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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립처럼, 스데반처럼 (행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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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94년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봉사하고 충성할 직분자들을 임명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임직을 받으시는 분들이 빌립과 스데반처럼 주님께 인정받는 훌륭한 제직들이 되시기를 소원하면서 '빌립처럼, 스데반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저 합니다.

첫째로, 빌립과 스데반은 믿는 사람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여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칭찬듣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직분자들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제직들은 다른 믿는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범을 보인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하반절)에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말하는 일에 본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덕한 말, 더러운 말, 거짓말을 버리고 덕이 되는 말, 은혜로운 말, 진실된 말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言語)이란 그 말하는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릇에 물을 가득히 담아서 운반을 하면 출렁이면서 흘러 넘칩니다. 술을 담으면 술이 흘러 넘치고, 국을 담으면 국물이 넘치고, 오물을 담으면 오물이 넘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속에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면 더러운 말이 나오고,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 있으면 은혜로운 말이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
둘째로 행실에서 모범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에 보면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여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겸손함에 있어서도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으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온유하심, 겸손하심을 배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17세기 영국을 위기에서 구출해 낸 위대한 장군이요, 정치가였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hromwell)이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평복 차림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들어가 묵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허술한 차림의 노동자가 그 옆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안내하시는 분이 그 사람에게 귓속말로 당신 옆에 앉아 있는 분은 훌륭한 크롬웰 장군이니 자리를 좀 옮겨 앉으시죠라고 했습니다. 이 상황을 눈치챈 크롬웰 장군이 안내하시는 분에게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 평등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라고 야단을 치면서 노동자를 옆에 계속 앉아 있게 하고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본이 되어어 햐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 각종 예배에 참여하는 일, 밤 예배에 참여하는 일 등에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는 일, 각종 헌금을 드리는 일에도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일, 봉사하는 일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쉬토라스부르크(Strasburg)의 한 교회가 폭격으로 인해서 파괴되어졌는데 그 곳에는 예수님의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이 조각상은 다른 곳은 멀쩡했지만 두손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건축위원들은 예배당을 새로 신축하면서 조각상을 새롭게 만들까 하다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붙여 그대로 놓아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손이 없으시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손 노릇(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지체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의 역할을 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예수님의 발의 역할로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도로 봉사하는 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봉사하며, 충성하는 일 등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입이 복음 전하는 일에는 벙어리가 되어 버리고 남을 헐뜯고 중상모략하고 시기, 질투하는 말이나 한다고 하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괘씸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 주님의 메세지가 나타나야 하며, 세상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빌립과 스데반처럼 살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이 순종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읽어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도성에서 큰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심으로 주님께 돌아오며, 많은 사람에게 붙어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고 온 성에 기쁨이 차고 넘쳤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속삭이듯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이 일을 그만두고 저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로 내려가라'
사실 이 명령은 순종하기가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너무 할 일이 많고, 정신없이 주님의 일을 하고 있고, 일의 성과가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위기를 당할른지도 알 수 없는 '광야로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 성령님의 명령에 '아멘'하고 순종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해서 그 화려한 일을 포기하고 어떤 위기, 어려움을 당할른지 알 수 없는 광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병거를 타고 지나가는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권세있는 사람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에디오피아의 복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합리하게 느껴지고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 앞에 '아멘'으로 순종하면 이러한 기적의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15장 22절(하반절)과 23절을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목자와 양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는 자는 양이요, 듣지 않는 자는 염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이사야서 1장 19절과 20절에 보면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所産)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라고 하는 선지자 엘리사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그 문둥병을 깨끗이 고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텍사스주의 레리 리(Lery Lee)라는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귀가 아파서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자칫 잘못하면 귀가 멀 수도 있으니 입원하시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기가 막혀서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든 밤에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리야! 나가서 전도하라. 그리하면 고쳐주겠다., 하나님 먼저 고쳐주십시요. 그리하면 나가서 전도하겠나이다.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먼저 나가서 전도하라. 그리하면 고쳐주겠노라, 아닙니다. 먼저 고쳐주십시요. 그러면 나가서 전도하겠습니다.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의사가 출근을 하자 퇴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사가 놀라면서 하는 말이 안됩니다. 귀 멀게 하기로 작정을 했습니까 리가 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라고 막무가내로 말하자 의사가 하는 수 없이 퇴원 수속을 해 주었습니다. 리는 퇴원을 하자마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원으로 달려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멀었던 귀가 펑하고 터지면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이와같이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평안할 때 뿐만 아니라 어떤 고난, 풍파 가운데서도 하나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6.25 사변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민족적인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6.25를 통해서 많은 것을 라고 애지중지
(愛之重之) 하던 것들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했음을 우리는 체험했습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끼리도 생이별을 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비극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쓰라림을 통해서 불신자들은 아! 세상이 허무하구나라고 생각하여 비관론자가 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낙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그 쓰리고 아픈 경험을 통해서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하겠다는 결심과 헌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6.25 사변 때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 가족이 피난을 내려오다가 폭격을 맞아서 가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어 여러 해 동안 생사 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로님이 부산 거리를 거닐게 되었는데, 구두닦이들이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년이 달려나오면서 큰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바로 자기 조카였습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얼싸안고 통곡을 하다가 네 부모님은 어떻게 되셨느냐고 물어보았으나 소 말을 듣자 큰아버지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얘야! 그런데 주일에는 무엇을 하느냐, 예!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요 하면서 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보였습니다. 큰아버지 이게 뭔지 아세요 피난 내려오기 전에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십일조 주머니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이 십일조 주머니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돈이 얼마가 생기든지 반드시 십일조를 떼어 이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다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항상 드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간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안할 때 십일조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의 신분에서, 또 구두닦이를 하며 어려운 일을 하는 처지에서 십일조를 한다고 하는 것, 이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큰 부자가 된 다음에도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어떠한 고난, 풍파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빌립과 스데반처럼 살기를 원하는 이유는 스데반이 순교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충만 받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 복음,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이를 갈았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는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다'라고 외쳤습니다.그 말을 듣고 백성들이 회개할 수도 있었는데 백성들은 도리어 큰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고 일심으로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때 스데반이 무릎을 꿇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해서 그리합니다'라고 용서의 기옛효〉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주님을 죽도록 섬겨 나
가야 합니다. 날마다 내 몫에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날마다 희생정신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충성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틀림없이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하반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빌립처럼, 스데반처럼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아름다운 본을 보여주십시다.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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