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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 많은 여인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 (눅 07: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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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는 세례 요한을 칭찬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 많은 여자의 죄를 사해 주시는 사건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자유인이 되는 것처럼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자유인이 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서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여인을 먼저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은 사 복음서가 다같이 기록을 합니다만(마26:6-13, 막14:3-9, 요12:1-8), 마태, 마가, 요한복음은 문둥이 시몬의 집 베다니에서 생겨진 일입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보아서 동일한 사람이지만 본문의 경우는 아주 다른 별개의 여인이겠습니다.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이겠습니다 만, 이 마리아는 마태복음에는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드렸고(마26:7) 마가복음에는 매우 값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드렸고(막14:3) 요한복음에는 값진 향유 나드 한 근을(요12:3) 예수님께 부으니 향유 냄새가 온 집에 가득하더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누가복음에 나오는 죄 많은 여인은 그리 넉넉지 못했으므로 예수님께 그리 좋은 향유를 드리지 못해서 오늘 본문에는 그저 향유라고 나옵니다. 그녀는 지극히 값비싼 순전한 나드나 향기 좋은 향유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신분이 천한 그녀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을 수 없어서 발에 부었습니다. 그녀는 향기 나는 것을 예수님께 드릴 수 없었음에 더욱더 마음이 아파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신분이 천하고 죄 많은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그럽니다 만, 아무튼 본문의 여인은 별개의 여인입니다.

Ⅰ.예수님을 사랑하는 죄 많은 여인(36-38)

본문의 이야기 실마리는 이렇습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5:21)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밀 이삭을 비벼 먹으므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며 또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사건으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처치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6:11)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왜 예수님을 초대했을까요 본문에서 그 내용을 찾아보면 이러합니다. 44-46절을 보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해 놓고 발 씻을 물도 주지 않고, 입맞추지도 아니하고,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청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심에서 나온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바리새인 시몬은 호기심에 이끌려서 예수님을 초대한 것 같습니다.

17절에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났다고 하니 무엇인가 예수님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서이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과 같은 귀빈이 자기 식탁에 오르므로 해서 자기 명예가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했을 것입니다.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모셔 놓고 식사 대접을 하며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바리새인이 책잡기 위해서 모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초청에 응하셨습니다. 당시 잘사는 유대인의 집은 입 구“口”자로 집을 짓습니다. 그래서 그 마당 안에는 화초와 우물이 있었으므로 더운 날씨에는 그 마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랍비들이 대접을 받는다 싶으면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주옥같은 말씀을 듣는 것이 그네들의 습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 가 식탁에 기대어 앉으셔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이 때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여자는 그 동네에 잘 알려진 죄인이라 한 것으로 보아 윤락 여성이었던 것같습니다.
당시 율법 사회에서는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면 성전 예배는 물론이고 회당에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랍비들은 이런 죄인에게는

1.8m 이상 가까이 가면 안됩니다. 그런 자가 죽어도 아무도 울어 주지도 않습니다. 무덤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죄인은 철저히 소외시키고 멸시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렇다면 어떻게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힌 여인이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은 음식 찌꺼기를 얻기 위하여 연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 갈 수 있었던 관습의 덕택인 것같습니다.(16:20-21) 이런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이 여인은 심히 가난하면서 죄가 많은 윤락 여성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죄인인 여자는 예수님께 나와서 유별난 행동을 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이니”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 왼쪽 팔꿈치를 턱에 고이고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예수님의 뒤로 가서 그 발 곁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초대해 놓고는 거의 공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음식 석상에서 가장 좋은 상석을 그분께 드리지 않았으므로 자연 주님은 벗은 발로 문쪽을 향한 채 비스듬히 기대어 식사를 하므로 예수님의 발 곁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발 곁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녀는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 우는 눈물이 예수님의 발등에 뚝뚝 떨어져 흘러 내렸습니다.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러자 앉아 엎드려 자기의 머리털로 눈물로 젖은 예수님의 발등과 발바닥, 온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이 여자는 한 때 영혼들을 얽어 감는 마귀의 그물로 이용되었던 그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그것을 가지고 그 거룩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주되고 면류관인 머리털로 하나님의 아들의 가장 보잘것없는 한 부분을 닦고 있습니다. 그녀는 눈을 물병으로 삼고 자기 머리털을 수건으로 삼았습니다. 유대 여자들은 결혼 할 때 머리를 올리면 결코 다시 내리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기의 머리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전폭적으로 헌신한 것이겠습니다.
또 그녀는 예수님의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간음으로 가득 찼던 눈이 이제는 회개의 샘이 되었고, 음탕한 말을 쏟아 내던 입술이 이제는 거룩한 입맞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 나오는 여인처럼 값비싼 것은 드리지 못하고, 순전한 나드도 드리지 못하고 일반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그 향유는 고급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에서와 같이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였더란 말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가 왜 이런 일들을 했겠습니까
이 여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덧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께서 죄 많은 자기를 영접해 주시고 모든 죄를 사해 주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몸과 마음과 물질를 다 바쳐 주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여자가 예수님의 뒤에서 울며 눈물을 흘린 것은 자기의 죄를 애통하며 회개하며 운 울음이겠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머리털보다도 더 많은 자기의 죄가 다 기억났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 앞에서 추하고 더러운 죄를 낱낱이 회개하며 눈물로 자기의 죄악을 인하여 슬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예수님께서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고 모든 죄를 사해 주시는 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러했을 때, 그 마음속에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동시에 흘러 내렸을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용납하시고 모든 죄를 값없이 사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라워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였고 그 구속의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도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향유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 여인의 행동을 눈여겨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은 실로 그리스도를 대하는 성도의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표본이라 여겨집니다. 1)첫째는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 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여자는 믿음으로 주께 나왔습니다. 그는 창녀로서 감히 바리새인의 집으로 나올 수 없는 여자였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를 판단하며 멸시할 것인가를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자기의 더러운 죄만 생각하고 절망만 하고 있다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자기의 행위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죄인을 영접해 주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이 믿음이 참으로 큰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십니다.(히11;6)
2)둘째, 눈물로 발을 적시고
이는 참 회개하는 참회의 눈물이겠습니다. 주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으로 나아가는 자를 결코 멸시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시51;17) 그 여자는 지난날의 죄를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예레미야 31;34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애통하고 회개하고 고백한 죄를 사하시고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이 여자는 자기의 죄를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3)셋째, 자기의 머리털로 씻고
이는 눈물로 회개한 자의 헌신이겠습니다.
4)넷째, 그 발에 입맞추고
이는 어디까지나 구원함을 받은 자의 사랑의 표시이겠습니다.
5)다섯째, 기름을 부으니
주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으니까 주님께 헌금을 드리는 , 주님께 자신의 귀한 것을 드리는 헌신을 하는 것이겠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을 기뻐하신 주님께서는, 여러분들도 이 여인이 지녔던 신앙을 지니고 살면 기뻐하실 것입니다.

Ⅱ.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39-50)

이 여자는 예수님께 와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발에 입맞추고 그 발에 향유를 부으니까 이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예수를 청한 시몬이라고 하는 바리새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 알터인데...” 그것을 묵인하고 모르고 있으니까 바리새인의 마음으로는 “예수님이 선지자가 아니고 엉터리다! 가짜 선지자로구나!” 하는 판단을 속으로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비유 한가지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40-4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500데나리온 졌고, 하나는 50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길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예수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 받은 자니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옳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많이 탕감 받은 자를 많이 사랑하십니다. 시몬이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 500데나리온 빚진 자는 죄 많은 여인을 가리키고 50데나리온 빚진 자는 시몬과 같이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일단은 많이 탕감 받은 자를 더 사랑한다는 대답을 한 시몬을 향하여 “옳다”하시고는 구체적으로 깨달아 회개하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에 대하여 목자의 심정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네게 입맞추지도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저는 향유를 내 머리에 부었느니라”(44-46)
유대인들은 손님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언제나 세가지 일을 합니다. 1) 팔레스틴은 사막 지대로서 먼지가 많은 지역이였기 때문에 발에 먼지가 많이 묻고 또 신이란 것은 밑창만 붙은 것으로 바른 가죽끈으로 가로 묶은 샌들입니다. 그러므로 손님이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시원한 물을 부어 줍니다.(창18:4, 딤전5:10)
2) 집주인은 손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면 자기의 손을 손님의 어깨에 얹고 환영한다는 의미로 입맞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창29:13, 45:15, 눅22:48)
3)타는 듯한 뜨거운 태양 밑을 걸어온 손님에게 손발을 씻게 한 후, 향불을 피우거나 머리에 향유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은 큰 위로요 손님을 신선하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기름 몇 방울 정도는 떨어뜨려 줍니다. 시몬은 그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3가지 일들은 당연히 행해야 할 예법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이 중에 어느 것 하나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모신다고 모셔 놓고 마음으로 존경하지 않고,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대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자세는 너무나 진심이 없었습니다. 한 번 대접하는 것도 때우는 식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몬과 이 여인의 섬김은 재미있는 비교가 됩니다.
제가 신앙하기로 참다운 신앙과 참다운 고백에는 인색함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을 고백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은 지독한 위선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청해 놓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발을 씻는 물이나 환영하는 입맞춤도 그리고 손님을 상쾌하게 하는 감람유도 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분 자신을 섬겼습니다. 인격적인 봉사를 하였습니다. 오늘 분문 가운데 대명사가 거듭거듭 나옵니다.
“그 발 곁에 서서 그 발을 적시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전적 그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시몬에게 말씀을 합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희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희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예수님은 이 여자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함은 그의 많은 죄가 사함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이 예수님을 적게 사랑한 것은 사함 받은 일이 적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주님으로 부터 많은 죄를 완전히 용서받은 사람은 주님을 진심으로 뜨겁게 많이 사랑하는 줄 믿습니다. 또 이 사람이 가장 행복한 자이겠습니다.

우리들의 세계에 흐르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분 좋게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자동차를 사고, 한 달을 좋으려면 집을 사고, 일년을 좋고 행복하려면 장가를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참행복, 진정한 행복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 말이겠습니다. 그럼 인간의 참행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로마서 4:6-8절에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다윗은 ①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②시편을 쓴 시인(詩人)이였고 ③음악가였고 ④골리앗을 물리친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는 문무를 갖춘 인간으로서 최고의 행복을 누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으로서 권좌를 누릴 때 행복하다던가 시인으로서 음악가로서 예술을 즐길 때 행복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적들을 물리치고 백전백승 했을 때 행복했다는 것이 성경에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 샀다고, 밭 샀다고, 장가들었다고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참행복은 다윗처럼 죄용서함을 받고 그 죄 가리우심을 받고 하나님이 그 죄를 인정치 않을 때 가장 행복할 줄로 믿습니다. 참행복은 용서받을 자로부터 용서를 받고 살아갈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셨습니다.
000,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편안히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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