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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험악한 세월 (창 4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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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야곱은 믿음의 조상이다.

형을 사랑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의 편애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였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형의 미움을 받아 유리하 기 시작한 것이 평생을 유리하는 신세가 되었다.

야곱은 지금 바로왕 앞에서 말하기를 '험악한 세월'을 보냈노라고 말 하였다.

이 말은 나이를 묻는 바로왕 앞에서 취한 야곱의 대답가운데 일부이다.

야곱은 조상들 곧 아브라함이나 이삭보다는 짧은 생애를 살았다. 아 브라함이 175년, 이삭이 180년을 살았는데 야곱의 현재 나이는 130 세였다.

그는 147세를 살았다. 조상의 나그네의 길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애급에 들어온지 17년만에 그가 말한 험악한 세상을 떠나 게 된 것이다. (창 47:28)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월에 비교하면 야곱은 두배쯤을 더 살았다.

그동안의 삶이 험했다고는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도 않다. 오래동안 부귀와 명예를 누렸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였다. 야곱은 단지 조상들의 세월 만큼 살지 못한 것이다.

야곱의 진정한 마음은 왜 자기가 조상들만큼 길게 살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보다는 지금 자기의 생이 꺼져가는 촛불처럼 여겨 지는 것이 슬픈 것이다. 이제 좀 살만한데 죽어야 하다니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미 아는 바로, 야곱은 이삭의 쌍동이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그렇게 고생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다. 비록 고향을 떠나 살기는 했어도 하나님의 각별하신 보호 아래 살았 다. 오래동안 자식을 얻지 못해서 마음이 허전했던 일이 있었어도 늦게나마 아들을 얻은 것이 그저 고맙고 감사했을 것이다. 이점은 이삭의 경우에도 다름이 없다. 그는 나이 40에 장가들어 60이 되어서야 첫 아들을 얻었다.

(창 25:26) 그러나 야곱의 경우에는 달랐다.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그 날부터 그의 생애는 온갖 쓰디 쓴 일들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정실부인과 두 몸종에게서 12명의 자녀 얻기는 했어도 그의 생애는 즐거운 생이 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인 가

1. 그는 일생을 도망자로 살았다. (창 27:41-)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인 후에 결국은 그것이 발각이 되었다. 에서 가 심중에 야곱을 미워하여 '내가 야곱을 죽이리라 !' 작정한 그날, 야곱은 보따리를 챙길여가도 없이 집을 도망하였다.

혹, 사람들은 속일런지 몰라도 자신은 자기를 잘 안다. 오늘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곳은 도망하여 떠나 온 곳이 아닌가 생각해 보라.

왜 고향을 떠나 왔는가 왜 부모형제를 왜 친구를 떠나 왔는가 왜 그들을 떠나 지금 이곳에 왔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 !

2. 그는 머슴살이를 하였다. (창 29:1-)

야곱의 머슴살이는 20년이나 계속되었다.

처음에 그는 외삼촌의 집에서 한달동안을 함게 거하였다.(창 29:14) 그 동안이면 형의 노가 쉽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이 꼬이느라고 야곱은 외삼촌 집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였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1) 야곱은 외삼촌의 둘째 딸을 좋아 하였는데 결혼식 날 바꿔치기 당한 때문이다. 7년동안을 기다 결혼식을 치렀는데 신부가 바뀐 것이다. 야곱 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위해 할 수 없이 7년을 더 봉사하며 살다 보니 14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2) 품삯 때문이다. 야곱은 양 떼를 치면서 6년을 더 봉사하였다. (창 31:41) 그러나 외삼촌은 야곱과 약속한 품값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10번이나 속였던 것이다. 딱이 갈데도 없는데다가 품삯을 받지 못했으니 오래 머물게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이 결혼과 품삯에 매달려 사는 머슴살이가 아닌가 이것을 가 리켜 육에 매인 생활이라면 너무 지쯔 말일까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허무한 것, 헛 것을 좇아 사는 삶이고 말 것이다.

 3. 그의 외동 딸이 수치를 당하였다.

 야곱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집을 도망하 다가 루스 땅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서원을 한 일이 있었다. 이 제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돌로 벼개하였던 그곳 벧엘을 향하여 먼 길을 떠나 가게 되었다.

이 야곱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디나였다. 그런데 디나가 수치스러운 일을 당 것이다. 요즘 말로 성 폭행을 당한 것이다. 요단을 건넌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난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처럼 기뻐한 것 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우리들 중에 누구든지 이런 일을 당하고도 마음 이 편할 사람은 없다. 더구나 그가 외동 딸이라고 한다면 ......

 4. 야곱의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 앙갚음을 하였다.

 야곱이 처음 이 사실을 알았지만 양을 치는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었다. 마침내 아들들이 돌아왔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계 략을 베풀어서 세겜과 모든 족속들을 칼로 진멸하였다. 비록 딸에게 악행 을 한 세겜의 집이긴 하였어도 야곱은 또 마음이 괴로웠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 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 34:30)

5. 22년 동안 요셉을 잃었다.

 요셉은 사랑하는 여인 라헬에게서 늦으막에 얻은 아들이었다. 야곱 은 여러 아들보다도 그를 더 사랑하였다. 채색옷으로 입혔고 언제나 그의 무릎 곁에서 자라게 하였다. 이러한 요셉이 형들에게 좋게 보일리가 없었 다.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 하는 요셉도 미웠고 그를 편애하는 아비도 싫었 다. 게다가 이상한 꿈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욱 미움을 당하게 되었다.(창 37:5)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아버렸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피묻은 채색옷을 붙잡고 22년동안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하였다. 6. 사랑하는 아내는 해산하다 죽었다. (창 35:18-19)

사랑하는 여인 라헬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움이 많이 따랐는지 모른 다. 아들을 낳지 못하여 여러해 동 괴로워 하다가 낳은 아들이 요셉이었 다. 그 후로 자식이 없이 살다가 겨우 또 하나 얻기는 했는데 그만 어미가 죽어 버린 것이다. 이때 낳은 아들이 베냐민이다.

 7. 르우벤은 가문을 더럽혔다. (창 35:22)

이른 바 근친상간의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 남이다. 그가 서모인 빌하와 관계를 가진 것이다. 야곱으로서는 듣지 않은 것만 못하였다.

 8. 애급에 양식을 구하려고 아들들이 오가면서 마음이 크게 상하였다.

 오랜동안의 기근으로 고생하던 야곱이 애급에 양식이 있다는 말을 듣 고 아들들을 애급에 보냈다. 양식을 사기 위해서이다. 당시 애급의 총리는 요셉이었다. 형들을 알아 본 요셉은 그들을 첩자로 몰아 옥에 가두기도 하 고, 베냐민을 데려와야 한다면서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 두기도 하였다. 가 져 온 양식이 다 떨어진 후에 야곱은 시므온을 구하려고 아들 베냐민을 보 낼 것인지, 아니면 밥은 굶고 시므온을 잃을지라도 베냐민을 절대 내 놓지 않을 것인지 번민에 번민을 계속하였다. 유다의 말대로 두번이나 더 다녀오 도록 손가락을 빨면서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들 베냐민을 데리고 렴사 내 려가게 하였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야곱의 마음은 상당히 괴로웠을 것이 다.

이제 두번째 양식을 구하러 간 아들들이 뜻밖에도 요셉, 잃었던 아들 요 셉이 애급의 총리가 되어서 양식을 주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 들의 가족을 모두 데려와서 애급에 살자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75 명의 대가족이 수례를 몰아 애급에 건너가 살게 된 것이다. 다시 양식 걱정 을 하지 않아도 되는, 평안을 구가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야곱은 애급의 왕 바로 앞에서 자신이 험악한 세월을 지내 왔다고 과거를 회고하고 있는 것이 다.

 사랑하는 원일의 성도 여러분 ! 이 세상은 언제나 환란과 우고가 가득한 세상이다.

야곱 혼자만 험악한 세월을 살았겠는가 인생이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 이 얼마나 되겠는가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렸는가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 보라.

 1. 요셉은 약속을 지켰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급에서 모시고 살고자 하였다.

그리고는 가족을 만난 기쁨에 들떠 있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

만일 바로가 직업을 묻거든 목자라고 대답하라고 부탁하였다. 가나안은 기근이 심하고 짐승들을 칠만한 장소도 없고 그래서 애급에 우거하려고 왔 다는 것 ... 이것은 야곱의 생각이 아니다. 요셉이 시켜서 한 말이었다.

목자, 곧 짐승을 치는 일은 애급에서 천박한 일에 속한다.(창 46:34)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입지가 확실할 때까지는 변두리에 머물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 년을 견뎌보았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이곳에 왔을 뿐 정치적 인 야망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야곱과 그의 자녀들은 그의 조 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마음에 있을 뿐이지 결코 애급에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행히 애급왕 바로는 형제들 중에 누가 짐승을 치 는데 능한 자가 있다면 애급의 짐승을 관리하는 자리에 두도록 명하였다.

 2. 인생은 잠시 우거하며 사는 존재일 뿐이다. (창 47:4)

야곱의 생각에는 이제부터 길게 살아도 열 손가락을 몇번이나 꼽을가 싶은데 조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적어도 요셉의 생각에는 총리가 된 자신을 포함하여 그의 가족들이 바로에 게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 그래서 바로의 궁전 에서 멀리 떨어진 고센 땅에 거처를 정하고 거기 우거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기보호 본능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슬슬 곁 눈질 하고 혹시나 하여 상대방의 전력을 더듬어 살펴 보고 그의 약점을 알 게 되면 쾌감을 가지게 된다. 애급 왕 바로에게는 홀로 있는 총리가 좋았 지 그의 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이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셉과 그의 형들과의 관계에서도 약간의 긴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3.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하였다.

 본문에는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였다는 말씀이 두번 기록되었다.

(7,10절) 처음 축복은 바로와의 상견례에서 행한 축복이고 두번째는 그 앞에서 떠나 나올 때이다. 야곱이 비록 애급에 양식을 구하려고 내려가기는 했지만 바로를 향하여 복을 비는 제사장의 위치를 잃지 않았다. 때때로 우 리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인 면에서 월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 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다.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다.(고후 5:20) 왕같은 제사장이다. (벧전 2:9)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 세상의 어 느 누구보다도 존귀한 위치에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의 근원 이라 하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믿는다.(갈 3:7) 야곱이 비록 험악한 세월을 살아왔다 하여도 남에게 복을 빌 수 없을 만 큼 연약한 존재는 아니었다. 자신이 고생을 하며 지내왔다고 하여서 '너도 나처럼 고생해 봐라 !'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원망보다도 복을 빌라 ! 불평보다도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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