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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욥의 고난의 현장에 현현하신 하나님 (욥 3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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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침묵하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욥의 고난이 현장에 나타나셨다.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차이를 강조하시고, 욥의 무지하고 한탄한 자기 변호를 일축시키시 위해 온 우주를 조성하신 창조주는 과연 누구인가를 욥에게 물으셨다. 실로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요,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고 계신 분이시다. 따라서 인간은 그분의 거룩한 섭리와 경륜을 회의하고 도전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인간은 그분의 거룩한 섭리와 경륜을 회의하고 도전해서는 안된다. 다만 그분 앞에서 침묵하며, 그 분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온전히 따르는 겸손과 순종만이 요구된다.

그동안 욥의 친구들이 벌였던 논쟁에 대한 하나님의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경솔한 논쟁을 삼가라

하나님께서는 욥의 무지를 지적하실 때에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느냐고 추궁셨다.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고 불평했딘 욥이나, 욥의 고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많은 변론을 늘어놓았던 욥히 세 친구, 그리고 엘리후와 청중 모두는 한 마디 답변도 할 수 없었다. 창조주께서 지으신 피조물로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아는데 현격한 차이가 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토기장이와 토기의 관계로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사29:16)“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사45:9)“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렘18:6)“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그런즉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께 지혜에 대해 경솔하게 논쟁할 수 없다. 다만 인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총에 감사하고, 순종함으로 헌신 해야 한다. 이것이 고난 받는 욥에게서 하나님이 보시고자 하신 순종이요, 순전함이다(2:1-6).

2.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상상이나 추론을 하지말라!

욥의 고난에 대혜 죄의 결과라는 해석을 내린 욥의 세 친구와 달리 엘리후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선포함으로써 한낱 인간이 하나님의 권능에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엘리후는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논증을 제시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상상이나 추론을 삼가하라고 하신다. 인간의 유한한 지혜로 하나님의 권능을 추론하게 되면 오류에 빠지거나 독단에 빠져 하나님의 뜻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다의 횽용함을 보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지만, 바다에서 하나님의 자애로우심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직접 주신 말씀을 통혜서 바다를 거대한 갓난 아이에 구름을 강보에 비유함으로 하나님의 극히 광대하심과 하나님의 자애로우심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같은 맥락에서 우주. 땅 위, 땅 및 각종 자연 현상, 공중의 놀라운 헌상들 이 모든 것들이 운행되는 뜻을 인간이 알 수 있는가 이는 부패한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권능을 따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권능은 경외히 대상인 것이다.

3.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

욥은 처음부터 품었던 의문점들에 대해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한마디로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의 말씀샘을 듣고, 흡족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 있었다. 이는 읍이 하나님의 말씀을 퉁해서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명확하게 깨닫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욥은 자신의 순전함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 고난인가 의심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했었다. 하지만 욥은 광대 무변하시고 권능에 찬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직접 말씀해 주실 때에 그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한 순간 다른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욥은 경외의 대상이요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고난을 다 잊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었다. 이와같은 욥의 태도가 곧 오늘 하나님의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견지해야 할 태도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어머어마한 축복을 받은 자이다. 이것을 누리고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호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6: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모든 의심과 염려는 사라지고 승리할 수 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 붙잡고 기도하다가 늘 응답받고 승리하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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