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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삼단계 (골 0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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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면 생존 본능입니다. 생존해야 하는 본능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습니다.
자신의 종족을 번성시키려는 생식 본능도 동물과 사람이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자식을 낳아서 그 자식을 이뻐하면서 키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똑같이 주신 주신 본능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제 자식은 귀하게 여기고 제 자식을 위해서는 생명까지 주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 외에서 서식 본능, 귀소 본능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대로만 살지 않습니다. 인간은 본능을 초월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점입니다. 인간은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본능적인 반사작용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고 생각 속에 걸러서 응답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마음에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인간의 동물과 다른 하나가 바로 받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살 짜리 아이가 식사 초대를 받아 이웃집에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그 아이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솔직하게 “모두들 식사하실 때 기도하지 않으세요” 라고 하니까 주인은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때 아이는 “여러분은 우리 개를 닮았네요. 우리 개는 밥을 주면 그냥 시작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사람과 개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본능은 같습니다. 그러나 개와 사람이 다른 것은 개는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먹지만 사람은 이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농사를 짖느라 수고한 농부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맛있게 요리한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식사 때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양식을 가진 자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삶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는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무엘 존슨은 감사는 위대한 교양의 결실이다. 야비한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에 대전도자 가가와씨는 “인생의 밑천은 공에서 출발 한 것이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섹스피어는 그의 저서 리어왕에서 말하기를 “감사할 줄 모르는 자녀를 가지는 것은 독사보다 더 날카로운 무서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였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에게 2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요. 또 하나는 감사하는 자들입니다.

감사란 은혜를 받은 자들이 그 은혜를 마음에 깨닫고 보답하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말을 한문으로 보면 느낄 감(感)에 사례할 사(謝)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 그대로 감사는 고마운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푼 자에게 사례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사도바울은 본서 3장에서 그리스도 인의 생활 원리를 교훈 하면서 특히 감사 생활 3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995년 추수 감사 주일을 준비하는 주일로 참된 감사의 3단계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1. 마음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감사입니다.
본문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은 인격의 좌소요 그 삶의 실제이며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람은 마음먹기 여하에 따라 그의 삶이 변화되게 되어 감사 삶을 살아 갈 수도 있고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모크리토스는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우려 하는 사람이고. 가장 용감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며. 가장 부자인 사람은 자기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민족하며 사는 사람은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만족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늘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첫 번째 단계는 마음속에서부터 솟아 나오는 감사입니다.

성경에서 감사의 증인을 말하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구약에서는 다윗이요.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그 마음에 감사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마음과 영혼 속에서부터 이런 감사가 넘처나왔습니다. 시편 106편 1에서는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118:1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며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시편23편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인도자가 되셔서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마음속에 늘 감사가 넘쳐 났고 그의 삶은 감사로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 역시 그가 기록한 성경책을 보면 감사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롬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빌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염려 대신에 감사함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있고. 골4:2 에서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에게는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골3:17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시며 우리들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감사의 샘이 심령에서 터져야 합니다. 바울도 다윗과 같이 고난 중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바울은 오직 복음을 전하다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굶주리고 헐벗으며 그 마음에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울은 가족이 있습니까 감옥에서 풀려나면 돌아갈 집이 있습니까 재산이 있습니까 숨겨 둔 비자금이 있습니까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 전했는데 그에게 오는 것은 고난과 환난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마음에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감사는 권면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성도들이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셨고 엡5:20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셨는데 “하라. 또는 하며”는 명령어임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감사의 마음은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진정한 평안히 얻어질 때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고 눅2:1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에서 얻는 평안과 다른 다른 내적인 평안입니다. 즉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며 진정 조화를 이룬데서 부터 오는 평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라는 말씀에서 주장이라는 헬라어 브라뷰에토는 말은 “조절한다. 관리한다. 통제 지휘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장하고,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주장할 때 범사에 감사가 넘처나오는 삶을 살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늘 감사가 넘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만 쳐다보아도 감사하는 마음이 솟아나야 하며, 우리를 죄와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말로 하는 감사입니다.
진정한 감사의 2단계는 입술의 감사요, 말로 고백하는 감사입니다. 말은 인격의 집이요 사상의 옷입니다. 또한 말로 감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말로 고백하고 시인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얻는 구원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라고 롬10:10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감사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자비하심을 마음으로 믿고 또한 깨달은 후 입으로 “감사하다.” 라고 시인하고 고백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짐승과 근본적인 차이점이요. 특권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인자하심을 시로 고백하기도 하고 찬송으로 노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는 가장 효과적인 약이요 귀한 선물입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으로 감사를 표현하면 이미 우리의 마음에는 감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말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을 하면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면 내가 그 감사한다는 말을 제일 먼저 듣게 되고 감사가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고백하는 감사는 마음에서 더 큰 감사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미안하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기쁘게 해주는 것이며 우리들의 생활을 바꿔 주게 됩니다.

러시아어로 감사하다는 말은 쓰바시모입니다. 이 말의 본래 뜻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산 정권이 들어 선 후에 이 쓰바시모가 레닌을 찬양할 때 쓰이는 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러시아인들은 70년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후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궁핍의 비극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음의 감사를 진실하게 표현함으로 더욱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합니다. 받은바 은혜를 깊이 생각함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역경 중에도 감사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고 항상 감사를 넘치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늘 입술로 감사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입술의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요 영광입니다. 우리의 입술로 감사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요. 우리들의 마음에는 더 큰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생활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17절에서 말에나 일에나 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일이란 우리들의 하루하루 모든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의 삶은 항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의 뿌리요 진정한 감사는 헌신의 삶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래는 불려질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되어 질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복은 받은 것을 감사할 때까지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표현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언어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활로 드리는 감사는 온 몸으로 드리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성도는 어린 자식이 죽었습니다. 그 성도는 너무나 슬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과 괴로움을 감사로 이겼는데 그는 이렇게 감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내 아들이 어 험한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신앙 생활하다가 주님의 품으로 가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내 마음이 이제는 주님만 더 바라보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이제는 내 아들도 가 있는 하늘나라를 향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 졌으니 감사하고, 이런 슬픈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라고 하였는데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고백입니까 이러한 마음은 세상 사람들은 가지지 못하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예화 중에서 탕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아들 중에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고맙고 감사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멀리 타국에 가서 제 마음대로 살려고 했지만 그는 실패한 인생이 되어 돼지가 먹는 쥐염열매로 배를 채우려 했습니다.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추수 감사절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는 감사의 문에 들어서지 못하고 뒤돌아 서는 자는 없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감사가 인색하면 도리어 감사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에 인색하면 모든 일에 불행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 땅에 성공하고 승리한 사람들을 대부분 보면 감사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진정한 감사의 삶에는 헌신과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독생자를 아끼기 아니하시고 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답하는 열심 있는 청지기들이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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