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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주를 위해 살자 (사 06:1-8, 고전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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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라고,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고백을 하고 있 습니다. 지난 주 소개해드린 이영호 전 체육부장관도 「내 평생 동안 얻은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고 그의 책 120쪽에서 털어놓고 있습니다.

신앙은, 보는 눈과 생각하는 틀, 그리고 생활 방식을 바꿔놓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울 선생은 그의 이름까지 바뀔 정도로, 인생을 180도로 바뀌 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가던 방향에서 정반대로 돌아서게 할 뿐만 아니 라, 삶의 질이 아주 높은 차원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는, 나라 형편이 말이 아니 었습니다. 백성들이 거짓된 예배를 드리며 우상 숭배에 빠지는 등, 하나님께 대하여 아주 큰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그러한 세상을 비관하고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남을 비난하고 저주 하며 낙심했습니다. 백성을 잘못 인도한다 싶어지는 지도자들에 대하여 비웃 고 원망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던 이사야가 주님을 뵙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제 나는 죽었구나!」 이사야가 주님을 뵙고 난 후, 처음 외친 소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해도 자신만은 살아남을 수 있으려니 했는 데, 바로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 멸망해야 할 존재임을 알고 그렇게 외쳤던 것 입니다. 그가 지은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를 입술로 지었음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 입술 이 부정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입술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이 사야 6장 5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는 꼼짝없이 망하게 되었음을 알고 그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죄인이 주님을 뵙게 되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가 스스로 믿어왔던 자신의 존재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 렇게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무익한 존재였는가를, 주님을 뵙고난 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자기딴엔 스스로 의인인 줄 알 았는데, 진리를 바로 깨닫고 보니, 자기 자신이야말로 아주 쓸모없는 존재요, 말만 함부로 하고 다닌 죄인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신앙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를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정반대의,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 줍니다.

이사야가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술을 숯불 로 깨끗하게 해서 새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남이 하는 일을 가지고 비판하며 비난만 일삼던 생활 에서, 이제는 스스로 주의 일에 뛰어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야 좋을까」하고 묻자,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 시오」하고, 응답을 하는 이사야입니다. 세상 일에 대해서는 방관하면서, 비 난에만 열심이던 그가, 이제는 악을 제거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직접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또다시 이영호 교수의 글을 인용코자 합니다. 일평생 얻은 것중 가장 귀한 것이 믿음이라고 고백한 그 이영호 교수가, 어느 날 시립 아동 병원을 방문하 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병원에는 대부분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는데, 치 료가 거의 불가능한 중증 환자라고 합니다. 절반 쯤의 아이들이 7가지 이상 의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정신박약아, 뇌성마비, 정신쇠약, 경련, 영양소모증, 선천성 소두증, 몽고증, 선천성 뇌수종 등. 모두가 모진 질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머리가 몸통보다 더 큰 아이들, 귀가 없는 아이들, 눈이 없 는 아이들, 스물 다섯 살이 넘었는데도 키는 1m가 안되고 몸무게가 10Kg도 안 되는 아이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영호 교수는,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 가 하는 의심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끔찍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 는 천사 같은 직원들을 보고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오히려 더 확실히 확 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면, 세상을 비관만 하고 불평과 원망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참 믿음을 갖게 되면, 그 잘못된 세상의 원인이 내게 있음을 절감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 여 스스로가 헌신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말씀 위에 바로 서서 주의 뜻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에 힘쓰는 일꾼이 되어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방 관자요, 훼방자요, 비난을 일삼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1.복음 위에 바로 서 있지 못한 까닭에,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헛되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 선생이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 어 주신 덕분」이라고 말하면서, 「그 자비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 하여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일을 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 선생은, 그가 일을 한 목적이나 그 일을 한 주체가 하나님이시 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일을 해왔고, 또 자신의 힘과 지혜를 가지고 일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그러니까 진리 말씀을 바로 깨달은 후에는, 그 삶의 목적과 방법이 완전히 뒤바 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도 바뀌어야 합니다. 바뀌어진 삶이 아니면, 헛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죽도록 고생을 하지만, 아무 쓸모가 없는 헛수고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날 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헛탕을 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베드로는 반신반의를 하면서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다시 해보겠습 니다」하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그물에 고기가 가득차서 찢어질 지 경이었다고, 누가복음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두 마디의 말을 예수님께 합니다. 하나는 「주님, 제게서 떠 나 주십시오」하는 것이고, 이어서 또 다른 말은 「주님을 모시기에는 너무 나도 부족한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했을 때에 나타난 현상을 보고, 지금까 지 자기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세 상 경험으로 따지자면, 자기를 따라올 수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물론, 바다 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도 예수님보다 뒤질 리가 없는 베드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주의 말씀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 다. 베드로는 이 진리를, 예수님의 현장 실습에 의해서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①아직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말씀을 벗어나서 자기 고집과 경험에 따라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죽도록 애를 쓰나 헛된 수고만 하는 인생을 살아가 고 있습니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인간이 성공할 길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공의 비결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이 비결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엉뚱한 길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뻔한 인생입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허무한 삶입니다.

「나는 부족한 인간입니다. 어리석은 존재입니다」라고 고백만 하면, 예 수님께서 인생 길을 잘 지도해 주실텐데,「내가 인생을 다 안다」고 호통을 치면서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대개 고집을 꺾이는 경우는 육신이 꺾 일 때입니다. 병들거나 늙어 죽게 되면, 그 때에서야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 니다. 그러나 육신이 꺾이기 전에, 고집을 꺾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②자신이 부족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의지할 리가 없고, 하 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주님의 일을 찾을 리도 없거니와, 찾을 수도 없습 니다.

자신이 부족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면, 그 생활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선 행을 한다 해도, 실제보다는 나팔을 더 크게 불고 공치사가 많게 마련입니다.

주의 일을 한다 하지만, 자기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일이 되기 때문에, 교회 와 이웃에 덕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잡음만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사야나 바울, 또는 베드로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 려면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목적과 생활 태도를 부정 해야 합니다. 잘못되었다고 시인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2.은혜와 자비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어주시고 새 인생을 살게 해 주십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내 안에 가득 차 있으면, 주님이 들어오실 리가 없 습니다. 내 속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없어져야, 주께서 내 속에 들어와 활동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가 주님을 보았을 때에, 성전에는 주님의 영광이 가득차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노래의 내용 또한, ㄱ.하나님은 거룩하신다는 것과 ㄴ.온 세상에는 주의 영광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자신 도 그 잘못된 세상 물결에 휩쓸려서, 세상을 오염시키는 데 한 몫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 말씀을 깨닫게 되면, 그래서 감추어진 주님의 세 계를 바라보게 되면, 주님의 영광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과 거짓이라고 하는 본질을 갖고 있는 사탄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해 서 세상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지, 실상은 주님이 다스리시는 이 세상은 아름 다운 세계입니다.

죄가 허풍이 세어서 요란스럽고 굉장해 보일 뿐이지, 숨어서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도 이제는 이 대열에 끼어야 합 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①복음의 참 뜻을 일깨워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말씀하시고 살 아가신 그 모습이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진실되다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11절의 말씀에서 바울 선생은 그 점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거짓은 헛된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無) 그 자 체입니다. 죽도록 열심히 살았으나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면, 그것은 헛된 인생, 곧 거짓된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글자 그대로 참으 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진실되 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위(x)표를 치고 죽여 없애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무덤에 가두고 부정하려 했지만, 그러한 시도야말로 헛된 수고였습니다. 진실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②이 진리를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주의 일을 열 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의 일이란,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법칙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려 할 까」하고 묻자, 이사야는 「주 님,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바울도「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이라고 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 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했습니다. 예수 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목구멍만을 위하여 사는 인생을 버리고, 이제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나서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③이러한 명령을 따를 때에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의 말씀을 따르면 발전이 있고 부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을 때에, 그물에 고기가 가득차서 찢어질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할수없이 다른 동료들의 배까지 오게 하여 고기를 담도록 했더니, 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고기가 가득찼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말씀대로 바로 살게 되면, 많은 이웃에게도 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풍성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사야와 베드로가 부름받는 과정을 통 하여, 그리고 바울의 신앙 고백을 통하여,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다고 한 성경 말씀을, 우리는 잘 알 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홍수가 나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천재지변이 발생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산 사람들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다가 갔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풍성한 결실이 있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 다면,

3.말씀 위에 바로 서서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 하는 삶을 삽시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돕 는 자를 도우신다」는 말씀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중요 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ㄱ.남을 돕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ㄴ.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가지 원칙대로 산다면, 진실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삶의 목적이 건전하고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습 니다. 남을 돕는 생활을 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사는 것도, 그 삶의 목적이 주님께 있어야 바른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①삶의 목적을, 세상 욕심을 이루는 데 두지 말고, 주님 말씀에 따라 하 나님 영광을 이루는데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을 지으신 분의 목적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더군 다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해 주신, 오늘의 내가 있게 한, 하나님의 은혜에 보 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②그러려면 우리 자신이 깨끗해야 하고,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되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마음이 욕심으로 더러워져 있으면, 결코 주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욕심으로 산 결과가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확실히 알고, 우리 를 부르신 주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왕 주님 뜻에 맞춰 살 것 같으면,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이사야 6장 2절에 나오는 스랍은 '하나님을 모시는 천사'를 말하는데, 그 원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불타는 심령을 가진 자'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천사들입니다. 스랍들처럼 불타는 심령을 가 지고 일할 수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습 니다.

③늘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해야, 새롭게 변화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는 자는 변화합니다. 변화된 삶을 살려면, 자 신의 부족을 깨닫고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 하기 위한 생활을 함으로써 날마다 새롭고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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