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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을 극복하라 (욘 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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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인간을 소생시키고 깊은 주름을 펴게 하지만 절망은 산사람도 죽음 으로 재촉하게 만듭니다. 본문에는 절망적인 환경을 멋지게 극복하는 극적 인 장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쓰시려 했으나 요나는 쓰임 받기를 원치않아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도망(1:3)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의 낯을 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요나는 하나님의 성전이나 이 스라엘 땅만 떠나면 하나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교회문을 나서고 성도와의 모임이 끝나면 하나님은 낯을 피할 수 있 다고 생각해서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 끝에도 계시고 바다끝에도 계시고 음부에도 계십니 다. (시139:8-9)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안도했지만 큰 풍랑을 만 났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곁길로 가는걸 바라보고만 계실 분이 아닙 니다. 결국에는 요나가 배에서 바다에 던져졌고 파도는 잔잔해졌으나 요나 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희망을 찾아 볼래 야 찾을 수 없는 절망이었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이 스올(지옥)이라고 표 현했습니다. (2:2) 인간이 왜 절망적인 상황을 맞습니까.그 이유는 인간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보다는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헤쳐나갈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원자탄을 발명한 아인쉬타인도 그 지식으로 죽음의 절망 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케네디의 권력도, 양귀비의 미모도, 맥아더의 용맹 도 , 역도산의 완력도 이 절망만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 극한 상황의 절망을 극복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안되었기에 절망을 이길 힘을 찾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절망의 관계

하나님께 절망적인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므로 절망은 인간이 쓸 수 있는 단어일뿐 하나님과 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큰일인데도 어른에게는 아무일이 아 니듯이 우리에게는 태산같은 문제일지라도 하나님께는 아무거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다는 것은 생사가 달려있는 큰 일입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요나로 하여금 불순 종을 깨닫게 하는 기회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나쁜일도 좋게 만드 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 절망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세도 동족을 위 해 사람을 죽인자였고, 다윗은 남의 아내를 성범죄했고, 노아도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자다가 자식들에게 봉변을 당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고,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데려다가 보배처럼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폐품을 잘 활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 도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 시며 지혜가 있으시니 아주 보배처럼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훌륭한 목수가 좋지 않은 목재를 가지고도 멋진 가구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 다. 하나님 앞에서는 구제불능의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낙심하지도 절 망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배처럼 쓰십니 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천한 자, 멸시받는 자, 없는 자들을 택하여 있는 자를 폐하신다(고전 1:27-29)고 하셨습니다. 결국 인간 의 절망은 자신의 연약함에 낙심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지 않은데 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망적인 환경은 없습니다.

요나는 태풍을 만나 집이 물에 잠겼다거나 바람에 쓰러졌다거나,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다거나, 병이 났다거나 그런 정도가 아니라 물고기 뱃속에 갇혀 사방이 온통 캄캄하여 죽음만 기다리는 환경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하 나님께서는 물고기를 잠수함으로 사용하셔서 요나가 일하기에 가장 편리한 위치의 바닷가에다 토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구 원받았습니다. 인간의 불가능이 하나님의 가능이요 인간의 무지가 하나님의 지혜임을 깨닫게 합니다.

 절망을 통한 교훈 하나님은 두번째로 요나를 찾아오셨습니다. (3:1) 그러니까 첫번째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재확인 시키셨습니 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울때 어디론가 도망가면 엄마는 어디고 따라가 서 잡아오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어디로 가던지 따라오셔서 간섭하십니 다. 그리고 사명을 반드시 이루고 마십니다. 실수했어도 깨닫게 하시고 위 로와 용기를 주시며 반드시 일을 이루고 마십니다. 그러므로 일찍 순종하여 쓰임 받길 바랍니다.

 절망을 극복한 자세 기도-여호와를 불러 아뢰었고, 부르짖었습니다.(2) 기도했다는 의미로 기도는 구조 요청입니다. 삼풍백화점 사고시에도 철근 더미에 묻힌 사람이 구조요청의 신호를 부내고 밖에서 받은 사람은 살아나 놀 수 있었듯이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할 수 있으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 다. 기도는 신자의 특권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응답하겠고 (렘33:3) 구하라 주실 것이요 (마7:7)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 리라(시50:10)고 했습니다. 기도하라 하셨으니 이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 다. 어린이도 환자도, 일하는 사람도, 노인도, 어느 계층 누구도 할 수 있 습니다. 만약에 돈이나 지식이나 권세, 명예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면 돈 없는 자,배우지 못한 자,권세가 없는자 보통사람은 어떻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으며 만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기도로 응답받고 해결받도록 하신 것 은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요 특권입니다. 기도하면 풀리고 열리고 해결되 는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감사-요나는 뒤늦게 나마 하나님이 살게 해주셔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감사했습니다. 지옥과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표현이요 확신입니다. 그 감사를 하 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서원-요나가 서원을 한 것은 적극적인 믿음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제까 지는 자기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유 익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반드시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는 적극적이고 분명한 약속입니다.

 인간에게서의 절망은 실패자로 만들거나 무력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 요 극복을 위해 있는 것이요 그것을 통하여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 던 것을 깨닫게 하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요나는 원래 사명대로 니느웨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온 성 사람들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해 냈습니 다. 작은 요나를 크게 쓰신 하나님은 작은 여러 분을 크게 쓰시고 보배롭게 쓰실 것입니다. 능력자이시고 지혜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붙잡혀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인물로 쓰임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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