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헛된맹세 (약 05:12-20)

첨부 1


그리스도인들은 함부로 맹세하지 말고 단지 예와 아니오라고만 하여 스스로 죄짖는 일이 없게 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병든 자가 있으면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면 하 나님께서 치유해 주신다는 말씀을 하며, 마지막으로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 는 것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I.헛된 맹세(12)

본문 12절에서 맹세에 대한 금지조항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5:33-37 절에서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맹세에 대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도무지 하지 말것을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율법조항을 교묘히 이용하여 하나님이 아닌 하늘이나, 성전, 제단 등 을 두고 맹세하고서는 하나님께는 맹세한 것이 아니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비록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맹세이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인간적인 잔꾀로 맹세할 것이 아니라, 아예 지 키지 못할 맹세는 하지 말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1.맹세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맹세란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하여 그 확실함을 보장하는 것이므로 통상 그 확 실함을 보증할 수 있는 큰 대상을 두고 합니다. 즉, 어떤 일을 하겠다면 분명히 그 일을 하겠다는 증명인을 내세워 약속하는 것이 바로 맹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맹 세의 대상은 맹세하는 자와 듣는 자보다 권위가 있는 것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23:7절과 마5:34절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우상이나 피조물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 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지키지 않을 심산 으로 되어지는 경향이 많으므로 상대방을 속이는 헛된 맹세를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신실한 맹세를 하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2.맹세는 반드시 이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을 때 반드시 그것을 이행하여야 합니다. 맹세를 하 고도 그것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그 맹세의 보증이 되시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 를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하고도 지키지 않으면 상대방에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도 망령되이 사용하여 제3계명을 범하게 되는 일이 되고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 아닌 맹세들은 안지켜도 된다는 뜻 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항상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무엇으 로 맹세였다고 하더라도 그 맹세와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3.그리스도인들은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무조건 맹세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맹세할 때에 반드시 그 것을 지켜야 하게 때문에 확실치 않으면서도 함부로 맹세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확실치 않으면서도 맹세하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것이나, 아니면 스스로 죄 를 짖게하는 올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맹세하여 낭패를 당한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있다면 입사일 것입니다. 삿11 장에 보면 전쟁에서 이기면 자기가 돌아올 때에 제일 먼저 맞는 것을 번제로 드리겠 다고 서원하였다가 자기 딸을 번제로 드리는 쓰디쓴 고통을 맞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함부로 하는 맹세는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큰 손해를 끼치는 해악이 되 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는 주님의 교훈처럼 `예'와 `아니오'에서 자신에게와 상대방에게 정직한 것이 바람직한 자세인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지나치게 강조하여 맹세하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에서나 아니면 너무 자신을 믿는 자만에서 오는 것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II.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13-18)

인생은 쿠고 작은 파란의 연속입니다. 예기치 못한 때에 고난이 닥쳐오고 불시에 파국을 맞는 예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합니다. 그러 므로 성도는 기도하면서 살지 않으면 이같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가 어려운 것입니 다. 고난 당할때의 기도는 그것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을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1.고난 당할 때는, 곧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1)고난은 신앙의 성숙의 계기입니다.

 고난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 고난을 겪어내는 인간의 모 습은 더마다 다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만났을 때에 대게 두 가지 양태를 보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힘으로 그 고난을 이겨보고자 몸부림치는 모 습이며, 또 한가지의 모습은 아예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할 줄로 알고 포기하여 주저 앉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고난에 대한 인식과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처음부터 판이하게 다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찾아오는 고난도 하 나님의 섭리의 하나로 봅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고 난을 통하여 신자는 훨씬 그 믿음이 자라나게 되며 성숙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입 니다.

 2)신자가 고난 당할 때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특별히 축복하시기 위해서 고난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역 사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시119:67, 고후4:17). 이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데 쥐하게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고난을 통하 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사50:15) 시며 기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축복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2.고난 중에 드리는 기도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1)병든 자를 구원하는 믿음의 기도(14)

본문 14절에서 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시대에 맞게 고 쳐 읽는다면 병든자에게 적절한 치료와 함께(기름바름) 하나님께 믿음을 갖고 기도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질병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엄습해와서 인생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기 도 합니다.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온전한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그 기도로 병든 자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2)인간의 한계를 넘는 의인의 기도

죄가 남아있는 심령의 기도는 응답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병 낫기를 기도하기 전에 먼저 서로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철저히 회개함으로 의인의 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가 기도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게 기도하고 또 다시 비오기를 기도하여 비가 오게된 것처럼 항상 주 님 앞에서 자복하며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노력과 함께 기도를 병행할 때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III.진리에서 떠난 자(장기결석자, 낙심자)를 돌아봄(19-20)

교회에 매주 등록하는 교인들이 생기는데도 교인 수가 거의 변동이 없는 것은 그 이유가 몇가지 있겠습니다만, 첫째, 한 두 번 출석한 등록 교인이 잘 적응하지 못하여 떠나는 경우. 둘째, 신앙 생활을 잘하던 사람이 믿음이 식어져 교회에 출석 하지 않는 경우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인 데, 교회마다 나름대로 노력은 합니다만 실제로 무관심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본문은 진리에서 떠난 자들을 돌아보도록 권면합니다

1.성도는 형제의 어려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모두가 한 지체들입니다. 한 아버지를 주로 섬기도 있습니다. 한 지체 가 병들고 아프면 함께 고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중에 누군가 문제 가 있다면 곧 자신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열심히 교회출석을 잘 하던 성도 가 출석을 갑자기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영혼에 질병이 걸린 것입니다. 또한, 진리 를 떠나 세상에서 방황한다면 그 영혼은 사경을 헤메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제들을 보고 방치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형제의 사망을 방치 하는 것이며, 자신의 지체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중에 진리에서 떠나 미혹 중에 있다면 거기서 돌아오도록 도와 주어 야 합니다.

 2.진리에서 떠난 형제를 돌아보는 것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 됩니다.

1)형제의 죄를 덮는 것이 됩니다.

 진리에서 떠난 자를 돌아보아 회개케 하는 것은 그 형제의 영혼을 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형제의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사실을 눅15 장 탕자비유에서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눅15: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리에서 떠난 자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탕자를 용서하듯이 허물을 덮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진리에서 떠난 형제들을 돌아보고 회개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자신의 죄를 덮는 것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고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도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성도는 진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가 진리에서 떠난 자들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무엇보다 자신이 진 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자신을 항상 돌아보아 경책하며 말씀에 충실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헛된 맹세에 빠지지 말고 진실되이 살며, 고난이 오거든 축복의 기회인줄 알고 인 내로써 열심히 기도하며, 진리에서 떠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지키며 나아가 다른 연약한 성도들을 돌아보며 사랑으로 권면하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