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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롯과 그의 딸들 (창 19: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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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8회 대구 남노회를 대봉 교회에서 가졌습니다.
노회마다 다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두 패로 갈라져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아직 임원 선거도 하지 않은 상태요 첫날인데 점심 대접을 대봉 교회에서 보신탕으로 노회원들에게 잘 대접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대접을 받은 몇몇 회원들이 그 교회 장로님들과 식사를 마치고 앉아서 웃으며 담소를 나누다가 어느 회원이 “오늘 개대접 받았다” 고 한마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들이 지난 시간에 롯으로부터 “개대접”을 받았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대접을 잘 받았다”고 나오지만 우리 성경에는 “무교병” 대접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이거 대접을 잘 받았다는 것인지 못 받았다는 것인지 본인들만 알 일입니다.
이런 이 대접을 받고 롯의 집에서 잠을 청하고자 하는데 소돔 성 사람들이 몰려와서 동성연애를 하겠다고 오늘 온 손님을 이끌어 내라고 하는 타락한 소돔 성 사람들을 보고 멸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롯에게 “네 사위나 자녀나 성(城)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城) 밖으로 이끌어 내라”(12)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13) 했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합니다.
그런데 롯이 지체하자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며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6,17)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지난 시간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Ⅰ.도망가는 롯과 그 가족(18-29)

이렇게 지체하는 롯을 재촉하고 재촉하다가 이제는 손을 잡아 겨우 이끌어 내어놓으니까 롯이 하는 말이 ‘주여 제발 그렇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께서는 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에게 큰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만, 내가 산까지 달아날 수가 없습니다. 도중에 재앙을 만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기 도망하기 가까운 작은 성이 있습니다. 저 성은 아주 작고 가깝지 않습니까 내가 그 곳으로 도망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안전하겠습니다’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네 요구대로 저 성은 멸하지 않겠다’고 하시고 빨리 도망가라고 합니다. ‘너희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그 성의 이름을 작다는 뜻으로 “소알”(Zoar)이라 불렀습니다. 소알 이란 곳의 본래 이름은 “벨라”(Bela)로 “삼키다”라고 하는 뜻이었는데(14:2,8) 롯이 이곳으로 도망한 후에 소알로 바뀌어졌습니다.
이 소알은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과 더불어 싯딤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소알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시에 함께 멸망했다고 주장을 합니다만, 성경의 기록을 볼 때 그렇지 않습니다.(23-30)
소알은 이 때 멸하지 않고 로마 시대에 지진으로 땅이 꺼져 사해 바다에 덮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을 볼 때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심판을 원하지 않으시며 죄인들을 향하여 길이 길이 참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기다리시고, 참으시고, 연기하시고, 연기하시고(6번) 인자를 베푸십니다. 또, 재촉하시고, 또 재촉하시는 재촉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보호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크신 긍휼이 아니면 롯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자신들을 뒤돌아 볼 때도 롯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머뭇거리고, 죄악을 떠나지 못하고 죄의 낙을 즐기며 그래도 소돔에 있으려고 지체하였습니까
또, 롯과 같이 다른 성을 넘어다보며 자신의 것만 구했습니까
이런 저희를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셨고 계속 재촉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 날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의 은혜를 덧입게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찬송가에 있는 것 같이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405) 주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롯이 소알에 이르렀을 때에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에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쏟아 그 온 성과 들에 사는 모든 사람과 땅에 자라는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셨습니다.
더러운 정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경(經)히 여기고 농담으로 여기던 사위들까지도 다 엎어 멸하셨습니다.
싯딤 골짜기는 농업이 발달한 기름진 땅을 말합니다.
싯딤이라는 말은 “cultivated fields” 기름진 땅, 농경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기름진 땅을 다 엎으시고 지금의 사해(Dead Sea)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기름진 땅은 온대 간대 없고 사해(死海)-죽음의 바다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사해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수심이 낮은 곳이요 풀 하나,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저주스런 곳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의 결과입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사해 남쪽 해저에서 그 당시의 Festival hall(축제의 장소)의 흔적을 발굴해 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당시 소돔과 고모라가 얼마나 타락했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로서 유황불 비가 비오듯 쏟아지는데 롯의 처는 어떻게 했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하였습니다.
천사는 롯의 처에게 17절에 “뒤로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도망하라” 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롯의 처는 말씀의 경외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던 사위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롯의 아내의 신앙 문제는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뒤돌아보는 순간 뻔적 와르르 꽝! 하는 순간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롯의 처는 왜 뒤돌아보았을까요
먼저는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없었고, 말씀에 대한 순종심이 없어서 뒤돌아보았습니다.
둘째는 소돔 성에 두고 온 재물에 대한 미련과 사위들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썩어질 세상 것들에게 소망을 두고 살았으며, 온 마음이 거기에 메여 있었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돌아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도 이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도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미련을 두고 마음이 온통 물질에 빼앗기고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혀 뒤돌아보며 뒤돌아 가는 자는 멸망할 것입니다. 다같이 누가복음 17:32절을 찾아 읽으십시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전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6번이나 연기해 가며 중보기도를 드리던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 산에 올라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유황 불 비를 맞아 타고 올라오는 연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연기가 마치 옹기점 연기 같이 치솟아 올랐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향을 가기 위해 포항을 거쳐 갈 때도 있습니다. 포항을 거쳐 갈 때마다 포항 종합재철 용광로에서 치솟아 오르는 시뻘건 연기를 봅니다. 때론 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먼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며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또, 우리는 현실로 그대로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사해 바다를 보고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럼 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중보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는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중보의 기도를 잘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Ⅱ.롯의 딸들입니다.(30-38)

롯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소알에 거하게 되었지만 소알에 사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두 딸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서 동굴 속에서 살았습니다. 롯은 동굴 생활을 하면서 술을 많이 마신 것을 보면 그 심령이 너무 괴롭고 비참하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롯의 생애를 보면 불쌍합니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삼촌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곳 저곳으로 나그네 생활을 했습니다.
또한 삼촌과 함께 신앙생활을 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신앙생활을 배우고 손님 대접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또 신앙생활 초기에는 많은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 문제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그는 신앙보다 물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된 사람들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많은 돈도 벌고, 물질을 모아 집도 샀습니다.(4) 또, 세간도 많이 마련을 해서 없는 것 없이 장만하여 놓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모은 집과 재산이 삽시간에 불탔습니다. 사위들도 불탔습니다. 자기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서 서 있습니다. 딸은 청산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 좋던 도시 문화 생활의 꿈은 다 깨어지고 동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탈기되어 술을 자주 즐겨 마신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큰딸이 작은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었고 이 지방에는 세상의 도리를 쫓아 우리와 결혼할 남자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31) 그 밤에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먼저 큰딸이 들어가서 아버지와 동침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술이 너무 취해서 딸이 한 일을 전혀 몰랐습니다.(33)
또 다음 날, 큰딸이 자기 동생에게 ‘어젯밤에는 내가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는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이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비는 술이 너무 취해 작은딸이 한 일도 전혀 몰랐습니다.(35)

이렇게 하여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여 큰딸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큰딸이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습니다. 모압이라는 말은 “아버지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이 모압은 후에 모압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습니다. 이 벤암미는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롯의 최후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1) 그는 썩어질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사는 것보다 신앙은 적당히 하고 풍요로운 물질 생활, 세상 명예, 육신적인 즐거움을 즐기며 안일을 찾고자 한데서 이러한 일이 생겼습니다.

2) 가장(家長)으로서 가정을 신앙으로 이끌지 못한데 이런 최후를 만난 것입니다.
롯은 손님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두 딸을 소돔 성 사람들에게 내어 주며 보기 좋은 대로 맘껏 성적 죄를 짓도록 허락한 것은 롯이 그 환경에 물들고 자녀들도 물들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 천사가 계속 재촉하는데도 머뭇거리고 지체하는 것도 자녀들이 보았습니다. 하여튼 가정을 신앙으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자기 남편을 주(主)라고 불렀습니다.
롯의 아내는 롯을 무엇이라고 불렀겠습니까 어이 “롯씨” 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롯의 아내는 손님 대접을 할 때도 없었고, 하나님의 사자가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도 뒤돌아보았습니다. 롯은 가정을 믿음으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가장(家長)으로서 신앙 지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한 데에 망한 원인이 있겠습니다.

3)또, 롯의 딸들이 왜 이 모양이겠습니까
본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 술 먹이고, 이런 성적인 짓을 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소돔 성에서 보았기 때문에 서슴없이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맹자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이사를 세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묘지 근처로 이사를 했더니 장례 행렬을 보고 그 흉내를 냈습니다. 그래서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더니 물건을 사고 파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더니 글 읽는 행위를 흉내 내어 거기서 자녀를 교육시켜 훌륭한 맹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은 말로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자녀는 보는 것으로 배웁니다. 신앙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의 좋은 본을 보여 주면 자녀는 그것을 보고자라서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4)그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다 동굴 신세를 지내게 되는 그릇된 신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롯의 생애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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