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자주 찾아오고, 위로하 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긍휼을 베푼 자는 하나님께 긍휼을 받 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 오네시보로에게 하나님 의 긍휼을 베푸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은 곧 예수님 께 행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 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 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 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 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 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 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 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 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 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 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 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34-40).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모 든 사람을 대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 위한 우리의 자세 는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서로를 엄한 율법의 눈으로 판단하지 말아 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그 누구도 의롭고 깨끗하다고 장담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잘못 을 보고 율법의 척도로 판단했다가 훗날 자기도 동일한 잘못 을 저지르므로 똑같이 판단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 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 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임이니라"(마 7:1-2)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엄한 칼로써 남 을 판단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율법의 눈으로 보지 않 고 이해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긍휼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신을 매장시키고자 허위 날조한 유언비어 를 만들어 유포하며 모함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게 되자 견 딜 수가 없어서 하루는 기도원에 들어가 울면서 "하나님 억울합 니다. 어쩌면 이렇게 없는 말을 만들어 저를 비난할 수가 있습 니까" 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랜 시 간이 지난 후 마음 속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성령님의 음성 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 목사님은 "그렇지. 세상이니까 그럴 수 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왔다 고 합니다. 율법의 척도로써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 면 마음 속에 긍휼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 다"고 이해를 하려고 하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지닐 수 있습 니다.

하루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고자 간 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 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 고 하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 을 율법의 눈으로 쳐다보지 않으시고 사랑과 이해의 눈으로 쳐 다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 라"(요 8: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 들은 들고 있던 돌과 막대기를 모두 내려놓고 뿔뿔히 흩어졌습 니다. 이들은 이 여인을 율법의 눈으로 쳐다봄으로 용서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쳐다보셨기에 "나 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요 8:11)고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는 율법의 척도로써 사람을 보지 말 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과 같이 이해의 척도로 바라보는 훈련 을 해나가야 합니다.

 둘째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시기 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 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 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고 약속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주 셨습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기 위해 부름받고 항상 우리 곁에 계시 는 성령님께서는 푹신푹신한 이부자리가 지친 우리의 몸을 감싸 주는 것처럼 세상에서 상처 입고 피흘린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오셔서 하나님을 따라 사랑, 희 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 를 맺게 하시며, 우리가 회개함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의 권능 을 힘입어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게 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사랑 이 생겨남으로 영혼을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 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라"(엡 5:18)고 말씀합니다. 우리 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을 때 우리 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 와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고개를 위로 들고 "주 예 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한 후 무릎을 꿇고 가로 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할 수 있 었던 것도 그가 성령이 충만함으로 마음 속에 자기를 죽이려 고 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도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려면 성령 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세째로,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마음 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우리 인생들이 지옥에 가 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병들어 고통 받고, 죄짓고 괴로워하며, 물질 궁핍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 을 보신 주님께서는 인간의 이러한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 각하시고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천년 전 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고, 33년 동 안 사시면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에 참여하셨습니 다. 그리고 인간의 허물과 죄를 친히 담당하셔서 십자가 위에 서 몸찢기고 피흘리며 죽으신 것입니다.

이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 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 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 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갈 것이니라"(히 4:15-16).

이처럼 우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신 예수님 의 놀라우신 긍휼을 배워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남 의 불행을 자기 일로 여길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며, 긍 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수고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 이 우리의 생활에 넘치도록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여 기는 긍휼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네째로, 우리는 열등의식을 버리고 참된 자신의 위치에 서 야 합니다.

사람이 열등감을 가지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가 없 습니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의 감정만 생기게 됩니다. 우리 믿 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 은 제사장들이요"(벧전 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믿는 사 람은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신분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 실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결코 열등의식에 빠지지 않을 뿐만 아 니라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믿는 사람은 이미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 힌 자가 되었습니다. 엡 2:5-6에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 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 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하늘에 앉힌 위치에 서 서 다른 사람을 보는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열등의식을 가지고 비굴한 마음을 가지면 다 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들이 왕같은 제사장이 요, 하늘에 앉힌 자인 것을 알고 서로가 긍휼히 여기면 가정불 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조그마한 문제로 부부 싸움을 하고 괴 로워하는 것은 단지 그 마음 속에 열등의식이 있기 때문입니 다. 남편이 비굴한 마음을 가지고, 아내가 열등의식을 가지 면 긍휼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서로 심판하고 다투는 일이 생기 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하늘에 앉 힌 자리에 있는 참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함으로 다른 사람을 긍 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적 용 >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모든 죄 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구원받은 이후로부터 지금 까지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할 때마다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해 주 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에 대하여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 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니라"(딤 전 1:13)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얻었으므로 하나님 의 긍휼하심을 깊이 감사할 뿐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 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척도로 판단하지 말고, 성령 의 충만함을 입고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마음 을 가지고, 또한 열등의식을 버리고 참된 위치에 섬으로 이 웃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 니다.



DP-2851 TIM12-17-M

::::::::::::::::::::::은혜에 은혜를::딤전 1:12-17::::::::::::::::::::::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부 상조하며 살아갑니 다. 왜냐하면 농촌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 탄광에서 일 하는 광부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회사의 경영자들이 나 사무원들 모두가 서로 공존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 약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들 스스로가 치워야 합 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대신하여 궂은 일을 해주시는 분들에 게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한 분야만 전문으로 취 급함으로 우리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해 주시는 분들께 도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은혜 를 끼치며 입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은 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한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 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 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더 받고 덜 받는 것이 아닙니 다. 문제는 받은 은혜를 얼마나 깨달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 니다. 그러므로 은혜에 은혜를 더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항 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은혜에 은혜를 더해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감사 드려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를 선택하여 구원해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를 선택했다는 말은 "여럿 가운데서 골라 뽑음"을 의 미합니다. 이는 같은 종자의 식물 중에서 우수한 종자를 선택하 여 배양시켜 우수한 식물을 만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구원해 주신 것은 그 들이 거룩하고 의롭기 때문이 아니었으며(신 9:4-6), 수효가 많 아서도 아니었고(신 7:7),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모든 백성에 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 위함이었습니다(느 9:9).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얻은 구원 도 우리가 잘나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 혜에 의한(롬 11:5) 하나님의 선물(엡 2:8)입니다. 또한 죄 없 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 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은혜 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죄에 대하 여 책망하심에 죄를 회개함으로 얻은 은혜입니다. 40억이 넘 는 인간 중에서 우리를 택하사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셔 서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우리와 같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 나님께서는 그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딤전 1:13)이었 던 사울을 "그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기에"(딤 전 1:13하) 긍휼히 여겨 구원하여 바울이 되는 은혜를 주셨 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히 여겨 구원해 주신 하나님 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예수님만 모시고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하 겠습니다.

 둘째로, 우리를 신임하여 주신 은혜입니다.

신임이란 "믿고 맡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들 이 은행에 돈을 예금하는 것도 은행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 계 여러 나라의 자본가들이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은 스 위스 은행을 제일 신임하기 때문입니다. 신임은 신용과도 같 은 말입니다. 신용이란 "장래에 약속을 실행할 것을 믿음"이 란 뜻입니다. 요즈음 많이 쓰이고 있는 신용카드도 상대방을 믿 는다는 약속하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서 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어 가족간에, 친구 간에, 심지어 부모와 자녀간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 니다. 이처럼 불신 사회가 된 것도 서로를 믿을만한 증거가 없 어서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불신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 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열심 을 다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여 주신 은혜에, 신임하여 주 시는 은혜를 더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 바울에게는 남다른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유대교 신자들이 개종하여 예수 그리스 도를 따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대교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 들을 근절시킬 계획을 몸소 이행하였습니다. 물론 바울이 예 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를 박해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 도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딤전 1:12). 그러나 하나님께서 는 유대 율법에 충성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바울을 다 메섹 도상에서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군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2) 바울에게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워 랍비가 되었으며, 랍 비라는 직분을 귀중히 여김으로 열심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또 한 그는 개종한 후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체류하면서 먼저 사 도된 자들을 만나 여러 가지 지식을 얻기 위해 열심을 다하였습 니다(갈 1:17).

바울에게 이러한 열심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임 하여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신임하여 주신 데 대하여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 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 고 하였으며, "창세 이전에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엡 1:4) "은혜로 나를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시고 이제는 빛 의 자녀로 주의 자녀로 삼으셨으니"(엡 5:8) "나는 살아도 죽어 도 주를 위하여 살겠노라"(롬 4:18)고 고백을 하였고 감사의 순 교까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충실하고 열심히 일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신임 의 은혜를 받았으니 더 열심히 복음 전파에 열심을 다해야 하겠 습니다.

 세째로, 직분을 맡겨주신 은혜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특별히 지명하여 직분을 맡겨주면 좋 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이 아닌 하나님 으로부터 직접 직분을 받으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맡 은바 일에 더 충실해 집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도의 직분을 받은데 대 해 감격해 함은 하나님의 복음의 일꾼으로 지명해 주신데 대 한 감격이었습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세상적인 지위나 권위 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로서의 바울은 과거의 바리새 인이라는 특권 계급의 직명과 명성,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으 며, 비록 가장 천한 하급 계급의 천막업이었지만 그로 인한 굶 주림, 멸시, 박해도 기쁨으로 여기며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순 교함으로 직분에 대한 사명을 다했던 것입니다.

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음으로 사도의 직분 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바울 역 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로 가는 곳마다 병자를 고치는 기 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사울왕은 왕의 직분을 받았으면서도 교만해 짐으로 직권을 남용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였기에 왕위에 서 쫓겨났으며 마침내 두 아들과 함께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분을 맡겨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맡 은바 직분에 충성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결 론 >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속에 살고 있지만 깨달음 이 없으면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은 혜를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 전 15:9).

그러기에 바울의 삶에는 기쁨이 있었고 또 감사가 있었 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이 가능했습니다.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 면 우리 안에서 감사가 터져나옵니다. 우리를 택하여 구원해 주 시고, 신임해 주셔서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 고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함으로 영혼이 잘되는 복, 범사가 잘되 는 복, 강건하여지는 복을 누려나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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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없이 주시는 은혜::딤전 1:12-17::::::::::::::::::::::::::::

오늘 읽은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인 중에 괴수 된 자신을 불러 사도의 직분을 맡겨 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격 과 감사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은혜"라는 말은 그 당시 헬라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인사 할 때 사용한 말과 어원이 같다. 그 어원의 뜻은 "총애" 또 는 "호의"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은혜"란 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의 속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시며 영생과 영광을 주신 사실 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인간에 게 거저 값 없이 주시는 축복이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에는 값이 없다. 너 무 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에도 값이 없다. 하나님 의 구원에도 값이 없다. 심지어 우리가 순간 순간 호흡하지 아 니하면 살 수 없는 공기, 하루도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 귀한 물도 값이 없다. 너무 귀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을 살리 는 태양도 값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시 는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 없이 거저 주신다. 이 은혜 는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에게 가장 큰 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 로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 가를 지심으로 우리 대신 죽으시고, 심판 받으시고, 속죄의 제 물이 되셔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것이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 가!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좇 아 이 놀라운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 게 주시는 값 없는 선물이다. 그저 와서 받기만 하면 된다.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음으로 그 은혜가 우리 의 심령에 흘러 넘치게 해야 한다.

이사야 선지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 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예수님께서도 믿는 무리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목마르거 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 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은혜를 모른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은혜를 잊고 사는 사람 "은혜는 물에 적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라는 속담이 있 다. 이 말은 은혜받은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원한은 두고두 고 마음에 품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먼저 부모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린다. 많은 사람 들이 부모의 슬하에서 자랄 동안 받은 사랑과 은혜를 평범하 게 지나쳐버리고 남들보다 못하게 대해준 것만 오랜 세월을 두 고 마음에 품고 있다.

또한 부부간의 사랑과 은혜도 잊어버린다. 남편에게 받 은 사랑, 아내에게 받은 은혜를 당연지사로 생각하며 잊어버리 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승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이 오늘날 풍조이다. 오늘날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대할 때 스승 으로서 보다도 "월급을 받고 가르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 고 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받는 지식 과 은혜와 사랑을 당연지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형제 간의 정과 사랑도 잊어버린다. 오늘날 형제 는 서로 사랑을 주고 간직하기 보다 서로 사랑을 주지 않는다 고 불평하는 경우가 더 많다.

더군다나 오늘날 이웃 간의 은혜는 거의 잊어버리다시 피 했다. 사람들은 무관심 속에서 이웃에게 받은 은혜를 아 주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2.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 성경에서 은혜를 배반한 대표적인 인물은 가룟 유다이 다. 가룟 유다는 3년 반 동안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과 신뢰 를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돈궤를 가룟 유다에게 맡기셨다 (요 13:29). 누구든지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돈을 맡기는 법 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냥에 팔아버리 고 말았다. 은 30냥이란 그 당시 종을 거래하는 가격이다. 가 룟 유다는 그의 스승을 종의 가격으로 팔아넘기고, 예수님께 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도록 방조했다. 그 때문에 가룟 유 다는 긴 역사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3.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 은혜를 받은 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 은 학식이 있든 없든 위대한 사람이다.

우리는 먼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 겠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 물론 자 녀의 소원대로 다해주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부모가 자녀들 에게 완전히 만족할만큼 대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 리는 부모님들이 섭섭하게 해주었던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잘해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 은혜에 늘 보답하여야 하겠다.

또한 부부간에 서로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해야 한다. 부 부는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의 밥을 먹고 운명공동체로 함께 울 고 함께 웃고 살지만, 그러나 남남끼리 모여 살아가는 것이 부 부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 고마 와하며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우리는 또 스승의 은덕을 쉽게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스승 은 자신이 노력하고 연구해서 축적한 지식을 제자들에게 가르 쳐 준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우리가 스승에 대 해 감사의 보답을 할 때 선생님들은 직업적인 의식을 버리고 제 자양성에 대한 용기와 사명감을 갖게 될 것이요, 스승이 많 을 때 사회는 점점 밝아지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오늘날 우리는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 은 이웃의 도움을 받고 있는가 이웃에게서 사랑을 받고 도움 을 받을 때 안받은 체 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 나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웃으로부터 받은 정성과 사랑을 잊 지 않고 꼭 기억하였다가 명절이나 기념될 만한 날에 "도와주 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 리 가족은 늘 기억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라 고 말해야 하겠다. 이러한 일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우리의 마음 을 흐뭇하게 하고 은혜롭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줄 아는가 오 늘날 우리 사회와 전 세계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감사보은 의 태도이다. 감사보은의 삶이야말로 인격을 고상하게 하고 가 정을 화목하게 하고 생활을 아름답고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다.

 4.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 우리는 하루살이 같이 살다가 세월이 지나고 나면 급기 야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비운에 처한 존재이 다. 성경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 지는 안개니라"(약 4:1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 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 라고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인간의 종말은 얼마나 비극적인 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 를 "멸망하는 짐승"에서 "존귀한 자"로 삼아 주셨다(시 49:20). 하나님께서는 비운에 처한 인생들을 위하여 그 아들 예 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 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셔 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을 받으심으 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는 고통을 당하셨다. 이 끝없는 사랑 과 은혜로 우리는 거듭나는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 고 병고침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그뿐인가 예수님께 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살아있는 사람들은 물론 죽은 자들 도 부활하여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죽음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 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 는 위대한 은혜를 받게 되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관하여 여러분은 얼마나 마음 속에 감 사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그 냥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고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가 우리는 살아갈 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 혜가 위대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죄책과 정죄에 서 허덕이며 허무와 무의미의 벽에 부딪히고 죽음과 절대 무에 서 산산조각날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품 에 안기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용서받은 사람이요, 의 롭다함을 얻은 사람이요, 복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품에 안 겨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모든 사람이 다 사랑에 굶주 려 있는데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주신 하나님의 품에 있는 것이 다.

진실로 우리의 영혼 속에 찬란한 기쁨을 주고 영원한 사랑 과 용납을 심어주고, 우리의 생활을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맑 고 밝고 환하게 해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 혜 밖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사랑을 체 험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우리 가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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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감사한가::딤전 1:12-17:::::::::::::::::::::::::

바울은 언제나 감사의 생활을 하였다. 바울 사도는 다메 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믿는 그날부터 평생을 불평 불만 을 모르는 감사의 생활을 하였다. 바울은 순경에서만 감사하 지 않고 역경에서도 감사했고, 자유할 때만 감사한 것이 아니 라 감옥에서도 감사드렸고, 평안할 때만 감사하지 않고 고통 중 에도 감사하였다. 또한 자기의 일만 감사하지 않고 성도들을 위 하여 감사하였다(살전 1:2). 잠시 받은 세상 영광이나 지금 받 은 칭찬과 현재의 일에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받을 영광 을 생각하고 감사하였다(고후 4:14-17). 사도 바울은 기도에 도 감사요, 찬송에도 감사요, 먹어도 감사요, 굶어도 감사 요, 매를 맞아도, 돌에 맞아도 감사였고, 살아도 감사요 죽어 도 감사였으며, 그야말로 바울의 생애는 감사에 넘치는 생활 이었다.

바울은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감사하는 생활을 권면하였 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고 하였다. 에베소교회에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엡 5:20)고 권면 하였으며, 골로새교회에는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고 하였다. 빌 립보교회에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권면하였고, 고린도교 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고 간곡 히 부탁했다. 사도 바울은 어디서 누구에게나 항상 하나님 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첫째, 나를 능하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렸다.

본문에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께 내가 감사함은"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 의 그 감사한 마음이 어디서 솟아오르는가를 엿볼 수 있다. 사 실 그는 예수를 알기 전에 예수를 훼방하였고, 핍박하였고, 예 수를 믿는 이들에게 폭행까지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는 그 모든 죄를 용서하셨으며,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충 성되이 여기셔서 그에게 그리스도를 봉사하는 직분을 맡기셨으 며, 또한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신 것을 생각 할 때에 그의 마음에 언제나 감사가 넘친 것이다.

그는 자신을 능하게 하신 분이 주님임을 잊지 않고 있었 다. 그래서 바울은 처음 믿고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할 때 비난 과 불신 가운데 주님이 힘을 주심으로 "새 힘을 얻어 예수를 그 리스도라"(행 9:22) 고백하였다.

전도 사업을 하는 중에 온갖 어려운 핍박과 환난을 만 나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 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과 이방인의 위험과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은"(고후 11:24-27) 시험 환난 중에서도 "능 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이"(빌 4:13) 견디고 승리 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였다. 또한 감옥에서도 "주께서 내 곁 에서 나를 강건하게"(딤후 4:17) 하시는 은혜에 감사하였다.

 둘째, 긍휼을 내려 직분 주심을 감사하였다.

바울은 주님이 긍휼로 사죄하신 은혜에 대해 감사했 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 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 이라." 그는 자기는 이렇게 죄를 많이 지은, 말하자면 죄인 의 괴수인데 주님께서는 그 많은 죄를 사하여 주실 뿐더러 그 를 충성되어 보시사 사도직까지 맡기신 것이다.

여기에 그의 감사의 원천이 있었다. 곧 그는 자기 자신 의 장점을 보는 것보다도 단점을 보았다. 그 자신이 주를 위 해 성취한 여러 가지 큰 일을 보는 것보다도 그 자신이 전에 지 은 죄를 먼저 보았다. 곧 이렇게 무한히 겸손한 사람으로서 자 기의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가 얼마 나 더 크고 더 위대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사도 바 울은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 뿐 아니고 모든 참된 성 도의 공통적인 체험인 줄 생각한다.

회개하면 은혜가 크다. 바울은 자기의 지은 죄를 삼일동 안 식음을 전폐하고 울고 울어 통회하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다 니며 십일년간 눈물로 회개의 생활을 하여 안질이 상하게 되었 으니 정말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로 통회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죄인 중에 괴수인 자기에게 긍휼을 베푸 신 까닭은 자기만 위함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긍휼 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 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 심이라" 하여 아무리 크고 괴수되는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아 오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 기 위함이라 하였다.

 세째,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감사하였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 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하였다. 감 옥에서 부자유한 감방살이를 하면서도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 성하다고 찬송하고 기뻐하였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 운 고상한 신앙인가 우리는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고, 또한 받 은 은혜가 한없이 크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불쌍한 자리에 머물 고 있지는 않는가 물론 바울의 현재 상황은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그러나 바 울은 그러한 가난하고 부자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조건이 있음 을 깨달은 것이다. 11절과 15절에서 그는 자신이 깨달은 바 를 피력하고 있다. 11절은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내게 직분 을 맡기심이니"라고 했다. 15절은 "죄인을 구속해 주신 그리스 도의 은혜"를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대개 물질적인 것이나 현세적인 것을 갖지 않았으 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 지 않았다. 그는 더 귀중한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에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에 감사드린 것이다.

 네째, 자신에게 복음의 직분을 주신 은혜에 감사했다.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 니." 사도 바울이 주를 위하여 많은 고생도 하고 위대한 일 을 하였지만은 그 자신은 스스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 는지 기억하는가 고전 15:9에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고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 당치 못할 자로라"고 하였고, 엡 3:8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 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오 늘 본문에는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하였다. 이렇게 무한히 겸 손한 마음이 솟아오른 것이다. 감사는 이렇게 겸손한 마음밭 에 자라고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우리 가운데는 직분을 가 진 이들도 많다. 우리가 이 받은 바 직분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 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은 내가 얼마나 나의 죄와 단점 을 보는 겸손한 사람인가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사명자로 택하심을 입고 특별히 고 생 많은 이방인의 사도된 것을 항상 감사하였다. 그래서 창세 전 만세전에 자기를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복음의 사신으로 뽑아 주신 그 은혜를 감사하게 여겼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 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복음을 위하 여 고생하며 부끄러움과 온갖 환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 것 까지 큰 영광이요 자랑으로 생각하고, 자나 깨나 직분주 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 보답코자 하였다.

 < 결 론 >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로 죄사함을 받고 복음의 사명을 받 은 것을 감사하였다. 우리도 속죄와 구원받은 감격과 감사가 심 령 속에 넘쳐야 한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복음도 전 하고 시험 핍박에도 승리하며 순교의 제물도 드릴 수 있는 것 이다.

감사는 인생 최고의 덕성이다. 남편의 사랑에 감사할 때 열녀 정녀가 되고, 부모의 은덕에 감사할 때 효자 효부가 되 고, 나라의 은혜에 감사하면 충신 열사가 되고, 주님의 사랑 에 감사 감격하여 순교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감사한가 건강을 주신 것 감사하고, 큰 재 난이 없게 하사 가정에 평안 주심이 감사하고, 귀한 아들 얻 고, 아름다운 아내를 얻고 남편을 얻어 감사하고, 약혼을 하여 서, 좋은 집을 샀음으로,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군에서 무사 히 돌아오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위를 얻는 등 여러 가지 감 사할 것이 많지 않은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 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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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감격하자::딤전 1:12-17:::::::::::::::::::::::::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믿음의 제자인 디모데에 게 흉금을 털어놓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본래 교회의 핍박자였던 그는 여러 가지로 교회를 괴롭힌 사람이었으 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괴수같았던 자신이 죄사함 받은 것을 감사했다. 더군다나 주님의 긍휼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 씀을 전하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는 심정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감격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바울의 이러한 감격은 신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맨 나중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 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 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 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 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 15:8-1O).

일생동안 주님께 몸바쳐서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복음을 전 파하며 교회에 봉사한 사도 바울의 깊은 심령 속에는 이런 감격 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격이 바울로 하여금 위대한 복음전 파자가 되게 하였다. 심지어 그는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 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 9:16)고 하였다.

참으로 그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 스도의 사랑에 이끌려 억누를래야 억누를 수 없는 벅찬 감격이 그에게는 늘 어오르고 있었기에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항상 즐거워하는 승리의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에게도 하 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는가 바울이 가졌던 감격을 우리 도 느끼기 위해서는 다음 3가지를 기억하여야 한다.

 1.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고기가 물의 혜택을 모르고, 모든 생물이 공기나 빛의 혜 택을 모르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묻혀 살면서도 그 은혜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부자의 맏아들이 그런 사람이다.

그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떠나 먼 곳에 가서 허랑 방탕하는 동안에 맏아들은 집에 있어, 부모를 봉양하고 근검하 였을 뿐만 아니라, 장자인 까닭에 더욱 유대인의 풍습대로 그 부자 아버지의 모든 소유가 다 장자의 것이었다. 아버지가 모든 소유를 장자에게 준다, 안준다의 여부없이 당연히 장자의 것이 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둘째 아들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차렸다. 장자는 그것이 못마땅하고 불 만에 가득하여 아버지에게 항의하기를 "아버지의 재물을 창기와 함께 다 먹어버린 둘째 아들이 돌아오매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차리면서 자기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어서 친구들과 즐겁 게 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얘,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 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도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준 일이 없다고 하는 맏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은혜 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요임금 시대는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나라가 풍성하 고 외우내환이 없는 태평성대였다. 그때 강구에 사는 한 노인이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들기며 노래 부르기를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자고 내 손으로 우물파 마시고 밭 갈아 먹는데 임 금의 은혜가 나에게 무엇이 있으리요"라고 하였다. 사람의 은혜 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도 모른다.

 2.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때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한 생각도 없지 않 지만 곧 언제 그런 은혜가 있었던가 하는 정도로 까마득하게 잊 어버리는 수가 많다. 잊어버리면 결국 은혜를 모르는 자와 같다.

요셉이 애굽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람이 아주 진실하고 총명하여 전옥이 옥중 사무를 전부 요셉에게 맡겨 맘대로 처리 하게 하였다. 그때 바로의 술을 맡은 관원장이 득죄하고 수감되 어 있었다. 요셉이 저들에게 수종하여 저들이 요셉의 신세를 많 이 졌다.

이 두 사람이 하루 저녁에 다 같이 꿈을 꾸었으나 몽조를 알 수가 없어 맘을 졸이고 있었다. 요셉이 해몽하여 본 즉 떡 굽는 관원장은 삼일 후에 사형받을 꿈이며, 술 맡은 관원장은 삼일 후에 석방될 꿈이었다. 그때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하기를 "당신이 석방되어 복직이 되면 꼭 잊지 말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나를 여기서 건져주시오. 나는 사실 이 옥에 갇 힐만한 죄가 없소"라고 하였다.

과연 요셉의 해몽과 같이 삼일 후에 떡 굽는 관원장은 사 형되고,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어 출감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어버렸다고 하였다(창 4O:22-23). 그 술맡은 관원장이 만 2년 후에야 요셉의 생각이 나서 바 로에게 말하여 요셉을 소개함으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등용되었지만 술 맡은 관원장이 만 2년간을 요셉의 은혜를 잊어 버렸던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도 자기를 암살하려는 암살단의 손에서 구출 해 준 모르드개의 은혜를 아주 잊어버리고 있었다. 여러해 후에 왕은 어느날 밤, 잠이 오지 않아서 역대 일기책을 신하더러 읽 게 하다가 그 일기 중에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음모를 사전에 왕 께 고발하므로 왕이 암살을 면했다는 기사를 발견하고 비로소 모르드개의 은혜를 잊어버렸던 것을 후회하고 뒤늦게나마 모르 드개에게 후한 상을 주어 은혜를 보답한 일도 있다(에 6:1-11).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를 잊지 않도록 해마다 대대 손손이 유월절이나 장막절이나 추 수절을 지키라 하였다. 그래도 저들이 그 은혜를 잊어버리기 쉬 우므로 저들에게 명하시기를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 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 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6-7)고 하였다.

은혜를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보답지 않는 자는 어리석고 부실한 사람이다.

 3. 은혜를 배반치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제 1대 왕인 사울은 다윗에게 큰 배은자( )였다. 다윗은 소년 시절에 사울이 블레셋과 싸울 때 사울을 위 하여 목숨을 내걸고 나가 싸워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쳤고, 사울이 병들었을 때는 그를 위하여 수금을 타서 병이 낫게 해 주었고, 그 후에도 여러번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나라를 구했지 만 다윗의 인기가 자기보다 점점 높아가는 것을 시기하여 다 윗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좇아다녔다.

다윗은 망명 중에도 여러번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사울은 감격하여 다윗을 죽이지 않겠 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울은 수시로 변심되어 끝내는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시는 다윗을 죽이지는 못하였고 도리어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세 아들과 함께 길보아산에서 전사하였다(삼하 31장). 이것이 배은자의 말 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배은을 이렇게 통분해 하셨다.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 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 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식같이 사랑하시고 양육하셨는데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니 소와 나귀만도 못한 배은자라고 비통 해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주신 모든 은혜 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 것이었다. 은혜를 모르거나 잊어버려 서는 안되며 배은자가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왜 우리가 다같이 부모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할 때가 많고, 더군다나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사는 날이 많은가 늘 "만복의 근원 하나님" 찬송을 부르지만 정말 그 은혜에 감격하여 부를 때는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가 널무 클 때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깨 닫기가 어렵다. 그래서 속담에도 "은혜는 물에 새긴다"라는 말 이 있으며, "열번 주다가도 한 번 안주면 열번 준 것을 잊어버 리고 한번 안준 것은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우리 타락 한 인간의 성품이다.

우리는 은혜를 깨닫고 기억할 수 있는 은혜를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어떤 성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오 주님이시여! 모든 은혜 를 내게 풍성히 주셨으니 이제 한 가지 은혜를 더 주셔서 감격 스런 마음을 갖게 하소서." 사실 우리는 자연이든, 사람이든, 무엇을 보든지간에 그리 스도 십자가의 감격한 사랑을 느끼며 보아야 한다. 감격없는 신 앙생활은 생명이 없다. 교회도 감격이 있어야 산 교회가 된다.

남을 위해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 희생의 사랑으로 늘 감격의 은 혜를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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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을 맡기시는 사람::딤전 1:12-17:::::::::::::::::::::::::::::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 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12절). 현 대 인간 학자들은 말하기를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올바른 사람 이 되는 데 있다"고 한다.

성경에 보면 디모데와 같은 사람은 "거짓없는 믿음"(딤 후 1:5)을 소유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마음에 들었으며, 칭찬 할만한 가치가 있었고 그래서 기도 중에도 항상 생각이 나고 보 고 싶고 또한 위로와 기쁨을 안겨주는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였 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귀한 것인데 하나님 께 인정받고 귀히 쓰임받는 인물이 된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 는가

1. 겸손한 사람에게 직분을 맡기신다.

본문 12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 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 로 능력있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능력있게 만들 어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마음 자세는 겸손한 마음이다. 잠 3:34에 보면 "진실로 그 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 받고 귀히 쓰임받은 인물은 겸손 한 사람인 것이다.

다윗도 겸손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 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으 로 귀히 쓰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사울왕은 교만하여 하나님 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하였으며 하 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영국의 웰링턴 공작에게 전도한 부인이 있는데 공을 면회 하고 마 16:26을 읽은 후에 "각하가 만일 온 천하를 얻는다 할 지라도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각하여 영혼 이 거듭나지 못하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라고 단도직입적으 로 전도할 때에 공은 눈물로 회게하고 거듭났는데 그때 나 이 65세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자 기 마음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진실 하게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 게 여기고 존경하면서 다른 사람의 주권이나 주장을 인정하려 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위해 봉사할 때에 겸손 한 마음으로 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귀히 여김받는 사람이 되 게 복된 삶을 살아야하겠다.

 2. 충성된 자에게 직분을 맡기신다.

12절 하반절에 보면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 기심이니"라고 하였다. 이 땅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학식 과 재산이 많은 사람, 권력이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 그런 데 우리에게 이런 직분을 맡기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 는 우리를 충성되어 여기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 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 성하였으니"(히 3:5-6). 그런데 사도 바울은 행 9:15에서 "주께 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 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 신 것이다.

이와 같이 택함받은 바울은 죄인 괴수 불러주시어서 직분 을 맡기시는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죽도록 충성하게 된 것이 다.

카네기는 사장자리에서 은퇴하게 될 때에 후임으로 쉬브라 는 사람을 선택하였다. 그 때 온 회사 사람들은 놀라지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쉬브는 입사할 때 청소부로 취직했고 국민학 교 밖에 못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여 사장비서가 되고 계속 충성하 여 사장이 늦게 퇴근하여도 시간에 상관없이 문밖에서 기다리 고 아침이면 반드시 정류장까지 나가서 카네기를 맞이하였 다. 그리고 언제나 펜과 메모지를 준비하여 카네기를 보좌하였 다. 그 성실함이 사장의 마음에 들어서 모든 중역을 물리치 고 쉬브가 사장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를 선택해 주시고 하늘나라의 고귀 한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각자 맡은 직분 을 충성으로 감당할 때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시게 될 것이 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죄를 회개할 때 직분을 맡기신다.

15절에서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하였 다. 평범한 죄인이 아니라 죄인들 중 두목이라는 뜻이다. 사람 은 누구나 죄를 지었어도 자기 스스로는 자신의 죄를 크게 생각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어떤 왕이 교도소의 죄수들을 찾아갔다. 왕이 죄수들에 게 갖힌 이유를 하나씩 물으니 모두가 다 억울하게 잡혀들어왔 다고 하소연하며 큰 죄를 범한 것도 아닌데 옥살이를 한다고 불 평들이었다. 오직 한 죄수만이 자신은 당연한 댓가를 치루고 있 노라고 눈물을 흘렸다. 왕은 그 죄수를 특사시켰다.

실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입고 회개하 기 전, 많은 무서운 죄를 지었다. 예루살렘에서 믿음과 사랑 의 사람 스데반 집사를 때려 죽일 때 참여하였고(행 7:59), 예 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는데 누구보다도 열을 내어 교회를 괴롭 혔으며,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었던 것이다 (행 8:3). 그것도 부족하여 대제사장에게 다메섹 회당에 갈 공 문을 청하여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남 녀노소 무론하고 다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했다(행 9:1-2). 그 밖에도 그가 얼마나 포악한 일을 했는가는 다음 성구를 통하 여 잘 엿볼 수 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 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 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 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 9:13-14)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바울을 어떻게 하셨던가 긍휼히 여기 시고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사도의 직분까지 맡 겨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자복 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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