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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나 노아는 (창 0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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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시대는 장차 올 종말의 표상입니다. 예수께서 말세를 설명하 실 때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人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 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는 말세의 특성은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 빠 져 있어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일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절대 필요한 일이고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만 몰두하다 보면 그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인 감각,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소위 영적인 민감성을 상실하고 맙니다. 이것이 종말이 가까운 삶의 특성입 니다.

 본문 말씀에도 노아 시대를 휩쓸었던 종말의 징조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부패성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일상 생활과 부패한 생 활 가운데 깊은 죄악의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가오는 심판의 나팔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악된 생활에 눈멀어 있을 때 홀로 깨어 있던 사 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노아입니다. 8절 말씀은 그러나 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노아의 경건한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노아 는 종말이 다가오는 이 어두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의 본보기입 니다. 시대 사조에 영합하기를 거부한 노아는 지금 이 시간에 우 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노아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 이 시 대가 요구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호의, 조건 없이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친절이라는 뜻입니다. 은혜의 반대 개념은 심판입니다. 심판이란 마땅히 받아야 할 응분의 결과입니 다. 심판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호의가 베 풀어지는 사건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는 다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노 아 시대 사람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심판받아 마땅했습니다 . 5절 말씀은 그들의 행동이 악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조 차 악하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 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저주가 임박한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노아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노아에게는 죄 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는 죄가 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노아가 한 치의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창 세기에는 노아가 저지른 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9:20,21 참 조). 그 시대 사람들과 노아의 차이점은 은혜를 입었느냐의 여부에 있습니다. 노아는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까? 성경이 은혜를 강조할 때 반드시 따라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은혜의 방편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입니다.

은혜를 입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정직하게 자기의 죄를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 앞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내 죄를 용서하고 새롭게 하기 위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서부 개척 당시에 텍사스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 니다. 텍사스에서는 살인이 하도 많이 일어나서 사람을 죽이는 자 는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는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어느 날 한 술 집에서 청년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청년이 권총으로 옆에 앉은 친구를 쏴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평 소에는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언제나 이웃에게 칭찬을 받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구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간곡한 바램이 담긴 연판장을 주지사에게 제출했습니다. 탄원서를 읽은 주지사는 큰 감동을 받 아 자신이 직접 그 청년을 만나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죄를 짓고 나서 성격이 변했습니다. 자포 자기한 비뚤어진 생각에 난폭한 행동까지 거침없이 하였습니다. 주지사가 사면장을 들고 그를 면회하려 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여 러 사람의 구명 운동에 힘입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던 그는 그 큰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 다.

 장차 사람들은 그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 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을 용서하려고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다 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기 때문에 멸망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큰 죄를 지은 죄인임을 깨닫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 혜를 감사로 받을 때 구원을 얻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였음을 명심하십시오.

 의로운 사람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이 구절에서 의인과 완전한 자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동 의어로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사람됨을 설명한 말씀입니다. 여 기서 완전한 자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혀 부족함 이 없는 완벽한 사람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당세에라는 표현이 이 말 뜻을 정확하게 해 줍니다. 즉, 그 시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노아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고 온전한 사람이 었다는 의미입니다.

 노아가 의인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 입니다. 은혜 아래 있으면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죄에게서 해 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롬 6장 참조). 죽을 수밖 에 없는 인간을 구원해 주시고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의롭다고 인정받습니다(롬 3:24 참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9절 말씀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의인이고 완전한 자였으므로 하나님과 동행하 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유유상종(類類相從)하게 마련입니다.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 끼리 모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의 비극은 하나님의 백 성들이 죄인들과 어울린 일입니다. 물론 믿는 사람들이 선교를 위 해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도 있습니다 . 그러나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과 어울린 목 적은 선교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타락한 백성들과 어울렸던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 님의 아들들이 도대체 누구이고 사람의 딸들은 누구냐는 의문이 해 결되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 사라고 생각합니다. 천사가 사람과 결혼해서 괴상한 사람을 낳았다 고 해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UFO를 타고 온 우주인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해석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사람이었던 셋 의 후손들이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해석을 그대로 승인합니다. 셋의 혈통을 이은 경건한 자손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가인의 후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을 신뢰하고 살던 경건한 사람들이 불경건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 작했습니다.

 4절에 언급된 네피림도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단어입니 다. 그런데 네피림이라는 말의 뜻은 문자 그대로 떨어진 사람들 , 타락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미 타락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4절 후반절에도 보면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 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 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용사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들리 는데, 그 본래 뜻은 폭군입니다. 원색적으로 번역하면 깡패라 는 말입니다. 고대의 유명한 사람들이었다는 표현도 문맥에 맞 게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악명 높은 사람들이었다는 내용입니다.

그 결과 노아가 살던 시대는 갈수록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사람 들이 부패하고 악해졌습니다.

 3절 말씀도 보십시오.

여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神)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된 인간(2:7 참조)이 이제 육체가 되었습니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타락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사람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3절 후반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때부터 인간의 수명이 1 20년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여기서 120년은 하나님 이 작정하신 심판의 시간입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면서 마지막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더 이상 늦춰지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을 연구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조차 불경건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죄악에 빠져 있던 시대에 그러 나…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는 말씀입니다. 죄악의 물결 속 에서 세상과 영합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과 동행 한 노아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이 시대 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 에 노아 대신 당신의 이름을 넣어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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