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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데반집사의 최후 (행 07:5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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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됨됨이를 알기 위해서는 끝을 보아야 합니다.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하였다가 끝이 안좋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합니다.그러므로 성도는 끝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유종의 미”라는 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아무리 시작을 잘하였다고 하여도 끝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일은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맙니다.가룟유다가 그렇고,솔로몬 왕이 그랬습니다.끝이 좋지 못하여서 전체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입니다.그러나 스데반 집사님을 살펴보면 끝까지 좋은 신앙인입니다.오늘은 스데반 집사님의 최후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스데반 집사님의 이 최후의 모습은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바라는 축복된 모습입니다.

1.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최후를 맞이 하였습니다.달리 말하면 몸을 바쳐서 할 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후회없이 몸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이말로 가장 귀중한 행복이며,신앙입니다.무엇을 하다가 최후의 순간을 맞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필요합니다.스데반 집사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 하였습니다.이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신앙의 모습입니다.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입니까 요즘의 많은 젊은이들은 누구를 위해서 일해야 할 지 모른다고 합니다,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일할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만사가 대충대충입니다.목숨을 바치면서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2.스데반 집사님의 최후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모습과 여러가지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스데반 집사님의 최후의 순간에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그를 조롱하고,비웃고 있었습니다.이와 같은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광경과 너무나 닮았습니다.또한 59절에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옵소서”라고 기도를 합니다.누가복음 23:46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60절에 스데반은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였습니다.이 모습도 누가복음 23:34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는 모습과 닮았습니다.스데반의 이 최후의 모습이 여러가지로 예수님의 마지막 장면과 비슷합니다.이것은 스데반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을 본받기를 원하였다고 봅니다.평안할 때에 예수님을 닮았는 것처럼 보이기는 쉽니다.그러나 어려운 순간에까지 예수님을 닮기는 어렵습니다.어려운 일이 생기면 예수님을 버리고,도망가는 사람들이 생깁니다.그러나 스데반은 그의 목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또 그는 죽음의 고통 앞에서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이였습니다.우리의 신앙도 이 정도로 자라야 합니다.이것이 성장하는 신앙인입니다.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그의 죽음은 복음 전파의 한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스데반 집사님은 교회를 위해서 한참 일하여야 할 때에 죽음을 당하였기에 그의 삶은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라고 밝혀줍니다.8:1에 “사도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스데반의 죽음으로 해서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던 제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만일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가 없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8에 말씀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를 통하여서 제자들이 흩어져 곳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그의 죽음으로 교회가 힘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더 많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 11:19-30은 안디옥 교회의 설립에 대한 기록입니다.안디옥교회는 바울을 전도여행하도록 파송한 교회입니다.예루살렘교회가 교회의 기초를 놓은 교회라고 한다면 안디옥 교회는 선교의 기초를 만든 교회입니다.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이 안디옥 교회의 설립에 대하여 성경이 기록하면서 사도행전 11:19에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스데반의 순교로 말미암아 흩어진 이들이 안디옥 교회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죽음으로해서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하나 우리가 스데반 집사님의 최후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은 새로운 한 사람의 등장입니다.58절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성경에 처음으로 나옵니다.성경에서 스데반의 죽음의 모습에서 사울이라는 청년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스데반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니라 청년 사울을 회개시키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스데반 집사님은 살아서도 중요한 일을 하였지만 순교함으로 그는 더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요12:24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최후는 성장하는 신앙인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목숨을 바쳐서까지 충성하는 제자,죽음의 순간까지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그리고 한알이 밀알이 되어서 죽음으로 많은 열매 맺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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