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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이 내게 복이라! (욥 3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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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37장과 더불어 친구 엘리후의 마지막 변론이다. 여기서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은 격앙된 엘리후의 어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엘리후가 욥에게 권면하는 것의 정당성(1-4), 하나님의 공의(5-16) 욥의 성급한 성격에 대한 경고(17-25),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권능(26-33)등이다.
성도에게 관은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신앙 문제이기도 하다. 어찌하여 주의 백성에게 고난이 닥칠까

1. 고난은 삼중적 교훈을 준다(8-10)

엘리후는 고난의 의미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고난은 과거 부지중에헤 범한 죄를 기억나게 한다(9절). 엘리후는 '소행
과 허물을 보이사 그 교만할 행위를 알게 하시고'라고 하였니다. 이는 곧 고난이 과거의 잘못된 행실을 깨닫고 회개케 하는 역활을 한다는 말이다. 성도들의 경우 관 당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부지중에 범한 죄악을 깨닫게 하사 회개케 하시고 다시금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관을 주십니다.

둘째, 당신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와 뜻을 이루실 목족으로 고난을 주십니다(10절). 엘리후는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택한 백성을 훈련시키사 당신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와 뜻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훌륭한 하늘 나라 일꾼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연단하시사 당신의 백성을 교훈하시고 훈련시키신다.
현재 욥이 당하는 고난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 고난은 결과적으로 장래의 불의를 방지하는 역활을 한다. 엘리후는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10절)라 하였다. 다시말해 당장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포함하여 장래에도 동일한 죄를 범치 못하도록 하는 예방의 역활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난은 과거의 죄를 깨닫게 하고 현재의 연단을 통해서 신앙을 단련시키며,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3중의 교훈을 준다. 따라서 금속이 불을 통과하여야 강해지고 정결한 쇠가 되듯, 고난이야말로 성도를 강하고 성결한 주의 백성으로 만드는 훌륭한 신앙의 훈련인 것이다.

2. 따라서 고난당할 때 성도는 주를 대적해서는 안됩니다(18).

엘리후는 욥을 향해 '너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다가 하나님을 조소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네가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너를 구원하실 분을 대적하지 말아라’ (18절)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포난당할 때 자칫 범하기 쉬운 실수를 살펴블 수 있다. 흔히 인생의 곤고한 상태에 있다 보면 자칫 다른 사람들에게 혈기를 부리고 분노를 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우리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지고 급기야는 자신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이런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는 다소 지나치게 욥을 혹평한 말이기에 욥이 이런 잘못을 범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서 이런 극도의 잘못에 빠지는 우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히12: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부모도 사랑하는 자너를 징계하고 채찍질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고 바른 교훈으로 양육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하늘에 게신 아버지께서 그 사랑하는 아들을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데에야 그 보다 더 큰 훈계와 사랑의 매를 사용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오히려 주의 백성은 고난당할 즈음에 더욱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난이야말로 주의 사랑의 증표요, 자비의 증거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교훈하기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11)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징게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는 사랑의 채찍으로 훈계하고 양육하는 부모에게 대드는 불효막심한 자녀와 다를 바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도도 큰 죄악인데, 하물며 살아게신 하나넘 아버지에게 원망하그 불평하며 불평한 데서야 어디 올바른 자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우리는 고난 앞에서 감사하고, 오히려 주넘을 찬양하는 성숙한 주히 자녀들 됩시다.

3. 그리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일을 발견해야 합니다(22-23절).

엘리후는 고난 가운데 고통하아 욥을 향해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행하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22걸)고 하였다. 여기서 크신 일이란 ' 24-33걸에 언급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통치 사역을 가리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당신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시요, 지금도 우주 만물의 운행과 절서를 주관하시는 섭리자이시며, 또할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절대 주권자라는 사실 알리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량한 믿음과 신앙 가지고 그분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런 구속 역사를 보여주시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켜 더 큰 축복의 그릇으로 만드신다.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은 형벌이 아니요, 심판도 아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은 택한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이요, 특권이다. 따라서 성도는 모든 고난 앞에서 오히려 감사하고 찬양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승리한다.
옥중에서 찬양한 바울과 신라의 본을따라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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