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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발을 씻겨 주는 스승 (요 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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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월절이라는 명절은 유대인에게 매우 의미있고 뜻깊은 명절이었다. 그러나 이 날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감회는 제자들의 기분과 또 달랐다.

2. 12명의 제자들 중 하나인 가룟유다에게는 그동안 정들었던 스승과의 석별의 밤이기도 했다. 그것도 제정신에 의한 석별이 아니라 마귀의 조종을 받는 석별이었다. 그러니 정확히 표현하면 “배신”이었다.

3.이러한 앞으로의 되어질 모든 일을 아시는 주님은 아무런 내색없이 이 밤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손수 발을 씻겨 주셨다.

4.예수님이 유월절 저녁에 행하신 이 일을 모방하여 “세족식”이라는 행사가 생겨나게 되었다.

5.사람들은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세족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그 이상의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I.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셨다.
A.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1. 3년여의 공생애가 마감되는 시점이었다. 지난 3년의 기간동안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특별히 한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이 예수님에게 많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2.필요치 않았다면 궂이 12명의 제자들과 동행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층 더하셨다고 하였다.

3.유월절의 의미는 현재를 탈출하여 더 나은 이상의 세계를 향한 출발이다. 유대민족은 하나님과 더불어 그들의 미래를 개척하는 모험을 시작했다. 그들이 망설임을 청산하고 드디어 결단을 내린 전날밤, 그것이 바로 유월절의 기원이다.

4.고통스러운 현재를 뛰어넘어 소망가득한 미래를 향하기 위해 그들이 특별히 먹어야 했던 음식은 인상적이었다. “쓴나물, 누룩없는 빵” 이 그들이 먹은 음식이었다.

5.육체의 노예신분에서 그들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갈망하였다. 그래서 모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해 주시려고 유월절을 준비하셨다.

B.이전과 다른 뜻깊은 유월절이었다.

1.주님은 식사하기 전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한사람 한사람 열두명을 발을 씻기셨다. 전혀 예상치 못햇던 일이었다.

2.그런데 베드로의 발을 씻기려 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베드로가 한사코 사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선생님이 제자의 발을 씻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베드로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3.그래서 주님은 왜 발을 씻겨야 하는가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더 큰 것을 요구하였다. 아예 자기 온몸을 씻겨달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그래서 주님은 또 설명을 해주셨다.

4.모두를 감동시킨 유월절 만찬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예외가 있었다. 다른 열한명의 제자들이 모두 선생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있을 때 한사람 가룟유다는 마귀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

5.스스로의 결단이 이토록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종하시려 하지않고 우리에게 결단하도록 이끄신다. 이러한 요청에 우리가 어떻게 결단할 것인가

II.참 스승은 제자에게 생명을 준다.

A.유월절의 의미는 죄로 부터의 구원이다.

1.이스라엘민족들이 그들의 조상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에게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노예가 돼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2.하나님이 그들을 불러내신 이유는 자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신 것이다.

3.모세의 인도를 따른 이들에게 육체의 자유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해방은 아니었다. 다만 육체의 자유가 주어졌을 뿐이다.

4.이들은 죄의 문제로 부터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육체만 자유가 주어졌을 뿐 죄는 여전히 그들의 주인이었다. 이들의 신분이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죄의 노예로 바뀐 것뿐이었다.

5.주님은 이들에게 죄로 부터의 탈출을 도모하셨다. 그들의 조상들은 육체의 자유를 얻고자 40여년의 세월을 모래밭을 헤매야 했다. 하지만 그들과 3년을 지낸 예수님은 이들을 죄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주님은 이들에게 육체의 만나 대신에 신령한 말씀을 공급해 주셨다.6.제자들이 주님을 따라다닌 것은 어떤 댓가가 당장에 주어져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당장의 어려움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변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령한 양식 때문이었다.

7.그들의 조상이 먹었던 쓴나물과 누룩없는 빵 대신에 이들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양식을 먹기만 하면 되었다. 이 말씀의 양식이 이들의 죽었던 생명을 다시 소생시켰다.

B.생명은 양식을 통하여 성장한다.

1.주님은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왜 발씻김이 필요한지를 설명하셨다. 주님으로부터 “발씻김”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상징한다는 것을 짐작할 것이다.

2.곧이어 베드로는 “아예 제 몸 전체를” 씻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에대한 주님의 답변은 “이미 목욕한 사람” 에게는 발씻음 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목욕은 무엇이며 발씻음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음이 명확해졌다.

3.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이들에게 목욕하는 행사가 치루어진 것이다. 별도로 목욕을 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3년여의 기간동안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깨끗함을 입었던 것이다.

4.그러나 한번 목욕했다고 영원히 깨끗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해 있는 한 우리는 오염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할 길이 없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다.

5.주홍같이 붉은 죄라 할지라도 주님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희게해 주신다.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정결케 하실 분은 오직 주님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장사정해서 겨우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직접 우리의 형편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다.6.우리의 발을 씻겨줄자 누구인가 오직 주님 뿐이다. 그래서 천하만민 중에 구원받을 이름은 오직 예수 뿐이다.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C.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1.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다. 가룟유다였다. 그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3년여의 세월이 경과했고, 이 밤에도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이 사람을 선택했다.

2.왜 이사람은 마귀에게 선택을 입어야 했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따라 살려한다. 이 사람에게는 마귀를 따르는 것이 훨씬 이익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지 못한 탓이었다.

3.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려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서 떠나시고 만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마귀의 종으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

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1.주님을 따라다녔던 3년의 세월이 이들을 목욕시켰다. 어느 유명한 목욕탕을 찾아다녀서 돼어진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에배마다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그것이 바로 자신을 목욕케하는 것이다.

2.가장 귀한 것은 자유다. 육체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자유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희망이 바로 자유의 시작이다.

3.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가룟유다의 그길을 당신도 따르고 만다.

4.주여! 내 발을 씻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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