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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 (요 17: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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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지난 주에 이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입니다. 예수 님은 이 기도의 후반부에서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영광을 그의 제자들 에게도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영광을 말씀하고 계십니다: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 니다.(요한 17: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영광이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전은 영광이라는 말 을 빛나는 영예(민중서관)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예가 무엇인가 다 시 사전을 찾아보면 그것은 영광스런 명예라고 정의해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광이라는 말의 뜻을 밝혀 주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영광이란 말의 뜻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빛나고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 크고 위대한 것, 존경스럽고 명예스러운것 등을 가리켜서 우리는 영광스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에게도 인 간에게도 영광이란 말을 적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광은 피 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나 위치,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인간이 영광 스러운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인간의 내적 본성을 말할 때에도 영광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또 인간이 개인적으로 재물을 많이 가지거 나, 왕이 된다거나 명성을 얻거나, 그런 경우 영광스럽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국가나 군대나 또는 자연에도 영광이란 말이 적용되었습니 다. 신약성서에 보면, 천하 만국의 영광(마 4:8)이나 솔로몬의 영광(마 6:29)등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영광이란 발전되고 크고 강하고 화려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 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광이란 말은 종교적인 것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이나 제사장 등의 옷등에 영광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 영광이란 말의 뜻은 화려 한, 찬란한, 눈부신, 거룩한 등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광이란 말이 주로 사용된 것은 하느님에 대해서 입니다. 성서 는 하느님의 영광에 대하여 많이 관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라 고 할 때 무엇을 뜻합니까 하느님의 영광은 그의 활동과 현현의 양태를 나타낼때 영광이란 말을 주로 씁니다. 성서에서 '하느님', '하느님의 영 광', '하느님의 임재'란 말을 거의 같은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의 영광에 대하여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 느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주로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 가운데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장엄하고 하려하고 찬란 한 종교적 성전 같은 데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 론 하느님의 영광은 그런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목해야 할 사실은 하느님의 영광이 진정으로 알려지는 곳은 인간과 인간 의 역사 안에서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서에서는 하느님이 당신의 영 광을 이스라엘에서 빛내셨다고 묘사했습니다. (사 44:23) 이 말은 하느 님의 영광이 민족사에 나타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사 상은 출애굽기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느님이 그의 백성들 가운데 살기를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내가 이 백성들 가운데서 살고자 하니 그들에게 내가 있을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출 25:8). 유 대교에서는 이 이야기에다가 전설적인 이야기를 붙였습니다. 하느님이 그 를 위하여 거처를 만들도록 명령하셨을때 시중드는 천사들이 이 말을 듣 고 놀라 하느님에게 말했습니다:왜 당신은 이곳 하늘의 피조물들을 버 리고 땅 으로 내려가시려 하십니까 당신이 하늘에 계셔야 하는 것은 당 신의 영광입니다..고 했습니다. 이 때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 니다. 내가 얼마나 땅 아래 있는 피조물을 사랑하는가를 알아라. 내가 땅으로 내려가서 염소의 털아래 살겠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느님이 계시 는 성막위에 씌울 천막은 염소 털로 짠 피륙으로 만들라는 명령이 있습니 다.(출 26:7) 아마 성막 안에 염소 털로 짠 피륙으로 된 천막의 유래를 설명하는 전설적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 사건을 말할 때에 하 느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두루 비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진정한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이 세상에, 인간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어떻게 우리 인간들에게 나타나셨습니까 하느님의 영 광은 구약성서의 역사에서, 또 신약성서의 역사에서 크게 두가지 대표적 인 사건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불 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나타나서 성막을 거하였다고 되어있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나타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특징은 무엇 입니까 두 가지 사건이 모두 하느님의 영광이 이 인간 세상에, 인간의 역사 한 복판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나타난 하 느님의 영광은 성막안에 나타나신 것인데, 인간의 진중에 나타나서 함께 계셨단느 것입니다.하느님의 영광은 마굿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의 사건 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특히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 타난 하느님의 영광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세가지 특징을 지적할 수 있다 고 봅니다.

 1. 낮아지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동등한 지위에 있고 하늘 의 하늘의 영광을 누리고 계셨지만 그 모두것을 포기하고 비우고 인간과 같이 낮은 신분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빌 2:6-8). 그는 인간세계를 떠나 초월적인 신들의 경지에 머물지 않고 낮은 인간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오실 때에도 피억압 민족 가운데도 가장 낮 고 가난한 민중의 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낮고 천한 마구간에 한 연약한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보잘것 없는 초라한 민중의 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실제로 낮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민중위에 군림하거나 민중의 지도자가 됨을 통해 서가 아니라 민중의 한 사람이 되고 민중의 벗이 됨을 통해서 민중의 해 방자가 되었습니다. 비천한 데에 처하는 영광입니다. 기독교의 사랑과 해 방의 영광의 자리는 마구간입니다.

 2. 섬김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 러 오신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남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점이 기독교의 영광의 특징적인 요소입니다. 지금까지 메 시아는 섬김을 받는 존재이지 섬기는 존재로서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습 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육신의 교리의 빛에서 볼 때 영광은 자신의 명 예나 자랑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그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분, 곧 하느님을 위햐여 영광을 돌리는것, 곧 섬김의 영 광입니다.

 3. 순종의 영광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하느 님에게 순종하는 길임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당하는 자리에까지 하느님에 게 끝까지 복종함으로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순종하는 영광입니 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성육신 사건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난 사건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을 두고 말할때 사 람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계시로 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하느님께 영광이란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삶과 활동 전체가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바클레이, 요 한복음, 68). 특히 그의 기적은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고 다만 그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했다고 말 씀했습니다.(요한 7:15). 바울 역시 자신에게 영광을 추구하기 보다는 하 느님의 영광을 더하게 하는 것에 강조점을 주고 있습니다.(롬 5:6-7)

우리 인간은 영광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고 또 독점하려고 합니다. 그러 나 영광은 하느님께 돌리는 것,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 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광을 하느님께 돌 리면 하느님이 그 영광을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 줍니다. 에수님이 그러했 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말씀 하셨습 니다.(요한 17:22) 예수님이 그를 보내신 분인 하느님을 영광 돌렸을때 하느님은 다시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셨다고 했습니다.(요한 8:50, 54) 영광은 개인을 위하여, 또 개인이 독점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로 부터 그가 받은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었고, 그들과 함께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도 하느님의 영광,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가질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요한복음의 말 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느님께 영 광을 돌리수 있습니까 랄프 도르네티(Ralph M dolrmette)란 분은 하느님 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다음 여섯 가지로 말한바 있습니다. 1).우리의 겸손으로, 우리의 선행으로(마 5:16 참조):2).열매를 맺음으로(요한 15:8):3).우리의 청지기직을 통해서:4).우리의 전적 성별을 통하여:5).우리의 성실함(신실함)을 통하여:6).우리는 위대한 사명(great commission, 즉 세계선교의 명령)의 수행을 통하여 등으로 하느님께 영광 을 돌리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적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에거 이미 본 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 그대로를 따라 가면 된다고 믿습니다. 즉 낮아짐의 영광, 섬김의 영광, 순종의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모인 사람들 사이에 그의 이름으로 에배하는 곳에 하느님 임재와 영광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 느님의 영광의 거처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은 교회 안에 만 제한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온 우주에 가득차 있습니다. 이 세계와 우주는 하느님의 영광의 무대입니다. 이 우주나 세계란 말은 자연 에 국한하여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 사회를 포함하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고 할 때 이집트 제국의 억압아래에서 강제노동으로 신음하던 히브리 민족에게 나타나셨듯이 오늘 도 고난 당하는 민족 가운데 나타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억압과 착 취를 당하고 수난을 당하고 있는 민중들의 삶 한가운데 하느님과 그의 영 광은 임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려는 데에 더 관심하고 있는 것 같습 니다. 사실 그런 경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예수 님의 삶을 통하여 본대로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 것 보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 더 관심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통하여, 우 리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가정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생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 신 기도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라 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게 우리가 기계적으로 기도하는 말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정말 생활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느님게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실상 영광이 아닌것을 구하거나 헛된 영광을 구 하거나 헛된 데에서 영광을 구하고 있는 경우는 없습니까

기독교인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은 인간 자신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파스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현실을 그대로 지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 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고 있습니 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또한 영광스럽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민족과 나라가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하고 우리의 삶이 영광 넘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과연 우리가 진정한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고 삽니까 우리는 생을 영광 스럽게 살고 있습니까 수치스럽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삶을 가치없게 산다면, 우리가 생을 의미없게 산다면, 우리가 생을 부도덕하게 산다면, 우리가 생을 이기적으로 산다면,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을 산다 면, 이는 하느님을 영광돌리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보다 다른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다가, 기독교의 힘에, 기독교 국가에, 교회 등등에 돌리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상숭배 입니다.

 유대인들의 가르침 가운데, 하느님과 모세와 대화중에 하느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하늘의 영광을 높이면, 하늘의 영광과 함께 그 자신의 영광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영 광을 높이면서 만일 하늘의 영광을 감소시키는 자는 하늘의 영광은 본래 대로 있을 것이지만 자신의 영광은 감소될것이다.1)

미국의 대법관이었던 윌리암 다들라스(William O. Douglas)란 분이 있 었습니다. 그는 옛날 그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가운데 그가 어릴적 그의 아버지가 중요한 작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워싱턴 주의 작은 마을에서 포 트랜드로 떠나면서 이렇게 말하였던 것을 그 후에 길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만일 내가 죽으면 그것은 영광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살아 남으면, 그것이 은총일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러한 삶과 죽음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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