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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처음받은 은혜의 선물을 져버리지 말라 (고전 01:4-9, 계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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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본문은 2세기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7교회들 중 한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여러가지로 주목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에베소란 도시의 중요성에서 뿐 아니라 소아시아 지방의 선교에서 차지하는 에베소 교회의 중요성 때 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회에 대하여 먼저 칭찬을 열거했습니다. 크게 세가지를특별히 들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 여 온갖 수고와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지고 있는 일반 적인 목회와 선교활동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것을 잘했다는 것입니다. 드 다음으로 어려운 일을 만나서도 낙심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 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견디어 냈으며 낙심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했습 니다. 이 말을 박해를 당해서 그 시련을 잘 이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번째로 약한자들과 사이비 사도들을 가려냈다는 것 등을 인정하고 칭 찬했습니다. 6절에 나오는 니골라오파가 여기서 말하는 악한 자들과 사 이비 사도들의 한 예인것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오파의 소행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도 그것을 미 워한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악한자들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 를 사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허위를 가려낸 일은 말하자면정통 교리를 잘 수호했다는 것을 말하는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일들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 에서 잘한 일,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잘 알고 계셨고 잘했다고 인정을 했 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께서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그 런 사람과 교회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예스럽다고 하겠습니까 이보다 더 기쁘고 영예스러우며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우리가 개인적으로 나, 교회적으로나 수고와 고생을 할 때 때로는 '이렇게 해 보아야 누가 알아주나', '무슨 소용있는가'라고 생각할 때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고독, 회의, 비관, 낙심 등, 특히 외로운 투쟁을 하고 그 사회의 다수로 부터 손가락질, 조롱, 혹은 박해를 받을때 그렇게 느낄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회의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알아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 ',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묵 시록에서 묘사하는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보시는 눈을 가지신 그리스도 ', '모든것을 보시고 모든것을 살피시는 메시아'로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분입니다. 여기보면 나는 안다는 표현이 다섯번이나 반복되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모르시는 것, 그가 간과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놀라운 말을 듣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되시는 그리스도 께서는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한 자랑스러운 에베소 교회에 나무랄 것이 있 다고 말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꾸짖음입니다. 온갖 것을 다 잘하였다 하더라 도, 아무리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사랑을 버렸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모든것을 버렸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바울의 저 유명한 '사랑의 찬가'의 말을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또는 남 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3:1-3) 백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고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얻었다 하 더라도 사랑을 잃었다면, 모든 것을 잃은 셈입니다. 모든 것을 한다고 하 더라도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 뜻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됩니 다. 사랑이 없이는 모든 것이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중대한 말입니다.

여기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말에서 '처음 사랑'은 무엇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에베소 교인들이 처음 하느님을 영접했을때 그 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을 말 할 것입니다. 그 사 랑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안의 형제와 자 매들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본래 뜨거운 사랑 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깨달았고 실천했던 처음 사랑은 그리 스도를 통해 알게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을 향 한 십자가의 사랑, 곧 조건이 없는 사랑, 남에게 자신을 주는 사랑, 남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구속적 인 사랑이고 대속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이 사랑에 감동되고 뜨거워진 에베소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이 교회의 선교와 목 회의 여러가지 봉사활동에 열중해 오는 동안, 그들이 박해를 맞아 온갖 시련을 견디고 유혹과 시련을 싸우는 동안, 그리고 정통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온갖 거짖 교리와 거짓 사도들과 싸우는 동안, 그들은 이 뜨거운 사랑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마 치 예수님이 어릴때 그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순례를 갔던 그의 부모가 순 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만 아들 예수를 잃어버리고 온 것을 뒤 늦게 알고 사흘 길을 되돌아갔다는 이야기와 흡사하다고 하겠습니다. 수 많은 것을 관심하다가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리게 된 좋은 예화 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은 전부를 잃었고 이 잃음이야말로 총체적 잃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에베소 교회 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남이 할 수 없는 훌륭한 일을 많이 했는데도 불 구하고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로 부터 엄한 꾸중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잠간 음미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 소 교회 교인들이 다른 것은 다 잘했는데 사랑을 잃었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머리는 잘 돌아가고 손발이 잘 움직 였는데, 가슴이 식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거짓 사 도, 거짓교훈, 거짓교리를 가려내는 것은 머리가 하는 일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것을 재데로 했습니다. 또 에베소 교회가 칭찬을 받은 것은 봉 사입니다. 그것은 손발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목회적, 선교적 활동 을 잘 감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칭찬 받을 일이라 하겠습 니다. 그런데 왜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받았습니까 처음 사랑을 잃었다 는 것 때문에 아닙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가슴이 사늘하게 되 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물론 교회는 머리, 손발, 이 세가지가 모두 온전하게 기능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독교 신앙의 삼위일체적 요소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중에 한가지라도 결여될 때 문제가 있 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회의 주인이 되시고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엄 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 경고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내가 가서 너의 등경을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엄한 경고를 보 면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고 죄인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망을 넘어 분노하시는 그리스도를 볼 때 그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 엄한 경고는 에베소 교회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 니다. 심판하고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고 구원하려고 하는 것입 니다. 이떻게 하면 잘못된 길에서 돌아올 수 있는가 하는 그 과정을 여기 서 말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 할 수 있습니다. 회개의 3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여기 언급되어 있습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네가 어디서 빗나갔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서에는 '생각하라'고 했습 니다만, 본래는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본래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에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교회였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두번째 과정은 '뉘우치는 것'입니다. 곧 회개하는 것입니다. 처음 것을 기억해 본 결과는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에 그 들이 가졌지만, 지금 그들이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등을 알게 됩니 다. 그러면 그 잘못된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없이 새 출발 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번째 과정은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처음에 하던 일을 다시 하여라'라고 했습니다. 처음 하던 일이란 물론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이 회개의 과정도 역시 위에서 말한 세가지 기관과 관계되어 있다고 보 입니다. 기억하라는 것은 머리와 관계된 일입니다. 그 다음으로 뉘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슴이 하는 일입니다. 가슴이 뜨겨워져야 합니 다. 마지막으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행동이고 이 행동은 팔 다리가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머리, 가슴, 팔 다리가 함께 한꺼번에 새 롭게 태어나듯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것은 경고입니 다. 듣지 못하는 자는 불행합니다. 그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의 내용을 들어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 서두에서 바 로 이런 뜻으로 이 예언의 말을 읽고 듣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1:3)고 했습니다.(참조:마가 4:9, 23, 7:16, 마태 11:15, 13:9, 43, 눅 8:8, 14:3

5.) 구체적으로 어떤 복이 있는가 말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축복이고 약속 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승리하는 자들에게 하 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승리한다는 군사적인 용어입니다만, 군사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묵시록에서는 역사를 한편에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세력이, 다른 한편 에서는 사탄과 반그리스도 세력 사이의 전쟁이라는 이해를 반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묵시록에서 이렇게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 과 교회가 악마적 세력에 의해 박해를 당했는데 이것을 전쟁으로 이해했 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승리하는 사람은 박해를 이겨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박해를 이겨내는 사람, 순 교조차도 불사하는 사람은 위대한 축복이 약속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게 될 것이라는 위대한 약속입니다.

이것은 물론 인간의 조상의 에덴동산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 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묵시록에서 말하는 낙원은 새 하늘과 새땅을 의미합니다.(22:2) 여기서 생명의 과일을을 먹는다는 것은 영생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생명의 과실을 먹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낙원에서 추방되고 유한한 인간의 운명을 자초했습니다.

그러나 묵시록에서는 승리하는자, 곧 사랑하는 자는 그 보상으로 생명의 과일을 먹어 영원히 사는 것이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를 방문했던 박형규 목사님이 저희 교회에 대하여 하 신 말을 기억할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저의 뇌리 속에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좋은 말로 우리 교회와 저를 격려한 많은 말 가운데 촛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3년 전 에 우리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그 가 섬기던 제일교회에 있던 촛대가 향린교회로 옮겨진것 같다고 생각된 다'고 한 말을 환기시키면서 지금도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70-80 년대에는 하느님의 촛대가 분명히 서울 제일교회에 있었다고 확신을 하는데, 지금은 그 촛대가 제일교회를 떠난 것 같다고 하면서, 그 촛대가 향린교회로 옮겨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 은 물론 우리 향린교회가 하느님의 교회로서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 다는 것을 인정하고, 특히 에언자적 선포가 우리 교회 강단으로 부터 계 속 외쳐지고 있고 평화와 통이을 위한 증언을 몸으로 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를 인정하고 칭찬하여 한 말이었습니다. 다른 교회에 있던 촛대가 우리 교회로 옮겨왔다는 말은 어패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향린교회가 진정한 하느님의 교회라고 칭찬하기 위하여 한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 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형규 목사님의 발언에 대한 반응 중에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그것이 우리 향린교회가 문제가 없다는 말은 되 수 없다:우리 향린 교회는 다른 촛대가 있어야 한다:그 촛대는 금 촛대 같이 좀 화려하고 아름답고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것이어 야 한다:등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생각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밖으로부터 많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에게, 하느님에게 인정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진 지하게 자문자답해 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인간으로 부터 칭찬 을 받고 인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만일 하느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 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매우 불행하고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금세기의 독일의 순교자 본 훼퍼(Dietrich Bonhoeffer)는 교회에 대하 여 하느님께 감사를 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 일이 있는데 이는 음 미해 볼 만한 것입니다:만일 우리가 속해 있는 기독교 친교(교회)에 대하여-비록 위대한 경험이 없고, 찾을 수 있는 부(腑 통찮은 신앙, 어려움 등이 더 많 이 있다고 하더라도-우리가 매일 감사하지 않고, 반대로 오히려 하잖은 것들에 대하여 불평만 계속한 다면, 그 때에는 하느님이 우리의 교회를 자라게 하는 것을 우리가 방해하는 것이다.(Dietrich Bonhoeffer, Life Together.) 교회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한 완전한 교회는 있기 어려울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결함이 많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오늘 공동의회를 열고 교회갱신문제를 의논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의제로 제출하는 교회갱신안이 어떤 분에게는 너무 과격하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할 분도 있겠고, 반면 또 다른 한편의 교 우들은 그것이 기대에 못 미치고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생각할 분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현실 안주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변화되어야 하 고 새롭게되어야 하는 것을 주저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내 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교회 갱신을 위하여 과감하게 또 진취적이어야 합니다만, 그렇다고 우리 가 이미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잊거나 소홀히 해서 안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공동체의 일체성, 조화와 평화, 성도들 간의 이해와 관용과 사랑, 이 런 것들을 소홀히 하거나 잃어버리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 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교회갱신을 관심하는 것도 모두 교회를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박해를 받고 악마적 세력과 싸우면서 사랑이 식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박해가 없어진 상황에서 많은 경우에 가슴이 식는 경우 그냥 세월에 흘러가면서, 또 안일에 빠져서 그렇게 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 처음 열성, 그것을 우리는 과연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이 권면하는 말을 들읍시다. 마지막 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지 우리는 흠이 없는 성도가 되고 흠이 없고 나무랄 것이 없는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공동의회에 임하 면서, 의제를 논할때 우리 교회가역사적으로 지고 있는 목회적, 선교적 사명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질문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결의가 과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데 관계된 것인가' 그 다음으로 우리가 질문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 결의가 과연 우리가 처음 받은 은혜의 선물을 간직, 계승, 발전시키고 후대에 유산으 로 남겨주는 것인가

--설교를 듣고 응답하는 교우의 기도 메마른 길섶에 핀 들꽃 한 송이도 소중히 지키시는 주님! 그러나 온갖 구조악과 얕은 속임수를 함부로 반죽하여 걸쳐놓고 백년세 월을 장담했던 한강다리는 참혹한 죽음을 불렀습니다. 온 나라가 무너진 다리의 구조물을 놓고 참사의 원인을 찾기에는 급급하나 그 치떨리게 무 섭던 군사정부의 치세가들이 과연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가장 우선하고 다 리를 놓았을까요 시퍼런 강 허리를 썩뚝 잘라버린 다리의 잔해들을 보면서 단절된 저마 다의 삶과 갈라진 민족의 역사를 하나로 잇고 주님의 나라에 이르는 영원 한 생명의 다리는 어떠해야 하는지 묵상합니다. 물론 탁월한 구조역학의 논리와 오차없는 손놀림, 강인한 노동력과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치의 관 행도 중요하겠지만, 오직 진실한 사랑 한가지가 모자라면 또다시 무너지 는 역사에 이르고 말 것을 두렵게 깨닫습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당신 부르심에 눈물없이는 응답할수 없던, 그 첫사 랑의 맹세를 다시 깨워 주시옵소서. 기쁨이 넘쳐 떨리는 가슴으로, 회당 에 솟구치는 말씀의 폭포에 넋을 담갔던 충격을 새롭게 하소서. 그러나 향린 사랑의 방법을 찾고자 입술마다 해박한 논리가 넘치게 많아서 그 입 술들의 바람으로 제단의 등불을 꺼버리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옵소서. 아 둔한 머리와 어눌한 재주로 보잘것 없는 삶을 부끄러워할 망정, 뜨거운 가슴과 가슴을 잇어대어서 주님나라에 닿을 사랑의 대교를 놓아 가는 일 에 한 몫을 감당케 하시옵소서. 아무리 무거운 짐이 짓눌러도 당신의 은 혜에 감사하는 그 힘으로 결단코 무너져 내리는 일없이 버틸수 있는 믿음 을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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