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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아니하실지라도 (합 0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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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이 물을 먹을 때에 물그릇 속에 주둥이를 넣어서 물을 주둥이에 머금은 다음 고개를 들어 뒤로 젖힌 뒤 삼킵니다. 이렇게 물을 먹고 있는 닭을 보고 있던 한 인 도주의자가 저렇게 고개를 내렸다 올렸다 하려면 굉장히 힘들거야하면서 혀를 찼 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현실주의자가 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 먹 고 살자면 할 수 없죠. 목을 안들면 그나마 한 방울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 가겠습 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럴때에 같이 있던 한 그리스도인이 두 분의 말씀이 맞군 요. 하지만 저 수탉은 한 모금의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감사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은 똑같은 사물을 볼찌라도 그 생각을 밝게 해주며, 그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줍니다. 사람이 좋은 일을 당할 때에는 감사하기 쉽습니다. 그러 나 고난과 시련이 겹칠 때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심성 가운데 한(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별의 한 그리움의 한 원한 한 맺힌 삶 등등, 한에 대한 용어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친 숙하게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한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이것이 생기는 원인이 억울함이 라고 합니다. 원하는 대로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 억울하게 풀려 나갈 때에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이 많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민족이 반도에 위치한 연고로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이 많았습니다. 그 결 과 온갖 원한과 억울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유 문화 속에는 온갖 한이 서려 있 는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억압과 수난을 많이 당하여 한이 많은 민족일수록 전해 내려오는 민속 음악들이 거의 단조 곡의 암울한 분위기에 가사 또한 구구절절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베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국악의 곡조와 가사가 대개 그런 경향이 있습니 다.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깃든 흑인영가나 이스라엘 민속 음악에서 그러한 분위기 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일, 불행한 일을 당할 때, 모든 자연인들은 한을 품게 됩니다. 그 러나, 구원받아 자연인의 구습에서 해방된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십 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 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핏속에 흘러 내려오던 이 억울함의 어두운 쓴 뿌리와 항상 피해 의식의 사고방식에 묶여 있던 구습에서 벗어나 축복의 사람이 되는 비결 은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습니다.

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기쁜 일 뿐 아니라 슬픈 일, 궂은 일, 억 울한 일 앞에서도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련이 겹치고 전혀 소망의 여지가 없어 보이고 절망적일 때에 감사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어려울 때에도 감 사할 수 있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박국 선지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1.하박국 선지는 고난과 어려움도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기에 감사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가 유다 요시야 왕 말기에 유다 나라에 만연한 불의를 보고, 백성들의 이같은 불신앙을 어찌하여야 될찌, 탄식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계시와 응답이 왔습니다.

이제 곧 하나님께서는 이웃 나라 갈대아인들을 징계의 채찍으로 들어서 불신앙과 불의를 심판할 것임을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그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던지, 하박국의 창자가 떨리고, 입술이 떨 렸습니다. 앞으로 이 백성들이 당할 심판을 생각할 때에 그 뼈가 썩어 내려 앉는 것 같았습니다.

( 잠 15:30)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 니라고 했습니다. 과연 사람의 심령 상태가 편안하고 즐거우면 뼈가 윤태하게 되지 만, 근심과 걱정에 빠지면 뼈가 마르게 됩니다. (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 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간섭을 받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마치 부모가 훌 륭한 자녀로 키워 내기 위하여 때로는 잘했다고 칭찬과 선물을 주는가 하면 때로는 잘못된 길로 나가는 자녀를 위하여 더 깊이 나쁘게 빠지기 전에 경고와 사랑의 매로 다스리듯이 우리들을 다스리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런 잘못한 것도 없는데도 욥과 같이 고난을 겪게도 하십니다. 다시말해, 더 견고한 신앙과 단련되고 연단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내시기 위하여 억울함을 당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아닌 것이 없습니 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도 처음에는 다가올 민족이 당할 시련과 고난을 생각 할 때에 염려와 근심에 떨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곧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습니 다.

불신앙과 불의로 치닫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가하심으로 회개하 여 모든 불신앙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는 거룩한 신앙의 사람으로 바꾸어 놓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뜻임을 깨닫고 믿었을 때에 오히려 감사할 수 있 었던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 신앙은 곧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절대 하나님을 의심치 않고 의지하는 믿음이 하나님의 뜻을 믿는 신앙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절대 하나님만 신뢰하였던 믿음의 선배들의 기록이 단3:8-20절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는 바벨론이 세계를 제패한 시대였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억울하게 포로로 잡혀간 때였습니다. 당시 바벨론 왕이었던 느부갓네살 왕은 그 권세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의 교만은 극에 달해 금신상을 세워 예배하게끔 하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서릿발 같은 명령을 누가 감히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 러나 여기에 항거한 세 사람의 믿음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니엘의 친 구로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였습니다. 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진실 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우상숭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느 부갓네살 왕에게 알려지자 왕은 사형에 처하도록 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는 자에게 사형이라니, 참으로 억울하고도 한 맺힐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금 도 불평해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은 절대적이었 습니다.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이들은 굳게 믿었습니다. 마침 내 형장의 풀무불은 7배나 더 뜨겁도록 만들어졌고, 이들 세 사람은 불 속으로 던져 지기 위하여 밧줄에 꽁꽁 묶였습니다. 이제 다시 느부갓네살 왕은 우상의 신상 앞에 무릎을 꿇고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허락합니다.

 (단 3:13-18)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메삭,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 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 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 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 을 아옵소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다가 죽는 일을 당할지라도 그것마저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 신앙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아니하실지라 도의 믿음이요 감사입니다. 바로 이러한 신앙을 가질 때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 니다.

이러한 담대함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롬 8:38-39)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도저히 감사 못할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뢰하 기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나의 영생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범사에 감사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마침내 우리의 선 자리를 축복의 자리로 바꾸어 놓을 것 입니다.

 2.하박국 선지의 감사는 환경을 초월한 감사였습니다(17-19)

본문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 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들은 하박국 선지가 살고 있던 그 팔레스틴 지역 에 있어서 가장 유용한 과목들이었습니다(신6:11 욜1:7 미6:15). 그리고 양은 식용( 삼상25:18)과 희생제물로(창4:4출29:19-22레5:14-16) 사용되었고, 소는 농사를 지을 때에 없어서는 안될 짐승이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당장 생계가 어려 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하박국 선지의 감사요,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감사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현대적인 의미로 바꾸어 보면, `사업이 부도로 망하고, 재산을 다 날리고, 직장도 잃고, 마땅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여 처자식이 배고파 할찌라도 감 사하는 것이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는 세상도 감당키 어려운 `환경을 초월한 감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도들이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 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 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 다.

그렇습니다! 도무지 감당키 어려운 시험과 고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손길 은 결국, 능히 당하게 하시고 감당하게 하셔서 훨씬 더 나은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 이기 때문에 환경을 초월한 믿음으로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3.하박국 선지의 감사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 감사입니다.

 어려운 일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쉽게 절망합니다. 그러나 항상 절망은 문 제 해결에 있어서 어려운 일 그 자체 보다도 더 큰 방해가 됩니다. 중국 속담에 `배 가 뒤집히지도 않았는데 물 속으로 투신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난관에 부딪쳤을 때에 가장 큰 문제란 난관 그 자체라기 보다, 쉽게 절망해 버리는 것임을 꼬집는 속담입니다.

하박국 선지는 민족의 앞날에 어두운 먹구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절망하지 않고 먹구름이 비가 되고 뇌성 벽락이 되어 내리고 나면 밝고 맑은 화창해질 그 날을 바 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절망 저 건너편의 소망을 바 라보고 감사드렸던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에 절망 중에서도 희망이 보이는 법입니다. 낙담만 하고 체념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앞에서 그리하니 하실지라도의 감사를 하게 될 때에 그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은 열리게 되는 것입 니다.

성도 여러분! 견디기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능성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4.하박국 선지는 찬송과 기도로 감사드렸습니다.

 감사는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자는 항상 하나님의 존 재와 그분의 은혜 베푸심에 대하여 인정하는 언행을 계속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범 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계시다는 것 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대한 찬송이 있고, 앞 으로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찬송과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풍성한 생명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감사로 드리는 찬송과 기도의 그릇에만 담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맺힌 한이 있습니까 억울함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음을 믿고 이제부터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운명은 바뀔 것입니 다.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합 3:17-18)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 다 이와같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를 드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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