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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기도문3(일용할 양식의 문제) (마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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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살피는 말씀은 매우 시사적이고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되는 내용 이다. 왜 이것이 주 기도문의 내용 가운데 등장하고 있는지 간과해서는 안될 중차대 한 이해와 더불어 우리의 심각한 기도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또 다시 언급하거니와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할 문제가 아니다 . 왜 이러한 기도를 가르쳐 주고 계신지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루어지 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확인을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우리 각각의 절박한 삶 속에 서 이루어지고 있는 간곡한 기도의 삶의 형태가 이렇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말씀을 통 해서 확인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는 앞의 내용을 이루어가는 절대적 분기점이기 때문에, 이것은 앞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게 되어있다. 결코 앞의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새 삼스러운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본문의 기도를 육신의 일용할 양식이냐 아니면 하늘의 양식이냐 가 논의의 주 관심사였다. 새삼스럽게 그러한 논의를 다시 여기서 하려는 생각은 없 다. 성경이 육신에 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혼돈을 잘 말해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혼돈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대부분의 기도내용이 되고 있어 우리의 분통이 터지며, 혼돈의 수렁에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육신에 속한 자는 자 기의 필요대로 육신의 떡 을 구할 것이요 하늘의 양식이 필요한 자는 그 필요에 따라 하늘의 양 식이 기도 내용 이 될 터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렇게 한가롭게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냐를 논하는 차원 이상이 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단어가 세개 있다.

 To:n arton (톤 아르톤) to:n ejpiouvsion (톤 에피우시온) shvmeron (세메론)

이 세 단어 중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없겠으나 첫번째는 여러 형태로 언급되었다 고 여겨지므로 두번째와 세번째 단어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 본문 이해에로 들어가보자.

 to:n ejpiouvsion (톤 에피우시온)

우리말 개역성경은 일용할 로 번역되고 있는데 이 단어는 누가복음 11:3에서 병행 구절로 쓰 이는 또 한번의 예밖에는 나타나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새기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에피ejpi와 에이미eijmiv 동사의 현재분사 여성형의 파생어에 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가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에피 ejpi라는 전치사 가 접두되어 형성하는 합성어의 경우이다. 대체로 에피 ejpi는 세가지의 의미를 강 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즉-위에, 다음에, 온전한 등의 의미를 첨가시켜주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기노스코 ginovskw라는 동 사는 알다 라는 동사인데 에피기노스코 ejpiginovskw하면 완전한 지식, 즉 온전히 혹은 확연히 아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 단어와 같은 유래로 추측되는 단어 중에 에피우세 ejpiouvsh라는 단어가 있는데, 사도행전에 5 회 나타나고 있으며 이튿날 의 (행7:26, 16:11, 20:15, 21:18, 23:11)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의 양식, 혹은 위에 있는 양식, 또는 온전한 양식, 온전히 있게 하는 ( 이다 라는에이미 eijmiv의 분사형임 을 가만해서 생각해 본다 면) 양식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또 한가지 살펴보아야 할 단어는 shvmeron(세메론)이다.

소위 오늘날 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단어인데, 과연 우리가 오늘날의 개념을 어떻 게 새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로 나타나고 있는 눅 13:3에는 shvmeron(세메 론) 대신에 kaqj hJmevran(카테메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 다. 카타 kavta라는 전치사와 함 께 쓰이는 헤메란 hJmevran은 매일 혹은 날마 다(daily) 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두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하는가 즉 오늘날 과 날마다 인데 이에 대하여는 히 브리서 3:13이 아주 잘 주석해 주고 있다.

 오직 오늘(세메론 shvmeron)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헤메란 hJmevran) 피차 권면 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주기도문의 후반부를 옮겨 놓은 것과 같은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의 의미와 매 일의 의 의미가 동시에 새겨져야 함을 알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주기도 문에 대한 마태복음의 표현과 누가복음의 표현이 합쳐져서 비로소 온전한 의미로 새 겨질 수 있음도 알 수 있게 된다.

복음서에 병행구절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와 하나 님의 편집에 있어서의 오묘한 섭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구절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문제는 오늘날 의 개념에 있다. 성경이 말하는 오늘날 의 개념이 어떤 시점을 말하고 있 는 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실 그 때에 필요한 양식이 무엇인지도 자 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예하며 또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향 하여 하시 는 맹세에 참예하여 여호와께서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열조 아 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 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 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선 자와 오늘날 우 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니 (신 29:12-15) 라는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말씀을 살펴보건데 이 날은 특별한 구속사와 관련된 어떤 특정한 날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계바늘이 돌아가면서 가르키는 역 사적인 시간 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것은, 성경이 지금 내게 대하여 하고 계신 말씀이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어도 나와 관련해서는 말이 다. 항상 읽고 있는 내용이 독자와 관련이 없 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자 신과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오늘날 이라고 하는 시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 하신대로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하는 중차대한 시점을 일 컬어 지시하고 있는 개념이다. 즉 이 시점은 그 동안 애굽땅에 서부터 큰 이적과 기사 및 큰 시 험을 목도하며 여러 나라를 통과하여 이제 가나안 땅 을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언급되고 있는 날이다. 이 광야 생활의 마지막 지점까 지는, 성경 대로 아무리 큰 이적과 기사를 목도하였다 하 더라도 이 날까지는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허락하지 않고 있으니(신 29:3-4) 오늘 날 이라고 하 는 때는 눈과 귀가 열리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중요한 때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신약에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어떠한 형국의 날인지 몇몇 사례를 살펴보자.

예수의 행적에서도 매우 시사적인 몇가지의 사건을 통해서 오늘날 이 어떤 날인지 를 암시하 고 있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3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래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4:32) 여기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제 삼일 은 결코 시간의 3일을 일컫는 것은 아닐게다 . 즉 각각 의 날들은 어떤 의미적인 삼일이라는 것이다. 이 삼일의 시작은 오늘날 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삭개오라는 개인에게 있어서 오늘날 을 살펴보면 한개인의 삶의 대 전환이 일어나 고 있는 오늘날 임을 알 수 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 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 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 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 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 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 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것 을 토색한 일 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 니라 (눅 19:2-10)

그런가 하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오늘 은 혼쭐이 나도 완전하게 나는 오늘 이 있었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 고 부인하리 라 (눅 22:34)라시던 예언대로 자기 생명이었던 예수를 세번씩이나 부 인하는 기억하기조차 싫 은 사건이 있었던 오늘 .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음성을 들을 수 없겠기에 예전의 눈과 예전의 귀를 말살시켜야 할 필요성 이 있었던 오늘 이었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심판에 거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바울의 묘사를 보자.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 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가로 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 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 느니라 (롬 11:7-10) 그러므로 성경의 오늘날 은 그렇게 한가롭기만 한 오늘이 아닌듯 싶다. 하나의 세계가 깨어 지고 새로운 음성을 듣고 온전한데로 나아갈 수 있느냐 아니면 여전히 예 전의 질서에 묶여서 사 느냐 하는 때이기에 이 날이 이르면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 라는 것이 히브리서의 간곡한 당부 이다. 아직도 여전히 광야 교회인 사람에게는 이 날이 속히 이를 것이다. 이날을 기다려야 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날이 이르면 그 날인 줄로 알아 마음을 굳게 하지 말고 온전한 양식으로 채우기를 구해야 하리라 . 이날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 루어지기 위 한 서곡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 라 라는 말씀대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 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 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 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 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 든 이가 아니냐 (히 3:13-16)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의 언급을 보면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 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행 13:32-34)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 은 어떤 하루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구원 의 성취여정 에서 발생하는 대 변혁의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도 살펴본 바대로 그것은 삭개오 에게와 베드로에게 있었듯이 각각 하나님의 집이요 처소로 지 어져야 할 개인에게 발생하고, 있 게 되는 오늘날 이다. 그 날은 해산의 고통과 동시에 생명으로 출생하는 날(오늘 너를 낳았 다)이기에, 이 날을 거부하거나 마음을 굳게 하면 여전히 이전의 세계에서 갇혀있게 될 터이며 성 경은 이를 심판이라 한다 . 이러한 오늘날 필요한 것은 To:n arton to:n ejpiouvsion (톤 아르 톤 톤 에피우 시온, 온전히 존재하는 양식) 이요 그것은 오직 오늘(shvmeron, 세메론) 이라고 일컫는 날 동안에 매일(kaqj hJmevran, 카테메란) 필요한 양식이요 계속하여 있어야 할(to:n ejpiouvsion, 내일 이라는 의미를 배제하지 않는다면) 양식인 것이다.

곧 영생의 떡이다. 그것은 온전한 자로 온전히 존재케 하는 양식으로, 즉 그의 음 성을 비로소 듣고 온전한데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요 에너지원이다.

이 때에 마음을 강퍅케하면 결국 선악을 알게하는 것으로 양식을 삼게되는 시험에 얼 마든지 빠 질 수 있겠기에 우리로 시험에 들지 말게하옵시며 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 jA-mh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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