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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삭개오의 집에 유하신 예수님 (눅 19:1-10)

첨부 1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악명 높은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유하신 사건입니다.
“삭개오는 잃어버린 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면서 병든 한 영혼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삭개오의 믿음을 배우고 병든 한 영혼을 찾아 구원코자 하시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삭개오(1-4)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들어 지나가셨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80리 정도 떨어진 요단 계곡에 자리잡은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여리고는 종려 나무들과 장미 화원 등을 갖춘 “작은 낙원”, “종려의 도시”(the city of palms)였습니다. 헤롯 대왕과 그의 아들 아켈라오는 여리고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고 웅장한 거울 궁전을 세우고 극장과 경기장도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도성은 “신성한 영역”이라고까지 했습니다. 특히, 마크 안토니(Mark Antony)가 이 도시를 클레오파트라에게 사랑의 표시로 주었다고 합니다.
또,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요단 동편 지방을 통하는 관문으로서 북으로는 다메섹,두로,시돈, 서편으로는 가이사랴와 욥바, 남편으로 이집트를 잇는 중요한 교역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리고는 향료의 도시요 무역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큰 세관이 있게 된 것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 오셨을 때는 동편에서 소경 거지를 고쳐 주셨고(18:35) 이제는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면서 서편에서 삭개오를 만나 영적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서편에서 삭개오를 만나셨습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순결, 정의”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그를 낳고 순결하고 깨끗하게 크라고, 또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바래서 삭개오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1) 그러나 그는 커서 악명 높은 세리장이 되었습니다.(2)
당시 세리장은 주로 로마 사람들 이였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삭개오는 유대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여리고 세무소의 소장이 되었습니다.
당시 세무 소장들은 세금 청부업자들이었습니다. 로마에서 세금 청부업자들에게 세금 경매를 붙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세금을 많이 내겠다고 하는 세금 청부업자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하청 하여 줍니다. 그러면 그는 세무소를 차리고 그 지역에 세무 소장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세리들을 고용하여 세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백성들에게 정한 세를 거두어 로마에 바치고 정한 세금 외에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사복을 채웠습니다.(눅3:13)
당시 유대인들은 수입의 30% 정도를 세금으로 빼앗겼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백성들을 착취했는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면허증을 가진 강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2) 삭개오 그는 부자였습니다.(2)
삭개오는 유대인으로서 세리장이였을 뿐만 아니라 큰 부자였습니다. 적어도 유대인으로서 세리장이 되려면 동족을 완전히 등져야 합니다. 또, 로마로부터 신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는 식민지의 가난한 백성으로 태어나 가난에 한이 맺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민족이고 신앙이고 모든 것을 외면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세리가 되기 위해 열심히 헬라어와 로마어, 이집트어, 수리아어 등 외국어를 마스터했을 것입니다. 또, 경제학, 국제법, 경영학 등을 고3(高3) 공부하듯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해서 로마로부터의 시험에 합격을 했을 것입니다. 또, 이러기까지 로마에 가서 로비 활동도 부지런히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세리들을 물리치고 이 몫이 좋은 여리고의 세무 소장이 된 것입니다.
그는 마음이 약해서는 동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둘 수 없으므로 마음에 철판을 깔고 안면 몰수하고 돈을 거둬들여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악착같이 하여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3) 그는 키가 작았습니다.(3)
작은 고추가 맵다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몇 개 국어를 능통하게 해서 통역도 하고 또, 세금도 받았습니다. 키가 작으니까 멸시를 받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악착같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무 소장이요, 큰 부자요, 키가 작은 삭개오라는 양반이 누구를 보고자 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 신지(Who Jesus was) 알고자 했습니다.

그는 식민지 통치하에서 일단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가 원했던 권력과 부를 얻었습니다.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들을 물리치고 그는 성공을 했습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사회에서 그는 남보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는 공부도 많이 해서 어느 정도 학식도 갖추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권력을 가지고 부를 얻으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또,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얻었는데 행복은 없었습니다. 또, 존경은 커녕 오히려 동족들로부터 멸시를 당해야 했습니다. 유대 동족들은 세리들을 매국노와 같이 멸시하고 상종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죄인 중에 죄인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또, 아들 딸 자식을 낳아서 다 키워 결혼을 시키려고 해도 세리의 자식이라고 혼처 자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자식들까지 아버지를 원망하고 또 로마에서는 세금이 작다고 독촉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스트레스가 쌓였을 것입니다.
그는 유대 사회에서 멸시를 당하고 소외되고, 로마로부터는 유대인이라고 멸시를 당하고 자식들로부터 원망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세리 생활이 지겨워졌고 환멸을 느끼고 그래서 날마다 좋은 자가용을 타고 고급 술집을 드나들며 술이나 퍼마시며 괴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삭개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세무 소장쯤 되면 전국 세무소 소식에 빨랐을 것입니다. 특히 갈릴리 가버나움에 있던 가버나움의 세무소 소장이었던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영접해 주시고 함께 음식을 잡수셨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소외되고 멸시만 받던 세리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분이 어떤 분일까 예수님의 인격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어떤 분이시길래 바리새인들은 아예 상종치도 않는 세리들을 영접해 주시고 제자로 삼으실까 그래서 삭개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소원이 불타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여리고를 지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어떤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까1) 바클레이는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이 자그마한 세리를 팔꿈치로 찌르거나 발로 차거나, 밀어 제쳐 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그날 삭개오는 상처로 멍들고 유대 군중들은 삭개오를 사악하게 해 두고 쾌감을 느끼고 있을 때 삭개오의 마음은 멍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2) 그런데다가 키는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발뒤꿈치를 들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외적인 장벽이겠습니다. 그런데 또,
3) 내적으로는 사단이 참소를 합니다.
“너 같은 놈은 예수를 만날 자격이 없어!” “예수님은 너 같은 죄인에게는 관심도 없어!” 무척 많은 시험이 찾아 왔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데 장애물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어떻게 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키가 작은 문제와 키 큰 사람들이 가로막고, 그를 미워하는 유대인들이 이때라 하며 사람 사이로 쥐어박고 밀어내도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볼 수 없으니까 제 3의 방법을 택했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모든 체면을 다 벗어버리고 뽕나무에 올라가 원숭이 마냥 웅크리고 앉아 예수님이 그 앞을 지나가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이 간절했습니다.
저는 요사이 어떤 성도님이 벧엘 성경 공부도 하고 크로스웨이도 하고 또 다른 성경 공부를 간절히 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런 영적 소원만 있으면 틀림없이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 받는다 확신합니다.

Ⅱ. 삭개오의 집에 유하신 예수님(5-10)

삭개오가 원숭이처럼 대롱대롱 올라가 있는 뽕나무 아래 예수님은 머물러 서시고 예수님은 그 관경을 처다 보셨습니다. 그 나무 아래 이르사 우러러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다 아셨습니다. 어찌하여 뽕나무에까지 올라갔는지 삭개오의 마음을 다 아셨습니다. 삭개오의 형편을 다 아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형편을 다 아실 줄 믿습니다.
대중가요에 “속삭이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속삭이는 눈빛을 보시고 다 아셨습니다. 아시고는 머물러 서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길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이요,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려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리고를 지나셨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를 위하여 다시 여리고 성으로 들어가 삭개오의 집에 하루를 묵고자 하셨습니다.
이렇게 묵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1) 삭개오에게 예수님 당신 자신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 알기를 원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예수님을 보고자 뽕나무에 까지 올라 간 그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에게 예수님 당신 자신을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예수님 당신을 만나고 삭개오의 내면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자신을 주시기 위해 삭개오의 집에 유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진정으로 한 영혼을 이해하시고 전폭적으로 사랑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2) 둘째,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서 잃은 양을 찾는 기쁨을 나누는 잔치를 벌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계시록 3:20절이 떠올랐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 준다면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먹고 함께 기쁨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 문을 열면 예수님께서 그 마음 속에 들어오십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유하시겠다고 하시자(6절)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였습니다. 기쁨이 충만하여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버림받고 소외되고 멸시를 받는 자기를 알아주시고 크신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예수님의 인격에 깊은 감화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뭇 사람들은 보고 수군거리기를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 하며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죄인의 집에 손님이 되어 들어간 것으로 인해 수군거렸습니다.
이것을 보면 삭개오가 얼마나 그 사회에서 멸시를 당하고 소외되었으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였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자기를 아무런 조건 없이 영접해 주시고 자기 집에 유하시겠다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놓고 정성을 다하여 대접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삭개오는 과연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 앞에서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그는 지금까지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민족이고 신앙이고 다 팔아먹고 이기적인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서 무자비하게 빼앗고 속이고 사욕을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기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또 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법(律法,율법)이 요구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배상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강도의 행위가 드러날 때는 출애굽기 22:1절에 배로 보상하고, 평범한 도둑이면 본래 액수의 갑절로 배상하고(출22:4,7) 자수하거나 자발적으로 배상하면 본래 물건 액수의 오 분의 일을 더하여 지불하면 됩니다.(레6:5, 민5:7) 그러나 삭개오는 율법의 요구 이상을 배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는 변화한 자의 모습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물질은 아무것도 아니 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빌3:7,8)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인생의 목적과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물질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용감히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아무리 많은 물질을 얻고 지식을 가지고, 권세를 얻어도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항상 골치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죄사함을 받고 나니 마음은 하늘을 훨훨 날아 갈 것 같고 만물은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 같았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회개와 결단을 했습니다. 자기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토색한 것도 갚겠다고 결단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 시간 예수님 앞에 선 삭개오같이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한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이 집에 불행의 근원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삭개오를 통해서 이 집이 구원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아무도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이방인 보다 더욱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 주셨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삭개오를 탕자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아버지 같이 삭개오를 기뻐하시고 사죄 선언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길 잃고 헤매는 잃어버린 자를 찾고 있습니다. 삭개오같이 올바른 믿음에 서지 못하고 잃은 자를 찾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뒤에 베드로의 동역자로 있다가 가이샤라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하기도 하며, 또는 가이사랴에서 고넬료의 후계자가 되었다고도 하며, 가롯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가 된 맛디아라고도 합니다. 하여튼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로 훌륭한 주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사에 놀라운 영향을 준 한 장의 그림의 한 폭이 있습니다.
그 그림은 (스텐버그)의 명화 “십자가”라는 그림입니다.
스텐버그는 성 제롬 대 성전의 유우고 신부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리기 시작하다가 중단하고 시간을 끌었습니다. 이유인 즉, 화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흥정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는 중간에 집시 여자인 (페피타)를 모델로 다른 그림을 착수하여 그렸습니다. 어느 날 모델로 화실에 와 있던 (페피타)가 초만 잡혀 있는 예수 상을 보고 십자가의 내용을 이야기해 달라고 졸라댔으며 너무나 흔한 성경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간 낭비였지만 소녀의 간청에 못 이겨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대강 들여 준 예수님의 이야기에 (페피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소녀는 화가에게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이 훌륭한 사람을 선생님은 무척 사랑하고 계시겠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스텐버그)의 양심은 몹시 찔렸으며 몇 일을 생각하고 뉘우치고 기도한 끝에 전력을 다하여 예수 상을 착수했고 주는 화료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젊은 공작 진젠돌프가 제롬 대 성전에서 이 그림을 보다가 감화를 받고 자기의 전 재산을 받쳐 선교회를 창설한 것이 모라비안 교파가 되었고,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외슬레는 그들의 뜨거운 신앙과 전도열에 자극이 되어 새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오늘 이 삭개오를 봄으로 변화가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열망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삭개오의 결단이 여러분의 결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삭개오의 변화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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