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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삶 (사 58:3-9, 마 0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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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의 초두에서(3-12) 천국시민의 자격을 교훈하신 후에 예수님은 신앙의 삶을 가르치신다. 예수의 교훈이 심오한 영적 진리를 가장 평범한 일상의 삶과 대상들을 비유로 들어 가르쳤다. 소금이란 물질의 특성은 가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 가 짠맛을 제공하는 조미제 가 상처를 치료하는 의료제 가 언약의 불변성을 상징하는 정결제등이다. 이 가운데서 흔히 사 용되는 소금의 역할은 처음 두가지로 곧 음식의 부패를 방지함으로서 신 선한 고유의 맛을 유지하는 것이다. 특별히 사막의 무더운 열대성 기후 조건을 지닌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이같은 소금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 했다. 그리고 빛의 특성으로는 가 광선으로서 어둠을 밝혀주는 일과 가 열로써 살균작용을 하며 또 동식물의 성장을 돕는일 등등을 꼽을 수 있 다. 본문에서는 특히 어둠을 밝히는 빛의 역할에 초점을 둔다.

 이제 소금과 빛의 기본적인 특성을 염두에 두고 신앙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아본다.

13절:소금의 삶을 살아야 한다. 소금이 음식의 부패를 방지함으로서 그 음식 고유의 신선한 맛을 보존해 주듯 그리스도인들 역시 타락하고 부 패한 세상에서 진리를 사수함으로서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방지하는 소금 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소금은 자신을 스스로 녹아 지게 함으로써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고 신선한 맛을 유지 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의 소금된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삶의 자세가 요구됨을 시사해준다.

특히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에서부터 나온것이다.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는 사해의 습지나 개뻘 또는 그 근처의 바위등 불결한 곳에서 나는 소금에는 석고등의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쉽사리 변질되어 알카리성의 독특한 소금 의 맛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변질된 소금은 소금의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밖에 버리워 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뭇사람들에 게 밟힐 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치 못하는 그리스도인 은 천국백성으로서 합당치 않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오염되 고 타락한 이 세상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의 삶으로서 하늘 백성답게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한다.

 14절-16절:빛의 삶을 살아야 한다. 빛은 어둠을 밝혀 사물을 분간하 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으로 비유된 것은 진리의 빛된 삶으로서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환히 밝히라는 의미이다.

성서는 빛의 근원을 하나님이시요(요일 1:5), 그리스도라고 말한다(요 8:1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참빛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하고 있다(요 1:5-9). 이렇게 볼때 그리스도인들은 빛 자체가 아니라 빛에 속한 빛의 아들로서(살전 5:5) 참빛 되시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을 세상에 비추는 자들임을 알수 있다.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빛의 속성은 널리 퍼 지는 것이요, 가리울 수 없다. 마치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하는 것과 같다(14절). 팔레스타인의 동네들은 대부분 산위나 비탈에 세워졌는 고로(Stanley) 태양빛이 비췰때에 모두 확연히 드러난다. 또한 등경위의 등불이 집안 모든 사람에게 널리 비추는 것과 같다(15절). 사실 당시 유 대인들의 가정에는 등경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높이 둠으로써 등불빛이 방안 널리 확산되도록 한다. 등불을 켜는 이유는 어두 움을 밝히고저 하는데 있다. 그런고로 예수는 산위의 동리처럼 등경위의 등불처럼 그 빛을 사람들 앞에서 널리 비추라고 한다(16절). 즉 빛에 속 한 빛의 자녀답게 어두움의 세상 가운데서 빛의 열매를 맺으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해석한다 (엡 5:8-9). 이처럼 빛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착한 행식의 열매가 있는 법 이요, 또한 착한 행실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이 빛되신 그리스도와 하나님 을 그 마음 중심에 모시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못된 나무가 좋은 열 매을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 이다.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은 결국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빛을 드러 내는 것으로서 바로 그 사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제 두가지의 상징적인 비유를 통해 신앙과 삶의 역할을 살펴보자 먼저 소금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악과 무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가고 있는 인류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들의 삶과 교훈을 통해서 썩어져 가는 인류를 지식과 은총으로 맛나게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목적에 합당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소금으로 서 보내신 이러한 과정 가운데는 오직 그분의 은총이 함께 있었다. 즉 그 들이 소금으로서의 맛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속에서 역사하 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리스도교회의 큰 직임을 맡은자라 할지라도 그에게 은총이 없다면 이것은 불행한 일이 다. 왜냐하면 어떠한 교훈이나 수단도 그를 참다운 소금으로, 유익한자로 만들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빛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빛이라 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밝히 드러날 수 밖에 없 으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빛을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과 이웃에게 빛추 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들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추구함 으로서 어둠에 놓인 세상사람들이 완전한 빛을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한 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는 빛된 것들이 계속해서 우리에 게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사실 은 우리가 이 빛의 근원 곧 발광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빛의 근원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다만 그 빛을 받아 세상에 그대 로 반영해 주는 반사체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빛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집중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드리는 형식화된 종교적 예배의 가치는 무엇인가 거의 수천년 가까이 된 답변들이 여러 말씀 속에 있다. 이 말씀들 속에 모두가 자비를 보여주거나 다른이에게 베푸는 동정적 행위가 진실된 금식이라고 오늘 구 약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포로된 자들이 그렇게 빨리 잊어버려서는 안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들이 무엇인가로 결말을 짓는다. 주린자에게 식물 을 나눠주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으로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며 멍에의 줄 을 끊어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는 것들이다. 마태복음 본문말씀 은 산상수훈과 율법에 대한 논쟁사이에 들어있는 전환적인 말씀이다. 이 전환은 모세의 법과는 다른 방법으로서의 기록인 법을 펼쳐 보인다. 일상 생활에서의 소금과 빛에 대한 이야기는 율법의 관계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마태는 전형적으로 가르침과 행함을 강조한다. 그리스도 인에게 있어 빛과 소금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에서의 율법의 완성을 돕는다. 소금은 세상의 맛을 돕는다. 그리고 악한 부패를 방지한 다. 빛은 은혜롭게도 가난하고 멸시받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복 음의 약속을 가져다 주며 이 땅에 내려와 기본적인 욕구들을 만나준다.

빛과 소금이된 사람들을 통로로 삼아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게 된다.

하나님은 좋은 재료를 갖고 계신다. 우리는 그 재료들을 잘 분배 받도록 소명받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제대로 된 방향과 차원에서 역사하는 피라 미드적인 계획이다.

 신앙과 삶의 중심은 언제나 실제적인 것들과 계속 관계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시대에서의 임무는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력으로 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 혜가 우리 속에 들어올때 이루어진다. 그때서야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고 작정하신 모습대로 만들어진다. 충만하고 완전하고 온전하고 건강하여 속 죄받은 사람, 우리가 이런 것을 인식할때 그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때 그 것이 우리에게 들어 오게 될 것이다. 임신한 여인은 홍조를 띄게 된다고 한다. 피곤하고 불편하고 때로는 병석에서도 그 홍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쉽사리 감추어지지 않는다. 믿음속에 있는 사람들 은 영원속의 참된 재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빛이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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